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16화 (516/853)

제 516장. 신유 경지

양준의 의식은 마치 깊은 곳에 잠겨 있는 것처럼 흐리멍덩했다. 주위는 사마의 기운과 먹구름이 뒤덮인 전성처럼 온통 어둠뿐이었다. 심지어 빛이라고는 볼 수 없어 전성보다도 더 어두웠다.

천지가 열리기 전처럼 어둠 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기이한 변화들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흙 속의 씨앗이 바야흐로 싹트고 자라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어떤 힘이 은연 중에 모여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문득 빛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반딧불처럼 미약하고 비바람 속의 촛불처럼 반짝하고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한순간 번쩍인 빛이 모든 어둠을 몰아냈다.

양준의 정신이 한 곳으로 모였다. 희미한 가운데 뭔가가 그의 신혼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그곳을 바라보니 윤곽을 어렴풋하게 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빛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색상이 달랐다.

이내 또다시 빛이 사라지자, 양준의 신혼은 더 이상 평온하지 않았다. 빛이 나타나고 사라짐에 따라 현묘한 파동이 일었다.

세 번째 빛이 나타나고 뒤이어 네 번째 빛, 다섯 번째 빛이 나타났다.

오색 빛이 모두 나타난 다음, 이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현묘하고 미약한 빛들은 마치 비 온 뒤의 여린 새싹이 흙을 뚫고 나오듯이 혼돈에 빠진 어둠을 찢으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색의 빛이 튀어나오는 빈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강해졌고, 이에 따라 양준의 신혼 파동도 점차 강해졌다. 혼돈의 암흑 공간은 더 이상 버텨 내지 못했다.

그때, 별안간 오색 빛이 동시에 밝아 오자, 오색 연꽃이 부드러운 빛을 발하며 눈앞에 떠오르더니 빙글빙글 회전했다.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색 온신련이었다!

신식을 키우던 지존의 비보가 드디어 활짝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온신련은 회전하면서 실 같은 기운을 뿜어내었고, 그 기운은 놀라운 속도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곧이어 암흑 공간을 모두 채웠다. 혼돈하고 덧없던 공간은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양준은 실 같은 기운이 바로 자신의 신식임을 알아차렸다.

진원 경지를 돌파할 때, 그는 이미 신식을 수련했다. 그러나 신식은 그림자도 형체도 없어, 진원과 마찬가지로 저장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진원은 단전과 경맥에 저장되고, 신식은 식해에 저장된다.

양준은 식해가 생기지 않아, 오색 온신련이 임시 저장소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 양준은 드디어 오랫동안 수련해 온 신식으로 자신의 식해를 열려 하고 있었다.

미묘하면서도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신식이 끊임없이 발산되었다. 신혼사선이 방출됨에 따라 양준은 마치 일부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 같았다. 신식도 몇 배의 속도로 향상되었다.

온신련이 보기 드문 비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신식을 담는 임시 저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양준은 온신련을 통해 신식을 펼칠 수 있었지만, 모든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이제 온신련이 임시 저장소의 임무를 마치게 되면서 신식이 전체적으로 향상될 수 있었다.

강렬한 신혼 파동이 그의 머릿속에서 전해지자 순식간에 전성을 뒤덮었다.

양준의 주위에 모여 있던 고수들은 모두 얼굴빛이 변했다. 강한 신식의 힘에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8대 세가의 태상장로들은 얼굴빛이 무거워졌다. 반면 몽무애와 능태허는 놀라면서도 대견스러워하며 흥분한 표정이었다.

양준이 일으킨 신식의 파동은 그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어 같은 등급의 무인들을 멀리 제쳐 버렸다.

양준의 머릿속, 오색 온신련은 여전히 회전하면서 쉴 새 없이 실 같은 신식을 방출했다. 계속해서 시간은 흘러갔고, 마침내 온신련에 저장되어 있던 신식이 모두 방출되었다.

혼돈에 빠졌던 암흑 공간은 부드러운 빛을 뿜는 신혼사선으로 가득 차 늪지대처럼 끈적하고 농밀했다.

양준은 신혼사선이 신비한 힘의 작용에 의해 기이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신혼사선들은 빛을 번쩍이며 서로 끌어당겨 한데 모이면서 더 강해졌고, 다시 끌어당기고 모여 점점 더 강해졌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이 과정을 반복했다.

