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92화 (492/853)

제 492장. 한빙동굴

양준은 쉬지 않고 또 하룻밤을 넘게 달리다 동녘이 희뿌옇게 밝아올 무렵에야 멈춰 서더니, 아래쪽을 굽어보았다.

아래쪽은 무성한 산림이었다. 수많은 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산림 속에는 요수들이 다닌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고, 품급이 높은 약초도 적지 않았다.

능소각의 백여 명은 바로 이 산림 속에 은거하고 있었다.

‘참 좋은 곳이군!’

양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강한 신식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두 눈을 감자 신식이 미치는 곳이면 마치 직접 눈으로 보는 것처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더없이 뚜렷하게 보였다.

죽절방에서 이곳까지 찾아왔던 것도 운이 따른 듯했다. 이곳은 쉽게 눈에 띄는 곳이 아니었다.

양준은 한참이나 지나서야 신식을 거두어들였다. 그의 표정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그의 신식은 아주 넓은 범위를 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의 기운도, 사람이 활동한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면 따로따로 찾아보시겠습니까?”

영구가 물었다.

“아니야. 일정 범위 안에만 들어오면 알아차릴 수 있어.”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영구는 그가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감지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방지가 양준에게 건넨 지도에는 대략적인 위치만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준은 지도에 근거해 자신의 목적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한 시진이 지나, 한창 질주하던 양준이 다시금 멈추었다. 이내 그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더니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쪽이다.”

양준은 영구에게 한마디 하고는 그쪽으로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지은 지 얼마 안 된 초가집들이 보였다. 그곳에 은거하고 있던 이들은 두 사람의 등장에 놀란 듯했다. 곧 몇몇 신유 경지 고수들이 집 안에서 뛰어나와 경계 어린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영구는 몰래 신식으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그곳에서 경지가 가장 높은 이는 겨우 신유 경지 4단계 정도였다. 게다가 나이도 적지 않고 진원도 순수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막내 공자의 문파는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가 나타났다고 하지 않았나? 또 막내 공자 같은 제자도 있고.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실력이 떨어지지?’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은 양준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위쪽을 가리키며 수군거리더니, 이내 경계심이 사라지고 만면에 희색을 띄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소리치자 순식간에 모든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연이어 뛰어 나왔다. 하나같이 흥분한 모습이었다.

양준은 소무영과 이운천 무리들을 보자, 저도 모르게 친근감이 들었다.

잠시 뒤에 양준과 영구는 땅바닥에 내려서서 다급한 걸음으로 다가가 공수했다.

“양준이 사숙들을 뵙습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지금 전성에서 계승 싸움이 한창일 때 아닌가?”

그중 마흔 남짓한 사숙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계승 싸움은 괜찮습니다. 여태껏 사람을 시켜 식구들의 행적을 쫓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야 겨우 정확한 단서를 얻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양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대답하는 한편,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낯익거나 낯선 얼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알든 모르든, 익숙하든 낯설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들 상기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매형!”

소무영이 앞쪽으로 뛰쳐나와 인사를 건넸다.

양준은 허허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다시 소무영을 만나게 되자 저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쳤다. 일 년 남짓 못 본 동안, 소무영은 이합 경지 9단계에서 진원 경지 5단계로 성장해 있었다. 이 정도 실력은 젊은 세대 가운데서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소무영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성장이었다.

“우선 들어가서 얘기하지.”

능소각의 몇몇 사숙들이 열정적으로 접대했다.

방 안에 들어가자, 사숙들은 무심코 영구의 신분을 물었다. 그리고 영구가 양씨 가문의 혈시라는 것을 듣고는 금세 놀란 표정으로 행동이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양씨 가문의 혈시는 그들에게 있어서 우러러보는 존재였다. 영구는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인사를 건네는 모든 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타고난 차가운 얼굴 덕분에 능소각 사람들은 감히 그를 가까이하지 못했다.

찻물을 따르고 나서야 양준은 지난 일 년 동안 그들의 상황을 물었다. 사숙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들려주었다.

허공 통로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줄곧 신분을 숨기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고 했다. 그 후 능소각이 불에 다 타버리고 장문인과 장로들도 행방불명이 된 것을 전해 듣고는 더더욱 돌아갈 수 없었고, 후에 이곳을 찾아 잠시 거주하면서 앞날을 다시 도모하려 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눌러앉게 되었다고 했다.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에 대해서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 은거하고 있지만 매달 사람을 보내 각 방면의 정보를 탐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양준의 정체와 계승 싸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양준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들의 현재 신분으로는 전성에 찾아가기가 힘들었다.

