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93화 (493/853)

제 493장. 이등 문파밖에 안 된다고?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한빙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에 들어서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사방에서 덮쳐 와 몸속의 진원마저 봉인될 것만 같았다.

양준은 진양결을 운행하며 한기를 물리치고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빙동굴의 사면은 모두 반질반질하고 차가운 얼음 덩어리로 되어 있었다. 인공적으로 다듬은 흔적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자연 그대로였다. 거울과 같은 얼음 표면이 어디선가 쏟아지는 빛들을 굴절시켜 동굴 속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기온이 차가워지자, 양준의 몸속 진양결의 운행 속도도 더없이 빨라졌다.

족히 반 시진을 걸어서야 시야가 확 트였다. 한빙동굴의 가장 안쪽인 듯했다. 한기가 더욱 짙어졌고, 방금 전과 같은 좁은 통로가 아닌 넓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소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폭포처럼 드리우고 있었고, 하얀 피부가 백옥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깜찍한 코, 발그레한 볼, 앵두 같은 입술에 귀여운 보조개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교한 얼음 인형 같았다.

지금 그녀는 맑고 투명한 얼음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꼭 감고 좌선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 흥분을 말해 주듯이 가냘픈 몸이 가늘게 떨렸다.

순간, 그녀 몸속의 진원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 얼굴, 심지어 밖에 드러난 피부에 순식간에 서리가 끼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양준은 얼굴빛이 급변했다. 그의 신형이 번쩍하더니 곧 소안의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가볍게 그녀의 두 손을 잡고 공법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소안의 몸속에서 들끓던 진원도 공법의 운행 노선에 따라 천천히 흘렀다.

들끓던 진원이 안정되자, 둘의 몸속 진원 파동, 호흡 빈도, 심장 박동 수가 천천히 하나로 어우러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양준은 그제야 가볍게 숨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맞은편의 소안도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양준이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차가운 그녀의 얼굴에는 발그스름한 홍조와 함께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가 온 게 그렇게 반가웠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양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소안은 아직 폐관 수련이 끝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양준이 온 것을 감지하고 그녀의 기운이 흩어졌던 것이다. 만약 양준이 제때 돕지 않았다면 어떤 변고가 생겼을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얼굴이 상기되어 뭔가 말하려는 순간, 맞은편에서 강한 기운이 덮쳐 왔다.

*벌써 몇 번째로 깨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수련은 나중에 하고, 먼저 돌아가서 얘기해요. 이곳에서 이틀을 넘긴 것 같아요. 사숙들께서 걱정하시겠어요.”

양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소안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남녀가 이틀이나 한 공간에 붙어 있었다면 바보라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안이 아무리 냉담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보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신유 경지에 진급하는 거야?”

“임박했어요.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해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깜짝 놀랐다.

“사저는 벌써 신유 경지 3단계네요. 따라잡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네가 준 약 덕분이야. 그 약이 경맥을 씻어 내고 체질을 강화해 주잖아. 덕분에 수련 속도가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어. 그리고 이곳에 환경 또한 내가 수련하는데 도움을 주었지.”

일 년 전 헤어질 때, 소안은 진원 경지 정상으로 지금의 양준처럼 신유 경지까지 마지막 고비를 남겨 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이미 신유 경지 3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수련 속도는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사실 신유 경지에 오른 다음부터 실력이 향상되는 속도는 매우 느려지기 마련이었다.

“약이 있었어도 자질이 부족했으면 이 정도까지는 못했을 거예요.”

양준은 손을 뻗어 소안의 뺨을 어루만졌다.

소안은 부드럽게 웃으며 조용히 그를 껴안았다.

두 사람 모두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서야, 소안은 못내 아쉬워하며 한빙동굴을 둘러보았다.

이번에 가면 언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은 그녀가 수련하기 아주 적합한 곳으로, 한기가 빠르게 모일 수 있었다. 무인이 자신에게 맞는 수련 장소를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 챙길 거 없어요?”

양준은 그녀가 미련이 남은 것을 알아채고 물었다.

소안은 고개를 저으며 아쉬워했다.

“가져갈 수 없는 거야.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뭐.”

“가져갈 수 있어요.”

양준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소안은 그를 흘겨보더니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얼음 침대도 가져갈 수 있을까?”

