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13화 (513/853)

제 513장. 다들 비켜라

“그런데 몸속에 어찌 저런 방대한 사기를 담아 두고 있는 거지?”

장로 중 한 사람이 눈썹을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진원 경지 9단계 무인은 이렇게 많은 진원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단전과 경맥은 밑 빠진 항아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양준은 기운으로만 따지면 신유 경지 정상에 비견될 정도였고, 게다가 아직도 밖으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사공을 수련한 모양이야. 양 장로, 어서 정하시게. 가만히 놔두면 전성에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사마의 길로 빠질 것이야! 저 아이 하나 때문에 성 전체가 도탄에 빠지게 할 수는 없어! 저 아이가 양씨 가문의 핏줄이라도 말이네.”

검붉은 얼굴빛의 태상장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고 있네.”

양립정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결정을 내린 듯했다.

“어르신 어떻게 하실 건가요?”

추억몽이 서둘러 한 걸음 다가서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불안감과 걱정이 점차 더 커졌다.

추도인은 눈썹을 찡그리더니 천천히 한쪽 손을 내밀었다. 추억몽은 무형의 힘에 묶여 추도인의 옆에 끌려갔다.

“태상장로님……!”

추억몽은 얼굴빛이 변했다.

“양씨 가문의 일이니 너는 끼어들지 말거라!”

추도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는 한편, 추억몽의 몸속에 기운을 주입했다. 추억몽은 제자리에 굳어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당황스러움과 초조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너도 가만히 있어!”

곽씨 가문의 뚱뚱한 태상장로도 곽성진이 입을 열려는 것을 보고, 똑같은 방법으로 그를 본인 곁에 붙들어 두었다.

곽성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희번덕거렸다.

양준 관저의 8대 가문 출신 공자와 낭자가 순식간에 발언권을 잃게 되자, 나머지 일행은 곧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태상장로들은 양준에게 무슨 조치를 취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질질 끌지 말고, 얼른 시작하게나.”

누군가 언짢은 표정으로 양립정을 다그쳤다. 그들은 봉신전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스스로의 수련에만 매진하며, 살아 있는 동안 더 높은 경지를 탐지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오늘 양준 때문에 이곳에 출동하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처럼 양준의 처지를 동정하고 그의 자질을 아까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양립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준의 주위에 둘러선 젊은 세대 통솔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비켜라.”

중요한 순간에 동경한이 앞에 나섰다. 퉁퉁한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서려 있었지만, 꿋꿋이 양준의 앞을 막아서서 정중하게 공수하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양준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 저희에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호씨 자매도 앞으로 한 걸음 나와 동경한의 옆에 서서 엄숙하게 양립정을 바라보았다.

만화궁의 네 소녀, 자미곡의 낙소만, 문심궁의 좌방, 비우각의 저경산, 단목 가문의 신유 경지 무인들까지 모든 이가 앞으로 나와 일렬로 섰다.

태상장로들은 아연실색했다.

‘인맥이 보통이 아니군. 이런 상황에서도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만약 추억몽과 곽성진이 봉인되지 않았다면 그들도 이중의 일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마 선두에 섰을 것이다.

양립정도 화내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인내심을 가지고 한마디 했다.

“우리는 양준이 경지를 돌파하는 것을 막을 생각이다.”

사람들은 얼굴빛이 급변했다. 동경한이 놀라서 물었다.

“이유가 뭡니까?”

양준은 여기서 방해받으면 몸이 완전히 망가져 일반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무도의 정상에서 일반인으로 추락하는 충격을 버텨 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양립정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양준은 이미 주화입마에 빠졌다. 신유 경지에 오르면 저 자와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어.”

그러고는 지마를 가리키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우리 8대 가문은 사마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가문에서 저런 자가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단 말이다.”

“그건 어르신의 추측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동경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양립정은 불쾌한 표정으로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오랜 경험을 기반으로 내린 판단이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8대 가문에서 사공을 익힌 자가 나온 건 처음이 아니었다. 사공을 수련한 자는 실력이 향상됨에 따라 심성도 바뀌고, 실력이 강해질수록 더욱 사악해졌다. 때문에 이런 인물이 나타나면 8대 가문은 그자가 성장하기 전에 죽이거나 폐인으로 만들어 미리 위험을 제거했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동경한은 화가 났다.

고작 이런 연유로 8대 가문에서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양준에게 악랄한 수단을 쓰려 한단 말인가? 그는 그 이유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 너와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도 아닐뿐더러, 넌 그럴 자격이 없다.”

양립정은 인내심이 바닥났다. 방금 전에 한마디 설명한 것은 양준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고서 자신이 하려는 일을 저지하려 들자, 그는 화가 치밀었다.

