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95화 (495/853)

제 495장. 다 당신들을 위해서입니다

양준의 심경 변화를 알아차린 소안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일 있어?”

그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만 앞에 누군가 길을 막고 있는 것 같네요.”

소안의 얼굴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지난번 그녀는 양준과 손잡고 세상 구경을 하자고 약속했지만, 추억몽이 훼방을 놓아 일 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양준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골치 아픈 일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녀는 양준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서 이가 갈렸다.

“누가 길을 막고 있는 것이냐?”

뒤따르던 능소각의 사숙들이 금세 긴장했다.

“아마 둘째 형님의 세력인 것 같아요.”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양위는 이런 일을 벌일 생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 만한 실력도 안 되었다. 그렇다면 길을 막을 이는 양소의 세력밖에 없었다.

“사숙, 곧 누가 시비를 걸어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다른 제자들을 보호해 주십시오.”

“피할 수는 없는 것이냐?”

능소각의 현재 인원은 실력이 너무 낮았다. 때문에, 사숙들은 전투를 될수록 피하고 싶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이들이라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양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마음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이등 문파지만 몇천 명의 제자를 거느렸던 능소각은 지난번의 재난을 거쳐 끝까지 남은, 충성심이 강한 제자들이 백 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현재 능소각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문파에 대한 충성심은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들은 나중에 능소각을 재건할 주춧돌이므로 절대 다쳐서는 안 되었다.

전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능소각의 제자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누구 하나 당황하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오히려 소무영 같은 이들은 싸움에 뛰어들 태세였다. 그들은 일 년 넘게 세간의 이목을 피해 숨어 다녔다. 이제 양준의 보호도 받겠다,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어떤 적들과 상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그들로서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양준은 미간을 구겼다. 양소가 사람을 보내 저지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감히 나를 막으러 오다니, 영구를 견제할 자신이 있는 모양이야. 아마 신유 경지 정상의 고수들도 적지 않게 있겠지?’

그러나 상대가 이처럼 대규모로 인원을 출동시켰으니, 추억몽이 배치한 정찰대의 눈을 속이지 못할 터, 혹여 그의 관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이 들자, 양준은 금세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대처할 수 없는 정도도 아니었다. 아마 영구의 실력에 대해 상대는 잘못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신유 경지 9단계에 이른 영구는 그전보다 훨씬 더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는 영구의 현재 실력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또 소안도 있었다. 만약 양소가 출동시킨 인원이 이전의 형세에 근거한 것이라면 이번 전투가 오히려 양준에게 기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곧 양준은 자신에 대한 양소의 두려움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쪽에 빼곡하게 늘어선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양준은 신식으로 인파를 훑어보고서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상대편은 적어도 일곱 세력이 출동했다. 그중 양준이 알고 있는 세력만 해도 중도의 추씨, 강씨 가문 그리고 일등 세력인 향씨, 남씨 가문이 있었다. 그야말로 반드시 이기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들을 보자, 능소각의 제자들도 깜짝 놀랐다. 그들은 상대가 이렇게 거창하게 나오리라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동시에 사숙들도 경악에 빠졌다. 순식간에 양준이 적들의 눈에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었다. 그를 사로잡기 위해 이리 많은 고수들을 보냈으니 말이다.

황야에서 두 세력은 백 장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마주 보았다.

양준은 원망에 찬 매서운 시선을 따라 향초와 남생을 발견하고는 냉소를 흘렸다.

추자약은 복잡한 표정으로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는 양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이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강참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양준의 곁에 서 있는 소안에 대해 수군거렸다.

이처럼 옥으로 빚은 듯한 아름다운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저도 모르게 자괴감이 들었다. 심지어 중도 8대 세가의 두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미인을 많이 봐 왔고, 그들의 신분과 지위로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안의 기질은 그들조차도 감히 넘볼 수 없었다. 더욱이 양준과 함께 서 있자, 서로 어울려서 빛이 나며 선남선녀 같아 보였다.

이런 황당한 생각에 추자약과 강참은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이 양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참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서 공수하더니 우렁차게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양준 공자!”

“강 공자! 저희 둘째 형님은 안 오셨습니까?”

