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5장.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이냐
“저한테는 짐승만도 못한 자들입니다.”
양준은 고개를 들고 하늘색 장삼을 입은 장로를 바라보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건방지구나!”
그 장로는 콧방귀를 뀌었고, 다른 이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들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들은 중도에 있었지만 매일 전성 쪽의 상황을 주목하고 있었다. 양준이 지금까지 보여준 활약으로는 양씨 가문의 후계자에 손색없었다. 하지만 지금 직접 만나 보니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데다가 안하무인이었다.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양씨 가문은 콧대가 높으나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양준이 이번 계승 싸움에서 일등 세가의 후계자 둘을 죽인 것은 금기를 어긴 거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양씨 가문에서 또 계승 싸움을 한다 해도, 어느 가문에서 참여하려고 하겠는가? 일등 세력의 공자와 낭자들은 생명의 위험이 없기에 스스로를 단련할 겸, 투자할 가치가 있어 매번 계승 싸움에 앞다퉈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양준이 벌인 일로, 세상 사람들에게 해명을 내놓지 않는 이상, 앞으로 계승 싸움에 참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계승 싸움을 하겠는가?
“양씨 가문 직계 자제의 신분으로 다른 세가의 후계자를 죽이다니. 네가 한 짓 때문에 가문은 깊이 실망했고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마흔에서 쉰쯤 되어 보이는 중년 부인이 차갑게 양준을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제가 양씨 가문의 직계 자제가 아니더라도 그 둘은 저를 건드렸으니 죽였을 것입니다.”
양준의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몇몇 장로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중년 부인이 말했다.
“말이 안 통하는군. 진 장로께서 얘기해 보십시오.”
양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엔 네가 과했다. 젊으니 혈기가 왕성한 것은 이해한다. 나도 왕년에 그랬으니까. 그래서 널 뭐라 꾸짖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내라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마땅한 법이다.”
“제가 무슨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까? 설마 그 두 가문에서 제 목이라도 가져오랍니까?”
양준이 웃으며 물었다.
이에 양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 남씨 가문과 향씨 가문에서 중도로 사람을 보내 그런 뜻을 내비치긴 했다.”
“그럼 가문의 뜻은 어떠합니까?”
양준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서 물었다.
“가문에서는 당연히 승낙하지 않았다.”
양진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분수도 모르고 양씨 가문 자제의 목숨으로 값을 치르라고 하다니, 가소롭기 그지없을 뿐이지.”
양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가문에서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그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명예가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만약 그가 아니라 양씨 가문의 다른 공자가 이런 일을 저질렀어도 양씨 가문에서는 보호했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 일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양씨 가문은 대외적으로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양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그 두 가문에 사죄하도록 하여라. 이것이 가문의 뜻이다.”
“사죄를 하라고요?”
양준이 실눈을 뜨고 물었다.
“그래!”
“제가 거절한다면요?”
“가문의 명령이다.”
하늘색 장삼을 입은 장로가 호통쳤다.
“네가 감히 가문의 명령을 거절하겠다는 것이냐?”
“가문의 명령이 뭐라고 제가 그걸 따릅니까?”
양준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네놈이 정녕 미쳤구나!”
그 장로가 냉소하며 말했다.
“진작 네가 건방진 걸 알고 있었지만 소문보다 더하구나. 우리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네놈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거늘.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그러고는 온몸의 기운을 발산하며 화난 눈으로 양준을 노려보았다.
곧 수많은 신식과 강한 위압감이 사방팔방에서 습격해 오더니 편전 전체를 뒤덮었다. 그 영향으로 편전이 한동안 흔들리더니 위에서 흙이 우수수 떨어졌다.
하늘색 장삼을 입은 장로가 발산한 기운은 신식과 위압감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장로들은 안색이 변하더니 뭔가가 떠오른 듯했다. 양준 관저에는 실력이 강한 무인이 많았다. 여기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었다.
“모두 물러나!”
양준이 소리치자, 무시무시한 압력과 신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늘색 장삼을 입은 장로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그는 복잡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양씨 가문의 장로로 대권을 움켜쥐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높은 지위를 가진 그는 양준 관저에 명령을 전하러 오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이 녀석이 관저 고수들의 마음속에서 대체할 수 없는 위치에 이르렀군!’
그제야 양응호가 왜 장로 여러 명을 함께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애당초 그는 가주가 쓸데없이 조심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멀리 내다본 것이었다. 만약 혼자 찾아와서 가문의 명령을 전했다면 양준이 자신을 거들떠봤을지도 알 수 없었다.
“장로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양준이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위청(衛青)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대답하고 머쓱해져서 얼굴을 붉혔다. 다른 장로들도 그를 흘겨보았다. 위청의 점수가 크게 깎였다.
“위 장로님……!”
양준은 가소롭다는 듯이 냉소하며 말했다.
