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8장. 만지지 말아야 할 데를 만졌나
“넌 누굴 찾고 있었던 거야?”
양준은 엄숙한 얼굴로 진지하게 물었다.
“모르는 사람이야.”
수령은 고개를 저었다.
“면사포를 쓰고 다녀서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그 사람은 왜 찾는 거야?”
양준이 실눈을 뜨고 물었다.
수령은 갑자기 공포심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양준의 분위기가 왜 돌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멍하니 있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의 체질이 특이하더라고. 게다가 자질도 너보다 뛰어나니까 수신전에 데려가려고 했지…….”
양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내 온몸의 진원이 난폭하게 일렁거렸다.
수령은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그 사람의 체질이 남다르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양준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수령에게 다가갔다. 강한 신식이 그녀의 주변을 꽁꽁 감쌌다.
수령이 찾고 있는 사람은 하응상이었다. 이게 바로 그녀가 자꾸 단약방 근처에 잠입한 이유였다. 다만 그녀가 하응상의 체질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아본 것에 양준은 불안감을 느꼈다.
몽무애가 줄곧 하응상을 보호하고 그녀를 사람들의 시선이 안 닿는 곳에 숨기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특수한 체질이 소문이라도 나면 몽무애의 실력으로도 보호하기 힘들 수 있었다. 하응상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든 모두 양준이 바라는 결과는 아니었다. 때문에, 양준은 그런 일을 미리 막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면 그는 여기서 사람을 죽여 입막음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냥 알게 되었어!”
수령이 비명을 꽥 질렀다. 그녀는 양준의 눈에 드리운 살기를 보고 당황했다. 그녀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연신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양준은 그녀가 숨 쉴 틈도 없이 계속 몰아붙였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날 그녀가 전성에 들어섰을 때 우연히 보고 알게 된 거야……. 아마도 내 특별한 체질과 연관이 있어서 느낀 거겠지.”
양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수령과 반 척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수령은 저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너도 특별한 체질이야?”
양준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수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녀는 문득 양준이 풍기는 압박감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나 같은 수신전의 고수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인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그녀도 양준에게 얼마든지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령은 감히 그러지 못했다. 그에게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인형이 없다 하더라도, 그녀는 양준을 죽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는 무슨 체질인데?”
양준은 고개를 갸웃하고 수령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는 특수 체질은 하응상뿐이었다. 이처럼 타고난 특수 체질은 보기 드물 뿐만 아니라, 각자 효능도 서로 다르며 같은 성질의 특수 체질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수령은 경계 어린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보면서 대답하기 꺼려 했다.
하응상의 약령성체를 비밀에 부쳤듯이 수령도 자신의 체질을 감추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에게 잡힌 신세라 별다른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주저하던 끝에 수령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수령지체(水靈之體).”
양준은 그녀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의 행동으로 보아 그녀의 체질은 물과 연관된 것이 분명했다. 또한 그녀의 이름도 체질에서 따온 것으로 보였다.
“그 체질은 뭐가 어떻게 다르지?”
“몸을 물처럼 바꿀 수 있어.”
수령은 말하는 한편, 진원을 돌려 보여 주었다. 양준도 그녀를 경계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담청색 긴 머리카락의 아담한 수령은 곧 물처럼 맑고 투명하게 변하면서 사람 형체만 남기더니 이윽고 동그란 물방울로 변했다.
영구처럼 침착한 이마저도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것 말고 다른 능력은?”
양준은 웃으며 눈앞의 물방울을 만졌다.
그때, ‘펑’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터지더니 안개가 흩어지고 수령이 양준의 옆쪽 멀지 않은 곳에서 괴이쩍게 나타났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가슴을 껴안고 이를 악문 채, 양준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화가 난 나머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양준은 놀란 표정으로 손가락을 비비더니 눈썹을 치켜세웠다.
“흠, 만지지 말아야 할 곳을 만졌나?”
수령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흰 이를 으드득 갈았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아무 느낌도 없더만.”
