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26화 (526/853)

제 526장. 중도로 돌아오거라

중도의 8대 가문을 뒤집어 엎다니…….

양준은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가문에 큰 소속감을 느끼지 않음에도 계승 싸움에 참여한 것은 문파의 이름을 바로 잡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 엇나갈 생각은 없었다.

양진의 호된 질타를 듣자, 그는 문득 뭔가 깨달았다.

“가문에서는… 저를 그렇게 보고 있는 겁니까?”

양준은 양진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양진은 가슴 아픈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너도 가문이 널 안 좋게 본다고 탓하지 말아라. 네가 며칠 동안 벌인 행각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구나. 넌 재주가 있는 아이야. 이건 부인할 수 없지. 하지만 네가 사마의 길로 간다면 가문도 너를 숙청해 가문의 결백을 증명할 것이다!”

잠깐 뜸을 들이고서 그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가문에서만 널 염려하는 거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다. 가문의 선배들이 무공으로 네 몸의 사마의 기운을 해소시켜 후환을 없애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걸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양씨 가문뿐만이 아니란다.”

양준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사실대로 말하마. 네가 신유 경지에 진급한 뒤로 7대 가문에서 모두 양씨 가문에 사람을 보내왔었다. 그들도 네가 사주처럼 될까 걱정하고 있다. 전에도 같은 일이 있지 않았느냐? 너는 능소각 출신에 사공을 수련했지. 더군다나 이전에 능소각에서 나왔다던 사주는 아직까지도 창운사지에 버젓이 살아 있더구나. 그자는 무공이 현묘하고 실력이 뛰어나 이 세상에 그의 상대가 될 만한 신유 경지 이상이 없다더군. 너와 사주는 같은 문파 출신이니따지고 보면 사숙과 사질의 관계지. 사주 한 명으로도 8대 세가의 마음이 편치 못한데 두 번째 사주까지 나타난다면…….”

양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양준을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이 요소들이 한데 연결되어 있는데 그들이라고 어찌 걱정하지 않겠느냐?”

“제가 두 번째 사주가 될까 봐 걱정이십니까?”

양준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 게다가 네 자질로 보아 사주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양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수심에 잠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되었을 때, 두 사주급의 인물이 중도에 쳐들어온다면 8대 세가는 무엇으로 막는단 말인가? 다른 장로들도 걱정과 두려움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결국 그건 추측이지 않습니까?”

양준도 해명할 마음이 사라져 덤덤하게 대꾸했다.

8대 세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집불통에 고고한 삶을 영위하려고만 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여기기에 자신이 뭐라고 하든 생각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한두 명의 생각을 바꿀 수는 있어도, 전체적인 상황에는 영향을 주지 못할 게 분명했다.

“문제가 될 건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8대 세가가 지금껏 중도에서 무너지지 않았던 비결이다.”

양진은 마음을 털어놓고 진지하게 말했다.

“8대 세가는 반드시 널 경계할 것이다!”

“제 길은 제가 알아서 갑니다.”

양준은 비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제가 선천적으로 자질이 부족해 수련도 못 하던 몸이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절 화룡지에 데려가 벌모세수 해주려고 장로전에 수차례 요청을 넣으셨습니다. 하지만 장로전은 단 한 번도 그 청을 들어준 적이 없었지요.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그런 낙오자에게 화룡지의 효능을 나눠줄 수 없다고.”

양진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양응봉이 건넨 청을 거절했던 것은 바로 양진이었다. 지금 양준이 지난 얘기를 다시 꺼내자, 그는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헌데 지금은 제게 힘이 생기니 가문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저를 또 좌지우지하겠다는 겁니까? 진 장로님, 너무 우습지 않습니까?”

양진은 시퍼래진 얼굴로 달리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양준이 또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제가 신유 경지에 오를 때도 제 친구들과 어르신들이 아니었다면 전 태상장로님께 힘을 빼앗겨 경지가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죽지 않더라도 일반인이 되었겠지요. 양씨 가문에서는 저를 경계하려고 아예 절 망쳐 버리겠다는 것입니까? 장로님, 가문에서 너무하다는 생각이 안 듭니까?”

“무엄하다!”

양진은 민망하다 못해 화가 났다.

“양씨 가문의 사람이라면 언제나 가문이 최우선시되어야 하는 법이다. 가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그리 억울한 것이냐?”

“장로님께서는 그게 가능할 만큼 정의롭고 고결하신 분일지 몰라도 저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양준은 갑자기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살기등등한 표정을 짓고 음산하게 말했다.

“정 뜻이 그러하시다면 여기 계신 몇 분도 죽이고, 가문의 뜻에 따라 용서를 빌어 보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장로님들도 가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니 불만 없으시겠죠?”

장로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들은 벌떡 일어서며 경계와 두려움이 어린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몰래 힘을 모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에 양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장로님들도 이기적인 분들인가 보군요…….”

장로들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방금 전에 보여준 자신들의 행동에 창피함을 느낀 것이다. 말로 하는 것은 쉬우나 정말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법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시지요. 본론으로…….”

