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91화 (491/853)

제 491장. 양소의 계략

능소각 사람들이 여태껏 전성에 찾아오지 않은 것은 많은 문제들을 고려해서일 것이다. 만약 추억몽이 찾아간다면 그들은 전성에 오지 않을뿐더러 다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찾으려고 해도 어려웠다.

“상관없어. 데려와도 되지만 내가 대신 갈 거야. 어쨌든 네가 가면 안 돼.”

“그만해! 이게 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양준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원래부터 남과 실랑이하는 것을 싫어했고, 일 처리도 매섭고 깔끔했다. 그런데 지금 추억몽이 잡고 놓아주지 않자, 그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온통 소안 생각뿐으로, 지금이라도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라고?”

추억몽은 순간 얼이 나간 듯했다.

“아니야.”

양준도 더는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애당초 추억몽이 사람을 거느리고 능소각에 와서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그도 창운사지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소안과도 이처럼 오래도록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추억몽이야말로 그와 소안이 헤어지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이 연유로 이전까지 추억몽에 대한 양준의 태도는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계승 싸움이 시작되고 접촉이 잦아지면서 그도 점차 마음이 누그러진 것이었다.

“저어…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 조직으로 복귀하겠습니다.”

방지는 옆에서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겨우 기회를 틈타 한마디 하고는 발을 빼려고 했다.

“혹시 모르니 조직으로 바로 돌아가지 마시고, 관저에 며칠 있다가 가세요.”

추억몽이 그를 힐끗 보더니 한마디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방지는 추억몽이 자신이 비밀을 누설할까 봐 이곳에 남겨 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감히 원망할 수는 없었다.

방지가 자리를 뜬 다음에야 추억몽은 양준을 놓아주었다.

“내가 소만이랑 너희 능소각에 쳐들어갔을 때, 곤룡골에서 제법 가까워 보이는 여자가 있던데… 그 사람 때문인 거지?”

“맞아.”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관저에 있는 하응상은? 걔랑도 평범한 관계는 아니잖아.”

그녀의 질문에 양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

“그게 왜?”

양준의 태연한 반응에 추억몽은 얼굴빛이 시커메지더니 화가 나서 말했다.

“파렴치한 자식! 곽성진과 한통속이었구나! 남자들은 역시 다 똑같아!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추억몽은 화가 난 채로 자리를 떴다.

그녀는 자신이 양준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준은 일단 결정을 내리면 설득이 불가능했다. 더욱이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가 가지 않으면 능소각 사람들은 전성에 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다만 전반적인 형세를 생각하면, 그녀는 양준을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다행히 요즘에는 전성 내 분위기가 평온한 데다가, 설령 양준이 자리에 없다고 해도 관저에 있는 인원으로 적들의 습격을 막아 내기는 충분했다.

한밤중, 그림자 하나가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추억몽만 양준임을 알고 있었다.

양준은 영구를 데리고 갔다. 혈시들 가운데서 오직 은신술에 능통한 영구만이 양준과 조용히 움직일 자격과 실력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일단 움직이면 곧 남에게 들킬 수 있었다.

몽무애와 지마에게도 그런 재주가 있었지만 몽무애는 양준의 일에 끼어들기 싫어하고, 지마는 반드시 관저에 남아 있어야 했다. 관저에 당우선 혼자만 남겨 두기에는 뜻밖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마와 당우선이 관저에 남아 있으면, 양준도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추억몽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계승 싸움 때문에 양준의 안위까지 걱정해야 한다니. 하지만 그녀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같은 시각, 양소 관저.

엽신유는 사뿐사뿐 양소의 방에 들어서며 방그레 웃었다.

“그때 물어보셨던 소식이 들어왔어요.”

“예? 말해 주시죠.”

양소는 눈썹을 찡긋 하더니, 이내 기쁜 내색을 했다.

“중도 죽절방의 방지요. 막내 공자의 관저에 들어간 뒤로 나오지 않았어요.”

“계속 거기 있다고요?”

양소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한참이나 지나서야 물었다.

“그 후로 막내 쪽에서는 아무 움직임도 없었습니까?”

엽신유는 고개를 저었다.

“네, 전혀요.”

양소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하하, 그래야 막내답지.”

“그게 무슨 뜻이죠?”

엽신유는 예쁜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이야말로 막내가 벌써 움직였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쯤 영구를 데리고 이미 나갔을 겁니다.”

