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24화 (524/853)

제 524장. 자유를 돌려줄게

양준은 그녀가 긴장한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긴장 풀어.”

곧 강하고 순수한 신식이 뭉쳐지며 냉산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냉산은 진원 경지 9단계로 신유 경지에 오르지 못해 식해가 없었다. 하지만 생령(生靈)인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신혼을 가지고 있었다.

양준의 신식은 냉산의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자신의 본원과 똑같은 기운을 찾아냈다. 바로 냉산의 머릿속에 심어진 그의 신혼 낙인이었다. 양준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본원으로 낙인을 흡수해 제자리로 돌리려고 했다. 이 정도는 이미 신유 경지에 오른 그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얼마 안 되어 양준은 신식을 거두어들이고 미소를 지었다.

“됐어.”

냉산은 천천히 눈을 뜨고 멍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복잡했다. 다시 자유의 몸을 되찾은 것이니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자꾸 뭔가가 없어진 것처럼 허전한 것이 낯선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

냉산은 일어나서 가볍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이제부터 그녀는 양준과 아무런 연계가 없게 된다. 계승 싸움이 끝난 뒤, 그녀는 동문 제자들과 함께 귀왕곡으로 갈 것이고, 다시는 중도와 전성에 발을 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양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냉산은 생긋 웃어 보이고는 돌아서서 나갔다.

방 밖에서 지마가 낄낄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냉 낭자, 축하하네.”

냉산은 그런 지마에게 눈을 부릅떠 보였다. 지마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마, 들어와.”

방 안에서 양준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마는 얼른 들어가서 허리를 굽히고 물었다.

“주인, 무슨 일인가?”

“너도 앉아.”

“어… 주인……!”

지마는 깜짝 놀랐다. 양준이 뭘 하려는 건지 눈치챘던 것이다. 그는 흥분에 겨워 빨개진 얼굴로 어정쩡하게 서서 중얼거렸다.

“앉으라면 앉을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지마는 몸을 흠칫 떨더니 바로 양준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긴장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했다.

“식해의 방어나 풀어.”

양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지마는 얼른 하라는 대로 했다. 곧 양준의 신식이 그의 식해로 들어와 자신의 신혼사선을 찾았다.

잠시 뒤, 양준과 지마는 동시에 눈을 떴다. 양준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지마는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흐……! 네 식해에서 심상치 않은 걸 본 거 같은데?”

양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지마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지마의 식해에 들어갔을 때, 온통 핏빛만 눈에 들어왔다. 지마의 식해는 선혈로 물든 세상이었고, 더 없는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 양준의 강한 신식도 그 안에서 불안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핏물 같은 식해 속을 누비던 중 지마의 잡념을 은연중 알게 되었다. 그중에는 전에 지마가 양준에게 나쁜 짓을 하려던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양준도 더 깊이 살펴보지는 않았다. 이내 그는 자신의 신혼사선을 찾은 뒤, 급히 지마의 식해에서 나왔다.

지마는 난감해서 죽을 것 같았다.

“오해하지 말게. 그건 그저 내가 예전에 갖고 있던 생각일 뿐이네. 지금은 내가 주인에게 얼마나 충성하는지 알지 않나? 이 마음은 하늘도 다 안다네.”

“됐어.”

양준은 일어서며 말했다.

“충성까지는 바란 적도 없어. 내가 널 못 믿었으면 이렇게 자유를 주지도 않았을 테니까.”

“역시 주인은 현명하군! 앞으로도 주인의 곁을 지키며 절대 다른 마음을 먹지 않겠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지마는 바로 떠나지 않고,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손을 비볐다. 양준은 고개를 돌리고 지마가 먼저 입을 열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주인, 내가 사실 잘못한 게 하나 있네.”

지마가 히죽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본 걸 말하는 거라면 됐어.”

“그게 아니라, 주인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에 대해서 말이네.”

“그건 네 수단이잖아.”

“그렇지. 내 방법이지.”

지마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 양준은 실력이 약해 신식의 힘으로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낙인을 남길 수 없었다. 때문에, 지마 본인을 포함해서 냉산과 자맥 모두 지마가 손을 써 양준이 그들을 통제하게 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양준은 자신의 신혼사선 한 가닥만 내놓고 구경만 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지마가 처리했다.