목이 잠긴 중년 부인이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양진은 양준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와 얘기를 나누는 것이 참 힘들구나. 나도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겠다. 향씨 가문과 남씨 가문에 사죄하라는 것은 그저 허울에 불과하다. 우리 양씨 가문의 자제는 남들에게 머리를 숙인 적이 없다.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가문에서는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제지할 거다.”

“그럼 가문이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중도로 돌아오거라. 태상장로님들께서 네 몸 안에 있는 사마의 기운을 몰아내 주실 거다. 그러면 너는 앞으로 주화입마에 빠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가문과 7대 세가도 더 이상 널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양준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는 태상장로들의 실력으로 금신의 사악한 기운을 몰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금신의 기운은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누구도 알아챌 수 없었다. 게다가 그것은 자신에게도 나쁜 점이 전혀 없으므로 굳이 몰아낼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계승 싸움은 계속해도 되지만, 양씨 가문 가주의 자리는 네가 이어받을 수 없다. 대신 계승 싸움이 끝나면 가주님께서 직접 능소각의 이름을 바로 세워 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니 너도 가문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가문은 양준을 꺼려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에게 가주의 자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양준이 사주 같은 인물이 된다면 양씨 가문은 체면을 잃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거절하지 말거라. 가문에서 이리 결정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양진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무슨 이유요?”

“네 관저 무인들이 빠른 속도로 실력을 끌어올리는 비법과 연관이 있다.”

양진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뜨거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장로들의 호흡도 가빠지기 시작했다.

“숨길 수 있으리라 여겼느냐?”

양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네 관저의 무인들이 어떻게 빠른 속도로 실력을 끌어올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너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지. 혈시들은 연이어 신유 경지 9단계를 돌파하지 않았느냐?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이목도 집중되었고, 게다가 네 부모…….”

양준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서렸다가 곧 사라졌다.

“네 아버지는 오래된 질환이 있어 실력이 오랫동안 신유 경지 3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허나 지금은? 벌써 신유 경지 8단계에 접어들었더구나. 이 모든 것이 네가 중도로 돌아온 뒤에 벌어진 일들이다. 일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실력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늘었는데 너와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네 어머니의 실력은 양응봉처럼 놀라운 속도로 늘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몇 배나 빨라졌는데, 우리 양씨 가문 사람들을 눈 먼 장님으로 여기는 것이냐?”

양준은 침묵을 지켰다.

부모에게 만약영액과 만약영유를 복용시키기 전에, 그 역시 이 문제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모님이기에 두 분께 약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넌 사공을 수련했기에 실력이 빠르게 오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너를 따르는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의 실력도 빠른 속도로 오르게 했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었느니라. 우리 양씨 가문뿐만 아니라 다른 7대 세가에서도 주시하고 있다.”

양진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7대 세가에서 왜 손잡고 우리 가문에 압력을 넣으며 널 처분해 달라고 요구하겠느냐? 넌 아직 사주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뿐, 실력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다. 그들은 아직 널 겨냥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이득이 없다면 먼저 나서지 않는 법, 중도 8대 가문은 모두 냄새를 잘 맡는 사냥개 기질이 있는 가문들이었다. 그들이 뭔가를 한다는 것은 혹할 만한 이익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숨겨진 만약영액은 그들이 혹할 만한 것이었다. 빠르게 실력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혹하지 않을 가문이 어디 있겠는가?

“너에게 중도에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가문에서도 이걸 염려해서란다. 가문으로 돌아와 양씨 가문 고수들의 보호를 받거라. 그럼 걱정을 덜 수 있을 게다.”

“결국 가문에서 원하는 것은 그 비법이군요?”

“부인하지 않겠다.”

양진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가문에서는 이미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널 찾으러 온 거지, 너에게 왔다 가라고 하지 않았다. 이 두 가지 방식이 뭐가 다른지는 너도 알 것이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찾아온 것은 협력하기 원한다는 뜻을 밝히고, 양준에게 양씨 가문에 조용히 숨어 있으라는 뜻이었다. 물론 가문에 비법을 바치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었다. 만약 오라고 말을 전해, 그가 가문에 찾아간 다음 무력으로 진압하고 가두었다면 그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을 터, 그렇게 되면 가문이든 양준 자신이든 모두 손해였다.

양씨 가문에서도 양준의 성격을 알기에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랐다.

“잘 생각해 보거라.”

말을 마친 양진은 더는 말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 사실을 알았으니 저는 더더욱 중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가문에서 만약영액을 원하는 것은 괜찮았다. 만약영액은 많기에 좀 나눠 주어도 되었다. 그는 비록 가문에 큰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계승 싸움은 그가 실력을 한껏 펼치도록 가문이 마련한 무대였다. 만약영액을 조금 주는 것으로 답례한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하지만 중도의 양씨 가문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평생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고, 지금의 실력도 폐지되고 말 것이다. 이는 양준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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