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7장. 충격을 받다
언제나 쉽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중도 제일 공자 류경요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양준은 거대한 압박감을 주고 있어, 그와 맞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생겨났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양준의 옷자락을 스칠 자격도 없을 것만 같았다.
류경요는 씁쓸한 표정으로 곁에 서 있는 양위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공자, 당신 말이 맞았습니다. 양준은 확실히 저보다 강합니다. 정말 괴물이 따로 없군요!”
그는 말을 마치고 연신 고개를 저었다.
8대 세가의 태상장로들은 미간을 잔뜩 구기고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방금 전에 양준이 신유 경지를 돌파했다는 것을 몰랐다면, 그들은 그의 실력조차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양준의 강한 신식이 남이 탐지하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들은 왠지 섬뜩함을 느꼈다.
그들이 탐지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은 양준의 신식이 그들에 못지않으며, 적어도 대등하거나 심지어 조금 더 강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어떻게 이 정도로 강할 수 있지? 어떻게 수련한 걸까?’
그들은 모두 백 세를 넘긴 고령으로 오랜 세월 동안 신식을 수련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신식이 이제 막 신유 경지에 오른 젊은이와 비슷하다니, 태상장로들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이 사람인지 사마인지 이제는 아시겠습니까, 양 장로?”
능태허가 빙그레 웃으며 양립정에게 한마디 했다.
지금 양준의 기운은 평범했고 진원 파동이 흘러나오지 않았으며 사악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지도 않았다. 눈동자도 맑은 것이 아주 정상적이었다. 물론 비정상적인 힘을 제외하고 말이다.
만약 여전히 그에게 주화입마의 덤터기를 씌우려 한다면, 양립정은 그야말로 눈뜬 장님이었다.
양립정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성을 찾은 것도 그저 운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할 날이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을 것이다. 양준!”
말을 마치고 그는 빛이 되어 봉신전으로 날아갔다.
양립정은 이곳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양씨 가문의 태상장로로서 이번에는 왠지 악인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문의 명예 때문에, 그는 양씨 가문에 사마가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양준을 처리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많은 이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그가 아무리 심적 소양이 높다고 해도 평정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양립정이 떠나자, 다른 일곱 명의 장로들도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 모두 떠나갔다. 추도인은 떠나기 전에 미간을 찌푸리고 양준을 흘끔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더는 사공을 수련하지 말거라.”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도 양준에게 주의를 주었다.
“말 듣거라. 사공을 익히는 건 네게 도움이 못 돼. 너는 어느 무공을 익혀도 크게 될 게다. 사도와 같은 속성 수련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양준이 어린 나이에 실력이 강한 까닭은 사공을 수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이 아니지만 상대가 좋은 마음으로 일깨워 주는 것이라, 양준은 고개만 끄덕이고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그는 사공을 수련한 적이 없으며, 몸속의 사악한 기운은 금신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정도와 사도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길이 다를 뿐이었다. 힘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수련하는 것이고, 그 힘을 어디에 쓰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경지 돌파 축하한다.”
추억몽이 활짝 웃으며 다가와 인사했다.
다른 이들도 모두 몰려와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양준은 미소를 띤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경지 돌파 중이어서 의식이 또렷하지는 못했지만, 양준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양준의 감사 인사를 편하게 받았다.
양준의 시선은 사람들을 지나쳐 혈시 여덟 명에게로 향했다. 그는 혈시들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위풍당당하던 혈시들은 지금 모두 얼굴이 창백하고 기혈이 약했다. 패혈광술을 시전한 대가였다. 그들은 이처럼 큰 대가를 치르고도 결국 8대 세가의 태상장로들과 싸우지 못했다. 그러나 끝까지 양준을 보호하려는 그들의 강경한 태도는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이 강경하게 나서지 않았다면 양립정 일행도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혈시들은 무기력했지만 양준의 경지 돌파를 기뻐하며 미소 지었다.
끝으로 양준은 능태허와 몽무애에게 공손히 큰절을 올렸다.
“사부님, 몽 주인!”
“아무 일 없으니 되었다.”
능태허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몽 주인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놈의 자식! 앞으로 이런 귀찮은 일은 없어야 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양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몽무애에게 몇 번이나 도움을 받다 보니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양준은 다시 능태허를 바라보며 물었다.
“바로 가실 건 아니죠, 사부님?”
능태허가 전성 안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도, 도대체 언제 전성에 왔는지도 양준은 알 수 없었다. 몽무애만 조금 알고 있었던 듯했다. 오랫동안 전혀 소식이 없던 능태허를 만나게 되자, 그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능태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여기서 머무를 생각이다.”
