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85화 (485/853)

제 485장. 잡아라

“내가 듣기론 일단 혼교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고 하던데.”

양준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혼교는 두 사람의 신혼 융합이었다. 그것은 영혼의 융합인지라 동시에 두 사람의 기억도 한데 엉키게 되어 자칫 잘못하면 성격도 크게 변하게 된다.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잃을 수 있으나 공자님은 마음이 단단하셔서 괜찮으실 겁니다."

당우선은 잠깐 뜸을 들이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절대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그렇게 확신해?”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좀 해볼게.”

‘같이 할 사람은 있으나 그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군.’

양준과 소안의 음양합환공은 이제야 2단계였다. 3단계에 이르면 신혼의 융합을 이룰 수 있었다. 합체 수련하여 서로의 신식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고맙다.”

양준이 진지하게 고마움을 표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당우선은 생긋 웃었다.

양준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당우선의 식해에서 물러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저도 모르게 ‘어!’ 소리를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당우선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누군가 왔어.”

양준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자취를 감추었다.

당우선은 멍해 있다가 급히 마음을 가다듬고 식해에서 나왔다. 금방 눈을 뜬 그녀는 양준이 다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관저에서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왔으면 숨지 말고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곧 놀라운 원기 파동이 전해졌다. 관저의 한 곳에서는 붉은빛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우선은 낯빛이 급변했다. 관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양준 관저,

지마의 기괴한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경계 태세를 취했다.

양준이 도착했을 때, 단약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무인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진원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또한 경계 어린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이 다가가자 그들은 길을 터주며 인사를 건넸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유롭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장 안쪽에서 추억몽과 몇몇이 지마의 곁을 둘러싼 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주인, 그자가 왔다네.”

지마는 살짝 흥분해 있었다. 그는 양준과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양준은 실눈을 뜨고 지마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붉은빛 몇 갈래가 지면에서 일더니 불에 달궈진 철기둥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철기둥들은 둥근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흐릿한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그림자는 붉은빛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추억몽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붉은빛에 감싸인 그림자는 거의 투명체에 가까웠다. 만약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것의 존재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림자가 움직일 때마다 공기 중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시야에 강물이 아른거렸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림자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런 수단은 이미 사람들의 이해 범주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영구도 은신과 암살에 능한 고수인 만큼 자신의 모습을 공기 중에 숨길 수 있었다. 그것은 특별한 기교와 진원이 유동하는 방식을 사용해 눈속임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그림자는 달랐다. 그녀는 분명 그곳에 있지만 모든 이들이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양준은 흠칫 놀랐다. 전에 신비한 고수의 실력을 얕보았던 듯했다.

신비한 고수는 일전에 두 번 양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결국 모두 무사히 빠져나갔었다. 이에 양준은 지난번 파경호에서 자른 그녀의 머리카락을 지마에게 주면서 행적을 쫓게 했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 법, 오늘에야 지마는 신비한 고수의 기운을 느끼고 대단한 수단으로 그녀를 묶어 둔 것이었다.

그녀는 묶여 있어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자신을 둘러싼 붉은빛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위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어? 여인이네?”

추억몽은 깜짝 놀란 듯했다. 순간, 그녀는 그림자의 가슴팍에 솟아오른 봉긋한 가슴을 보았던 것이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림자의 성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낭자, 이만 모습을 드러내지?”

양준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곳에 조용히 서 있었다.

양준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궁금한 게 있어 가르침을 얻고자 하니 협조해 주면 안 되겠나?”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었다.

양준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자꾸 단약방 근처에 잠입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또 누구의 부하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런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관저의 모든 사람들이 불안에 떨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굴복하지 않는 모습으로 볼 때, 말을 더 해도 소용이 없을 듯했다.

“열까지 셀 동안, 잘 고민해 봐.”

양준의 안색이 차가워졌다. 말을 마친 그는 조용히 기다렸다.

곧 약속한 시간이 다 지나갔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그림자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잡아. 만약 반항하면 죽여도 좋아.”

지마는 킬킬 웃더니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붉은빛에 속박된 그림자는 양준이 이토록 냉혹하게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순간 몸이 굳어진 듯했다. 하지만 금방 흐릿해지더니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두어라.”

지마가 소리쳤다.

이내 그녀를 둘러쌌던 붉은빛이 갑자기 기괴한 기운을 풍기며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흥, 겨우 너희 주제에 날 잡겠다고?”

붉은빛이 그림자를 묶으려는 순간, 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목소리가 너무 어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체형뿐만 아니라 외모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의 음질은 완전히 달랐다. 신비한 고수의 목소리는 아주 앳되고 맑았다. 목소리만 들으면 스무 살 남짓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겨우 스무 살밖에 되지 않는 소녀가 이토록 높은 경지와 실력을 가지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추억몽은 스물세 살이었지만 이제 겨우 신유 경지 1단계였고, 류경요는 그보다 나이가 더욱 많았다.

신비한 고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마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와 동시에 그녀의 의기양양한 웃음소리와 함께 붉은빛에 갇힌 그림자가 갑자기 폭발했다.

양준은 앞으로 성큼 다가가 커다란 손으로 그림자를 잡으려 했다. 그는 이미 똑같은 광경을 두 번이나 겪었지만 매번 놓치고 말았다. 역시나 손을 뻗은 순간, 물보라만 잡힐 뿐이었다. 그녀는 또다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졌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이곳에는 젊은 세대의 무인들뿐만 아니라 신유 경지의 무인들도 많았고, 양씨 가문의 혈시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가 어떻게 도망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지마는 흥분한 얼굴로 방금 꺼낸 것을 손에 들고서 진원을 주입했다. 진원이 주입되자 이상하게 생긴 물건이 갑자기 빛을 내기 시작했다.

“잡아라.”

지마가 나지막하게 소리치자 손에 든 물건은 빛으로 변해 번개처럼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것은 놀라운 속도로 전성의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킬킬, 진작 이리 나올 줄 알고 있었지.”

지마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빛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잡을 수 있겠어?”

양준이 물었다. 지마가 꺼낸 물건은 그도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바로 지난번에 양준이 건네준 담청색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이었다.

“손을 써두었으니 주인… 공자님은 기다리시게.”

지마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혈시들은 묘한 표정으로 지마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보고 들은 게 적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마가 보여준 수단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마의 정체가 궁금했다.

*전성의 여풍객잔(如風客棧).

한 소녀가 방 안에서 천천히 눈을 뜨고는 빨간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열 받아! 나 오기만 기다렸다는 거지? 너무해!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사람 좀 찾겠다는 건데.”

세 번이나 은신술이 발각되자, 소녀는 화가 나 씩씩거렸다.

‘이런 곳에 어떻게 그렇게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실력이 좀 낮은 게 흠이야. 만약 걔가 이곳 출신이 아니라 내가 있던 곳 출신이라면 분명 출세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곳에서는 앞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엄청 제한적이겠지.’

소녀는 양준의 비천한 출신을 떠올리며 고소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때, 귓가에 갑자기 귀를 찌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소녀는 온몸이 서늘해지면서 순간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직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창문으로 빛이 튀어 들어왔고, 그 빛은 빠른 속도로 소녀의 몸을 강타했다.

“아이고……!”

미처 막지 못한 소녀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다시 일어났을 때,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소녀는 깜짝 놀라 온몸을 살펴보았지만 다친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감지해 보자, 뭔가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가 줄어든 거지?’

소녀는 여러 번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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