양준은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이것은 만년빙 같은 거야. 시도해 봤었는데 도저히 들 수가 없었어. 이것을 옮길 수 있다고 해도 다른 곳으로 가져갈 수는 없잖아. 전에 네가 주었던 건곤대에는 이것을 담을 수가 없어.”

소안에게는 건곤대가 있었다. 이는 능태허가 양준에게 선물한 것이었지만 검은 책 공간을 열게 된 다음, 양준이 다시 소안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러나 건곤대의 공간은 그리 크지 않아 이렇게 큰 얼음 침대를 담을 수가 없었다.

“잘 보세요.”

양준이 히죽 웃더니 손을 뻗었다.

소안은 깜짝 놀랐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은연중에 기대감이 생겼다. 양준이 무슨 일이든 예상치 못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만 근에 달하는 얼음 침대에 아름다운 빛이 흐르더니 곧이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작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곧 신식을 펼쳐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자, 눈썹을 살짝 구겼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 했다.

“어디 갔어?”

의기양양한 양준을 바라보며, 소안이 다급히 물었다.

“저에게 물건을 저장할 수 있는 비보가 있는데, 거기에 넣었죠. 사저의 건곤대보다 훨씬 넓어요.”

양준이 싱긋 웃었다.

소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양준에게 이처럼 귀중하고 보기 드문 비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살짝 놀라는 동시에 자랑스러웠다.

‘이처럼 수완이 놀랍고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있는 이가 내 남자라니.’

한빙동굴 안의 한기는 모두 얼음 침대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이곳에서 유일한 보물은 얼음 침대였다. 얼음 침대만 있으면 소안은 어디에서든지 자신에게 적합한 이상적인 수련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능소각의 몇몇 사숙들은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정색한 표정에 태도 또한 조심스러웠다. 그 옆에 영구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분위기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능소각의 사숙들은 영구를 대동한 채 이틀이나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나마 억지로라도 대화를 시도했으나 영구가 원래 말수가 적다 보니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사숙들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모두 함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기만 했다. 모두들 하나같이 이제나저제나 양준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젊은 세대 제자들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그들은 사숙들이 끌어다가 방패막이로 삼을까 두려워 삼십 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모두들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소무영이 밖에서 급히 뛰어 들어오더니 공수하며 말했다.

“양 사형이랑 누님이 왔습니다.”

“돌아왔다고?”

사숙들은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얼른 일어나 복잡한 표정을 하고서 급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은 잠깐이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실력이 강하고 무뚝뚝한 양씨 가문의 혈시를 마주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압박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문밖을 나서자, 양준과 소안이 함께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중 한 사숙이 뜨거운 눈물을 머금은 채 다가가서 양준의 손을 꽉 잡고 울먹였다.

“사질, 드디어 왔구나. 정말 오래 기다렸어!”

“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며칠 전에 왔을 때에도 이렇게 열띤 반응은 아니었는데.’

한쪽에 있던 소안은 사숙의 뜻을 오해해 순간 얼굴을 확 붉히며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차가운 얼굴이 빨갛게 물들면서 평소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다 준비가 됐으니, 그럼…….”

“이제 출발하시죠.”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

사숙은 손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외치더니, 다른 사숙들과 함께 부랴부랴 밖으로 달려갔다.

양준은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사숙들이 왜 저리 절박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막내 공자!”

영구가 다가와서 인사했다.

“별일 없었어?”

양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별일 없었습니다.”

영구는 고개를 저으며 무심코 소안을 힐끗 보았다가 순간 놀라고 말았다.

차가운 기질의 경국지색 미모를 가진 여인은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이미 신유 경지 3단계 수준이었다. 류경요조차도 신유 경지 3단계밖에 안 되었다. 그것도 중도의 으뜸가는 천재이자 류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비할 데 없는 수련 자원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참, 대단한 여인이야!’

순간, 영구는 다시 한번 능소각이 어마어마한 문파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주나 양준도 모두 능소각 출신이었다. 눈앞의 여인도 마찬가지로 능소각 출신이었다. 또한 능소각에서는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관저에서 연단하고 있는 면사포를 쓴 하응상과 자신의 봉원주를 풀어주었던 몽무애도 마찬가지로 능소각 출신이었다.

‘정말 이등 문파밖에 안 된다고?’

영구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