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08화 (508/853)

제 508장. 틀림없이 죽게 될 거야

멀리 몇백 장 밖의 찻집에 있는 양위와 류경요의 표정이 동시에 변했다. 그들은 양소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눈치채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추억몽도 깜짝 놀랐다.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놀라운 속도로 양준의 뒤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 사람은 아무런 소리 없이 괴이쩍게 나타났다. 추억몽이 입을 열어 양준에게 일깨워 주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린 뒤였다.

“제가 형님 생각을 모를 줄 알았습니까?”

양준이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머리 위에 있던 흑색 교룡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등 뒤로 날아갔다. 등 뒤의 수상한 인물이 미처 양준의 몸에 접근하기도 전에 교룡이 와락 덮쳐 물어뜯었다.

그 사람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행적이 양준에게 파악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흑색 교룡의 기괴함과 대단함을 느낀 그도 무모하게 맹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신형이 두어 번 번쩍거리더니 그 사람은 양소의 곁으로 돌아와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양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움직이지 않고 덤덤하게 안색이 퍼래진 양소를 바라보았다.

“둘째네 혈시 한 명도 봉원주를 풀어냈구나!”

양위는 그제야 무슨 영문인지 알게 되었다.

파경호 비보 쟁탈전에서 공자들의 옆에 있는 혈시 한 명은 모두 봉원주에 진원이 봉인됐었다. 그리고 황구주가 비보에 걸어 둔 봉원주를 혈시들이 스스로의 실력으로 풀어 내려면 적어도 두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양위 관저의 혈시도 줄곧 폐관하며 봉원주를 풀고 있었다. 두 달이 거의 지나가는 지금, 곧 폐관을 마칠 듯했다. 그런데 양소 관저의 혈시가 이미 봉원주를 푸는 데 성공했을 줄이야.

‘어쩐지 양소가 그런 제안을 한다 했어. 믿는 구석이 있었군.’

영구가 없으니 양준은 지금 혼자의 힘으로 양소와 신유 경지 8단계의 혈시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셈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진작 알고 있었어?”

양소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렸다. 스스로 계략이 성공했다고 여기고 이번 기회에 양준을 탈락시키려고 했는데, 그가 이미 자신이 혈시 한 명을 더 숨긴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니.

“당연히 알고 있었지요.”

양준은 입을 삐죽 내밀고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강한 신식으로 양소 관저의 모든 기척과 모든 이의 기운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알고서도 응한 거냐?”

양소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게 뭐 어때서요?”

양준은 도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당신들은 절 못 막습니다.”

이 말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말에 멍해져서 이상한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씨 가문의 막내가 정말로 미친 게로군!’

찻집에 있던 양위와 류경요도 똑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유 경지 8단계의 혈시를 앞에 두고 이런 망발을 내뱉다니? 혈시를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가?!

양소의 옆에 있던 혈시는 더더욱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막내 공자, 비록 저희 혈시당의 모든 이들이 공자를 존경하지만 이렇게 얕보시는 건 섭섭합니다. 제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손속에 여지를 두지 않겠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날 막아봐!”

양준은 웃음을 터뜨리며 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하늘을 뒤덮는 검은색 기운이 앞쪽을 덮쳤다. 머리 위의 흑색 교룡도 우렁차게 울부짖더니 몸통을 흔들며 혈시와 양소를 덮쳤다.

양준은 더는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어 한 번에 전력을 쏟았다.

이런 광기 어린 공격에 양소는 순간 숨이 막혔다. 저도 모르게 막아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옆에 있던 혈시가 몸속에서 끊임없이 기운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새하얀 빛이 나타나더니 그와 양소 두 사람을 동시에 감싸며 보호했다.

슈우욱-

검은색 기운은 하얀색 빛을 향해 날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 하얀색은 먹물이 쏟아진 맑은 물처럼 오염되었다.

혈시는 안색이 변했다. 양준이 시전한 수단이 이처럼 기괴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다급히 양소를 끌어당겨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검은색 기운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그들을 바싹 쫓았다.

드높은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열몇 장 길이의 흑색 교룡이 혈시와 양소의 머리 위에서 시뻘건 입을 쩍 벌렸다.

포악한 기운이 마구 치솟더니 교룡을 중심으로 들끓으면서 사방팔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기운도 점화된 것처럼 한 번에 폭발했다.

구경하고 있던 무인들은 그 기운에 다들 고통스러워했다. 숨쉬기조차 어렵고, 마치 큰 산이 정수리를 내리누르는 것 같아 다리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지마만이 흥분한 눈빛을 하고서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기쁜 마음으로 즐기고 있었다. 이런 횡포하고 사악한 기운이야말로 그가 바라는 기운이었다.

“빨리 피해!”

“저 검은 기운에 휘말리지 않게 최대한 멀리 떨어져!”

“막내 공자가 저런 힘을 감추고 있었다니. 지금 내가 잘못 본 거 아닌가?”

양소 관저의 무인들은 너도나도 떠들어 대며 공포감에 휩싸인 채 검은 기운에 잠식될까 두려워 이리저리 몸을 피할 뿐이었다.

