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4장. 저도 합세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가문에 반기를 들겠다는 것이냐?”
양립정은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 근육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신분, 지위, 실력 때문에 여태껏 아무도 감히 그를 거역하지 못했다. 양씨 가문의 혈시는 양씨 가문의 간판으로서 충성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뜻밖에 오늘 양씨 가문의 수족으로 불리는 혈시들이 모든 것을 걸고 그에게 맞서려 하고 있었다.
더욱이 많은 이들의 앞이라, 양립정은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된 충성심이로다!”
앞서 양립정을 다그치던 태상장로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혈시들의 우직한 행보에 멸시를 드러냈다. 그가 볼 때 양씨 가문의 혈시들은 강하고 충성스러우나 어떤 경우, 이를테면 눈앞의 경우에는 너무나 멍청하고 꽉 막혀 있었다.
“양준 공자를 난처하게 하는 명령이라면 거부하겠습니다.”
도봉은 눈앞의 여덟 명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너희까지 합세한다고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양립정이 노하여 외쳤다. 보아하니 오늘 이곳에서 양준을 처리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저도 합세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스라하고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가 먼 곳에서부터 점차 가까워졌다.
그 목소리에 태상장로들은 얼굴빛이 싸늘해지더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지켜보았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신선처럼 유유자적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표정은 여유 있고 소탈해 보였다.
그는 걸음이 빠르지 않았지만 두세 걸음 만에 사람들의 앞에 나타났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하늘에서 멈춘 위치는 태상장로들보다 한참 높았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의연한 표정으로 눈앞의 태상장로들을 굽어보았다.
태상장로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눈에 힘을 주고 몽무애를 지켜보더니 미간이 점점 더 구겨졌다.
눈앞의 사람은 신유 경지 정상밖에 안 되지만 어쩐지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다가오면서 내디딘 몇 걸음은 제멋대로 밟은 것 같지만, 실은 물아일체 경지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현묘한 느낌은 8대 가문의 신유 경지 이상도 내막을 꿰뚫을 수 없었다.
‘신유 경지 정상의 무인이 어떻게 무도에 저렇게 깊은 깨달음을 얻은 거지?’
사람들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몽무애가 전성에 온 지도 한참 되었기에 태상장로들은 몽무애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경지를 아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신유 경지 정상 무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만나 보니, 어딘가 남달랐다.
양립정마저도 몽무애를 마주하자 마음속으로부터 위기감과 압박감이 느껴졌다. 만약 일 대 일로 싸우면 자신이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저도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8대 가문의 태상장로들조차 저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다.
몽무애가 나타났을 때, 그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여덟 명의 강한 신식이 전성 전체에 침투되어 있기에 그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사람은 마치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기운이 전혀 밖으로 새지 않아, 그가 만약 먼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절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조차도 감지하지 못한 이의 경지는 따로 짐작할 필요가 없었다. 신유 경지 이상이었다. 오직 신유 경지 이상만이 기운을 이처럼 감출 수 있었다.
‘전성에서 저런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우리의 신식을 피해 숨어 지낼 수 있었지? 만약 이 자가 전성의 젊은 세대 통솔자들에게 나쁜 마음이라도 먹고 있었다면, 결과는…….’
태상장로들은 순식간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도 그는 악의가 없어 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흰 머리에 흰 수염의 비범한 풍격을 지닌 노인이 다른 한쪽에서 발길 닿는 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방금 전 몽무애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았다. 태상장로들이 의문스러운 것은 노인의 걸음에 내재된 현묘함이 앞서 나타난 몽무애의 것과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노인은 몇십 장 밖에 서서 미소를 띤 채 몽무애를 바라보았다. 몽무애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전성에 있는 줄은 진작에 알고 있었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군.”
노인은 겸연쩍게 웃었다.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네. 고생이 많았구먼.”
“알고 있네.”
몽무애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난 십몇 년간 나와 무도에 대해 탐구해 준 것에 감사하네. 경지가 오르니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네.”
“우리 사이에 인사는 무슨!”
몽무애가 담담하게 웃었다.
두 노인이 천하의 고수들을 무시하고 이곳에서 감격적인 해후를 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자, 8대 가문의 태상장로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우리를 너무 안중에 두지 않는 거 아니야!’
