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99화 (499/853)

제 499장. 넌 그럴 배짱없어

강참이 그들의 행동을 알아차리자, 능소각 제자들과 대치하고 있던 남생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음산한 표정으로 말했다.

“험한 꼴 보기 싫으면, 순순히 항복해라. 너희들과 놀아줄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이에 몇몇 사숙들이 어두운 얼굴로 젊은 제자들의 앞을 막아 섰다. 그들도 화가 났으나 꾹 참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두 분, 양준이 그쪽 책임자와 협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리 나오는 겁니까?”

남생은 냉소하였다.

“협의는 무슨, 난 모르는 일이야. 따지고 싶으면 양준이랑 협의한 사람한테 찾아가서 얘기해. 정말로 너희 능소각을 그냥 두고 볼 줄 알았나? 너희를 건드려도 양준이 날 어떻게 할 수는 없어.”

“정도껏 하시지요.”

“정도껏 하라고?”

남생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딴 말은 양준한테나 가서 해. 그놈이야말로 안하무인의 결정체니까!”

말을 마친 그는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포위해라. 반항하는 자는 죽여! 양준이 너희를 제법 아끼는 것 같던데? 얼마나 아끼는지 한번 봐야겠어!”

남씨, 향씨 가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서며 험한 얼굴로 능소각 제자들을 겹겹이 둘러쌌다.

능소각 제자들도 화가 났다. 젊은 제자들은 더더욱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상황이 서로 맞붙어서 싸울 지경에 이르자 강참은 황급히 이쪽으로 건너와 남생의 멱살을 잡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화를 내며 물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남생은 대수롭지 않게 슬쩍 웃어 보이고는 그의 손을 풀면서 덤덤하게 대꾸했다.

“강 공자, 지금… 강씨, 추씨 가문의 고수들이 결계 안에서 양준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강참은 미간을 찌푸리고 언짢은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양준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연히 상관있죠. 만약 그들이 양준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이번 작전은 실패나 다름없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고작 세 명을 제압하지 못했단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뒷일은 제가 얘기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강참은 점차 차분해졌다. 그는 방금 전 상황을 얼핏 보고 향초와 남생이 능소각 제자들에게 양준에 대한 화풀이를 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명령을 무시한 것도 괘씸했고, 무엇보다 그는 양준의 미움을 크게 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직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고, 남생이 하는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설득이 되었다. 그의 말대로 눈앞의 상황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만약 양준을 잡지 못한다면 양소에게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원래도 엽신유보다 못한 지위가 이후로는 더욱 낮아질 것이 뻔했다.

“뭘 어쩌긴요.”

강참이 묻자, 남생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그냥 인질을 잡아 두면 강씨 가문과 추씨 가문의 고수들이 실패해도 여전히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거지요. 양준이 저들 때문에 항복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희는 다치는 곳 없이 물러날 수 있을 겁니다. 강 공자도 방금 그 현급 비보를 보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저들이 우리를 붙잡아 두려 한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강참의 표정이 변했다. 문득 남생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 것이다.

양준은 능소각 제자들을 무척이나 신경 쓰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그와 협상을 했을 리가 없었다. 양준의 성격상 앞길을 막는 사람은 다짜고짜 공격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을 인질로 삼고 양준을 협박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여유롭게 물러날 수는 있겠지!’

“설마 강 공자께서는 아직도 양준이랑 한 구두 약속을 신경 쓰고 계시는 겁니까?”

남생은 강참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비아냥거렸다.

강참은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부인하지 않았다. 구두 약속이긴 해도 중도의 공자들은 약속을 중히 여겼다. 능소각 제자들을 건드리지 않기로 양준과 이미 합의를 보았는데 번복하는 것은 타당치 않았다.

“큰일을 하려면 그 정도는 버리실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강 공자, 설마 양준이 그 비보를 이용해서 저희 전원을 제압하는 꼴이라도 보겠다는 것은 아니시죠?”

남생은 계속해 몰아붙였다.

줄곧 말이 없던 향초도 나서서 설득했다.

“강 공자, 잘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희가 사적인 복수를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와 남 공자는 모두를 위해 이러는 것입니다.”

숨을 크게 들이쉰 강참은 결심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남생과 향초는 그 말을 듣더니 크게 기뻐하며 들뜨기 시작했다. 드디어 양준에게 복수할 기회를 잡았으니 기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과하게 하지 말고 딱 두 명만 잡아 두도록 하세요.”

강참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명령을 내렸다.

“좋습니다.”

