제 478장. 지금 즉시 중도로 돌아올 것
“이 녀석이 또다시 말썽을 피울까 걱정하시는 겁니까? 이 정도까지 혼쭐이 났으니 반성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숙부님, 전에 제가 양준과 함께 여씨 가문을 떠날 때 말씀드렸었죠. 제가 숙부님이라면 반드시 양준을 동맹으로 삼았을 것이라고요.”
“그러셨죠.”
여량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 추억몽은 정말 그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처음에는 양준을 눈여겨보았지만 나중에는 아예 그를 무시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의 태도 변화는 눈에 띌 정도였다.
“하지만 어떻게 하셨습니까?”
추억몽은 냉소하며 말했다.
“삼백만 냥을 내놓으셨죠. 숙부님은 참 손도 크십니다.”
여량은 얼굴을 붉혔다.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삼백만 냥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씨 가문이나 양씨 가문 직계 공자에게 있어서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다. 양준이 여씨 가문을 떠날 때, 여량이 삼백만 냥을 준 것도 양준이 약왕곡의 소부생과 친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들 양준이 지금처럼 위세를 떨칠 줄 알았겠는가? 진작 알았다면 여량은 여씨 가문과 양준을 단단히 묶어 두고 인력이면 인력, 재물이면 재물, 물자면 물자, 모든 것을 아낌없이 퍼주었을 것이다. 어찌 양준에게 불만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 어찌 양준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여량은 후회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늦었어요, 숙부님. 어려울 때 도와주는 거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까요.”
말을 마친 추억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저에 일이 많아 배웅은 못 해드리겠군요. 살펴 가세요.”
그러고는 사뿐히 떠나갔다.
여량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마음속은 답답하고 괴로웠다.
여씨 가문은 그가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원래 이등 세력밖에 되지 않는 것을 추씨 가문에 연줄을 대 그 도움을 받아 점차 일등 세력으로 성장시켰다. 그동안 여량은 가문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계승 싸움은 가장 좋은 기회였다. 줄만 잘 선다면 여씨 가문은 더 크게 성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여량은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심지어 여송에게 인력과 물자를 가지고 전성으로 보냈을 때만 해도 되돌릴 기회가 있었다. 만약 보낸 사람이 여송이 아닌, 다른 젊은 자제였다면 지금쯤 양준의 관저에서 다른 무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망할 자식!”
여량은 손을 들어 여송의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여송은 바로 나가떨어졌다. 여량은 한심하고 속상한 눈길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절 때리신 거예요. 아버지?”
여송은 퉁퉁 부은 얼굴을 부여잡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여량을 바라보았다.
여량은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후계자 자리를 내놓거라. 너보다는 네 동생인 원(元)이가 더 어울리는 것 같구나.”
이번 일을 겪으면서 여량은 가문을 여송에게 맡긴다면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망하리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원이는 둘째 삼촌의 아들이잖아요…….”
여송은 그만 멍해졌다.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만 집으로 가자.”
여량은 아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뒷짐을 진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뒤로 여송만 멍한 얼굴로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번 계승 싸움으로 가문의 후계자 자리까지 잃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양준은 이미 하응상의 방을 자신의 방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일이 있든, 없든 이곳에서 며칠씩 머물렀다.
하응상에게서 새로 제련한 단약을 받은 양준은 바로 수련에 들어갔다.
도봉과 엄령행의 봉원주는 적어도 며칠 뒤에야 해제될 것이다. 영구와 곡고의, 당우선은 이미 만약영유가 첨가된 단약을 복용했지만 회복하려면 역시나 며칠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신유 경지까지 한 단계밖에 안 남았는데 양준이 어찌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는가?
그는 수련하면서 동시에 비보를 흡수했다.
뼈 방패가 발휘하는 거대한 효능에 양준도 현급 비보의 위력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급히 현급 중품 비보인 거울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응상이 제련한 현단의 도움을 받자, 비보를 흡수하느라 소모한 진원도 빠르게 보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식도 줄곧 연단진결의 현묘함을 탐색하고 있었다. 양준은 한꺼번에 두 가지를 수련하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효율과 성과에 있어서 평소보다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순수한 진원을 돌리며 연단진결에서 전해지는 복잡하고 신비로운 연단의 도를 깨칠 때마다 양준의 표정은 다양하게 변했다. 연단진결 중의 연단의 도는 일반 연단사의 경험이나 기법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그 속에 숨겨진 현묘함은 상식으로 가늠하기 힘든 것이었다. 지금까지 연단진결에서 얻은 모든 지식을 정리하면서 양준은 연단술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새 양준이 축적한 진귀한 연단 경험은 이 세상의 수준을 멀리 벗어나 있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 유일하게 부족한 것은 실천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는 아직 젊었고, 앞날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연단을 통해 무도의 현묘함을 엿볼 수도 있었다. 소부생도 말하지 않았던가.
