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81화 (481/853)

제 481장. 요구사항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이건 분명 가문이 저를 압박하고 있는 겁니다.”

양준이 당당하게 이의를 표했다.

“제가 얼마나 많은 혈시를 모았든 그건 제 능력으로 얻은 것입니다. 가문이 무슨 근거로 소환한다는 말입니까? 제가 혈시들을 어떻게 이용하든 그 또한 제 자유입니다. 만약 가문에서 이런 조치를 한다면 천하의 모든 이가 비웃을 것입니다. 계승 싸움이 오랜 세월 유지되어 왔는데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규정을 이렇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무엄하다!”

반나절 참고 있던 양진은 결국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가 옆의 탁상을 내리치자 탁상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감히 내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니, 반항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장로님들의 잘못에 대한 지적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게 무슨 법도라는 것입니까?”

양준은 냉소하며 도도한 눈빛으로 양진을 바라보았다. 전혀 겁먹지 않은 눈치였다.

양진은 몇 번이고 입술을 실룩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팽팽해진 것을 보고 자리에 있던 장로들 중 한 명이 일어서서 말했다.

“양준, 너무 화내지 말 거라. 이번 일은 확실히 가문에서 잘못했다. 하지만 우리도 네가 모든 혈시들을 불러모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단다. 양진의 말도 일리가 있지 않느냐? 잘 생각해 보거라. 계승 싸움을 혈시에 의존해서 승리하는 것도 떳떳하지 못하지 않느냐? 이번 일로 다음 계승 싸움에서는 가문에서도 혈시들이 참여하는 문제를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전 결과만 보지 과정은… 상관없습니다.”

양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떳떳하든 떳떳하지 못하든 그건 장로전의 사정이고, 다음 계승 싸움도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지요. 저는 혈시들을 비열한 수단으로 불러모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협박한 적도 없고요. 그들이 기꺼이 원해서 저한테 의탁한 것이지요. 아무튼 가문에서 제 혈시를 불러들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양준은 잠깐 뜸을 들이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가문에서 정말 그리한다면 이번 계승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감히 우리를 협박하는 것이냐?”

양진에게서 위험한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 나왔다.

“장로님께서 그리 느끼셨다면 따로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애들 장난처럼 멋대로 규칙을 바꾸는 계승 싸움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양준은 냉소하며 공수 인사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네가 정녕 미친 게로구나.”

양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양준은 끄덕 없는 얼굴로 몇 걸음 걷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맞은편에 한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건장한 몸집에 뒷짐을 지고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양준은 커다란 산과 마주한 착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순간이지만 엄청났던 압박감은 곧 사라졌다.

양준은 심호흡을 하고 공수하며 말했다.

“백부님을 뵙습니다.”

들어온 이는 현재 양씨 가문의 가주인 양응호였다.

양응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의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먼저 가지 말고 나와 얘기해 보자꾸나.”

“가주님을 뵙습니다.”

장로전의 장로들도 일제히 일어나더니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비록 나이로는 그들이 양응호보다 한참 위였지만, 양씨 가문에서는 가주가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니고 있기에 양진을 포함한 장로들도 예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앉으십시오.”

양응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양진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루가 되어 버린 탁상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진 장로, 성격을 좀 고치셔야겠습니다.”

양진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대답했다.

“오랫동안 이랬으니 고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한 장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개가 똥 먹는 것을 고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의 말에 다른 장로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다.

양응호가 직접 이곳에 찾아온 건 유쾌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리라 짐작하고 특별히 양준과 얘기를 나눠 보고자 온 것이었다. 가주의 체면은 봐줘야 하니 양준은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남을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양준이 규정 변경에 대한 소식을 들은 모양이군요.”

양응호가 물었다.

“네.”

양진은 그의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들어 양준을 바라본 양응호는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가문의 잘못이다. 백부가 가문을 대표해 너한테 사과하마.”

“제가 어찌 감히요.”

양준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다만, 가문에서 그의 옆에 있는 혈시들을 불러들이겠다는 결정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문과 장로전의 강경한 태도에 그도 무기력감을 느꼈다.

양준도 결국은 양씨 가문 사람이고, 부모님도 모두 양씨 가문에 있는지라 사이가 너무 틀어지면 수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애초에 바라는 바가 있어 계승 싸움에 참여한 것이었다.

“네가 내키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문의 결정이니 번복할 수 없구나.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계승 싸움 중에 모든 공자는 혈시를 두 명 이상 들이지 못한다.”

이 말을 들은 양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하였다.

“그렇다면 제가 만약 큰형님과 둘째 형님과의 싸움에서 승리해도 형님들의 혈시를 거두지 못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양응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시는 너무 압도적으로 강하다. 특히 패혈광술을 펼친 혈시가 얼마나 강한지 너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건 저를 노리고 바꾼 규칙이지 않습니까?”

양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지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금 기분은 아주 복잡합니다.”

“꼭 널 노리고 바꾼 것은 아니다. 전에도 가문의 어르신들은 너처럼 누군가 모든 혈시들을 모을까 봐 걱정했었다. 하지만 다들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여기고 신경 쓰지 않았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네가 정말로 그 일을 해냈으니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이다.”

양응호는 잠깐 뜸을 들이고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네 저택에는 약왕곡과 보기종 사람들도 있지 않느냐. 넌 이미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도 원래는 계승 싸움에 참여할 수 없었다. 너도 들었다시피 약왕곡 사람들이 네 관저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형제들이 손을 잡고 항의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가문에서 제지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네 인맥이기에 간섭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혈시는 다르다. 혈시는 양씨 가문의 사람들이지 네 인맥이 아니다.”

양준은 싸늘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응호의 이 말은 문제의 핵심을 잡은 것임은 틀림없었다.

“가문에서 네 옆에 있는 다수의 혈시들을 거두어들이는 대신 당연히 너한테 보상을 할 것이다. 요구사항이 있다면 마음껏 말하거라. 널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가문에서도 거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양응호가 이렇게 나오자, 양준도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는 아직 가문에 대항할 자격도, 능력도 없었다. 다시 한번 반박을 했다가는 오히려 손해만 볼 것이다.

“요구사항이 한 가지 있긴 합니다만.”

양준은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거라.”

양응호가 말했다.

“제가 몸담았던 능소각의 이름을 바로 세워주십시오.”

양준은 시선을 들고 양응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능소각은 사파도 아니고, 어쩌다 사주 한 명이 나왔을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의 안색이 묘하게 변했다. 다들 꺼리는 눈빛이었다. 이미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른 양응호도 마찬가지였다.

창운사지와의 전쟁을 치를 때, 양응호도 사주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사주에게서는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는 사주를 마주했을 때, 이성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주는 그와 같은 신유 경지 이상이었지만 실력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걸 원하는 것이냐?”

양응호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이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양씨 가문의 가주로서 창운사지와는 항상 적대 관계였는데 갑자기 사주 출신의 문파를 위해 이름을 바로 세우라니. 참 난감한 일이었다.

“제 요구사항은 이것뿐입니다.”

양준이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계승 싸움에 참여한 것은 남들처럼 양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노린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의 힘으로 능소각의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이는 그와 아버지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문파의 이름만 바로 세워진다면 능태허와 장로들, 그리고 밖에서 떠돌아다니는 능소각의 제자들 모두 다시 그들이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가주님께서 승낙하신다면 제 곁에 있는 혈시를 가문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물론, 계승 싸움에서 퇴출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양준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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