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4장. 주화입마에 빠질 모양인가 보군
하늘이 전율하고 땅이 흔들렸다. 마치 천지 개벽이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양준의 몸에서 빛과 희망을 모두 삼켜 버릴 것 같은 어두운 기운이 폭발했다. 잔혹하고 폭력적이며 사악한 기운이 천지 간을 가득 채웠다. 일곱 명의 무인들은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양준의 기운이 짙어짐에 따라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부터 깊은 무기력감을 느꼈다. 그가 보여준 힘은 그들을 경악에 빠뜨렸다.
금신의 사악한 기운을 사용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양준도 8대 가문과 창운사지의 적대 관계가 신경 쓰여 여태껏 자신의 사악한 면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향초와 남생을 죽이기 위해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사악한 기운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양준의 몸에 말끔히 흡수되었다. 얼핏 보면 양준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일곱 명에게 주는 느낌은 방금 전과 전혀 달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곱 명은 손잡고 양준을 잡아들여 남생과 향초를 위해 공을 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왠지 지금의 양준을 보고 있으면 자신들이 궁지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일곱 명의 무인들은 시선이 먹구름에 가린 것처럼 빛이라고는 볼 수 없었고, 방향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싸늘하고 잔혹한 시선이 느껴져, 그들은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양준이 손을 살짝 들자, 자그마한 검은 기운 몇 갈래가 뱀처럼 습습, 소리를 내며 그중의 한 사람을 공격했다.
그 사람은 표정이 크게 변하더니 다급히 피하려 했다. 하지만 움직이자마자 몸을 흠칫 떨고는 겉에 드러난 피부가 순식간에 검은색 기운에 덮이면서 벌렁 뒤로 넘어졌다.
신유 경지 3단계의 무인이 반항도 못 하고 일격에 죽은 것이다.
남은 여섯 명의 무인들은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숨을 죽였다. 그들은 죽은 무인이 어떻게 당한 것인지도 보지 못했다. 또한 양준의 실력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시 태방산에서 양준은 진원 경지 5단계의 실력으로 신유 경지 2단계의 무인을 두 명이나 죽였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신유 경지와 한 단계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발휘할 수 있는 실력도 당연히 그때보다 훨씬 강했다.
양준은 신유 경지 3, 4단계밖에 되지 않는 그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길을 막는 자는… 죽는다!”
양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리며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곧이어 검은 수인(手印)이 여섯 명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늘을 뒤덮는 커다란 손은 점점 더 커졌고, 여섯 명은 절대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진원을 운행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인을 피할 수 없었다.
퍽, 소리와 함께 대지가 흔들렸다.
검은 수인은 땅바닥에 커다란 자국을 남겼다. 동시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여섯 명의 무인들은 엎드린 채로 거대한 손자국 안에 쓰러져 있었다. 죽은 사람은 없지만, 사악한 기운이 그들의 심신에 침입해 의식이 흐릿해졌다. 또한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 평생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말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더니!”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생과 향초는 양준의 실력이 크게 향상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해 주지 않았다. 만약 일곱 명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양준을 사로잡겠다는 희망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처참한 말로를 맞이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양준은 여섯 명의 생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백 리 밖의 전성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치고는 바로 몸을 움직였다. 설령 향초와 남생이 정말 양소 관저에 숨어들었다 해도, 오늘은 반드시 그들의 기일이 될 것이다.
*전성.
남생과 향초는 황급히 무인들과 함께 앞다퉈 달려 들어갔다. 길을 가던 행인들은 그들의 낭패스러운 모습에 깜짝 놀라, 그들이 도대체 누구에게 쫓겨 행색이 저리 초라한지 궁금해했다.
그들은 땀투성이가 되어 진원을 소진한 상태로 길을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다급히 양소 관저로 달려갔다.
소식은 곧 양위 관저와 양준 관저에 전해졌다.
양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큰 변고가 생길 것만 같았다. 그는 곧바로 혈시들을 데리고 몰래 관저를 빠져나와 양소 관저 쪽으로 향했다.
양준 관저.
추억몽은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다급히 관저의 각 큰 세력들에 전성 밖으로 나가 양준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남생과 향초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양준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준 관저의 무인들이 추억몽의 명령을 받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지마가 추억몽 곁에 나타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갈 필요 없네. 도련님께서 이미 돌아오셨어.”
“돌아왔다고요?”
추억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양준이 영구를 데리고 떠난 동안, 그녀는 양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줄곧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지마의 말을 들은 그녀는 한시름을 놓으며 급히 물었다.