‘누가 연단하면 무도의 정상에 오를 수 없다고 했느냐?’
*시간이 흘러 해가 지고 달이 떴다. 양준은 여전히 수련에 심취해 있었다.
이때, 문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살짝 감지해 보고는 손으로 미풍을 밀어 내어 방문을 열었다.
추억몽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양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추억몽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오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양씨 가문에서 장로령을 들고 사람이 찾아왔어. 아홉째 양준은 지금 즉시 중도로 돌아올 것.”
말을 마친 그녀는 양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는 복잡한 표정이 드리웠다. 장로전에서 왜 양준을 불러들이는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살짝 놀라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나만 중도로 돌아오라고 했다고? 큰형님이나 둘째, 일곱째 형님은?”
“너만 부른 것 같은데.”
추억몽이 입술을 앙다물며 말했다.
“알겠어.”
양준은 천천히 일어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가문에서 내린 이번 명령은 의미심장했다.
‘왜 나만 중도로 부른 거지? 지난번에 가문에서 사람이 온 것도 며칠 되지 않았잖아. 그때는 각 공자에게 파경호에서 비보 쟁탈전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서라지만, 지금은?’
“양준, 왠지 모르겠지만 뭔가 불길해.”
추억몽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손을 맞잡은 채로 끊임없이 비비면서 마음속의 긴장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양씨 가문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양준 한 사람만 중도로 불러들인 것은 분명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암시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양준이 중도에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공격할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
“가문에서 명령을 내렸으니 오가는 길은 안전할 거야.”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만약 중도로 오가는 길에 매복한 사람들에게 습격을 당해 탈락한다면 가문에서도 난처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조심해.”
추억몽이 진지하게 당부했다.
“영구와 우선한테 준비해 두라고 말했어. 그 둘이 너와 함께 움직일 거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에서 그에게 속히 중도로 돌아오라고 말을 했으니 양준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밖으로 걸어갔다.
문밖에서 건강을 회복한 영구와 당우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묵한 영구는 여전히 말을 아꼈지만, 당우선은 기쁨에 찬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막내 공자님.”
다시 양준의 곁으로 돌아와 충성을 하게 된 당우선과 도봉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지난 반 년 동안 두 사람은 비록 양항의 휘하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항상 양준과 다시 힘을 합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몸은 다 나은 거야?”
양준도 기쁜 얼굴로 물었다.
“덕분에 전부 회복되었습니다.”
당우선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눈에는 감격의 기색이 역력했다.
패혈광술을 펼치고 영구와 접전을 벌였으니 사실상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양준이 준 단약이 신기한 효과를 발휘하여 이틀 안에 영구와 함께 회복한 것이다. 비록 전에도 이런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지만 당우선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
“나중에 시간이 날 때 너한테서 신혼기 활용법을 좀 배워야겠다.”
양준은 웃으면서 답운구에 올라탔다.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우선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수많은 혈시 중에서 신혼기와 신식의 수련으로 치자면 당우선이 가장 뛰어났다. 혈시마다 자신의 장점이 있었다. 곡고의는 일시적인 폭발술에 능했고, 영구는 은신과 암살술에 능했으며 도봉은 정면 싸움에 능했고, 당우선은 신혼 쪽에 조예가 깊어 혈시당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조심해서 빨리 갔다 와.”
추억몽은 세 사람이 모두 답운구에 올라탄 것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양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답운구 세 마리가 빠른 속도로 중도를 향해 질주했다.
*관저 밖,
산들바람이 불어와 추억몽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고, 뉘엿뉘엿 지고 있는 해가 그녀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녀는 왠지 점점 불안감이 커졌다.
“명령을 전해라. 전원 개인 수련을 멈추고 두 무리로 나눠서 번갈아 가며 관저를 수비한다. 외부인이 침입해 오면 무조건 죽인다! 양준이… 돌아올 때까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