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8장.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남 공자, 우리는 양준만 잡습니다.”
강참이 그의 생각을 간파하고서 한마디 경고했다.
“허허, 알고 있습니다.”
남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신유 경지 고수 네 명은 양준과 소안을 점점 더 압박했다.
8대 세가 출신의 고수는 역시 달랐다. 신유 경지 5단계일 뿐이지만 양준은 손발이 묶여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둘이 근접 공격을 펼치는 바람에 소안을 지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뼈 방패가 흡수한 기운으로 반격할 수도 없어 수동적으로 방어만 했다.
소안 쪽 상황이 점점 더 힘들어지자, 양준의 표정이 점차 차가워졌다. 순간, 양준의 손에 들려 있던 뼈 방패가 사라지고, 그 대신 고풍스러운 거울이 나타났다.
고풍스러운 거울에서는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내 거울속에 새하얀 경치가 비치더니, 그 안에서 싸늘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강씨 가문의 고수들은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 그들은 급히 양준에게 달려들며 그의 움직임을 방해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거울에서 잔물결이 일더니 물결이 퍼져 나감에 따라 차가운 한기가 순식간에 그들이 있는 공간을 둘러쌌다. 곧이어 눈보라가 몰아치며 반원 모양의 거대한 결계(結界)가 땅 위에 나타나더니 접전 중이던 양준, 소안과 강씨, 추씨 가문의 네 명의 고수들을 뒤덮어 버렸다.
“현급 비보입니다!”
강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눈앞에는 새하얀 눈만 보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계 안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쳐, 보기만 해도 살을 에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현급 비보가 있지?”
강참은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양준이 뼈 방패 외에도 다른 현급 비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경계하고 있었지만, 이런 유형의 비보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보의 작용으로 인해 그들은 승부를 가리기 전까지 결계 안에 갇힌 채, 절대 밖으로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비보의 주인으로서 양준이 결계 안에서 싸우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또한 비보의 속성은 소안의 수련 공법 속성과 같은 듯했다.
순간, 강참은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현급 비보의 위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중도 8대 세가의 공자로서 그에게도 현급 비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결계를 파괴할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강참은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추자약과 함께 사람들을 이끌고 앞으로 달려갔다.
*거울 속 세계에서 양준과 소안은 드디어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주위의 하얀 경치와 우뚝 솟은 빙산을 바라보면서 소안은 저도 모르게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내 그녀의 진원이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빨리 운행되었다.
거울 모양의 현급 비보가 나타나자, 소안의 기운은 놀랄 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녀는 분명 양준의 옆에 서 있었지만, 네 명의 고수들의 눈에는 그녀의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소안은 지금 이 순간, 현급 비보와 한 몸이 되었다.
네 명의 고수들은 이를 보고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현급 비보는 분명 양준이 꺼낸 것인데 왜 저 여인이 비보와 함께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인가?
양준과 소안도 이 현상을 발견했다. 마주 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모두 흥분이 어렸다. 거울 비보를 사용하기 전에는 양준도 이런 효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양준은 금방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과 소안이 합환공을 수련할 때 서로의 몸과 마음이 이어지면서 흡수한 비보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의 비보를 공유하는 셈이었다. 특히 한성 속성을 띤 거울 비보는 소안의 진원 속성과도 부합했다. 그녀를 위한 맞춤 비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거울 비보의 효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지만 양준은 불가능했다. 그의 진원 속성은 비보의 속성과 상반되었다. 애당초 파경호에서 이 비보를 선택할 때에도 그저 등급이 좀 높아서 고른 것이었다. 무심결에 한 선택이 지금의 좋은 형세를 가져다준 것이다.
“결계(結界) 비보다!”
강씨 가문의 한 고수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 안목이 뛰어난 고수들로 비보의 위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바깥쪽이 결계와 금제(禁製)로 뒤덮이며 이 공간이 만들어졌고, 결계와 금제를 파훼하지 못하면 비보의 봉인도 깰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계를 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양준과 소안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네 명이 어떻게 무모하게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있는 곳은 차가운 바람이 울부짖고 땅에는 눈이 두텁게 쌓여 있었으며, 하늘에서는 여전히 큰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싸늘한 한기에 진원도 모조리 얼어붙은 것 같았다. 네 사람은 미친 듯이 공법을 운행했지만 여전히 한기를 막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머리, 수염, 옷 등에 서리가 가득 맺혔다.