“좋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소안이랑 나머지 제자들을 찾았습니다. 며칠만 있으면 전성에 도착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이곳에 계신 걸 알게 되니 마음이 놓입니다. 능소각의 제자들은 역시 사부님께서 가르쳐야 하니까요.”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듣기 좋은 말 늘어놓아 봐야 소용없다. 난 몽 씨와 같이 있으려고 남는 것이니 말이다.”
능태허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추억몽을 힐끔 보더니 한마디 했다.
“그러고 보니 저 아가씨의 기운이 낯설지 않군. 사람들을 이끌고 우리 문파에 불 지른 자가 아니더냐?”
추억몽은 난감해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 다급한 마음에 그녀는 낙소만을 끌어와서는 얼굴이 빨개진 채 말했다.
“얘도 같이 그랬어요.”
낙소만은 그만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당황해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능태허는 껄껄 웃으면서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그제야 추억몽은 능태허가 자신과 따지려는 생각이 전혀 없으며 그냥 무심코 말한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준은 허허 웃고는 고개를 돌려 멀지 않은 곳을 바라보더니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둘째 형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양소는 사색이 되어 얼이 나간 듯 목석같이 서 있었다. 양준 관저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다음에도 그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양위는 그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둘째가 참패를 당했군. 단시간 내에는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겠는데.’
양소는 남생과 향초를 지키지 못했다. 양준은 양소의 관저 앞,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두 사람을 죽였다. 이건 그나마 괜찮았다. 가장 두렵게 다가오는 것은 이번에 양준이 보여준 인격적 매력과 자질이었다.
양준이 위험에 빠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막아 주려 했다.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들과 맞서면서도 그들은 시종일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양소 관저의 무인들은 양소를 위해 그 정도까지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양위는 자신의 관저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양소뿐만 아니라 그도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그는 충격을 감내하는 능력이 괜찮은 편이어서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을 수 있었다.
‘이 계승 싸움… 계속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양위의 언제나 의연하던 표정이 순간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8~9개월을 거쳐, 지금까지의 형세를 보면 개인의 수단, 실력, 자질 그리고 인맥 등 모든 면에서 양준이 월등하게 앞섰다. 다른 형제들은 그와 비교할 자격조차 없었다.
처음에는 다른 형제들이 양준보다 앞서고, 강했으며 휘하의 무인들도 보다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준의 관저는 크게 성장했고, 그의 휘하 무인들은 남들이 대적할 수 없는 결속력을 가지게 되었다.
양씨 가문은 바로 이런 이가 가주가 되어야 했다. 지금 같은 환경과 실력으로 비교해 볼 때, 계승 싸움은 지속할 필요가 없었다.
양위는 탄식하고 나서 문득 실의에 빠졌다. 그는 류경요에게 작별인사를 하고서는 자신의 혈시를 데리고 급히 자리를 떴다.
“들어가시죠.”
당우선과 일 대 일로 싸우던 혈시가 양소를 위로했다.
양소는 창백한 얼굴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둘째 공자, 이번 계승 싸움에 저희는 더 이상 참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 젊은이가 부끄럽다는 듯이 양소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
남생과 향초는 양준 휘하의 사람 한 명을 때려 상처만 입혔을 뿐인데 끝내 죽임을 당했다. 이런 계승 싸움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양준과 맞서겠는가?
혈시 두 명은 얼굴빛이 차가워졌다. 그들은 화가 나서 꾸짖으려다가 결국 참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런 선택을 하는 것도 매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전력을 다해 싸워 오다가 마지막 고비에 물러나면, 아무 이득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명을 남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목숨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혈시들은 그들의 나약함을 멸시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실의에 빠진 양소를 두고 떠난다고 그들을 질책할 수는 없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 사람은 말을 마치자마자, 남아 있을 면목도 없는지라 자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황급히 떠나갔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여기까지만 함께하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또 누군가 다가와서 사죄하고 떠났다.
짧은 시간 동안, 양소 관저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족히 절반 정도가 떠나 버렸다. 어느 세력이나 떠나기 전에 모두 양소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양소는 듣지 못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갈 사람 더 있습니까? 있으면 빨리 가십시오!”
혈시 한 명이 노기를 가까스로 누르며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머뭇거리던 몇 개의 세력이 또 떠나갔다.
“더 갈 사람 있습니까?”
혈시들이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서 있었다.
“좋습니다.”
혈시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흡족한 표정이 떠올랐다. 남은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양소는 여전히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