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01화 (501/853)

제 501장. 너희들을 놓아줄 것 같아?

“남생, 당신이 저지른 일이잖아요. 이걸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추자약은 고개를 돌려 남생에게 소리를 질렀다.

남생의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진작 자취를 감추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얼이 빠져 메마른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향초의 눈동자에는 순간 경멸과 잔인함이 스쳐 지나갔다.

“추 공자, 양준이 아무리 대단해 봤자 혼자입니다. 뭘 두려워하십니까? 게다가 강 공자도 말씀하셨다시피 이건 계승 싸움입니다. 계승 싸움에서 사람 한둘 죽는 건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능소각의 제자는 안 죽지 않았습니까? 양준은 지금 침소봉대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중도에 퍼져도 그의 입장만 난처할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양준을 탈락시킬 좋은 기회입니다. 추 공자께서 기회를 잘 잡으십시오. 저희는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헛소리하지 마!”

추자약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양준이 강 공자와 한 약속이 있는데 굳이 능소각 제자들을 건드린 건 당신들이잖아. 그리고 양준은 방금 우리 쪽 사람들을 봐줬다고. 그런데 당신들이… 젠장!”

향초는 추자약에게 욕을 먹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의 나약함에 실망했다.

말하는 사이, 양준은 이미 그들의 앞쪽 이십 장 되는 거리에 이르렀다. 혼자서 일곱 가문의 세력을 마주하면서도 전혀 겁먹지 않고 의연한 모습이었다. 실력이 강한 고수들은 모두 발이 묶여 있었지만, 그들 쪽에는 인원이 적지 않았고 신유 경지의 무인들도 꽤 되었다.

“추자약!”

양준이 소리 높여 불렀다.

“넌 추억몽 동생이니 난처하게 굴지 않겠다. 저리 비켜.”

추자약은 얼굴에 기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곧바로 대답하려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요구는 들어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제법 강단이 있네!”

양준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곧이어 빛이 번쩍하더니 그의 손에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뼈 방패가 나타났다.

“그 현급 비보다!”

추자약 일행은 안색이 변했다.

뼈 방패는 양준이 지난번에 양항 관저를 공격할 때 한 번, 방금 전에 한 번 사용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방패의 강한 방어력과 효능을 잘 알고 있었다. 뼈 방패가 있는 한, 양준의 방어력은 거의 물 샐 틈이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양준이 지금 이 방패를 꺼낸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왜 방어하려는 거지?’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지 간에 위험한 기운이 서렸다. 이내 뼈 방패에서 검은색 빛이 반짝거리더니 가운데 커다란 짐승 입에서 기운이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슈슈슉-

방패에서 거대한 번개 교룡이 줄기줄기 튀어나왔다. 번개 교룡은 길이가 십몇 장 되는 몸통을 꿈틀거리며 천지를 파멸시킬 기세로 일곱 가문이 모인 곳을 향해 날아갔다.

“이럴 수가……!”

추자약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비보는 본래 방어용, 공격용, 보조용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양준의 뼈 방패는 분명 방어용 비보인데도 불구하고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날린 번개 교룡들은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 듯 낯설지 않았다.

“저건 양항의 현급 비보의 위력이야!”

향초가 소리쳤다. 그는 문득 뼈 방패가 공격을 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삼킨 공격으로 반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번개 교룡들은 분명 두 달 전에 양항과 양준이 일 대 일로 싸울 때, 양항이 시전했던 현급 비보의 효능이었다. 그때 번개 교룡들은 양준의 뼈 방패에 흡수되었다가 두 달이나 지난 지금, 이곳에서 다시 방출된 것이었다.

같은 등급의 현급 방어 비보가 아닌 이상, 감히 현급 비보의 위력을 누가 당해 낼 수 있겠는가?

7~8마리의 번개 교룡이 달려들자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죽음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태연할 사람은 없었다. 고수들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의 실력으로 번개 교룡의 습격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 고수들은 모두 발이 묶여 있거나 아니면 얼음에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번개 교룡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면서 번개 교룡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향초는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한 채 사람들에게 힘을 합쳐 막아 내자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의 말에 따를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추자약도 도망쳤는데 누가 제자리에서 죽기를 기다리겠는가?

쿠구궁-

콰과광-

번개 교룡들은 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사람들 사이를 누볐다. 번개 교룡에 부딪힌 무인들은 하나같이 손발을 덜덜 떨며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사람들은 아예 온몸이 새카맣게 타버렸다.