양준은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둘째 공자는 바빠서 이번에는 저와 추 공자 둘만 왔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양준은 냉소를 흘리더니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나아가 거만하게 말했다.

“형님께서는 직접 안 오시고, 당신들을 방패막이로 보낸 겁니까?”

강참은 금세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말했다.

“그래도 교분이 있던 사이인데 방패막이라니… 그렇게 듣기 거북하게 말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두 분이랑… 교분이 있다고요? 저는 왜 기억이 안 나죠?”

양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싱긋 웃었다.

그는 강참이나 추자약과 아무런 교류도 없었다. 강참은 중도에 돌아와서 얼마 안 되어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양소가 불러서 간 것이었고 결국 불쾌하게 헤어졌었다. 추자약하고는 말조차도 붙여 본 적이 없었다.

강참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공자께서 그리 말씀하니, 저도 잡설은 그만하겠습니다. 저희는 확실히 교분 같은 건 없으니 그럼 제대로 한번 싸워 보죠. 나중에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그냥 운수 탓을 하십시오.”

“피차일반입니다.”

“출발하기 전에 둘째 공자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양준 공자께서 항복하려고 하면 형제간의 우애를 생각해서 다치게 하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양준 공자께서는 둘째 공자의 호의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양준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대답을 알면서 왜 묻습니까?”

“좋습니다.”

강참이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자의 말을 더 들을 필요 없습니다. 저희 향씨 가문과 남씨 가문의 고수들이 혈시를 막고, 나머지는 다 같이 저 자를 잡으면 됩니다.”

남생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는 곧바로 양준을 누르고 마음껏 치욕을 안겨주면서 그동안의 원한과 분노를 풀고 싶었다.

강참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남생이 양준에게 원한이 많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역시도 양준에게 치욕을 줄 생각이었다.

양준은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왔지만, 그중에는 신유 경지가 몇 되지 않았다. 강참은 능소각의 제자들은 아예 안중에 두지 않았다.

강참이 공격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양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공자, 거래 하나 하시겠습니까?”

“무슨 거래 말입니까?”

강참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번 전투는 저희 쪽에서 저와 영구만 나서겠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저희 둘을 제압한다면 그것으로 승부를 끝내지요! 두 분께는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양준의 말에 강참과 추자약은 깜짝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양준이 곁에 있는 백여 명의 조력자들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비록 백여 명 모두 실력이 보잘것없었지만, 정말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그들에게 적지 않은 손실을 입힐 수 있었다. 때문에 양준이 이런 제안을 하자, 강참은 양준이 술수를 부리는 줄 알고 머뭇거리며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양준 쪽에서는 능소각의 사숙들이 흥분해 너도나도 힘을 보태겠다고 나섰다. 싸워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이 다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저는 양씨 가문의 사람이라, 저들이 저를 함부로 죽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제가 무슨 낯으로 사부님을 뵙겠습니까?”

양준은 고개를 저어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숙들은 가만히 계셔도 되지만, 난 나서야겠어!”

소안이 단호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안의 실력은 자신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둘은 합체 수련을 하기에 합동 작전을 펼치면 의외의 효과를 볼 수도 있었다.

“강 공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 사저까지 포함해서 저희 셋을 이긴다면 제가 계승 싸움에서 물러나죠.”

양준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강참은 한창 양준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양준이 덧붙인 말에 그의 얼굴빛이 미묘해졌다. 왠지 양준의 말에 딱히 꼼수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저 사람들이 양준한테 꽤 중요한가 봅니다. 저리 갖은 애를 써서 보호하려는 것을 보니.”

남생이 섬뜩하게 웃었다. 그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더니 마치 차가운 독사처럼 능소각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향초도 한쪽에서 연신 냉소를 흘렸다.

강참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양준 공자,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별 이유 없습니다.”

양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들은 저와 동문입니다. 만약 다치기라도 한다면, 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만에 하나 두 공자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강씨 가문과 추씨 가문에 해명을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파 능소각의 사람이라고?”

강참과 추자약은 얼굴빛이 급변했다. 그제야 백여 명의 출신을 알고서 저도 모르게 두려운 표정이 떠올랐다. 능소각은 여느 이등 문파와는 달랐다. 무려 사주를 배출한 문파였다.

“이는 서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양준이 다시 한번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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