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06화 (506/853)

제 506장. 문 앞까지 쫓아온 양준

양소 관저 밖.

양준이 홀로 하늘을 찌르는 살기를 내뿜으며 조용히 서 있었다. 거대한 신식이 양소 관저 전체를 감싼 채 구석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양소 관저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두 양준의 목소리를 듣고 찾아온 이들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성 안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백 장 밖, 찻집의 창가 자리에서 본모습을 감춘 양위가 실눈을 뜨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흠칫하더니 깜짝 놀랐다. 양준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평온해 보였지만, 거대한 살기가 양소 관저의 어느 한 곳을 겨냥하고 있었다. 단호한 표정으로 보아 목표물을 죽이지 않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막내가 뭘 하려는 거지?’

양위는 멍해졌다. 전성은 두 달 동안 계속 잠잠한 상태였다. 그런데 양준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자, 양위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위는 은연 중 자신이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와 둘째 사이에 나도 모르는 갈등이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막내가 대낮에 이렇게 크게 소란을 피울 리 없어.’

곧이어 사악한 기운을 띤 핏빛이 하늘에서 날아왔다. 양위는 숨을 멈추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핏빛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핏빛은 양준의 옆에 내려섰다. 바로 두 달 전에 양준 관저에 갑자기 나타났다던 사마 고수였다.

“주인!”

지마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양준의 옆에 붙어 서서 경계 어린 눈초리로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저 자는 도대체 정체가 뭐지?”

양위는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지마의 내력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이때, 익숙한 모습이 여유롭게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류경요였다.

양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그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

“저 사람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류경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거라고는 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반년 전쯤에 창운사지에서 활동을 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겁니다.”

“음?”

양위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럼 창운사지의 사람이겠죠.”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창운사지 6대 사왕의 휘하에는 저런 사람이 없습니다.”

류경요는 고개를 저었다. 지마가 두 달 전에 놀라운 수단을 선보였을 때부터 류경요는 그를 신경 쓰고 류씨 가문의 힘을 동원해 한참이나 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막내한테는 깍듯하게 대하는군요. 저렇게 강한 사람이 왜 막내 앞에서는 고분고분할까요?”

양위는 숨을 들이쉬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지마는 신유 경지 이상과 한 단계밖에 차이 나지 않는 고수였다. 중도 8대 가문에서도 이런 사람은 몇 없었다. 이 정도급이면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들보다 지위는 낮아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한 단계 진급만 하면 만인의 존경과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

“그 사람 얘기는 나중에 하죠. 그쪽 막내도 결코 보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류경요가 무거운 얼굴로 먼 곳의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양위는 그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류 공자가 사람을 칭찬하는 건 처음 봅니다. 막내가 들었다면 분명 자랑스러워했을 겁니다.”

류경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막내 공자를 평가할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장래에는 저보다 훨씬 강해질 테니까요.”

“막내는 지금도 당신보다 강합니다.”

양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양준은 지금 기혈이 매우 왕성했다. 진원 경지 9단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도 양위는 양준의 몸에서 나오는 거대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 양준과 대련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 류경요는 자신보다 강하긴 하지만, 결코 양준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양위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을 류경요가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복잡한 얼굴로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대로 가다간 조만간 사마의 길로 빠져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없지요. 그의 몸속의 진원은 지금 엄청난 살기와 악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건 그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은 양위는 저도 모르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류경요가 일부러 과한 말을 해서 겁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도 양준이 왜 이렇게 된 건지 궁금했다.

‘설마 두 달 동안 막내가 사공(邪功)이라도 수련한 건가?’

양소 관저에서는 여러 무인들이 뛰쳐나와 양준과 험한 얼굴로 대치했다. 하지만 다들 양준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는 지마를 보자 깜짝 놀라며 경솔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지마가 그날 밤에 보여준 잔인한 수단은 그들을 겁주기에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억몽도 관저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양준의 옆에 나타났다. 양준의 상태를 살펴본 추억몽은 깜짝 놀라며 다가가 물었다.

“양준, 무슨 일이야?”

곽성진도 눈동자가 떨렸다. 그는 양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끼고 속으로 흠칫 놀랐다.

구경꾼들도 똑같이 양준을 손가락질하며 소곤거렸다. 그들은 양씨 가문의 막내 공자가 정말로 이미 주화입마의 길목에 들어선 것이 아닌지, 이러다 곧 이성을 잃고 사악한 힘에 통제받는 건 아닌지 술렁거렸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건 크나큰 웃음거리였다.