얼마 없는 신유 경지의 무인들은 자신들의 공자를 보호하고 번개 교룡의 공격을 피하느라 바빴다.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현급 비보의 위력 앞에서 사람의 목숨은 보잘것없었다.

공법을 운행해 상처를 치료하던 강참은 천천히 눈을 뜨고 멀리 처참한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제야 그는 양준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양준이 능소각 사람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한 것은 정말 자신들을 위해 한 말이었다. 남생이 능소각의 젊은 제자 한 명을 다치게 했을 뿐인데 이런 화를 불러왔다. 만약 능소각 사람들이 정말 전투에 참여했다가 죽거나 크게 다쳤다면 자신은 전성으로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강참은 사색이 된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더는 그쪽 상황에 신경 쓰지 않았다.

능소각 사람들은 흥분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방금 전에 당한 수모와 모욕을 이 순간에 전부 되갚아 준 것만 같았다. 양준은 혼자의 힘으로 일곱 세력의 무인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피하기 바빠, 공격할 시간도 없었다.

별안간 흐릿한 자색 빛이 공중에서 폭발하더니 잔물결이 겹겹이 퍼져 나가면서 번개 교룡의 공격을 피하기 바쁜 무인들을 감쌌다. 잔물결에는 광기 어린 신혼 공격이 담겨 있었다.

양준은 거리낌 없이 신혼기를 마음껏 펼쳤다.

신식이 퍼지자 대부분의 무인들은 얼이 나간 듯 멍해졌다가, 곧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악한 기운이 머릿속으로 침입했는지 제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서 있던 무인들은 들이닥친 번개 교룡에 타 버렸다. 오직 신유 경지의 고수만이 신혼기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방에서는 시체 타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참 뒤에야 번개 교룡은 천천히 공기 중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현급 비보의 위력이 드디어 다한 것이다. 양준도 더 이상 신혼 공격을 펼치지 않았다. 황야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찼고, 사상자도 수두룩했다.

삼백 명 가까이 되던 일곱 세력의 인원들은 이제 이백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널브러진 시체들은 차마 봐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목탄처럼 새카맣게 타 버린 시체들에서 가늘고 파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추자약은 언제 땅에 주저앉았는지 눈이 퀭해서 이를 덜덜 떨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그의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계승 싸움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그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자신에게 생명의 위험이 닥쳐올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더는 안일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양준이 추억몽을 생각해 일부러 자신을 봐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정말 운이 좋아 번개 교룡의 습격을 피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망설임 없이 공격하는 양준의 모습에 그는 크게 겁을 먹었다. 양준이 시시각각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목숨을 노리는 것만 같았다.

“추 공자, 가시죠!”

어느 세력 출신인지 알 수 없는 신유 경지의 무인이 얼이 빠진 추자약을 보더니 얼른 그의 곁으로 와서 부축했다. 그리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전성 쪽으로 날아갔다. 감히 강참에게도 중상을 입힌 남자 앞에서 그는 이미 아무런 투지도 생기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멀리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진 채 일어나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더는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왜 도망치는 거야!?”

향초가 소리를 질렀다.

“비보도 다 썼잖아. 그런 공격을 사용했으니 지금은 기력이 떨어졌을 거 아니야? 이 기회에 제압해야지. 추 공자, 추 공자는 어디 간 거야?”

누구도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향초가 명령할 자격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있다고 해도 지금 누구도 이 지옥 같은 곳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고함을 지르던 향초는 문득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침 양준의 음산한 눈빛과 마주쳤다.

향초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물러섰다.

“가자. 일이 꼬였어.”

남생이 다가와 그를 잡아 끌었다.

향초는 이를 악물고 독기 서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발을 굴렀다.

“가자!”

‘모두 겁쟁이들뿐이야! 이런 사람들과 손잡고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어?’

향초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그날 태방산에서 양준에게 미움을 사지 않았다면, 또는 양준이 내 호의를 받아 주었다면 나도 지금쯤 그의 곁에서 뭔가 성과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지만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다. 향초는 안목 없이 양준에게 밉보인 자신에게 화가 났다.

“너희들을 놓아줄 것 같아?”

이때, 양준의 목소리가 도망치던 이들의 귓가에 전해졌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뚜렷하게 들려와 모든 이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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