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20화 (520/853)

제 520장. 또 한 번의 경지 돌파

양위 관저에서는 대외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소식을 흘렸지만, 양소 관저에서는 어떤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생과 향초 같은 인물이 그의 저택 앞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자, 그날 전투 이후 그의 세력은 대폭 줄어들었다. 현재 양소 관저에는 전성기의 반도 안 되는 세력이 남아 있었고, 수적으로도 셋 가운데서 가장 뒤처지게 되었다. 게다가 고수의 경지나 실력 면에서도 양준 관저와는 견줄 수가 없었다.

또한 그날 이후 양소는 지난날의 기세를 잃고 하루 종일 넋을 놓고 산송장처럼 지낸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의 관저에 남은 무인들도 모두 풀이 죽어 투지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의 모습으로 볼 때, 계승 싸움은 이미 승부가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양위가 그날 생각했던 것처럼 이번 계승 싸움은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전성, 나아가서 중도의 대다수 사람들은 양준이 양씨 가문의 차기 가주로서 중도 8대 세가를 이끌고 권력을 거머쥐며 천하를 지배할 것이라고 여겼다.

요 며칠 양준 관저 앞은 오가는 손님들로 시끌벅적했다. 이들은 모두 양준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었다. 계승 싸움에서 일찍이 그들은 양준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적대관계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계승 싸움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그들은 어떡해서라도 양준에게 연줄을 대려고 했다.

그와의 협의나 동맹까지는 바라지 못해도, 적어도 낯은 익혀 두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그가 양씨 가문의 가주가 된 다음, 무슨 일이든 의논할 여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적지 않은 선물을 들고 찾아와서 양준과 만나 몇 마디라도 나누기를 원했다. 그리고 더욱 많은 사람들은 중매를 서려 했다. 만에 하나 양준이 그들 가문의 아가씨를 마음에 들어 하면, 나중에 시집가서 양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게 아닌가? 그러면 누군들 시샘하지 않겠는가?

양준의 관저는 문턱이 닳을 정도였다.

추억몽은 찾아오는 이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었다. 원래 그녀는 안면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이들이 싫어 접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양준이 그 소식을 듣고는 그녀에게 손님들을 극진히 접대하라고 했다. 그녀는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우선 그의 말에 따랐다.

그녀는 선물을 들고 온 모든 세력을 직접 맞이하며 몇 마디 나누고는 선물만 받고 사람을 그대로 내보냈다. 물론 중매하러 오는 사람들은 인정사정없이 모두 거절했다.

짧은 며칠 사이, 양준 관저에서는 수백 개의 세력을 맞이했고, 놀라운 속도로 막대한 재물과 물자를 축적했다.

추억몽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추씨 가문의 큰아가씨라 해도 엄청난 물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닷새 뒤, 양준 관저는 점차 조용해졌다.

*하루하루 바삐 보내던 사람들은 갑자기 관저의 안쪽에서 강한 파동의 기운이 퍼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저도 모르게 얼굴빛이 살짝 바뀌며 정신을 가다듬고 기운의 근원 쪽을 바라보았다.

잠깐 사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무슨 일이지?”

곽성진이 놀라서 소리쳤다. 방금 전 그는 보기종에서 새로운 비보를 받았는데 미처 흡수하기도 전에 기운의 파동을 느꼈던 것이다.

“누가 경지를 돌파하는 것 같아. 그것도 한 명이 아닌 것 같은데.”

추억몽이 짙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나도 느꼈어. 이건 두 사람이 동시에 돌파한 거야.”

동경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뿜어져 나온 기운이 엉기고 어우러진 것이 한 사람의 것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중에 양준의 기운도 느껴지지?!”

곽성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양준은 분명 며칠 전에 신유 경지에 올랐잖아? 아무리 자질이 출중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제 며칠이 지났다고 또 경지를 돌파한다고?’

“그럼 한 번 가 보죠.”

추억몽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젊은이들을 이끌고 소리가 난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얼마 안 되어 하응상의 방에 이르렀고, 미처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다.

양준이 앞장서고 차가운 기운의 소안이 뒤따라 나왔다. 둘은 얼굴빛이 평온했으나 눈동자 속의 기쁨과 흥분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뭐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누가 또 경지를 돌파한 거야?”

추억몽이 방 안을 기웃거리다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자신의 미약한 신식으로 양준의 몸을 훑더니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너 맞구나…….”

그들 가운데 추억몽 외에도, 신유 경지에 오른 사람이 몇 명 더 되었다. 추억몽의 이상한 말투에서 낌새를 눈치챈 그들 역시 신식으로 탐지하고는 깜짝 놀랐다.