검은 교룡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천지가 진동할 것 같은 거대한 힘의 파동이 폭발했다. 이윽고 쩍 벌린 놈의 커다란 주둥이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나 회전하자 엄청난 흡입력이 생기며 양소와 그 곁의 혈시를 끌어당겼다.

양소는 힘의 파동에 반항할 기운이 거의 없었다. 혈시가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 교룡의 입에 빨려 들어가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는 처음으로 자신과 양준의 실력 차이가 이처럼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의 하늘과 땅 차이라 한평생 노력해도 양준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러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양소는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갈등, 반항 나아가 계승 싸움도, 양씨 가문 가주 자리도 모두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

혈시가 양소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양소는 감전된 듯이 흠칫 하더니 곧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저 기운에 영향을 받으시면 안 됩니다.”

혈시가 조용히 귀띔해 주었다.

양소는 순간 식은땀을 쏟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래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방금 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양준의 괴이한 기운에 심신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혈시의 귀띔으로 정신을 차린 양소는 정신을 가다듬고 더는 양준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선!”

양준도 마찬가지로 소리쳐 불렀다.

하늘에서 양소를 따르는 다른 혈시와 한창 싸우던 당우선은 상대방에게 방그레 웃어 보였다. 순수하고 강한 신식의 힘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와 순식간에 양소 쪽으로 날아갔다.

“신유 경지 9단계인 거야?”

당우선과 맞서 싸우던 혈시는 눈이 번쩍 뜨이며 놀라서 소리쳤다.

“에이, 벌써 눈치챘어? 한참 더 숨기려고 했는데.”

당우선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럴 수가…….”

상대 혈시는 놀란 눈으로 당우선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어떻게 이리 빨리 신유 경지 9단계가 된 거지?”

혈시들은 친형제처럼 사이가 끈끈해 서로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당우선이 어느 정도 수준이고, 언제쯤 신유 경지 9단계에 오를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순간 폭발하는 신식의 힘에서, 그는 당우선이 이미 진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좀 말해 봐. 어떻게 된 거야?”

상대방이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원래 그의 자질과 수준은 당우선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인인 당우선이 그보다 먼저 진급하자, 그는 기쁘면서도 초조했다.

혈시당의 형제가 진급해서 기쁘지만, 한편 자신이 당우선보다 뒤처지자 조급해졌다.

“안 가르쳐 줄 거야.”

당우선이 얄밉게 웃었다.

상대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막내 공자 곁에 있더니 젊어진 것 같구나. 전에는 이렇게 장난이 심하지 않았는데.”

당우선은 얼굴빛이 흐려지며 차갑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원래는 내가 엄청 노티가 났다는 거야?”

상대는 아차 싶었다. 문득 자신이 당우선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연신 손사래를 쳤다.

“그런 뜻이 아니야.”

“원래는 좀 봐주려고 했더니. 이젠 제대로 혼내 줄 거야.”

당우선은 성난 얼굴로 더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고 공격했다. 한 단계 차이밖에 안 되지만, 당우선은 상대보다 실력이 훨씬 강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와 싸우는 중에도 당우선은 끊임없이 신혼기를 방출해 양준을 도와주었다.

당우선의 도움으로 양준은 점점 더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막내 공자!”

양소를 지키던 혈시가 나지막하게 외치면서, 순간 양소를 밀어 내고 몸속의 진원을 돌렸다. 녹색 빛이 그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와 거대한 빛줄기를 형성하더니 양준에게 사납게 덮쳐 갔다.

콰앙!

이때, 양준이 손으로 검은 기운을 내뿜었다. 빛줄기는 양준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검은 기운에 막혀 공중에서 흩어졌다.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양씨 가문의 혈시가 마음먹고 날린 일격이었다. 그런데도 양준의 일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현재의 양준이 도대체 얼마나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반면 양준은 온몸의 기혈이 왕성했지만 미간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혈시와의 한 차례 정면 대결에서 그는 자신이 아직 혈시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씨 가문 혈시의 명성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양준은 입마 상태에서 당우선이 신혼기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혈시를 이길 수 없었다. 만약 혈시가 양소를 지켜야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가 질 수도 있었다.

일 대 일로 싸우면 그는 혈시의 상대가 못 되었다.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는 가운데, 양준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검은색 교룡과 모든 사악한 기운이 되돌아와 그를 겹겹이 감쌌다. 양준이 손목을 뒤집자 반짝반짝 빛이 나는 단검이 그의 손바닥 위에 나타났다.

바로 천급 상품의 신혼 비보였다.

단검을 흡수한 뒤 양준은 아직 완벽하게 다루지 못했다. 하지만 향초와 남생을 죽이기 위해서는 단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을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비보를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양준은 멀리 양소의 등 뒤, 인파 속에서 악의와 원한을 가득 품은 얼굴로 기웃거리는 향초와 남생을 바라보았다.

“분명 말했다. 오늘 누구도 너희들을 지킬 수 없어. 너희 둘은 틀림없이 죽게 될 거야.”

양준은 제자리에 서서 나지막하게 외쳤다. 그의 눈에서는 서슬 퍼런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