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29화 (529/853)

제 529장. 우리 둘 다 타협했네

여론이 들끓으면서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이 소식은 전성 전체와 중도에까지 퍼졌다. 모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양준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던 사람들도 태도를 바꾸었다.

억지로 떠난 추억몽과 곽성진도 여론의 주인공이 되었다. 두 사람은 양준의 사악한 본질을 알아차리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어 양준을 버리고 떠난 것이라고 전해졌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이 시기에 양준 관저를 절대 떠났을 리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소문이 퍼지자, 성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다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양준을 위해 일을 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고, 양준의 행동과 태도에 깊은 실망을 느꼈다.

*양위 관저.

양준이 신유 경지로 오른 다음부터 양위 관저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모든 세력의 무인들은 수련에 몰두할 뿐, 계승 싸움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공자 양위도 계승 싸움에 이길 자신이 없어 하는데 의탁하러 온 무인들이 무슨 수가 있겠는가? 그저 개인의 실력을 쌓다가 계승 싸움이 끝나면 전성을 떠날 생각들이었다.

이때, 조용한 관저에 갑자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 사람은 양위의 방문 앞에 이르러 문도 두드리지 않고 들어가면서 다급히 외쳤다.

“대공자! 대공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양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흥분한 얼굴의 맹선의를 바라보며 기다란 눈썹을 치켜세우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선의, 그리 허둥대지 말라고 제가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매번 이러시네요.”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은 좀 다릅니다.”

맹선의는 좋은 일이 생긴 듯,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에는 수심도 끼어 있어 복잡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양위는 그동안 줄곧 폐관하느라 밖의 소문에 대해 알지 못했다. 물론, 전성의 소식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양준이 곧 탈락할 것 같습니다.”

양위는 안색이 차가워지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헛소문은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헛소문이 아닙니다.”

맹선의는 고개를 젓고 엄숙한 얼굴로 성안에서 발생한 일들을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는 양위의 표정도 미묘해졌다. 추억몽과 곽성진이 양준 관저를 떠날 거라고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성의 여론도 매우 거셌는데 누군가 부채질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배후의 인물이 누군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8대 가문 말고는 이런 수단으로 여론의 동향을 좌지우지할 사람이 없었다. 양준이 이토록 8대 세가의 중시를 받을 줄이야.

양위는 왠지 위화감이 느껴졌다. 설령 양준에게 사주의 잠재력이 보인다 해도 8대 세가의 신분과 지위로 이렇게 요란하게 후배를 핍박할 리가 없었다.

‘도대체 왜지? 무슨 연유로 이렇게 하는 거지? 먼저 여론을 들쑤셨으니 막내가 명분 싸움에서는 불리한 입장이야. 그렇다면…….’

양위는 문득 무슨 큰일을 떠올렸는지 안색이 굳어졌다.

“대공자, 그리고 말씀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맹선의는 미간을 찌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무엇입니까?”

“맹씨 가문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저희더러 둘째 공자와 힘을 합쳐… 양준을 탈락시키라고 합니다.”

맹선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맹씨 가문에서 말입니까?’

양위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양씨 가문의 반응은요?”

“서신을 들고 온 자가 말하길… 양씨 가문은 이 일에 끼어들지 않을 테니 부담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도 폐관 중에 서신을 받고 급히 전성의 소식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리고 전성의 상황을 파악한 뒤에야 양위에게 전하러 온 것이었다.

“둘째와 힘을 합치라니… 하하!”

양위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둘이 힘을 합쳐도 막내에게 맞서긴 어려울 텐데. 또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맹선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공자, 현명하십니다. 그자가 말하길, 저희는 그저 연합했다는 모습만 보여주면 되고, 나머지는 둘째 공자 쪽에서 처리한다고 했습니다.”

양위는 말없이 두 눈을 반짝였다.

“대공자……!”

맹선의는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이건 저희 맹씨 가문에서 온 요청이긴 하지만, 양씨 가문에서 묵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양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씨 가문의 묵인이 없었다면 맹씨 가문에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둘째 공자는 그날 이후로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고, 협력하던 이들이 대부분 떠나서 막내 공자의 상대가 안 될 겁니다.”

맹선의는 어두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서신을 들고 온 자는 둘째 공자가 막내 공자 세력을 집어삼킬 힘이 있다는 듯이 말을 하더군요……. 둘째 공자에게 무슨 힘이 있다는 겁니까?”

“8대 세가의 지원입니다!”

맹선의는 두려움에 찬 표정을 지었다. 양위가 그의 짐작을 툭 터놓고 말하자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공자…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차기 양씨 가문 가주의 후계자를 둘째 공자로 내정했다는 것입니까?”