“좀 어때요?”
양준은 네 고수를 신경 쓰지 않고 소안에게 물었다.
“힘이 많이 늘어났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소안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찬 공기를 마시는 순간, 그녀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녀는 큰소리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소안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결계 안에서만큼은 자신이 천하무적이라는 얘기였다.
양준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요. 그럼 앞으로 사저가 이 비보를 갖고 다니면서 쓰세요.”
“그래.”
소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사양하지 않았다. 내 남자가 주는 선물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네 명의 고수는 두 사람의 대화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새파랗게 젊은 후배들에게 무시를 당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한 번 시험해 보자!”
소안은 나지막하게 말하면서 손을 가볍게 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네 사람을 향해 흔들었다.
그러자 가뜩이나 차가웠던 바람이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안색이 급변했다.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지만, 울부짖는 찬바람 속에서 머리와 수염에 빠른 속도로 가늘고 긴 고드름이 맺혔다. 미친 듯이 진원을 운행해 보아도 찬바람은 전혀 막아 낼 수가 없었다. 그들의 몸은 조금씩 떨려 오기 시작했다.
소안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온몸의 차가운 진원은 천천히 봉인된 공간과 하나로 연결되었다.
쩍-
땅바닥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몇 척이나 쌓여 있던 눈이 갑자기 촘촘한 얼음 가시로 변하며 광풍과 함께 눈사태처럼 네 사람을 덮쳤다.
네 명의 고수들은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한기 때문에 진원의 운행 속도가 느려지자, 덩달아 반응 속도 또한 평소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그들은 다급히 연합하여 무공과 비보를 펼치며 공격을 막아 내려 애썼지만, 숨을 돌리기도 전에 소안의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주위를 둘러싼 빙산에서 대낮처럼 환한 빛이 반짝거렸고, 머나먼 곳에서 누군가 그들을 향해 날카로운 공격을 퍼붓는 것만 같았다.
양준은 소안의 옆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크게 일렁거렸다.
현급 비보의 도움으로 소안이 이 정도로 실력을 발휘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혼자의 힘으로 중도 8대 가문 출신의 신유 경지 5단계 고수 네 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네 사람은 힘들게 방어만 하고 있을 뿐 반격할 기회조차 없었다.
거울 비보는 그녀를 위해 가장 이상적인 전투 환경을 마련해 주었고, 덕분에 결계 안에서는 그녀가 주인공이었다. 오히려 비보의 주인인 양준은 방관자가 되었다.
지금의 형세로 봤을 때 소안이 그들을 이기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결계 밖, 강참과 추자약이 자신들의 대열을 거느리고 결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다들 결계와 삼십 장 정도 거리를 둔 채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에서 발산하는 한기가 너무 강렬한 탓에 삼십 장 밖에 있어도 공법을 운행해 한기를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깨뜨려!”
강참이 소리를 지르며 먼저 공격을 퍼부었다. 평소라면 쓰지 않을 현급 비보까지 꺼내 들고 진원을 주입하여 눈앞의 반원 모양의 결계를 어떻게 해서든 깨뜨리려 했다.
강참의 공격이 결계에 부딪히자, 결계에 잔물결이 일더니 안에서 흩날리던 눈들이 한순간 멈추는 듯했다.
공격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강참은 숨을 헐떡였다. 그의 실력은 강한 편이 아니어서 현급 비보를 사용하는 것은 그에게도 작지 않은 부담이었다. 다행히 추자약도 같은 등급의 비보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무인들은 현급 비보가 없는 대신, 더욱 미친 듯이 공격을 펼쳤다.
한바탕 공격을 펼치자 결계가 약간 약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참은 희망을 품고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멈추지 말고 계속 공격해!”
시간을 끌수록 그들에게 불리했다. 대다수의 고수들은 이미 영구를 잡아 두는 데 투입되었고, 중도 8대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 네 명은 결계 안에 갇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참은 무슨 수단으로 양준을 잡아야 할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참은 깜짝 놀라 다급한 와중에 고개를 돌리고 상황을 살펴보았다. 순간, 그의 표정이 시퍼렇게 변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향초, 남생,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모든 이들이 결계를 공격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을 때, 한쪽에서 향초와 남생이 가문의 사람들을 데리고 슬그머니 능소각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