양소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미 나갔다고요?”

엽신유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만약 양소의 말이 사실이라면 양준은 대담하기 그지없었다.

“영구는 은신술에 능통하고 소리 소문 없이 움직이니 전성을 드나든다 해도 저희 쪽 사람이 알아차리기 어려울 겁니다.”

양소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해 주었다.

“그럼 막내 공자는요? 그분도 그런 재주가 있다는 말이에요?”

엽신유는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양준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영구처럼 감쪽같이 사라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양준의 관저 주위에는 양소가 보낸 염탐꾼이 많아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금방 알 수 있었다.

“제 생각에는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막내가 다섯째를 공격할 때, 형님께서 사람을 이끌고 저를 견제하러 왔습니다.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야 당연히 대공자가 막내 공자와 연합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엽신유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로 그겁니다. 막내가 언제 형님이랑 동맹을 맺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이는 막내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형님의 관저에 가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형님이 섣불리 나서지 않았을 테니까요. 바로 지금처럼 말이죠. 방지라는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발이 묶였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정보가 중요치 않았다면 방지는 진작에 나왔겠죠.”

엽신유는 양소의 분석을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을 반짝였다. 양소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참 재미있군……. 죽절방이 막내의 휘하 세력이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이 무엇인가 찾고 있다는 것도요. 다만 사람을 찾는 건지, 물건을 찾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뭘 찾든 간에 막내 공자가 확실한 단서를 찾은 것 같아요.”

엽신유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이채가 반짝였다. 생각의 물꼬가 트이면서 그녀의 사고는 점점 더 명석해졌다.

“저희가 그걸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양소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문제는 막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만약 목적지를 알게 되면…….”

계승 싸움이 두 달 동안 대치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동안 그의 세력도 많이 강해졌지만 양준 쪽도 마찬가지였다. 양소는 갖은 방법을 다해 눈앞의 난국을 헤쳐 나가려 했다.

양준이 외출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양준을 사로잡기만 하면 그의 관저에 아무리 많은 고수들이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양소는 양준 관저의 고수들이 두려웠다.

“제가 중도로 가서 죽절방 사람들에게 좀 알아볼까요?”

엽신유가 제안했다. 양준 관저에서는 어떤 정보도 캐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죽절방에서 알아낸 것이기에 그쪽에 상세한 내막을 아는 사람이 분명 있을 터였다.

“죽절방은… 계승 싸움이 시작되고 적지 않은 세력을 흡수했지만, 아직 내부를 다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나중에 들어온 목남두가 방지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하더군요. 막내에게도 충성심이 깊지 않고, 양씨 가문의 위세 때문에 억눌린 듯합니다. 그 사람에게 접근하세요. 적당한 조건을 내걸면 협조할 겁니다.”

양소가 말했다.

“만약 그 사람이 협조를 안 하면요?”

양소는 담담하게 웃더니 엽신유의 턱을 잡고 살짝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건 알아서 하셔야죠.”

“알겠어요.”

엽신유는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 나온 김에 지금 바로 출발하세요. 늦어도 내일 오후까지 확실한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군요.”

엽신유는 방그레 웃더니 곧바로 방을 나섰다.

*어둠 속에서 두 그림자가 번개같이 순식간에 백 장을 날아갔다.

양준이 앞장서고 영구가 뒤를 따랐다. 서로 간에 큰 경지 하나가 차이 나지만, 영구는 팔 할의 실력을 발휘해야만 양준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양준이 조급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영구는 아무 말없이 묵묵히 뒤따르기만 했다. 둘 사이에는 일절 대화가 없었고, 오직 옷자락이 나부끼는 소리만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하루 밤낮을 끊임없이 달리자, 영구 같은 고수도 살짝 숨이 가빠졌다. 더욱이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진원을 보충하는 단약을 복용해 자신의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반면 양준은 평온하기만 했다. 기대에 부풀어 점점 더 흥분하는 것 말고는 힘든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영구는 심지어 양준이 단약을 복용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이에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막내 공자 몸에는 도대체 진원이 얼마나 많은 거야? 어떻게 저리 여유로울 수가 있지? 하루 밤낮 동안 거의 이천 리나 되는 거리를 전력으로 질주하셨어. 이 정도로는 어떤 부담도, 소모도 없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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