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18화 (518/853)

제 518장. 네가 망할 수 있을까?

인파 속에서 엽신유는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양소를 바라보았다. 양씨 가문 둘째 공자가 단 한 번의 충격으로 이런 모습이 될 줄이야. 이유 없이 마음속에서 혐오감이 솟아오르며 원망이 쌓였다.

양소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는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금은 양소가 계승 싸움에서 이길 일말의 희망도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양준 관저 쪽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에서 이상한 빛이 반짝였다. 예쁜 얼굴에 의욕이 활활 불타오르더니 그녀는 얇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의 볼이 발그스름해졌다.

*양준 관저.

다들 돌아온 지 반나절이 채 안 되어, 누군가 능소각의 백여 명 제자들이 도착했다고 보고했다.

양준은 기뻐서 얼른 나가 맞이했다.

과연 소안을 포함한 능소각 식구들이 이미 와 있었다. 소식을 들은 하응상도 얼굴이 상기되어 연단방에서 뛰어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두 소녀는 할 말이 많았다. 특히 둘 사이에는 공통의 남자가 있었다. 둘의 화제는 곧 양준에게로 옮겨 갔고, 양준을 가리키며 웃음꽃을 피웠다.

진택은 허둥지둥 하응상을 뒤쫓아왔다. 원래는 그녀를 도로 연단방으로 데려가려 했으나 그녀의 즐거운 표정을 보고는 혼자 돌아갔다. 하응상이 지인과 한담하는 것을 차마 방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기억에 연단술이 뛰어난 어린 사숙은 친구도 몇 명 없었다. 평소에도 연단방에서 연단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하는 일이 없었다.

‘어린 소녀가 연단하는 것 말고도 더욱 중요한 일이 있어야지!’

관저 안은 시끌벅적했다.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원래부터 능소각과 잘 아는 사이였다. 사람들은 빠르게 서로 어울렸다.

양준은 한쪽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안과 하응상을 몰래 슬쩍 보고는 눈도, 마음도 즐거워졌다.

“매형!”

소무영이 달려왔다. 그는 완전히 회복한 듯했다. 만약영유를 복용하자, 상처는 금방 완치되었다. 그는 조용히 양준의 곁에 다가와서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 사저랑 무슨 사이야? 관계가 평범해 보이지 않던데?”

양준은 콧방귀를 뀌며 그를 흘겨보았다.

“어린애는 그런 거 몰라도 돼. 어른들 일이야.”

소무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거렸다.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면서!”

양준은 얼굴빛을 바로 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널 찌른 자는 이미 죽었다만, 앞으로는 성질 좀 죽여. 너무 우직하면 부러지기 쉬운 법이야, 알겠어?”

소무영이 가볍게 웃었다.

“알았어.”

그는 다시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아쉽네. 실력을 키워서 내가 직접 복수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 둘은 실력이 그리 대단하지도 않아 보였어. 복수할 기회가 영영 날아가 버렸네.”

“혹시 전승동천에서 기연을 얻은 거야?”

양준이 고개를 갸웃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양준은 소무영이 그곳에서 기연을 얻은 것을 알고 있었다. 소무영의 지난 몇 년간의 수련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소무영은 나지막하게 웃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조금. 누님한테도 얘기했어.”

양준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더 자세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열심히 해봐. 얻은 기연을 함부로 날리지 말고. 전승동천의 기연은… 평범하지 않아.”

“그게 무슨 뜻이야?”

소무영은 양준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양준은 고개를 저으면서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 역시도 최근에야 전승동천에서 얻은 것이 이 세계의 경지에서는 벗어난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 소안의 합환공이나 호씨 자매의 동기연지신공은 이 세계의 무인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요즘 들어 양준도 예상외의 일들을 겪으면서 시야를 크게 넓히게 되었다.

*추억몽은 능소각의 식구들을 관저에 배치했다.

전성에는 능태허뿐만 아니라 능소각의 장로 네 명도 있었다. 그들은 능태허의 보호를 받아 줄곧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다.

능태허가 모습을 드러낸 다음, 장로들도 함께 양준의 관저로 왔다.

양준 관저는 2~3일간 떠들썩하고는 점차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로 양준 관저에 있는 이들의 사이가 더욱 끈끈해졌다. 문파가 달라도 모두 형제처럼 지냈고, 이익 분배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었다. 새로운 단약이 완성되어도 서로 양보하기 바빴다. 분위기가 더없이 좋았다.

며칠 동안, 양준은 한 가지 일에 집중했다.

바로 죽절방 내의 반대 세력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능소각 제자들의 피신지는 죽절방에서 누설된 것이었다. 방지는 중도에 돌아가자마자 사건의 장본인 목남두를 찾아냈다.

다음 날, 방지는 직접 목남두의 머리를 양준 관저에 가져왔다.