중도의 8대 가문과 창운사지는 줄곧 적대적인 관계였다. 8대 가문의 무인들도 사마를 없애는 것을 책임으로 여겼다. 그런데 양씨 가문의 유력한 차기 가주 후보자가 곧 사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는 남들의 웃음거리밖에 안 되었다.

당우선, 호씨 자매, 동경한, 만화궁의 네 소녀, 낙소만… 등 모두 양준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멀쩡해?”

추억몽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두 눈으로 양준의 눈을 바라보며 그에게 남아 있는 이성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녀는 실망하고 말았다. 양준의 눈은 맑았지만 원한과 살기로 가득 차서 본성을 잃은 듯했다.

그녀는 순간 가슴을 졸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계승 싸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양준 관저의 이인자로서 관저의 무인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양준이 실질적인 주체였고 모든 것은 그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만약 양준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다면 그녀가 해온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순간 추억몽은 당황했다. 그녀는 양준이 지금의 상태에서도 몸속의 사나운 기운을 억제하고 또렷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어떤 무인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마가 옆에서 입을 실쭉거리며 낄낄 웃었다.

“지금 주인의 기운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 하하하! 역시 주인과 나는 인연이 깊어!”

추억몽은 그를 흘겨보며 초조하게 물었다.

“왜 저택으로 안 돌아오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

“사람을 죽이려고!”

“누굴 죽이려는 건데?”

“향초와 남생!”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표정이 변했다.

향초와 남생은 지위가 8대 가문의 공자나 낭자들보다 못했지만, 어쨌든 일등 세가의 후계자였다. 이런 사람은 쉽게 죽일 수 없었다. 여송처럼 괘씸한 사람도 양준은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 시기에 갑자기 향초와 남생을 죽이겠다는 것인가?

금방 한시름을 놓았던 추억몽은 양준이 정신줄을 놓은 거라고 생각했다.

“양준, 우선 돌아가자. 응?”

그녀는 양준의 팔을 잡아끌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우선 가서 얘기 좀 해보고, 더 괜찮은 방법이 있는지 같이 고민해 보자. 힘을 들이지 않고 향초와 남생을 죽일 수도 있잖아.”

양준은 고개를 돌려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두 사람을 죽일 방법은 없잖아. 양소 관저에 무인들이 많은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달려든다고 해도 그들을 죽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고.”

추억몽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우선 돌아가자, 응?”

곽성진의 눈은 저도 모르게 휘둥그레졌다.

추억몽에게 이런 부드러운 모습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항상 지적이고 지혜로웠으며 사람들에게 영리하고 능력이 있다는 인상을 남겨 주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여인으로서의 그녀를 잊고 있었다. 이런 여인이 부드럽게 변하면 어떤 남자에게든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그래, 양준, 우선 돌아가서 고민해 보자. 몇 날 며칠이 걸려도 상관없으니까.”

낙소만도 어디서 생긴 용기인지 양준에게 말을 걸었다. 기질이 서로 다른 만화궁의 네 소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양준을 설득하는데 나섰다. 하는 말은 달랐지만, 다들 부드럽게 설득했다. 얼굴에는 모성애가 넘쳐났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사람들을 훑어보고 나서 시선을 추억몽에게 고정하고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어린애인 줄 알아?”

말은 이렇게 했어도 양준은 마음이 따뜻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모두가 그를 걱정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여인들은 얼굴을 붉히며 그제야 그가 이성을 잃지 않고 정신이 또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준은 가볍게 웃더니 고마움과 부드러움이 섞인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나 진짜 괜찮아. 걱정하지 마.”

추억몽은 숨을 들이쉬고는 낯빛을 가다듬고 한참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좋아, 넌 괜찮다 쳐도 향초와 남생은 어떻게 죽일 건데? 여기는 양소 관저고, 안에는 무인만 천 명이 있어. 우리 쪽의 네다섯 배는 된다고! 설령 그들을 죽인다고 해도 여기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함께 죽을 텐데 정말 그렇게 할 거야?”

“저들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양준이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쪽수가 많다고 다가 아니야. 둘째 형은 신중해서 확신이 없는 이상 나랑 쉽사리 싸우려 들지 않을 거야. 계승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큰형님까지 생각해야 되니까!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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