“저는 준이가 사마의 길로 빠지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동경한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도 믿습니다.”

호씨 자매가 동시에 외쳤다.

“저희도요!”

다 같이 입을 모아 말하자, 모든 이들이 놀랐다.

양소는 한순간 넋을 놓았다. 그의 휘하에 모인 세력들은 양준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 그러나 만약 그가 지금 양준의 처지에 놓인다면, 그의 휘하 세력들은 동경한이나 호씨 자매들처럼 단호하게 그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지지 세력은 오직 미래의 이익을 위한 관계일 뿐이었다.

이 점을 인지하자, 양소는 씁쓸해졌다. 그는 검은 기운에 싸여 의식이 없는 양준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도 어려울 때 지지해 주는 친구를 원했다.

양위가 눈썹을 찡그리더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태상장로님! 방금까지 막내가 사마의 기운에 휩싸여 있었지만, 정신이 멀쩡했을 뿐만 아니라 이성을 잃은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물러나라!”

양립정이 차갑게 소리쳤다.

“네.”

양위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만약 어르신께서 양준을 방해하려면 저희를 먼저 넘으셔야 할 겁니다.”

동경한은 심호흡을 하고서 얼굴빛도 차분해졌다. 절대 물러서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봉인된 추억몽은 눈물을 머금고서 흐뭇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곽성진도 흥분한 표정으로 피가 끓어올랐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눈앞의 상황에 알맞은 말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처럼 무모해 보이는 저항이 그의 마음에 꼭 들었다. 그는 직접 그쪽에 함께 서서 참여하고 싶었다. 죽을 길인 줄 알면서도 용감하게 맞서고 싶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고생을 사서 하려는 미친 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겨우 너희가?”

양립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신유 경지 이상이었다. 상대편은 인원수가 적지 않지만 그를 저지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들로 부족하다면 저희도 참여하겠습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일곱 그림자가 빠르게 달려왔다.

슈욱- 슈욱- 슈욱-

일곱 명은 횡포한 기운을 지닌 채 일렬로 동경한 일행의 앞을 막아 섰다.

동경한은 눈앞이 밝아지며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일곱 명은 양준 관저에 있던 계승 싸움에 참여할 수 없는 혈시들이었다. 도봉을 선두로, 곡고의, 소순, 나해, 엄령행, 오구, 부총까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왔다.

혈시 일곱 명이 나타나자, 동경한 일행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들만으로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에게 맞서기가 두려웠는데, 혈시들까지 더해지자 괜히 믿음직하고 버팀목이 생긴 것만 같았다.

당우선도 가볍게 도봉의 곁으로 날아갔다. 영구가 종적을 감춘 것 외에, 나머지 여덟 명은 모두 이곳에 모였다. 그들은 태상장로들을 마주하고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팔 대 팔!

수적으로는 같지만,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혈시들의 상대는 8대 가문의 신유 경지 이상 태상장로들이었다. 혈시 중에서 네 명만 신유 경지 9단계였고, 나머지 네 명은 신유 8단계로 실력이 확연히 차이 났다.

“패혈광술!”

혈시들은 도착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금기 초식을 펼쳤다. 세찬 기혈 파동이 전해지며 모두 얼굴이 벌게지더니, 힘이 빠르게 향상되었다.

양소 관저의 무인들과 구경하던 무인들은 모두 넋이 나가고 말았다. 혈시 여덟 명이 동시에 패혈광술을 펼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혈시는 원래 강자의 대명사였다. 같은 등급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웠으며 남과 싸울 때, 특수한 상황에서만 금기 초식인 패혈광술을 시전했다. 혈시 한 명이 패혈광술을 시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가 될 수 있는데, 지금은 여덟 명이 동시에 패혈광술을 시전하고 있었다. 한데 모인 기세와 힘의 충격에 전성의 영기가 어지러워졌다.

태상장로들도 혈시들이 이 정도로 나설 줄은 몰랐는지 살짝 놀란 듯했다.

“무엄하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것이냐?”

양립정이 고함을 질렀다.

도봉은 기혈이 왕성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우렁차게 말했다.

“장로전에서 저희에게 양준 공자를 따르라고 명을 내렸으니, 저희는 양준 공자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공자를 지켜야 하고요.”

“저놈의 안위가 가문의 명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양립정은 음침한 얼굴빛으로 앞쪽을 바라보았다.

혈시 여덟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우선이 대답했다.

“태상장로님, 저희는 장로전의 명에 따라 지금은 양준 공자에게만 충성하고 있습니다. 공자의 안위가 물론 가문의 명예보다 더 중요합니다. 만약 공자께 변고라도 생기면 저희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태상장로님께 무례를 저지르더라도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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