양준은 벌써 신유 경지 2단계가 되어 있었다. 방금 전에 뿜어져 나온 기운은 그의 것이 맞았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놀란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작은 경지 하나 오른 것 가지고 다들 무슨 호들갑이야?”

양준이 콧방귀를 뀌었다.

“호들갑이라고? 양준, 넌 네가 며칠 전에 경지를 돌파했는지 몰라?”

곽성진이 소리쳤다.

그때를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지난번 양준이 경지를 돌파할 때, 그들은 곁에서 지키면서 신유 경지 이상의 여덟 고수와 맞섰었다. 그것은 불과 일주일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짧은 일주일 사이, 양준은 또다시 경지를 돌파했다. 이런 수련 속도라면 그냥 괴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같이 돌파한 거야?”

추억몽이 멍하니 소안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합체 수련에서 둘 다 실력이 올랐다. 양준은 신유 경지 2단계, 소안은 신유 경지 4단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지가 곧바로 다져지기까지 했다. 얻은 성과로만 보면, 큰 경지를 돌파한 지 얼마 안 되는 양준보다 소안이 얻은 성과가 더 컸다.

곽성진이 문득 음탕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 둘이 며칠 동안 방 안에서, 흠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안이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았다.

곽성진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차갑고 고귀한 여인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소안에 대해서는 직감적으로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이 여인은 예사롭지 않아. 아마 류경요도 상대가 안 될 거야.’

곽성진은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졌다. 더군다나 소안은 양준의 여인이었다. 양준의 여인, 심지어 양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여인에 대해서도 곽성진은 피해 다녔다. 여태껏 그 여인들에 대해서는 어떤 흑심도 가지지 않았다.

“불필요한 걸 물을 시간에 각자 돌아가서 수련들 하세요!”

양준이 한마디 했다. 이번 경지 돌파가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이 또한 그동안 열심히 수련한 결과였다.

그의 말에 모두들 얼굴이 화끈거려 뿔뿔이 흩어졌다. 다들 독기를 품고 폐관 수련해서 자신의 눈앞 고비를 넘기리라 다짐했다.

추억몽도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수련할 마음이 있지만 일에 매달리다 보니 수련할 겨를이 없었다.

“할 말 있어.”

향천소가 자리를 뜨지 않고, 혼자 남아 엄숙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소 관저에서의 전투가 끝난 뒤에 향천소는 줄곧 양준에게 말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양준이 바삐 보내는 바람에 지금에야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양준은 그를 힐끔 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하 사매한테 가볼게.”

소안은 한마디 하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양준의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이내 양준, 추억몽, 향천소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추억몽은 문득 향천소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리고 얼른 주의를 주었다.

“향 공자, 부디 재고를.”

향천소는 담담한 표정으로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해 봐.”

양준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향천소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서 짧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곳을 떠나 계승 싸움을 포기할 거야.”

추억몽은 깊이 탄식했다. 이미 주의를 주었건만, 향천소는 결국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슬픔이 밀려왔다.

“생각 잘 해 보고 결정한 거지?”

양준은 진작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전혀 놀라워하지 않았다.

“이미 결정했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가 봐.”

양준은 그를 잡지 않았다.

추억몽이 대경실색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양준!”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난 향천소의 형을 죽였어. 계속 내 곁에서 힘을 보태면 녀석도 괴롭고, 사람들도 좋지 않게 볼 거야. 그러니까 여기를 떠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야.”

향천소가 살짝 놀라더니 고마운 기색을 보였다.

그들 형제 사이의 다툼은 비밀이 아니었다. 더욱이 향초는 동생을 제거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했다. 하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형제지간이었다.

향초가 양준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향천소가 계속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양준 관저의 사람들이나 그의 처지를 아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해 준다고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양준의 말에 추억몽은 살짝 당황하면서 어떻게 향천소를 붙잡아야 할지 고민했다.

남들은 지금 바늘 틈이라도 비집고 양준 관저에 들어오려고 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계승 싸움의 승리를 눈앞에 둔 시점에 향천소가 이곳을 떠나는 것은 너무나 합리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양준은 향천소가 자신의 원칙이 있고, 또한 이익만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향천소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양준이 가장 힘들었을 때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데려온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고 실력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전투에 모두 참가했고 또한 전력으로 싸웠다.

“그동안 고마웠다.”

양준이 향천소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향천소의 항상 근엄하기만 하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고마워.”

연단방의 단약이든, 보기종에서 만든 비보든, 향씨 가문의 무인들도 적지 않게 나누어 가졌다. 그 덕분에 그들의 수준도 몇 등급이나 오르게 되었다.

향천소는 점차 미소를 거두고 차가운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적으로 만나겠지. 그때가 되면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을 거야.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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