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7장. 합동작전
“장로님!”
누군가 놀라서 소리쳤다.
고수는 아래로 떨어지는 동시에, 두 팔이 순식간에 몸에서 잘려 나갔다. 가지런하게 잘려 나간 부분에서는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더 나가도록!”
강참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다.
무리 속에 남아 있던 신유 경지 7단계 고수 몇 명은 서로 마주 보다가 하는 수 없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이들까지 합류하고 나서야 겨우 영구의 움직임을 견제할 수 있었다.
영구는 더는 전처럼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는 혼자 힘으로 신유 경지 9단계 2명, 신유 경지 8단계 6명, 신유 경지 7단계 5명을 견제했다. 양씨 가문 혈시의 실력은 이미 모든 이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심지어 영구 본인마저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신유 경지 9단계에 오르기 전, 그는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오를 수 있을지 여러 번 상상해 봤었다. 경지가 오른 다음에 패혈광술까지 펼치면 고수 몇 명쯤은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지금처럼 많은 인원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현재 상황은 애당초 그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역시 연단방에서 만들어 낸 현단 덕분인가?’
그는 연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양준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힘들게 대처하는 영구를 바라보며, 강참과 추자약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은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둘째 공자의 선견지명으로 사람들을 많이 데려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군.’
만약 애당초 두 사람의 생각대로 인원을 끌고 왔다면 지금쯤 영구 한 사람도 대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양준을 사로잡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둘째 공자는 역시 멀리 내다본다니까.’
강참과 추자약은 양소에게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강참은 심호흡을 하고서 줄곧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는 양준에게 눈길을 돌렸다.
영구는 이미 견제되었으니, 이제 양준만 사로잡으면 되었다. 많은 고수들이 영구를 견제하는 데 나섰지만, 강참은 양준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었다. 아직 그와 추자약 곁에는 8대 세가 소속의 신유 경지 5단계 고수들이 남아 있었고, 다른 세력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었다.
‘이 정도 인원이라면 양준을 기필코 사로잡을 수 있을 거야!’
“이제 우리 차례네요.”
양준은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나지막하게 소안에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세 번째 전투야!”
“세 번째요?”
양준이 살짝 놀랐다.
“잊었어?”
소안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전승동천에서 네가 내 목숨을 살려줬고, 두 번째는 곤룡골에서 능소각 제자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뒤를 봐줬잖아. 이번이 세 번째고.”
“첫 번째도 셈에 넣나요?”
“그래야지! 처음 두 번은 네가 나를 도운 거고, 이번에는 내가 널 돕는 거니까!”
이에 양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둘이 여유 있게 정담을 나누는 것 같은 모습에, 강참과 추자약은 화가 치밀었다. 본인들이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산한 표정을 한 그들이 손을 흔들자, 두 가문의 신유 경지 5단계 고수 네 명이 움직였다. 네 명의 고수들은 매우 여유로운 자태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양준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는 모습이었다.
백여 장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양준은 미소를 거두고 진중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네 명의 고수들을 바라보았다. 넷은 일반적인 신유 경지 5단계와 달랐다. 8대 세가 출신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났다.
“한 명하고 절반 정도 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소안이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 네 명에게서 적지 않은 압박감을 느꼈던 것이다.
“저도 그 정도요.”
양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실력만으로는 확실하게 그 정도밖에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면 또 다를 것이다.
네 명의 고수들은 양준에게서 열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정중하게 공수하며 인사를 건넸다.
“실례하게 됐습니다.”
“생사는 스스로 책임지는 걸로 하죠.”
양준이 씩 웃었다.
건방진 그의 말에 고수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중 한 명이 차갑게 일갈했다.
“언제든 덤비십시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준과 소안은 동시에 움직였다.
서로 정반대인 태양처럼 뜨거운 기운과 뼛속까지 차가운 기운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두 사람은 사전에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으나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진원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고수들이 있는 곳을 덮쳤다. 순수하고 세찬 진원에 내재된 힘을 감지한 네 명은 저도 모르게 낯빛이 바뀌었다. 그제야 그들은 지난번 양준이 류경요와 비긴 것은 결코 류경유가 양보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뜨거운 불길에 이어 검처럼 예리하기 그지없는 고드름이 일렬로 늘어서서 넷을 향해 날아왔다. 수천수만 개의 고드름은 촘촘하게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를 안고서 거의 모든 공간을 메워 버렸고, 네 명은 도망칠 길이 없었다.