“지금 어디 있나요?”
지마는 차가운 얼굴로 몰래 탐지해 보더니 한참 뒤에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긴 왔는데, 관저로 돌아올 생각은 없는 모양이야. 지금 동남 쪽으로 가고 있어.”
“동남쪽이면…….”
추억몽은 중얼거리다가 안색이 변했다.
“거긴 양소 관저가 있는 곳입니다.”
“누가 도련님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야. 지금 아주 화가 나셨어!”
지마는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도우러 가야겠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핏빛으로 변하더니 사라졌다.
추억몽은 사색이 되어 더는 지체하지 못하고 다급히 관저의 고수들을 거느리고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방에서 좌선하고 있던 몽무애도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양준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주면서 중얼거렸다.
“이 망할 놈이… 이렇게 짙은 살기라니.”
그는 말하면서 다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하늘을 주시했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서 햇빛을 볼 수 없었다. 전성 전체가 어둠에 잠겼고, 들끓는 먹구름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몽무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몇 걸음 만에 홀연히 몇백 장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봉신전.
원탁 위에 둘러앉아 있던 태상장로들도 신식의 작은 세계에서 빠져나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혼탁한 눈에 놀라움이 드리웠다.
추도인이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양 장로, 그 아이가 주화입마에 빠질 모양인가 보군.”
양립정은 끄덕 없는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뚱뚱한 태상장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신경 쓰이지도 않는 건가? 저대로 가다간 정말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네.”
양립정은 그제야 눈을 뜨며 덤덤하게 말했다.
“본인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지. 그 녀석의 생사까지 관여할 정도로 난 한가하지 않네.”
“심성이 크게 변해서 사마의 길로 빠지면 어떻게 하려고?”
강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직접 손을 쓸 터이니 강 장로가 신경 쓰실 필요 없네.”
양립정이 차갑게 대답했다.
다른 일곱 명은 그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들 양씨 가문은 강하지만, 그 위풍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양씨 가문의 가족 사이 정이 너무 메말랐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 가문의 젊은 자제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그들은 절대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진작 나서서 그 자제를 잡아들이고 제대로 가르쳐서 마음속의 사악한 기운을 눌러 버렸을 터였다. 게다가 양준은 자질이 출중해 앞으로 양씨 가문의 새로운 후계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양립정은 그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곱 명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남의 집안일이었다. 그들도 나이가 많았고 만사에 덤덤해서 양립정도 나 몰라라 하는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 상황을 즐기는지도 몰랐다.
양씨 가문이 중도 제일이라는 명예를 누린 지도 꽤 시간이 되었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발전한다면 백 년이 지나지 않아 다른 7대 가문에게 그 자리를 내놓게 될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7대 가문이 다 눈치챌 수 있는 일을 당사자인 양씨 가문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양소 관저.
남생과 향초가 초상집 개 같은 모습으로 도망쳐 와서 다급히 양소를 불렀다. 그 소리에 방에 있던 양소는 깜짝 놀랐다.
그는 다급히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무슨 일인가요?”
엽신유가 가느다란 허리를 하늘거리며 물었다.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향초와 남생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군요.”
양소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들이 돌아왔나요?”
엽신유가 꽃처럼 활짝 웃자, 아름다운 미모에 매혹적인 요염함이 한층 더해졌다.
“그럼 분명히 좋은 소식을 갖고 왔을 거예요.”
“그래야 할 텐데 말입니다.”
양소도 은근 기대했다. 이번 작전은 은밀히 준비한 데다 강참과 추자약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는 줄곧 소식을 기다리느라 수련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계승 싸움에서 양준을 이길 수 있다면 큰형님 양위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손쉽게 계승 싸움의 최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좋은 소식이면 조금 있다가 들어도 괜찮지 않으신가요?”
엽신유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뻗어 양소의 목을 껴안고서 끌어당겼다.
“만약 정말 좋은 소식이라면 당장 들어야지요!”
양소는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엽신유는 실망스러웠지만 더는 매달리지 않았다.
그때, 양소와 엽신유의 동작이 멈칫했다. 두 사람 모두 향초와 남생의 절망에 가까운 부름을 들었던 것이다.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이 둘이 정말 양소의 바람대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면 이렇게 행동할 리 없었다.
“양소 공자, 양소 공자!”
문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향초, 남생의 외침이 들려왔다.
양소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다급히 나가 방문을 열었다. 향초와 남생을 본 그는 저도 모르게 안색이 시퍼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