남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섬뜩하게 웃었다. 그는 능소각 제자들을 한 번 쓱 훑더니 나이 든 제자 한 명을 가리켰다. 그러자 누군가 바로 인파 속에 뛰어들어 그를 잡아왔다. 남생에게 지목당한 사숙도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씩씩거리는 젊은 세대의 제자들을 제지하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능소각 제자들은 전멸할 수 있었다. 참고 넘어간다면 무사할 터였다. 능소각 제자들이 반항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남생과 향초는 저도 모르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비아냥거렸다.

“나약한 놈들!”

강참은 미간을 찌푸렸다. 향초와 남생이 이런 식으로 능소각 제자들을 자극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생의 두 눈은 계속해서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적절한 목표물을 찾았다. 그러다 증오에 찬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 냉소를 지으며 그 사람을 가리켰다.

“저 자를 잡아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씨 가문의 고수가 그 젊은 제자를 제압해서 데려왔다.

그 제자는 나이가 많지 않았는데 심지어 양준보다도 어려 보였다. 실력도 진원 경지 5단계로 높지 않았지만 자질은 꽤나 괜찮아 보였다. 바로 이런 연유로 남생은 그를 선택한 것이었다.

능소각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 한 명과 젊은 제자 한 명이 남생의 앞에 잡혀왔다. 나이 든 제자는 반항하지 않고 평온한 표정을 고수했지만, 젊은 제자는 냉소하며 도도하게 남생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제법이네!”

남생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상대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젊은 제자의 입가에는 피가 흘렀고, 얼굴도 모로 획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다시 얼굴을 홱 돌리고 여전히 남생을 매서운 시선으로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남생은 이마의 실핏줄이 튀어나왔다. 상대가 이처럼 기개가 있을 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화가 나 다시 한번 젊은 제자의 뺨을 내리치며 냉소했다.

“건방진 놈!”

뺨을 두 번 맞자 젊은 제자의 얼굴은 심하게 부어올랐고 입안 가득 피가 고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겁먹은 기색이 없이 여전히 날카로웠다. 죽어도 굴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강참은 저도 모르게 표정이 변했다. 능소각 제자의 행동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이름이 무엇이냐?”

강참이 물었다.

젊은 제자는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도도하게 말했다.

“소무영이다!”

“소무영이라…….”

강참은 숨을 들이쉬더니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소각은 역시 다르군.”

‘평범한 제자도 이 정도 기개를 가지고 있다니. 그럼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다 죽여도 굴복하거나 용서를 빌지 않겠지?’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소무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들이 내 앞에서나 거드름을 피우지, 좀 있다 양 사형이 오고 나서도 그리 기세등등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강참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소무영의 말대로 그는 양준 앞에서 거드름을 피울 자신이 없었다.

남생은 더욱 화가 나 소무영의 무릎을 걷어찼다. 소무영은 반항하지 않고 신음을 흘리며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남생의 무차별적인 폭행이 이어졌다. 강참이 말릴 틈도 없이 소무영은 또 뺨을 열 번이나 맞았다.

찰싹, 찰싹 소리가 귀를 찔렀다.

능소각에서는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함께 눈이 시뻘개져서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남생을 쏘아볼 뿐이었다.

조용한 분위기는 폭풍 전야 같았다. 강참은 소름이 돋아 다급히 외쳤다.

“그만하십시오!”

남생은 그제야 멈추고 숨을 몰아쉬며 소무영의 멱살을 잡고서 옆사람의 칼을 뽑아 들었다. 그는 칼을 소무영의 목에 겨누고 음산하게 말했다.

“내가 널 죽이지 못할 것 같으냐?”

“넌 그럴 배짱없어.”

소무영은 피가 가득 고인 입으로 여전히 비꼬며 말했다. 삶에 미련 따위는 없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남생은 표정이 변하더니 머뭇거리면서 손에 든 검에 천천히 힘을 실었다. 소무영의 목에 빨간 줄이 그어졌지만 끝내는 베어 버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소무영을 죽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생은 양준의 보복을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했다.

오히려 소무영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남생이 양준을 매우 무서워하는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놓아주세요.”

강참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남생은 겉보기엔 독해 보여도 사실은 만만한 사람만 괴롭히는 겁쟁이였다.

남생은 주먹을 꽉 쥔 채로 이를 악물었다. 그는 자신을 도발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었지만,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강참의 말은 그런 그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었다. 소무영을 놓아주면 자신이 그럴 용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리고 일등 세가의 공자로서 남생은 그런 망신스러운 일을 할 수 없었다.

이윽고 남생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의 손에 든 검이 호선을 그렸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흩뿌려졌다. 소무영의 오른쪽 가슴이 검에 관통되었던 것이다. 남생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무영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능소각 제자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얼른 앞으로 달려와 소무영을 부축했다.

“내가 정말 못 할 줄 알았어?”

남생은 침을 뱉더니 얼굴을 실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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