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09화 (509/853)

제 509장. 경지 돌파

향초와 남생은 온몸을 흠칫 떨었다. 그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치며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 했다. 안타깝게도 향씨, 남씨 가문의 고수들은 모두 양준에게 죽고 없었다. 그리고 남은 신유 경지 정상 고수 두 명은 영구와 접전을 치르느라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려도 그들을 지켜줄 고수는 없었다. 둘은 양준의 차가운 시선과 낮은 외침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양준의 행동은 그들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양준이 양소의 관저까지 뒤쫓아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또한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며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고 두 사람을 죽이지 못하면 결코 그만두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일 거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일등 세가의 후계자다. 우리를 죽이려 들다니, 반드시 후회할 거다.”

남생이 당황한 가운데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냉혹하게 말했다.

“일등 세가의 후계자든 뭐든 상관없어.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내 사람이 다친 거였으면 나도 이러지 않았어. 그런데 너희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치졸한 수를 썼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지.”

말을 마치고 그는 눈을 감았다.

챙-

누군가 단검을 가볍게 튕긴 것처럼, 양준의 손에 든 단검에서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괴이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막아라!”

양소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급히 소리치며 자신의 현급 비보를 꺼냈다. 이는 금빛이 번쩍이는 고리 모양의 비보로 파경호 비보 쟁탈전에서 얻은 것이었다.

양소는 비보에 미친 듯이 진원을 주입하고서 손 가는 대로 내던졌다. 고리는 튀어나가는 과정에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으로… 끊임없이 나뉘었다. 눈 깜짝할 사이 천지를 뒤덮을 듯한 금빛 찬란한 고리들이 양준에게 덮쳐 갔다.

교룡이 포효하며 꿈틀거리더니 자신의 거대한 몸통으로 양준을 빈틈없이 꼭꼭 감싸서 지켜 주었다.

“패혈광술!”

당우선도 어느 샌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여린 몸으로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으며 홀로 양준의 앞을 막아 섰다.

양소를 따르는 두 혈시도 달려들었다. 그들은 당우선을 사납게 공격했다.

상황은 대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양준은 마음이 평온했다. 시끌벅적한 소리, 싸우는 소리, 기운이 폭발하는 소리 모두가 바람에 실려 가고 홀로 고요한 호수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곧이어 영혼의 떨림이 느껴지더니, 무슨 영문인지 그 순간 그의 신식과 단검 모양의 신혼 비보가 하나로 어우러졌다. 양준은 마치 자신의 몸이 단검에 녹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슈욱-

단검은 아름다운 빛으로 변하더니 눈으로 볼 수 없고, 신식으로도 감지할 수 없는 속도로 양준의 손에서 튀어나갔다.

단검에 의식을 담은 양준은 신유 경지 8단계 혈시 두 명과 힘겹게 맞서는 당우선이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전혀 물러서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지키고 있는 교룡이 양소의 현급 비보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검은 연기가 소용돌이치는 것도 보였다.

구경하고 있는 무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모두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심지어 추억몽의 눈동자에 거꾸로 비친 자신의 그림자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맺혀 있는 걱정도 보았다.

백 장 밖 찻집의 창가에 앉아 있는 무거운 표정의 양위와 류경요도 보였다.

이 순간,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만 같았다. 양준은 전보다 두뇌가 천만 배는 더 명석해진 것 같았고, 의념이 닿는 것은 모든 것이 뇌리에 새겨졌다. 신기하고 현묘한 느낌이 저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 이는 여태껏 가져 본 적이 없는 느낌으로, 전에 없던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콰앙-

머릿속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는 금세 온몸이 가벼워지며 더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단검 모양 신혼 비보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전성을 뒤덮은 먹구름이 순간 모여들면서 분위기가 방금 전보다 더 무겁고 답답해졌다.

양준은 무아지경에 빠져든 채, 남생을 목표물로 삼았다.

남생은 뭔가 눈치챈 듯 공포에 휩싸여 불안해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요.”

그는 양소에게 도움을 청했다. 양소는 그 말을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실력이 뛰어난 양준을 상대하기 위해, 그는 이미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겨우 검은 교룡의 방어를 조금 뚫을 수 있는 정도였다. 양준의 옷자락에도 닿지 못하는데 무슨 여력으로 남생을 도와주겠는가? 설령 여력이 있다고 해도, 그는 미처 반응할 시간이 없었다.

다음 순간, 남생은 무형의 커다란 손에 목이 졸린 듯이 고함소리를 멈췄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향초는 경악스러운 눈초리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남생은 눈에 생기를 잃더니 생명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슈욱-

남생의 머리에서 아름다운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양준의 손으로 되돌아가 단검 모양으로 바뀌었다.

