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3장. 겨우 너희들이?
향씨와 남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해도 칠십 명 정도였다. 그리고 양준에게 한차례 당한 뒤, 도망치는 도중 많이 흩어지다 보니 지금 그들 옆에 있는 이들은 스무 명이 채 안 되었다. 반면 다른 세력의 사람들은 그 수의 두세 배는 되었다. 다른 세력의 사람들이 정말로 양준의 말에 넘어가 그들을 공격한다면 향초와 남생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판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양준의 말을 듣고도 조금 머뭇거렸을 뿐이었다. 어쨌든 같은 대열의 사람들인데 양준의 한마디에 갑자기 그들을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향초는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저희 향씨 가문과 남씨 가문은 그래도 다들 알아주는 가문입니다. 만약 지금 이곳에서 저희를 공격한다면 결과가 어떨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에 머뭇거리던 사람들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약 적대 관계라면 어떻게 죽여도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양소 휘하의 동료들인데 정말 서로 죽이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그들의 가문은 앞으로 영원히 발붙일 데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과 비교했을 때, 당연히 가문의 명예가 더 중요했다. 게다가 양준이 따라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따라온다고 해도 그는 먼저 향씨, 남씨 가문 사람들을 공격할 테니 자신들은 도망칠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다.
“남 공자, 향 공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당신들을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바로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향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시름을 놓았다.
뒤쪽에 있던 양준은 그들 사이에서 오가는 눈빛과 표정 변화를 눈치챈 듯,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다들 향씨, 남씨 가문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아 하니 나도 강요하진 않겠다. 대신 향초와 남생을 잡아두는 사람은 똑같이 건드리지 않겠다. 안 그러면 결말은 책임지지 않는다.”
금방 누그러졌던 분위기가 이 말에 다시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양준이 내건 조건은 방금 전 조건보다 더 유혹적이었다. 남생과 향초를 죽이지 않고 살짝만 잡아두는 거라면 그들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남생과 향초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급히 자신의 사람들을 거느린 채 다른 세력들과 거리를 두었다.
남생은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양준, 넌 정말 네가 대단한 줄 알아? 네 신분만 아니었어도 내가 도망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양준은 냉소하며 대답했다.
“진작 태방산에서부터 눈치챘다. 너희 향씨, 남씨 가문 놈들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놈들이지.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 게 너희들 특기 아니더냐? 태방산에서 제멋대로 방자하게 굴며 사람들 목숨을 빼앗아 가더니, 나 같은 거대 세력의 공자를 보니까 도망갈 생각밖에 안 들어?”
양준의 비꼬는 말에 남생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태방산에서 그는 제멋대로 양준과 풍우루, 혈전방 사람들을 괴롭혔었다. 심지어 파렴치하게 호씨 자매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마침 그때 도봉과 당우선이 찾아와 양준의 신분이 밝혀지자, 그제서야 그들은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되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날의 전투로 혈전방과 풍우루에서는 분명 막대한 사상자를 냈을 것이다. 양준도 도망치는데 성공하더라도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쌓이고 쌓인 원한을 이제 결산할 때가 된 것이다. 양준도 자신의 눈에 보잘것없는 두 사람과 더는 실랑이질하고 싶지 않았다.
“큰일 났습니다. 양준 공자가 곧 따라잡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많은 무인들이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양준은 남생과 말하는 사이에 이미 기척 없이 거리를 많이 좁힌 상태였다. 조금만 더 지나면 정말 따라잡힐 판이었다.
향초와 남생도 크게 당황했다.
뒤에서 거센 기운이 일렁였다. 양준이 공격을 준비하는 듯했다.
이에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뼈 방패가 방출했던 놀라운 일격이 아직도 사람들의 눈앞에 선했다. 그들은 양준이 또 그런 파괴성을 띤 공격을 펼칠까 두려웠다.
솨솨솨-
등 뒤에서 검기가 기승을 부렸다. 진원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검기가 줄을 지어 세차게 공격해 왔다.
하늘을 뒤덮는 무차별한 공격에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인들은 몸을 돌려 각종 무공과 비보를 시전해 검기를 막았다.
그렇게 한참을 막다가 실력이 강하지 않은 무인들 몇 명이 쓰러졌다.
향초의 표정에 먹구름이 끼었다. 그는 이렇게 도망치다가는 양준의 추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준의 속도는 그들보다 훨씬 빨랐다.
“장로님, 좀 막아 주셔야겠습니다!”
향초는 단호한 표정으로 곁에 있는 신유 경지 무인들에게 말했다.
이들은 향씨, 남씨 가문의 얼마 안 되는 신유 경지 무인으로 가장 높은 경지라고 해봐야 신유 경지 4단계였다. 하지만 두 가문이 합한다면 일곱 명은 되었다. 일곱 명의 신유 경지 무인들이 뒤를 봐준다면 양준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들을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멀리 전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 리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었다. 향초는 하는 수 없이 이런 방법으로라도 양준의 발을 묶어 두려고 했다.