“그런데 내사 쓰는 방법은 장단점이 모두 있네.”

지마는 양준을 슬쩍 훔쳐보았다. 양준이 침묵을 지키고 있자, 그는 흠칫 놀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장점은 주인도 알다시피 편리함이네. 신혼사선 한 가닥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으니 말이야.”

“단점은?”

이것이야말로 중점이었다. 그는 전에 지마에게서 단점에 대해 들은 적이 없었다.

지마는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으며 한참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단점은 한쪽이 다치게 되면 다른 한쪽도 같이 다친다는 건데…….”

“제대로 설명해!”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 통제하고 있는 사람의 신식에 문제가 생기면 주인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이네…….”

지마는 이를 악물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양준은 잠깐 당황하다가 바로 이해했다.

“내 신혼사선이 아직 다른 사람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지?”

“맞네. 다행인 것은 나나 냉산 낭자가 지금까지 무탈했다는 것일세.”

지마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자맥이라는 아이는…….”

양준은 씨익 웃었다. 그는 지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걱정된다면 내 지금 당장 천랑국으로 가서 그 아이를 데려오도록 하겠네.”

지마가 다급히 말했다.

“호오, 가능해?”

양준은 지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천랑국은 대한국처럼 땅이 크지는 않지만 무인들이 밀집된 곳이었다. 게다가 자맥이 속한 삼라전은 천랑국에서 초강력 문파로 신유 경지 이상 무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마가 아무리 강해도 삼라전에서 사람을 빼올 수는 없을 터였다.

‘전에 나한테 말해 주지 않은 건 이걸로 날 무너뜨릴 생각이었나 보군.’

양준은 속으로 짐작했으나 굳이 따지지 않았다. 지마가 지금 말해 준 것만 보아도 그의 솔직함과 충성심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양준이 보기엔 이것은 큰일이 아니었다. 자맥이 죽지 않는 이상, 그도 다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가자.”

양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네, 주인.”

지마는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신혼사선이 남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양준은 계승 싸움이 끝난 뒤, 시간이 날 때 자맥을 찾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개방적이고 대담한 자맥을 떠올리자 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틀 뒤, 새벽.

양준 관저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 도착했다.

시위가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양준이 편전에 도착했을 때, 양씨 가문 장로전의 양진 장로가 친히 왕림하여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와 함께 온 이들은 양준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로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났다. 적어도 신유 경지 8단계는 되는 듯했다.

모두 네다섯 명 정도였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다가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양진은 엄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님, 함께 오신 분들은…….”

양준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모두 우리 양씨 가문의 장로들이다.”

양진이 말했다.

양씨 가문 장로전에는 양준이 전에 보았던 노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노인들은 양씨 가문에 세운 공이 크고 나이가 많아 장로라는 신분을 주고 장로전을 지키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평소에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것 외에는 여생을 즐겼다. 진정으로 양씨 가문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이들은 다른 장로들로, 그들이야말로 양씨 가문의 대권을 손에 거머쥔 이들이었다. 바로 눈앞의 몇 사람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명씩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도도한 얼굴로 응대하지 않았다.

양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양씨 가문의 고위층은 대부분 이러했다. 양씨 가문뿐만 아니라 8대 가문이 다 이랬다.

“장로님들께서 어떤 연유로 이리 찾아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양준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지난번 혈시 문제로 양준은 이미 한 번 장로전에 불려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장로 여러 명이 직접 온 것을 보니 저번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면서 묻기는!”

양진은 코웃음을 치며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성의 몇만 명 되는 사람들 앞에서 남씨 가문과 향씨 가문의 후계자를 죽이다니.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느냐?”

“고작 그 정도 일로 오신 겁니까?”

양준은 놀란 눈으로 양진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고작 그 정도 일이라니?”

“장로전에서 침소봉대하는 것이 아닙니까?”

좌측에 있던 하늘색 장삼을 입은 장로가 갑자기 버럭 호통쳤다.

“그 둘은 일등 세가의 후계자들이란 말이다. 네놈이 함부로 죽일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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