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28화 (528/853)

제 528장. 또 다른 변수

양준 관저 내 편전.

양준은 상석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관저의 모든 세력의 통솔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다.

한참 뒤, 모든 이들이 자리에 모였다.

양준은 그제야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스쳐 지나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동씨 가문의 동경한, 자미곡의 범홍과 낙소만, 영월문의 진학서와 서소어, 문심궁의 좌방, 비우각의 저경산, 만화궁의 네 소녀, 단목 가문의 다섯 선배, 혈전방의 호교아와 호미아, 풍우루의 방자기, 귀왕곡의 냉산과 심혁, 천원성의 류비생…….

열한 개 세력이자 그의 조력자들이었다. 능소각을 제외하고 모든 세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뿐만 아니라 약왕곡의 진택, 보기종의 오암과 도양도 왔고 혈시들까지 모두 모였다. 전례 없이 호화로운 광경이었다.

양준이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은 것을 보고, 다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다. 전에 사람을 불러모을 때는 약왕곡과 보기종 사람들까지 부르지는 않았었다.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그들은 조용히 양준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양 사제, 일이 있으면 얘기하게. 빨리 연단하러 가야 하네.”

진택은 귀찮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동안 그와 약왕곡 사람들은 하응상에게서 연단을 배우며 연단술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는 거의 매일 연단방에 박혀서 연단에 몰두했다. 평생 이곳에서 연단하며 다시는 약왕곡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약왕곡과 비교했을 때, 지금 이곳이야말로 그들 마음속의 성지였다.

양준은 일어서며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많은 사람들이 보았겠지만, 추억몽과 곽성진이 왜 떠났는지 궁금하실 테죠?”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이유는 말해 줄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우리에게 큰 난관이 찾아올 겁니다.”

양준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잠깐 당황하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동경한이 말했다.

“네 저택에 와서부터 한가할 때가 별로 없었잖아. 언제는 난관이 없었어?”

“맞아, 맞아.”

좌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힘을 합치면 무슨 일이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난관이야?”

다른 사람들도 긴장한 기색 없이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얼굴들이었다.

“생명에 위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가문, 문파의 흥망이 달려 있을 정도로 큰일입니다.”

양준은 사람들을 훑어보고 말했다.

“이런 데도 웃음이 나옵니까?”

떠들던 소리가 뚝 그쳤다. 모든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물론 상황이 제가 말한 것처럼 심각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위험하다는 건 변함없습니다.”

“그 정도야?”

저경산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우리가 뭔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네 계승 싸움을 도와주는 것뿐인데 왜 우리 목숨이나 문파의 흥망까지 달려 있다고 하는 거야?”

“여러분들이 저를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준은 미안한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문제의 원흉은 저이기 때문입니다.”

한소칠이 한마디 끼어들었다.

“네가 며칠 전에 신유 경지에 오른 거 때문에 그래?”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문득 그 무시무시하고 사악한 위력과 봉신전 태상장로들이 동시에 출동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관련은 있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제가 중도의 8대 세가의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도 8대 세가와 척을 지는 일은 모든 사람들이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하의 세력들이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것은 8대 세가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양준 관저에 모여 있는 이들은 그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8대 세가와 척을 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떨리는 눈빛으로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농담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실망하고 말았다. 양준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했다.

“그래서 추억몽과 곽성진이 가문으로 끌려간 겁니다.”

양준은 숨을 들이쉬었다.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 절 도와준 것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훗날 인연이 닿아 다시 만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양준,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호교아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요염한 얼굴에 노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우릴 쫓아내기라도 하려고?”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계속 여기에 남아 있어 봤자 좋을 거 없어!”

“너 이 나쁜 놈!”

호교아는 이를 악물더니 화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비꼬았다.

“지금 우릴 뭐로 보는 거야?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네가 굳이 우리 자매를 저택에 끌어들여 놓고 이제 와서 가라고 내쫓아? 우리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언니……!”

호미아는 초조한 얼굴로 언니를 잡아당겼다.

“양준도 좋은 뜻으로 이러는 거잖아.”

“내가 장님도 아니고…….”

호교아는 중얼거리더니 양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저놈이 자기 맘대로 결정하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그래!”

양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난 또 무슨 일이라고.”

