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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련전봉-527화 (527/853)

제 527장. 예기치 못한 변고

양준의 대답을 들은 양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진작 예상했던 일인 듯, 그저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그게 네 선택이라면 나도 더는 강요하지 않으마. 허나 한 가지 충고를 하자면 7대 세가에서 냄새를 맡았으니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양씨 가문도 널 위해 다른 7대 세가와 척을 지지는 않을 것이니, 네가 가문으로 돌아와 보호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쩔 수가 없구나.”

말을 마친 양진은 일어서더니 다른 장로들과 함께 떠나갔다.

중년 부인은 떠나기 전에 고개를 돌려 양준을 힐끗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고민해 보거라. 너에게 해가 되는 것도 없지 않으냐. 네가 가진 힘은 버려야 하겠지만 양씨 가문에서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가문에서도 네 모든 요구 사항을 들어줄 것이야.”

양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냉혹함뿐이었다.

중년 부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더는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떠나갔다.

그들이 멀리 떠나간 다음에야 양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 죄인이라는 말이 만약영액을 표현하기 딱 적합했다. 그가 만약영액을 꽁꽁 숨기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가장 신임하는 몇 사람만 만약영액의 존재를 알고 있지, 남에게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8대 세가가 뭔가를 눈치채고 의심을 품는 것 또한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좋은 보물이 있는데 부모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관저에 있는 사람들의 실력이 빠르게 오른 것도 하응상이 만약영액으로 연단했기 때문이었다. 영액의 약효가 단약에 스며들어 단약의 효능을 극대화하면서 사람들을 벌모세수 해주고 자질을 높여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만약영액을 복용한 것이 아니기에 실력이 그나마 늦게 상승하는 편이었다.

8대 가문의 횡포함과 만약영액에 대한 관심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일은 꽤나 골치가 아픈 일로 나쁘게 발전할 수도 있었다.

편전 안에서 걸어 나오던 중, 양준은 당황한 낯빛을 한 추억몽을 마주쳤다. 그녀가 이리 당황하며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녀는 항상 침착했고, 아무리 큰 위험에 부딪친다 해도 절대 품위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당황함과 초조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양준!”

추억몽은 떨리는 목소리로 양준을 불렀다.

양준은 평온한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께서 내게 당장 가문에 들르라고 하셨어.”

추억몽이 다급히 대답했다.

“빠르기도 해라.”

양준은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시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양진이 가자마자 추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 추억몽에게 중도에 돌아오라고 전하다니. 8대 가문은 과연 한 배를 탄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추억몽은 그 말을 듣고 의아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전갈을 받자마자 그녀는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급히 양준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양준에게서 더욱 이상한 말을 듣자 불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아무것도 아니야.”

양준은 낯빛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언제 갈 건데?”

“지금 당장.”

추억몽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그리고 추우당 사람들도 같이 데리고 오래.”

추우당은 추억몽이 양준 관저에 올 때 데려왔던 유일한 세력이었다.

“알겠어.”

추억몽은 고개를 저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왠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 지금 떠나면… 다신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추수성이 그녀에게 추우당의 사람들도 데려오라고 한 것은 이미 많은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총명하기 그지없는 그녀가 어찌 그 말에 담긴 뜻을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다만 그녀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양준을 도와 계승 싸움에 참여한 것은 잠깐 가문을 떠나 추씨 가문이 아닌, 그녀 개인을 대표한 것이었다. 추씨 가문의 진정한 동맹은 여섯째 양신이었다. 때문에, 계승 싸움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추씨 가문에서 그녀를 불러들일 이유가 없었다.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양준은 그녀를 향해 히죽 웃어 보였다.

추억몽은 양준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너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 추씨 가문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방금 양씨 가문 장로전에서 찾아온 거랑 관련 있는 거 아닐까?”

추억몽이 계속해서 물었다.

그녀의 통찰력은 언제나 놀라울 정도였다.

“아니야.”

양준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너희 아버지께서 네 얼굴을 본 지가 오래돼서 보고 싶으신가 보네.”

추억몽은 황당한 얼굴로 양준을 보더니 그의 팔을 잡은 손을 천천히 풀며 쓴웃음을 지었다.

“넌 항상 이렇지. 뭘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어.”

양준은 입을 벙긋거리며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추억몽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말했다.

“나도 더는 묻지 않을게. 잘 지내.”

“그동안 고생했어. 내가 배웅해 줄게!”