능소각이 사파의 이름을 벗어 던지지 못한 이상, 그들이 전성에 양준을 찾아간다 해도 괜히 민폐만 될 뿐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일 년 넘게 생활하며 외부와의 연락은 불편했지만, 가끔 요수가 와서 습격하는 것 외에는 조용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때문에, 모든 제자들은 열심히 수련하면서 언젠가 다시 문파의 위세를 떨칠 그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럼 능소각이 이미 재건됐다는 사실도 모르셨습니까?”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야 양준이 한마디 물었다.

“능소각이 재건되었다고?”

사숙들은 아연실색했다.

“예. 아마 지금쯤이면 건물은 다 지었을 겁니다. 아직 문파의 현판을 걸지는 못했습니다. 현재는 제가 관리하는 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문파의 이름을 바로 세우면 곧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고생 많았구나. 어쩌면 그 일은 너만이 할 수 있는 것일 테지!”

사숙들은 곧 문제의 핵심을 알아차리고는 정색하며 말했다.

“앞으로 더욱 고생이 많겠구나.”

양준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물었다.

“제자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문인과 장로님들의 소식은 없습니까?”

사숙들은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아직은 아무 소식도 없다. 우리도 매달 밖에서 소식을 알아봤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그렇군요… 괜찮을 겁니다. 장문인께서 신유 경지 이상에 도달했으니 그분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식을 들은 지는 한참 되었지만, 양준이 직접 말해 주는 것은 무게감이 달랐다.

“제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사숙과 사형제들을 모시고 전성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사숙께서 이견이 없다면 최대한 빨리 출발하시죠!”

사숙들은 서로 마주 보다가 그중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너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사질이 이렇게 찾아왔는데 우리가 안 가면 말이 안 되는 거 같구나. 우리가 사파 제자라는 신분으로 전성에 간다고 해도 사질이 감싸면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

양준이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히 그에 대해 따지고 드는 자는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사숙들은 그제야 걱정을 내려놓고 승낙했다.

“그럼 저는 이만… 소안을 찾으러 가보겠습니다.”

양준이 코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아, 그래, 그래. 하마터면 깜빡 잊을 뻔했구나. 어서 가봐야지.”

그러고는 밖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무영아, 이리 와 보거라!”

“예.”

소무영이 대답하면서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양준을 한빙동굴(寒氷洞窟)에 데려다 주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소무영이 히죽 웃더니 양준에게 손짓했다.

“매형, 따라와!”

양준은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따라 나서려는 영구를 저지했다.

그는 소무영과 함께 밖으로 걸어 나가서야 물었다.

“한빙동굴? 그게 어디야?”

“누님이 수련하는 곳이야. 이 근처에 기온이 낮은 곳이 있어서 누님의 수련실로 마련해 줬지. 근데 지난번에 내가 누님한테 갔을 때 폐관을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수련을 다 마쳤는지 모르겠네.”

소무영이 대답했다.

“맞아. 아직 폐관 수련 중이구나.”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폐관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소안이 마중 나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몇십 리 밖에서도 양준은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음양합환공은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양준이 그녀를 감지할 수 있는 만큼, 그녀 역시 양준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마 현재 그녀는 폐관 수련하는 곳을 떠나기 어려워 얼굴을 내비치지 못하는 듯했다.

둘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은연중에 양준의 체내 진원에서 통제할 수 없는 파동이 일었다. 어딘가에서 무형의 소용돌이가 그의 진원을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이는 소안이 방출하고 있는 힘이었다. 오랫동안 음양합환공을 수련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위로를 갈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양준의 평온하기만 하던 감정도 점차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한빙동굴은 주거지에서 3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잠시 뒤, 소무영은 양준을 데리고 한기가 넘치는 동굴 입구에 이르렀다.

얼음처럼 차가운 안개가 동굴 속에서 용솟음쳐 나오는 것이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동굴 입구 근처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하고 땅바닥이 굳어져 있었다.

소무영은 이미 진원 경지 5단계에 달했으나 동굴 입구에서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제 혼자 들어가. 너무 추워서 난 못 들어가겠다. 어찌나 추운지, 누님만 견딜 수 있지, 사숙들도 못 들어가.”

“그래, 먼저 가 있어.”

“흠흠, 서두를 거 없으니 천천히 와!”

소무영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뒤돌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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