진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양 사제,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난 이만 할 일이나 마저 하러 갈게. 8대 세가가 뭐라고 감히 우리 약왕곡의 사람을 건드릴 수 있겠어? 그놈들이 아무리 정신이 나가도 감히 그런 짓은 못하지.”

진택은 말을 마치고 기세등등하게 떠났다. 그는 8대 세가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실소를 했다. 진택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약왕곡은 이등 문파지만 특수성 때문에 8대 세가도 그들을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양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해?”

한소칠은 침착하게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지금 자세히 말해 주기 어려워. 8대 세가가 날 적으로 돌리는 것도 아주 가능성이 큰 일이야. 이런저런 일 때문에 8대 세가가 날 굴복시키려고 하고 있고, 난 그게 싫어서 마찰이 발생했어.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와 엮이지 말고 이곳을 어서 떠나.”

그는 잠깐 뜸을 들이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혈시당의 혈시들도 마찬가지야.”

도봉을 포함한 혈시들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우선이 말했다.

“예의 없게 한 말씀드리자면, 저희들을 너무 무시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공자를 주인으로 모셨으니 생사를 함께하고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혈시당은 충성의 대명사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죽어도 떠나지 않겠습니다.”

영구가 시원하게 말했다.

“죽더라도 양준 공자와 함께하겠습니다.”

혈시들이 일제히 입을 모았다.

“너희 뜻이 그렇다면 나도 더는 말리지 않을게. 더 얘기하면 너희에 대한 모욕이니까.”

양준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혈시당의 선배님들도 안 가는데 나도 당연히 안 가지.”

동경한이 웃으며 말했다.

“넌 내 사촌동생이잖아. 어떻게 형이 동생을 놔두고 그냥 갈 수 있겠어?”

“양준, 우린 네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야. 네가 어려울 때 떠나지 않아.”

한소칠은 가슴 아픈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양준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우리 문심궁도 떠나지 않을 거야.”

좌방도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준이 유명산에서 그의 목숨을 살려줬을 뿐만 아니라 하응상은 좌방의 사형 여심원을 위해 보천단(補天丹)을 만들어 주었다. 여심원은 그 단약을 먹고 지금 단전을 회복한 상태였다. 좌방은 양준에게 감격해 마지않는데 어찌 이럴 때 떠날 수 있겠는가?

“여기 오고 나서 실력도 빠르게 오르고, 단약과 비보가 넘쳐나는데 난 가기 싫어.”

방자기도 히죽 웃으며 말했다.

“못났다.”

호교아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야.”

방자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양준, 네가 강제로 내쫓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널 떠나지 않아.”

양준은 미소를 짓고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모두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니 양준도 더 뭐라고 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내쫓을 수는 없지 않는가?

양준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그래도 한마디만 해두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고 만약 여기 남는 게 불편하다면 언제든지 떠나도 좋습니다. 절대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됐어. 여기까지만 하자. 괜히 서로 감정 상할라.”

동경한은 상황을 수습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양준에게 물었다. 이번 일이 모든 사람의 이익에 연관되는 만큼, 양준도 숨기지 않고 양진과 장로전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만약영액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난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제야 양준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사공을 수련하고, 사파의 제자를 거두었으며, 사주와 같은 문파 출신이라서 8대 세가의 의심을 사고 있으니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계승 싸움에 다시 한번 변수가 나타났다.

양준 관저의 조력자였던 추억몽이 중도로 불려갔고, 곽성진은 가주가 직접 나서서 잡아다가 집에 가두었다. 그에 앞서 향씨 가문의 향천소도 양준 관저를 떠났다.

이와 동시에 전성은 양준이 사마와 결탁했다는 소문으로 떠들썩했다.

관저에 사파 능소각의 잔당과 귀왕곡의 제자가 모여 있다는 둥, 원래도 사공을 수련했는데 하마터면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다는 둥. 신유 경지로 진급할 때에는 전성에서 큰 소란을 피우며 봉신전 태상장로들에게 대들고 잔인하게 일등 세가의 후계자 두 명을 죽였다는 둥, 게다가 사주와 같은 문파 출신이라는 등등의 이야기였다.

갖가지 소문들이 난무하자, 사람들은 온갖 추측을 다 하게 되었다. 심지어 양씨 가문에서 양준의 계승 싸움 참여 자격을 취소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전성 전체가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계승 싸움은 파란만장해졌고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