양준은 문득 지난번 당우선의 식해에서 그녀가 식해를 여는 과정을 보여주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 자신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당우선은 식해를 착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힘들고 느리게 열었다. 그러나 그의 식해는 지금 동시다발적으로 빠르고 무섭게 생성되고 있었다.

혼돈의 공간 구석구석에서 신식이 모이며 빠르게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로 이어졌다.

졸졸졸-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집중해 바라보니 사방팔방에 맑은 물줄기가 보이고 그것들이 한가운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온신련이 있는 곳이었다.

물줄기는 시냇물로, 눈 깜짝할 사이 다시 강으로, 곧이어 호수로… 그리고 바다가 되었다. 바람이 일자, 파도가 석 자 높이로 휘몰아쳤다. 바닷물 속에는 양준의 강한 신식이 내재돼 있었다.

조용히 바다 위에 떠 있는 온신련은 부드러운 오색 빛을 뿌리며 바다를 비추었다. 바닷물은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맑았다. 양준이 의념을 발동하자 단조롭던 바다에는 순식간에 많은 암초가 나타났다. 파도가 암초에 부딪치면서 물보라로 흩어졌다. 바닷물 속에는 각양각색의 괴상한 모양의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하늘에는 새가 날아다녔다. 공간이 다채로워졌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마음이 상쾌했다.

양준의 신혼 영체(靈體)는 공중에서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저도 모르게 감정의 기복이 생겼다.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온신련은 바다 속 외로운 섬으로 변해 오색 빛을 뿜었다.

그는 이곳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그의 신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음 순간, 그는 마음속 깊은 곳의 무언가가 바다에 잠기는 느낌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자신의 머릿속의 기억들이었다.

식해 안에는 그의 일생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의 해왔던 일들, 인생 경험과 깨달음, 수련한 공법과 무공 그리고 겪었던 어려움까지, 대소사가 빠짐없이 모두 고스란히 이곳에 있었다. 아무렇게나 주변을 훑어보아도 자신이 과거의 겪었던 일들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다시 한번 겪는 것처럼 또렷하게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무인의 식해에는 개인의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무에게나 방어를 풀어서 식해를 염탐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맨몸으로 상대를 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선경라가 그때 양준에게 식해를 보여주었던 것도, 그녀가 양준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마침내 양준의 식해가 생성되었다.

순간, 양준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험한 무도의 길에서 또 한 걸음 크게 내디딘 것만 같았다.

*양준은 눈을 번쩍 떴다. 눈동자가 반짝반짝 날카로운 빛을 뿜었다.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표정이 엄숙해졌다.

양준은 첫눈에 부드러운 눈빛의 능태허와 몽무애가 자신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두 노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경지를 돌파하고 있었으나 그는 그들이 자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사부님은 역시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믿어 주시는 구나!’

양준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서 방출했던 신식 파동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다시 수련한 적이 없는 일반인처럼 평범하게 바뀌었다. 다만 온몸에서는 여전히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늘의 먹구름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무시무시한 천지 간의 기운이 끊임없이 양준의 몸에 쏟아지고 있었다. 식해가 생성되었으나 몸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냐? 사마냐?”

양립정이 나지막하게 소리쳐 물었다.

양준은 그를 담담하게 힐끗 보고는 직접 행동으로 답을 보여주었다.

그가 몸을 제어할 수 있게 되자, 금신의 흡수 능력이 전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

전성 전체에 갑자기 광풍이 휘몰아치더니 양준을 중심으로 거대한 흡입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방출된 사악한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하늘의 두꺼운 먹구름 속에 있던 천지 간의 기운도 비켜 가지 못했다.

사나운 회오리바람이 형성되고 양준은 고요한 중심에 서 있었다. 하늘의 먹구름은 소용돌이치다가 양준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불과 일 각 사이, 전성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졌고,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던 사악한 기운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형체 없는 기운의 파동이 양준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가며 세찬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양소의 관저 앞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무수히 많은 눈들이 양준을 뚫어지게 지켜보았고, 그들의 표정 또한 다채로웠다. 양준의 이번 경지 돌파가 가져온 충격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모두 마음속에 커다란 의문을 품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신유 경지를 돌파하면서 이런 기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건가? 방금 전에 신유 경지를 돌파하고 식해를 연 무인이 이처럼 강한 신식이 있다는 것이 가능한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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