양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전 그는 물줄기를 만지는 느낌만 들뿐, 인체를 만지는 촉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두고 보자!”
수령은 말하면서 적의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나한테 그 말을 한 사람은 아주 많아. 다만 그 사람들 죄다 좋은 결말을 보지 못했지. 계속 얘기해 봐. 네 체질의 능력이 궁금해졌어.”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방금 전의 무례함을 대충 넘기자, 수령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녀는 여태껏 이처럼 뻔뻔스러운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모든 노력을 낯가죽을 수련하는 데 쏟아부은 듯했다.
“말하기 싫어졌어. 죽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수령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방금 전 무심코 한 그의 행동에 수령이 화났다는 것을 알고, 양준은 이마를 긁적거리며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전에 수령을 걱정했던 것은 그녀의 의도와 출신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령이 다른 형제들의 부하가 아닌 것도 알았고, 하응상을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안 이상, 양준은 그녀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건 더 물어볼 거 있어? 없으면 간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수령은 그가 이렇게 쉽게 놓아줄 줄 몰랐는지 순간 놀라더니 곧바로 한 손을 내밀었다.
“내 머리카락 이리 줘.”
“이건 안 되지. 네가 가는 것을 막지는 않겠지만,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 거야. 일단 네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또 네가 여기서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
양준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치사해. 네가 그걸 갖고 있으면 난 평생 네 손에서 못 벗어나는 거잖아. 그러고는 뻔뻔스럽게 날 놓아준다고? 그게 너한테 있는데 내가 맘 편히 갈 수 있겠어?”
수령이 억울한 듯이 말했다.
“여기서 난동을 부리지만 않으면 네가 어디를 가든 난 상관 안 해.”
양준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물론 나를 위해 이곳에 남아서 힘을 보태겠다면 언제든 환영이야.”
“널 위해 힘을 보태라고? 네가 그럴 만한 사람이야?”
수령이 비웃었다.
“싫으면 협력 관계도 좋고. 네가 여기에 남겠다면, 충분히 상의해 볼 수 있어.”
양준은 계속해서 그녀를 설득했다.
“내가 여기 왜 남아?!”
수령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뒤돌아 나갔다. 동시에 몰래 온몸의 진원을 돌리며 혹시라도 양준이 기습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관저를 떠날 때까지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방은 그녀를 난감하게 하려는 생각이 없는 듯했다.
수령은 양준의 관저를 힐끗 뒤돌아보고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번에는 그야말로 어지간히 손해를 본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는 그녀의 몸을 만진 것도 모자라, ‘아무 느낌도 없다’는 말까지 했다.
‘아오! 짜증 나! 도대체 어떤 놈이 만들어 낸 인형이지? 어떻게 내 정신하고 연결시킬 수 있는 거야? 나쁜 자식, 두고 봐. 조만간 혼쭐을 내줄 테니까.’
수령은 독기를 품었다.
*관저 안,
양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며칠간 그를 괴롭히던 걱정거리가 드디어 해결되었다.
“주인, 왜 그 여자를 그냥 보냈는가? 잘만 활용하면 우리에게 큰 이득이 될 텐데.”
지마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억지로 데리고 있으면 없느니만 못해.”
양준은 고개를 젓더니 수중의 인형을 위로 던지며 말했다.
“인형을 이용해 강제로 남길 수도 있지. 그런데 남겼다가 만에 하나 복수심을 갖고 관저에서 난동이라도 부리면, 누가 통제할 거야?”
“정말로 싸우면 내 상대는 안 될 걸세. 심지어 혈시들도 그녀를 이길 수 있을 것이네. 특수한 체질이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령의 체질은 참으로 괴이쩍었다.
파경호 비보 쟁탈전 당시, 양준이 수령의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했다면 지마도 그녀를 잡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대신 인형이 내 손에 있으니, 그 애도 멀리 가지 못할 거야. 나중에 걔가 정말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얼마든지 굴복시킬 수 있어.”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주인, 대단하군.”
지마는 왠지 등골이 오싹해지며 괜히 수령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걔는 주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제 갈 길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