방지가 말하기로, 목남두가 정보를 팔아넘긴 이유는 단지 엽신유가 시녀 둘을 보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시녀는 엽씨 가문 출신이기에 방지는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양준 관저로 데려와서 양준에게 처리하게 했다.

양준은 목남두처럼 식견이 좁은 사람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도 죽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엽씨 가문의 두 시녀는 죽이지 않고 관저에 남겨 부리기로 했다.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잡혀 온 것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그녀들은 목남두를 유혹하는 패로 사용되었을 뿐, 본인들은 아무 잘못도 없었다.

방지는 곧 다시 중도로 돌아가 양준을 위해 물자를 모았다.

*방지가 떠나간 다음에야 추억몽이 양준을 찾아왔다. 그녀는 그를 끌고 자신의 방으로 가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문단속까지 꼼꼼히 했다.

양준은 그녀의 긴장한 표정을 보고 실소하고 말았다. 남이 보았으면 무슨 오해를 할지 몰랐다.

추억몽도 며칠 동안 바삐 보냈다. 전투가 끝난 다음에는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사상자를 통계해 위로하고 보상해야 했고, 능소각 식구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것 등등. 그러다 보니 지금에야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둘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양준이 차를 따라 주자 그녀는 단숨에 들이켜고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긴장이 많이 풀어진 것 같았다.

“대체 뭐길래 이렇게 조심스러워?”

양준은 차를 홀짝이며 조용히 물었다.

추억몽이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남생과 향초에 관한 얘기야…….”

“내가 그 둘에게 지나쳤다고 생각해?”

양준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추억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대로 말했다.

“걔들이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도 일등 세가의 후계자들이야. 두 가문이 가만있을 거 같아?”

“아니.”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향초와 남생을 죽이기 전에, 그는 이미 이런 것들을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을 죽였다.

“그 두 가문에서도 나를 어쩔 수 없을 거야. 만약 정말 나를 건드린다면, 오히려 그들의 용기에 감탄하겠지. 하지만 그들은 그럴 배짱이 없어.”

양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양씨 가문이라는 거대 세력뿐만 아니라 지금 양준 관저에 모인 고수들도 두 가문에서 대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혈시 8명, 신유 경지 이상 1명, 신유 경지 정상 2명……. 향씨, 남씨 가문에서는 아무리 죽은 후계자들을 위해 복수하고 싶어도 주제 파악을 해야 했다.

“너도 참…….”

추억몽은 애증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다가 방긋 웃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나도 속 시원했어! 그 둘은 예전부터 맘에 안 들었거든. 음흉해 가지고. 그 두 가문도 만약 걔들이 이어받으면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거야.”

양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놈들은 내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한테 죽었을 팔자야.”

“에휴, 그렇긴 한데. 문제는 지금 향씨 가문이고, 남씨 가문이고 절대 타협하지 않을 거란 말이야. 양씨 가문 쪽에서 압박을 받겠지. 계승 싸움에서 일등 세가의 후계자가 죽은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내가 봤을 때 양씨 가문의 오만방자함으로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 하지만 너를 감싸주지도 않겠지. 그러니까 두 가문과 너와의 은원에 양씨 가문은 개입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야.”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추억몽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만약 두 가문 사람이라면, 기회를 엿볼 거야. 그리고 네가 망했을 때 와서 돌이나 던지겠지. 그런데 네가 망할 수 있을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추억몽은 고개를 들어 양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양준이 빙그레 웃었다.

“너무 똑똑하면 인기 없어.”

“넌 맹한 사람을 좋아하니?”

추억몽이 벌떡 일어서더니 홱 돌아서며 말했다.

“소만이가 좀 맹하기는 한데, 너 걔는 안 좋아하잖아.”

“좋아하는데?”

추억몽은 양준을 흘겨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이내 양준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나도 신유 경지에 오르면서 그리 큰 사단을 낼 줄은 몰랐어.”

자신의 실력과 저력이 드러난 것쯤은 괜찮았다. 문제는 봉신전 태상장로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이는 양준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너도 너무 조심성 없었어.”

추억몽도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둘 다 이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8대 세가와 사마는 대립각이었다. 그들은 당연하게 양준의 사악한 면을 두려워했다. 8대 세가에서는 사공을 익힌 사람이 나타나면 직접 죽이거나 무공을 폐했다. 이번에 양준이 운 좋게 화를 면한 것은 능태허와 몽무애 덕분이었다. 결코 양립정이 혈육의 정을 봐준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어. 완벽한 비밀은 없으니까.”

양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지금까지 숨긴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때 당시 상황으로 보아, 설령 자신이 전에 입마를 시전하지 않았다 해도, 신유 경지를 돌파할 때가 되면 금신의 기운이 통제를 받지 않고 뿜어져 나왔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봉신전의 장로들은 마찬가지로 사마의 기운에 대해 눈치를 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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