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86화 (486/853)

제 486장. 도대체 몇 살이지?

양준 관저.

양준의 명령으로 사람들이 모두 해산한 뒤, 오직 지마만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뒤, 눈앞에서 빛이 스쳐 지나가자 지마가 손을 뻗어 덥석 잡고는 탐지해 보더니 기뻐하며 말했다.

“주인, 이제 됐네.”

말하면서 그는 잡고 있는 물건을 양준에게 건네주었다.

양준은 그것을 건네받아 자세히 살펴보고는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방금 전, 그는 그저 힐끗 보았던 터라 지마가 신비한 고수의 머리카락으로 무슨 물건을 만들었는지 몰랐다. 그런데 지금 자세히 보니 그것은 작은 인형이었다.

‘지마에게 이런 재주도 있었다니.’

머리카락으로 만든 인형은 얼굴이 불분명하고 사지만 붙은 것이 허접한 모형에 불과했다.

그때, 인형에서 옅은 빛이 발산되더니 정체 모를 기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주인, 이건 내가 만든 구혼주(拘魂咒)라네! 이미 인형과 그 여인의 정신이 이어져 있어서 인형을 건드리기만 하면 그 여인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인형이 받는 고통을 똑같이 받을 것이네.”

“내가 목을 비틀면?”

양준이 지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그 여인은 죽을 거라네.”

지마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그 사람은 온전히 주인의 통제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되네.”

“좋아.”

양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마는 킬킬 웃으며 말했다.

“이는 내가 예전에 부하를 통제하느라 연구해 낸 주술이네. 그날 이 주술이 갑자기 떠올라서 써 본 것이지.”

“너도 예전에 잘 지낸 것은 아니었나 보구나. 이런 방식으로 부하를 통제하면 누가 너한테 충성을 바치겠어?”

“나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네.”

양준은 고개를 젓고는 더 이상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중지를 구부려 인형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

늦은 밤, 양준 관저.

곳곳에서 타오르는 횃불은 관저 전체를 대낮처럼 환히 비추고 있었다. 하늘에는 밝은 달과 듬성듬성 반짝이는 별이 보였다. 전성의 밤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왔나?”

가부좌를 하고 수련하고 있던 양준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 빛을 뿜었고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옆에서 지키고 있던 지마도 킬킬거리며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조용한 야밤에 그 웃음소리는 더더욱 소름이 끼쳤다.

“왔으면 대범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그래?”

양준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때, 방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양준은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거의 투명하다 싶은 그림자가 입구에 서 있었다. 아까 낮에 본 것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림자는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양준과 10장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지마는 몰래 진원을 돌렸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영구도 모든 집중력을 신비한 고수에게 쏟은 채, 전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쥐새끼 같은 놈.”

투명한 그림자가 서 있는 곳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여전히 맑고 앳된 소녀의 목소리였다.

“진짜 모습을 드러내.”

양준은 그녀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째째한 놈은 내 모습을 볼 자격이 없어.”

소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 부하들을 물리면 모를까.”

양준은 의미심장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는 한 손에 담청색 머리카락으로 만든 인형을 들고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녀는 시선을 인형에 고정한 채, 두려움과 분노로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인형을 빼앗아 없애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 듯했다.

한참 뒤에야 양준은 손을 내저었다.

“주인.”

지마는 안색이 변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지마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영구와 밖에 있을 테니 시킬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부르시게.”

말을 마친 지마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신비한 고수의 곁을 지날 때, 지마는 갑자기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우리 주인을 잘못 건드렸다간 큰 화를 입을 거다.”

소녀는 그 말을 듣고 푸흡, 하고 비웃었다.

지마와 영구가 나가자, 소녀는 한결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방 안에서 고수 두 명이 지키고 있으니 그녀도 긴장이 되었던 것이다.

양준은 그녀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다지 강해 보이진 않네.”

영구와 지마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아 최정상의 고수는 아닌 듯했다.

“너보다 강하면 됐지 뭐.”

소녀는 코웃음을 치더니 맞받아쳤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인간… 나랑 말싸움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네. 확실히 철이 없군. 도대체 몇 살이지?’

양준은 그녀의 나이가 매우 궁금했다.

“네 말대로 부하도 내보냈으니 이제 그만 모습을 드러내지 그래?”

“깔깔……!”

소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투명한 몸에서 가냘픈 자태가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웃음기를 거두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그래.”

양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순간 숨을 죽였다. 그녀는 양준이 이토록 대담하게 행동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부하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다가오다니.’

그가 다가올수록 두려울 게 없던 소녀는 갑자기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젓고 마음속의 불안감을 떨쳐버렸다. 그녀는 위험한 기운을 풍기며 음산하게 말했다.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네 손에 있는 걸 나한테 넘겨.”

“싫다고 하면?”

“내 기분을 상하게 하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의 물 같은 몸이 갑자기 터져버렸다. 흩어진 물안개는 순식간에 방 안을 가득 채웠고, 물안개 속에서 괴이한 기운이 떠돌며 사방으로부터 양준을 감쌌다.

방 안의 기척을 느낀 영구는 몸을 움직여 들어가려고 했으나 지마에게 잡히고 말았다.

지마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주인에게는 별일 없을 거야.”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부터 죽인다.”

영구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마는 킬킬 웃으며 말했다.

“충성심으로 따지면 나도 너한테 뒤지지 않아. 걱정하지 마. 봉변을 당하는 쪽은 그 여자가 될 테니. 주인을 화나게 한 사람 치고 좋은 결과를 본 사람은 없어.”

말이 끝나자마자 방 안에서 갑자기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비명소리는 마치 잔혹한 고문을 당하는 듯했다. 그리고 간간이 양준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이에 영구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방 안,

양준은 제자리에 서서 손에 인형을 들고 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구부리고 인형을 튕길 때마다 소녀의 비명소리가 점점 더 심해졌다.

잠시 뒤, 그림자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물안개가 너무 짙어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바닥에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은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담청색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드리워져 가냘프고 애잔해 보였다.

양준은 꿈쩍도 하지 않고 뜨거운 진양원기를 내뿜어 방 안의 물안개를 깨끗하게 증발시켰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소녀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담한 체형의 신비한 소녀는 바닥에 모로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머리카락과 손가락 틈 사이로 원망으로 가득한 두 눈이 보였다. 소녀는 불쌍해 보일 정도로 가냘픈 모습이었지만, 사실상 완벽한 방어와 반격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양준이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그녀는 얼마든지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양준은 미소를 지은 채 발걸음을 멈추었다.

손가락 틈 사이로 드러난 눈에는 실망감이 드리웠다.

“일어나.”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꿋꿋하게 누워 있었다.

“내가 널 어찌할 것 같은 자세는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야. 난 늙은 여인에게는 관심이 없거든.”

“누가 늙었다는 거야?”

소녀는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나 노기등등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씩씩거리며 가슴을 들썩였다. 그 바람에 담청색 머리카락도 좌우로 흩날렸다.

말을 마친 그녀는 양준의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고서 자신이 그의 수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뾰로통해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양준은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눈앞의 소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소녀는 얼굴도 목소리처럼 매우 앳되었다. 세월은 그녀의 얼굴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가 신비한 천재지보를 복용한 게 아니라면 정말 스무 살 정도의 소녀로 보였다.

‘경지는… 신유 경지 8단계라니!’

신식을 펼쳐 그녀를 훑어본 양준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이는 양준이 처음으로 그녀의 경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었다. 전에 몇 번 그녀와 만난 적이 있었지만 신식으로 그녀의 경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심지어 몽무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는 신식의 탐지를 피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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