일곱 명의 신유 경지 무인들은 그 말을 듣고 씁쓸한 표정이 되었지만, 곧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아 내겠습니다.”
향초는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십시오!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향씨, 남씨 가문의 신유 경지 무인 일곱 명은 발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돌아서더니 뒤를 바라보았다.
향초와 남생은 남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계속해서 속도를 높였다.
일곱 명이 멈춘 것을 보고, 양준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그는 신식으로 빠르게 앞쪽을 훑어본 뒤, 순식간에 그들의 경지와 실력을 파악했다. 이내 그의 얼굴에는 귀찮아 하는 표정이 서렸다.
“양준 공자, 우리 공자를 쫓으려면 우리부터 꺾고 가시오.”
그중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일곱 명은 동시에 진원을 돌렸다. 무공과 비보의 빛이 활짝 피어오르며 양준을 세차게 공격했다. 그들도 양준과 대화를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실력으로 다툴 수밖에 없었다.
“겨우 너희들이?”
양준이 크게 웃었다. 곧이어 현급 하품의 뼈 방패가 그의 손에 나타났다. 그는 뼈 방패로 앞을 막고 공격을 막으며 달려갔다.
콰아아-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지며 기운이 마구 날뛰었다. 매번 충격이 있을 때마다, 양준의 발걸음은 조금씩 멈칫했다. 뼈 방패 한가운데 나 있는 쩍 벌린 짐승 입은 공격해 오는 기운을 말끔하게 삼켰다. 기운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뼈 방패의 크기는 눈에 띌 정도로 점점 커졌다.
한차례 공격이 끝났는데도 양준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잠깐 발이 묶이고 말았다.
“흩어져!”
뼈 방패의 현묘함을 아는 그들은 제자리에 모여 있으려 하지 않았다. 한 명이 소리치자, 신유 경지 무인들 모두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뼈 방패의 짐승 입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가장자리의 예리한 가시들이 솟아올랐다.
콰앙-
방금 전, 뼈 방패가 삼켰던 기운들이 도로 튀어나왔다.
슈슈슉-
이와 동시에 가시들도 빛을 번쩍이며 일곱 명에게 날아들었다.
일곱 명은 진작에 준비하고 있었던지라 모두 방어용 비보를 꺼내 몸을 보호하면서 다급히 피했다.
접전을 거쳐 일곱 명은 뼈 방패의 반격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가시들도 각종 수단으로 막아 냈다.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다치지는 않았다.
뼈 방패의 위력은 역시나 대단했다. 신유 경지 8단계의 무인이 아니라면 방패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하지만 특별히 뼈 방패의 특성을 겨냥한다면 뼈 방패는 큰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비보는 사물로 고정된 것이지만 사람은 상황에 따라 대처가 가능했다.
그리고 일곱 명도 양준과 필사적으로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양준의 발을 묶어 두려는 속셈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를 일 각 정도만 잡아두면 남생과 향초의 속도로 무사히 전성으로 돌아가 양소 관저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계획이 성공할 것 같자, 신유 경지 무인들의 표정은 밝아졌다. 갑자기 양준도 상상했던 것만큼 무섭지 않은 것 같았다.
같은 등급의 무인들 중에서는 양준이 무적일 수도 있겠지만, 외부의 힘이 없다면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실력에 한계가 있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그의 발을 묶어 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옆에 다른 고수가 없는 틈을 타 그를 사로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일곱 명은 더없이 흥분했다. 순간 자신감이 없던 상태에서 드높은 기세로 똘똘 뭉쳤다.
그들은 다짜고짜 신혼기를 펼치며 공격했다. 사방팔방에서 얽히고설킨 신식의 힘이 거미줄처럼 양준을 겹겹이 감쌌다.
양준은 신식의 힘이 모인 한가운데 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다.
흉살사동에서 혼사령의 본원을 흡수한 뒤로, 그는 신식의 공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곱 명의 신식의 힘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으로,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오히려 양준이 갑작스레 폭발시킨 신식의 힘에 일곱 명의 무인들은 식해가 차가워지면서 봉인되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향초가 당신들을 남겨둔 건 저들 대신 죽으라고 그런 거야. 뭐 하러 그런 놈을 위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는 이들과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놈이 전성까지 도망치더라도 반드시 죽일 것이다. 당신들은 여기서 아무 의미 없이 죽는 거라고!”
신유 경지 무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양준 공자, 이간질하지 마시게. 우리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영원히 향씨, 남씨 가문의 사람이네. 공자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네. 이처럼 자신감이 넘치니 그럼 우리에게 공자의 실력을 숨김 없이 보여주지 않겠나?”
“그럼 전력으로 상대해 주지!”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의 표정이 평온해지며, 손에 든 뼈 방패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순간 일곱 명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었다. 일곱 쌍의 눈은 저도 모르게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경악과 두려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양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공격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양준뿐이었다.
그가 오른손의 중지로 이마에 점을 찍자, 몽환적으로 중얼중얼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