“제 관저에서 함부로 힘을 쓰지 말아 주십시오. 제 사람들 중에 위험한 이도 제법 있는지라… 아마 아실 겁니다.”
위청은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만하면 되었다.”
양진은 화를 내며 서늘한 눈빛으로 양준을 쏘아보았다.
“위 장로는 비록 우리 양씨 가문 출신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공을 세워 장로 자리에 올랐으니 함부로 무시하지 말거라. 그를 무시하면 우리 장로전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양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시지요.”
중년 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오는 길에 양준에게 어떻게 압박을 가할지 의논한 적이 있었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다 보면 예상했던 목적에 이르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말 두어 마디 만에 양준 때문에 화제는 산으로 가고 말았다. 계속해서 이렇게 나아간다면 수습하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이 녀석, 다른 사람을 쉽게 휘어잡네.’
부인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양준의 태도는 참 화가 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위청이 참지 못했지.’
양씨 가문의 자제로서 가문의 명령을 무시하고 장로들에게 대들다니. 이게 어찌 양씨 가문의 자제로서 할 짓이란 말인가?
“그래, 본론이 중요하지.”
양진도 정신을 번쩍 차리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향씨 가문과 남씨 가문 얘기는 제쳐 두더라도,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네 저택에 실력이 막강한 사마가 있지 않느냐?”
“예.”
“창운사지 출신이냐?”
“아닙니다. 그자에 대해서는 이미 봉신전의 태상장로님께 얘기를 했었습니다.”
양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알고 있다. 우리도 창운사지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다. 알아낸 소식도 그자는 창운사지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군. 하지만 정보라는 건 꾸며낼 수 있지 않느냐? 창운사지 사람이 아니라면 그자의 출신이 어디냐?”
“저도 알지 못합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위청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대신 노란색 옷을 입은 다른 장로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출신도 명확하지 않은 자를 받아들인 것이냐? 그자와 주종관계라는 것도 들었는데.”
“저는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는 법인데, 장로님은 아니십니까? 장로님은 제게 장로님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무엄하다!”
그 장로는 버럭 화를 내면서 의자를 두드렸다.
양진은 손을 뻗어 그를 진정시켰다. 이번에 온 장로들 중에서 말로 양준을 이길 이는 하나도 없었다. 양준의 말 한두 마디면 평소에 도도한 자세를 유지하던 장로들이 버럭 화를 냈다.
“이건 그렇다 쳐도, 너는 능소각 출신이더냐?”
“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양진이 뭘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능소각의 잔당은… 크흠… 그들은 전부 여기에 있느냐?”
“네.”
“능소각은 사파다. 그들을 제외하더라도 네 저택에는 수많은 사파들이 있지. 귀왕곡도 그렇고. 이걸 모두 제쳐두고 다시 한번 묻겠다. 혹시 사공을 익힌 적이 있느냐?”
양진의 눈빛은 점차 위험해졌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양준을 노려보며 물었다.
양준은 입꼬리를 올리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제가 아니라고 한들, 장로님께서 믿으시겠습니까?”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과 열 며칠 전에 양준은 신유 경지에 오르면서 몸속의 사악한 기운이 전성 전체에 퍼졌었다. 그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황에 빠져 정신을 놓았다. 이에 모든 사람들은 양준이 사공을 익혔다고 생각했다. 그가 딱 잘라 부인한다고 해도 효과는 없을 것이다.
“그럼 제가 대답할 필요는 없겠네요.”
이미 그가 사공을 수련했다고 단정지었는데, 아무리 말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었다.
“인정한 것으로 들리는구나.”
양진은 심호흡을 하고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양준, 솔직히 말하면 애당초 너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네가 보여준 실력이나 조력자가 너무 보잘것없지 않았느냐?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놀랄 만한 기적을 이루어 내는 것을 보고, 네가 양씨 가문의 차기 가주가 될 만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양씨 가문은 비대하기에 뛰어난 사람이 맡아야 더 멀리 갈 수 있지. 넌 그런 사람이다.”
“과찬이십니다, 장로님.”
양준은 표정이 살짝 변했다.
“다만 지금 내가 궁금한 것은…….”
양진은 숨을 들이쉬더니 일갈했다.
“네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냐?”
양준은 평온한 얼굴로 양진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진은 일어서더니 한 걸음씩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능소각의 제자들을 불러들이고, 귀왕곡의 인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신원 불명의 사마를 휘하에 두고. 또한 사공까지 수련하여 주화입마에 빠질 뻔하지 않았느냐? 며칠 전에 신유 경지에 올랐다고 들었는데 벌써 2단계가 되다니. 너의 속성 사공은… 참 대단하구나. 말해 보아라. 도대체 무슨 뜻이냐? 중도를, 8대 세가를 뒤집어 엎을 생각인 거냐?”
양진은 계속해서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는 사건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헤집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양준을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