관저 밖,

추우당 사람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추억몽과 양준은 눈을 마주쳤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 명은 기대와 갈망에 찬 눈빛을 했고, 다른 한 명은 덤덤했다.

분위기는 매우 이상했다.

한참 뒤, 추억몽의 두 눈은 점점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그녀는 쓴웃음을 짓더니 돌아서서 추우당 사람들과 함께 중도로 떠났다. 마지막까지 양준은 그녀를 잡지 않았다. 만약 양준이 그녀를 잡았더라면 그녀는 추씨 가문의 부름을 무시하고 이곳에 남았을 것이다.

양준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이번에 떠난다면 추억몽이 다시 오지 못한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맞은편에서 세 사람이 걸어왔다. 앞장선 사람은 발걸음이 묵직하고 눈빛이 형형한 사람이었다. 그는 신유 경지 정상의 고수 두 명을 대동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기운이 범상치 않고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는 진정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세였다.

추억몽은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맞은편 사람을 바라보더니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렸다.

“곽 백부님!”

곽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추억몽을 바라보며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중도로 돌아가려는 것이냐?”

“네.”

추억몽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잘됐다. 어서 가거라. 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말을 마친 그는 곽씨 가문의 두 고수를 데리고 성큼성큼 양준 관저로 향했다.

추억몽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추씨 가문에서 자신을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곽성진도 돌아가게 될 줄이야.

곽정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곽성진을 데려가기 위한 것이 틀림없었다. 곽정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곽씨 가문에서 곽성진을 잡아들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직접 온 것이었다.

양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곽정을 보고는 인사를 올렸다.

곽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복잡한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곽 공자는 관저 안에 있습니다.”

양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직접 가겠다.”

곽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가문의 두 고수를 데리고 성큼성큼 양준 관저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돼지 멱따는 듯한 곽성진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곧, 곽정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신유 경지 9단계 고수가 겨드랑이에 곽성진을 끼고 나왔다. 곽성진은 전혀 반항할 힘이 없었다.

“노친네, 날 내려놔!”

곽성진은 버둥거리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고수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날 이렇게 대하다니. 넌 죽었어.”

곽성진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네가 뭐라고 이렇게 소란인 게냐?”

곽정은 음산한 얼굴로 아들을 돌아보았다.

곽성진은 순간 할 말을 잃고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께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얼마나 망신입니까?”

“조용히 하고 날 따라 중도로 가자!”

“왜요?”

곽성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조용히 하라면 조용히 하거라.”

“아버지이… 알겠습니다. 중도로 갈 테니 적어도 양준이랑 작별 인사는 하게 해주세요. 오랫동안 함께 역경을 이겨냈는데 인사 정도는 해야죠.”

곽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린 채, 곽성진과 양준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곽씨 가문의 고수는 그제야 곽성진을 풀어주었다.

“저쪽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마.”

곽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알겠습니다.”

곽성진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곽씨 가문의 세 사람이 멀어지자, 곽성진은 그제야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한 채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뭔가… 큰일이 생겼나 보네.”

그는 추억몽이 급히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놀랐다. 게다가 아버지가 직접 와서 그를 잡아가자 마찬가지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눈치챘다.

“말하기 불편하지?”

곽성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됐어. 못 들은 거로 해. 아버지가 직접 오셔서 나도 남을 수가 없게 되었어. 많이 알아도 나에게는 좋지 못할 거야.”

그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양준, 넌 큰일을 해낼 사람이야. 난 네가 일찍 죽는 걸 바라지 않아.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꼭 잘 버텨야 해. 누가 널 어떻게 보든 난 항상 네 편이야.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누구를 존경한 적이 없지만 넌 예외야. 그러니 날 실망시키지 마.”

양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사악하게 웃었다.

“조심히 가. 멀리 안 나간다!”

“갈게!”

곽성진은 호탕하게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두 일류 가문의 공자와 낭자가 동시에 양준 관저를 떠났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양준과 처음부터 함께해 오던 양준 관저의 이인자였다.

소식을 듣고 뛰어온 젊은 통솔자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변고는 항상 이렇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폭풍우처럼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법이었다. 추억몽과 곽성진이 떠나고 나서도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참 뒤, 사람들은 수다스럽게 양준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다들 조용히 해!”

만화궁의 한소칠이 나서서 제지했다.

“이렇게 떠들어서야 양준이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어?”

사람들은 금방 조용해졌다. 모두 물끄러미 양준을 바라보며 그가 설명해 주기를 기다렸다.

“들어가서 얘기하자.”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도 서둘러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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