화가 치밀었지만, 두 사람의 짧은 대화에서 그들은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아챘다. 두 노인은 지인으로 보였고, 나중에 나타난 신유 경지 이상의 무인이 앞서 나타난 이에게 예의를 차리는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경지는 먼저 나타난 사람이 더 낮은 거 아닌가? 그의 자격과 재주로 어떻게 신유 경지 이상과 무도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감사를 표할 정도로?’
게다가 먼저 나타난 사람은 매우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두 분의 존함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추도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두 노인이 악의가 없고 양준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는 하나, 이처럼 강한 고수에 대해서 그들도 신분과 정체를 알고 싶었다.
몽무애가 미소를 지으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능소각 공헌당의 당주 몽무애요.”
몽무애의 자기소개를 듣자, 그의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문득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일개 당주가 저런 기세를 내뿜다니… 능소각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숨어 있는 거야?”
“그럼 저분은…….”
추도인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 다른 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 노인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능소각의 장문인 능태허라고 합니다.”
8대 가문의 태상장로들은 얼굴빛이 급변했다.
능소각의 장문인 능태허!
유일하게 이등 문파 출신으로 신유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역사 기록에서 유일무이한 명예였다. 전에는 이등 세력에서 신유 경지 이상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없었다. 여씨 가문의 여사도 가문이 일등 세가로 진급한 다음에야 신유 경지 이상을 돌파했다. 게다가 그는 추씨 가문 고수의 가르침과 발탁 덕분에 지금과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능태허 이름 석 자가 곧 전설이었고, 그것도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제자도 한 명 있었다. 그 제자가 바로 현재 창운사지의 사주였다. 사방 천만 리를 지배하고 휘하에 6대 사왕과 수많은 교활하고 사악한 사마들을 거느리고 있는 자였다.
사주가 노하면 세상이 놀라고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능태허 이름 석 자에 태상장로들은 긴장감이 들었다. 특히 추도인은 당시 추씨 가문에서 앞장서서 사람을 이끌고 능소각으로 쳐들어가 불을 질렀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어찌 보면 서로 간에 원한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능소각의 장문인이 이곳에 서 있었다. 정말 싸우게 된다면, 전성은 아마 끝장날 것이다.
다만 태상장로들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 있었다. 능태허는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른 지 분명 얼마 안 되었다. 그런데 그들보다 무도에서 더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능태허의 존재를 여태껏 감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른 지 적어도 50년은 넘었다. 50년 동안 실력이 조금 향상되었지만, 능태허와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저 자는 어떻게 한 거지?’
“존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추도인은 표정을 바로잡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따지고 보면 여러분께서 저보다 선배이신데, 이리 존대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능태허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트집을 잡으려는 뜻이 없이 오히려 겸손하기 그지없었다.
능태허가 겸손하게 나오자, 8대 가문의 태상장로들은 얼굴빛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웃으며 말했다.
“지나친 겸사이십니다. 신유 경지 이상으로는 항렬을 따지지 않습니다. 저희 장로들 사이에서도 족보가 엉망입니다.”
“맞습니다.”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서로 인사치레를 하고 나니 긴장한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이 자리에 나타나신 겁니까?”
양립정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굳이 꼬집어 물었다.
“당연히 양준을 위해서죠. 제가 녀석의 스승이니 말입니다. 제자가 신유 경지를 돌파하려는 중요한 순간에 보호해 줘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능태허가 빙그레 웃으면서 양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양준을 보호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능태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양립정은 난감해졌다.
신유 경지 이상의 능태허, 기괴한 기운의 몽무애, 사마의 기운이 감도는 지마, 패혈광술을 시전한 혈시 여덟 명……. 이 모든 이들이 모여서 이룬 힘을 그는 감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신유 경지 9단계의 혈시가 패혈광술을 시전하면 신유 경지 이상과도 한두 초식을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실력으로, 혈시 여덟 명도 만만치 않았다.
능태허의 실력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양립정은 그와 일 대 일로 싸우면 자신이 질 것 같았다. 몽무애는 더욱 신비해서 그의 전투력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마가 한쪽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싸우면 손해다.’
만약 싸우게 된다면 설령 이긴다 해도 전성 전체가 도탄에 빠질 수 있었다.
양립정의 예리하기만 하던 눈동자가 드디어 가볍게 떨리더니 끝없는 어둠을 뚫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양준이 도대체 무슨 재주가 있어, 이렇게 많은 고수들이 그를 위해 사정하고, 나서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