고드름은 소안의 몸속 기운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모든 고드름이 싸늘한 한기를 품고 있어 8대 세가의 신유 경지 고수들도 감히 무시할 수 없었다.
소안은 한 번의 공격만으로 자신의 비범함을 드러냈다.
네 명 중 두 명은 가만히 서 있있고, 나머지 두 명이 동시에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무지갯빛이 둘의 몸속에서 튀어나오더니 그들의 앞에 얇은 방어막을 이루면서 뜨거운 진원과 고드름을 막아 냈다. 그뿐만 아니라 둘은 손으로 경기(勁氣)를 튕겨 천지를 뒤덮은 고드름을 산산조각 냈다.
양준과 소안의 첫 번째 합동 공격은 그들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네 명이 경계심을 늦춘 사이, 저지되었던 뜨거운 진원과 차가운 한기가 뜻밖에도 현묘하기 그지없는 조화를 이루었다.
막아 낸 줄 알았던 공격이 순간 더 큰 공격성과 위압감을 지닌 채 그들을 덮쳐 왔다.
이에 네 명은 얼굴빛이 크게 달라졌다. 앞서 나서지 않았던 두 명의 고수마저 급히 초식을 펼쳤다.
콰앙- 콰앙-
공격이 점점 더 센 강도로 덮쳐 오더니 네 명의 고수 앞에 있던 무지갯빛 방어막이 산산조각 났다. 차갑고 뜨거운 기운에 싸인 네 명은 성질이 서로 확연하게 다른 두 가지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
강참과 추자약은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눈앞의 광경에 둘은 곧 자신들과 양준의 차이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를 인지하였고, 저도 모르게 무기력감이 생겨났다. 류경요에 대해서는 그래도 노력하면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양준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마저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멀리서 그의 뒷모습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떠오르는 무기력감과 열등감에 강참은 분노가 치밀어 소리쳤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마십시오. 양준 공자는 쉽게 죽지 않을 것입니다.”
가까스로 기운을 막아 내고 있던 네 명의 고수는 강참의 말을 듣고 얼굴빛이 차가워지더니 더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미친 듯이 힘을 끌어올렸다. 그들은 확연히 다른 두 기운의 포위 속에서 일제히 돌파구를 뚫고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무공, 비보 할 것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양준을 공격했다.
양준은 뼈 방패를 꺼내 들고 그들의 공격을 흡수하려 했으나, 강씨 가문의 두 고수는 그럴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양준에게 다가가 근접 공격을 펼쳤다.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는 뼈 방패로 흡수한 기운을 다시 방출할 수가 없었다.
이에 양준은 어쩔 수 없이 수혼기를 펼쳤다. 이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두 수혼은 곧장 두 고수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물어뜯었다.
숨 돌릴 시간을 얻게 된 양준은 두 고수와 거리를 벌리며, 소안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녀는 추씨 가문의 두 고수와 싸우며 힘에 부친 모습이었다.
소안의 힘들어하는 모습에 그는 화가 치밀었다. 그와 소안은 음양합환공을 수련했기에 합동 작전을 펼칠 때면 자신들의 실제 실력을 훨씬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상대방은 바로 이 점을 눈치채고 두 사람을 갈라놓은 다음 한 명씩 제압하려 한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양준은 뼈 방패가 있기 때문에 크게 지장이 없었다. 상대방이 아무리 강한 수단을 펼친다 해도 그에게는 어떤 상처도 입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안은 위험했다.
양준은 소안과 합류하려 애썼지만, 강씨 가문의 두 고수가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이제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형세에 강참은 그제야 마음을 내려놓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추자약 역시 몰래 식은땀을 훔치며 쓴웃음을 지었다.
“양준 공자의 수단이 정말 대단하군요.”
“양준 공자가 대단한 것은 이해가 되는데 저 여인은 누구죠? 어떻게 실력이 저리 강합니까?”
강참은 의혹에 찬 얼굴로 소안을 바라보았다.
“아마 양준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람인 듯하군요.”
남생이 비릿하게 웃으며 꿍꿍이가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왕 양준에게 복수하는 만큼, 그에게 따끔하고 고통스러운 교훈을 주고 싶었다.
‘저 여인이 추씨 가문의 두 고수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참 재미있겠는데!’
남생은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히 기대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끼어들어 돌발 상황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소안의 강한 실력을 직접 보고서 낙심하고 말았다. 그의 실력으로는 나서도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