남생은 뒤로 벌렁 넘어졌다. 휘둥그레 뜬 두 눈으로 보아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모두들 얼굴빛이 변했다.

실력이 높은 신유 경지 고수 외에 누구도 단검이 언제 남생을 공격했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현묘함을 눈치챈 고수들도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양준이 이 신혼 비보로 자신을 공격했다면 막아 낼 수 있었을 거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신혼 비보는 일반 비보와 달랐다. 신식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신혼과 식해에만 손상이 갈 뿐이었다. 그것이 발휘할 수 위력은 무인이 가진 신식의 강약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 물론 신식이 강할수록 효과도 대단했다.

단검은 천급 상품으로 등급이 낮지는 않지만, 강한 신식이 없으면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없었다.

당우선과 접전을 벌이던 두 혈시는 양준의 일격을 보고서 더는 망설이지 않고 얼른 물러서서 양소의 곁을 지켰다. 그들은 양준이 살기가 짙은 나머지, 그 비보로 양소를 공격할까 두려웠다. 그렇다면 일이 너무 커질 수 있었다.

당우선은 뒤쫓지 않고 살짝 숨을 고르면서 양준의 앞을 막아 섰다.

검은 교룡은 용틀임을 하고서 10여 장에 달하는 몸통을 곧추 세우고 있었다. 거대한 삼각 머리의 가늘고 긴 눈으로 인파 속의 향초를 노려보며 차가운 빛을 번뜩였다.

남생이 순식간에 죽자, 향초는 놀라서 혼비백산했다. 그제야 설령 양소가 보호해 준다고 해도, 양준은 그를 죽일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공포에 휩싸인 그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죽음이 자신을 덮칠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고수를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모든 이가 두려운 표정으로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중에서 많은 이들은 일찍이 향초, 남생과 호형호제하며 함께 음주가무를 하고 미래를 꿈꿨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마치 뱀이나 전갈을 피하듯이 향초를 피했다. 향초 때문에 양준이 자신들을 겨냥해 괜한 죽음을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향초는 한순간에 실망, 분노, 증오 등 여러 감정을 느꼈다. 그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자신을 멀리 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연신 냉소를 흘렸다.

양준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단검을 꽉 쥔 채 미간을 찌푸렸다. 온몸의 진원이 불안정해지더니 기운이 들끓었다.

우르릉 꽝-

하늘에서 묵직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 북소리처럼 사람들의 귀청을 때렸고, 그에 따라 심장 박동이 거세졌다.

비바람이 일고 구름이 몰려들면서 전성을 뒤덮은 먹구름이 점점 더 짙어지고 두꺼워졌다. 이윽고 전성은 빛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암흑의 나락으로 빠졌다. 지척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구경하던 무인들은 모두 수군거리며 하늘의 짙은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저도 모르게 초조함, 두려움, 불안감이 생겨났다.

*어디선가 뒷짐을 진 채 사태를 지켜보기만 하던 몽무애는 문득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제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는 양준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부님, 사부님!”

하응상이 숨을 헐떡이며 어느 틈에 관저에서 뛰쳐나왔다.

몽무애는 그녀를 힐끗 보고서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고 주의를 주었다.

하응상은 목을 움츠리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사제가 어떻게 된 거죠?”

“모르겠다. 주화입마에 빠진 것 같으면서도 정신은 멀쩡한 듯하구나. 이 고얀 놈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길까 봐 마음이 안 놓이네.”

몽무애가 우울한 낯빛을 하고서 말했다. 그는 전성에 와서부터 양준을 위해 뒷수습을 적지 않게 하고 있었다. 양준에게는 계승 싸움에 끼어들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양준이 위험에 부딪치면 어쩔 수 없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럼 괜찮은 건가요?”

하응상은 눈동자에 걱정을 가득 담고서 초조해하며 물었다.

“멀쩡하다. 멀쩡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지에 오를 것 같은 조짐도 보이는구나.”

몽무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저 상태로 경지를 돌파한다고요?!”

하응상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는 얼른 입을 막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짙은 먹구름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 내재된 파괴력을 감지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한편 문득 깨달았다.

“그럼 저건 사제가 새로운 경지에 오르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마도.”

몽무애도 이 현상을 보고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어떤 무인도 신유 경지를 돌파하면서 이렇게 큰 자연 변화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구름 속에 내재된 천지 간의 거대한 기운은 신유 경지 무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령 몽무애 자신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