지원 세력이 양위 관저가 아닌, 양소 관저에 갔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양씨 가문에서는 양소가 가주의 자리를 계승하길 바라니 지원 세력을 그쪽으로 보내 양준을 패배시키고 계승 싸움의 승리를 따내라는 것이었다.

양위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 문제는 그렇다 해도,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양씨 가문에서 그리 원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화나지 않습니까, 대공자?”

맹선의는 화가 치밀었다.

계승 싸움이 시작되어서부터 지금까지 승자는 단연 양준이었고, 가장 처참한 패자는 양소였다. 한 번 졌다고 의지를 잃은 사람이 어찌 양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이어받는다는 말인가? 성격으로 봤을 때도 양위가 더욱 어울렸다. 그런데 왜 양소 관저에 지원 세력을 보낸다는 말인가?

양위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왜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가주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막내도 같은 생각일 거고요.”

“어찌하여…….”

맹선의는 그만 멍해졌다. 양준은 계승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강한 기세를 보여 주었다.

“저와 막내, 둘 다 무도의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가주가 되면 겉보기엔 화려하나 실은 잡다한 일에 매여 있지요. 그렇게 되면 수련할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론, 막내가 계승 싸움에 참여한 결정적인 동기는 자신의 문파인 능소각의 이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아마 가주님과 협상을 했겠지요. 계승 싸움에서 승리하면 능소각에 붙은 사파라는 오명을 벗겨 주고 명예를 회복해 주겠다는 거래였을 겁니다.”

“고작 그것뿐입니까?”

맹선의는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권세와 이익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네, 그 이유가 전부입니다.”

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계승 싸움에 참여한 이유는 가문의 규칙에 따르면서 동시에 제 실력을 갈고닦기 위해서입니다. 가주 자리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맹선의는 침묵했다.

“가문에서 둘째를 지지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죠. 둘째는 감정 기복이 심하긴 하나, 가문의 실리를 추구하는 데에는 둘째가 훨씬 뛰어날 테니까요.”

양위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헌신이 보답을 받지 못하게 되어 실망하셨습니까?”

양위는 침묵하는 맹선의를 바라보았다.

맹선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대공자의 속마음을 들은 거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입니다. 대공자께서 가주가 될 마음이 없다고 하시니, 저도 제 마음가짐을 고쳐야겠지요.”

잠깐 숨을 고르고서 그는 또 물었다.

“그럼 둘째 공자께 협력하는 겁니까?”

양위가 웃으며 대답했다.

“맹씨 가문에서 전한 말이고, 8대 세가가 손잡았으며 양씨 가문에서 묵인한 요청을 제가 어찌 거부하겠습니까? 가서 얼굴만 비추고 와주십시오. 나중의 일은 더 이상 계승 싸움이 아닙니다.”

양준이 신유 경지를 돌파한 순간부터 계승 싸움은 이미 막을 내린 셈이었다. 그 뒤로는 계승 싸움이라는 명목으로 8대 세가에서 음모를 펼치는 무대였다.

“알겠습니다.”

맹선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나갔다. 그는 양소 관저로 가서 그곳의 사람과 연락을 취할 생각이었다.

맹선의가 떠난 뒤에야 양위의 표정은 숙연해졌다. 그는 한참 생각했지만 막내가 왜 이 정도로 저격을 당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막내에 대한 애잔한 마음만 커졌다.

*같은 시각, 양소 관저.

많은 고수들이 빠른 속도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두 계승 싸움에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이들로 오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달려왔다.

양소 관저에 있던 무인들은 이 사람들을 보고 하나같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 대부분이 신유 경지 9단계의 고수거나 7, 8단계 고수였기 때문이다.

모두 일곱 대열의 사람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인원 구성이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눈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이 어디 출신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중도 8대 세가 출신이었다. 양씨 가문을 제외한 7대 가문에서 모두 사람을 보내온 것이었다.

이들 중, 남녀 한 쌍이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 서로의 눈빛에 어린 무기력감과 고통을 읽을 수 있었다.

한참 뒤, 남자는 천천히 여인의 곁으로 다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조용한 구석을 찾아 고수들이 잔뜩 모여든 광경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곽성진과 추억몽이었다.

아침에 전성을 떠난 그들은 밤이 되자 또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반나절 사이에 둘은 양준의 동맹에서 양소의 동맹으로 변했다. 두 사람의 재빠른 신분의 변화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너희 아버지는 너한테 무슨 조건을 걸었어?”

곽성진은 고개를 돌리고 추억몽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인이라고 좌절됐던 추씨 가문의 가업을 계승하는 조건!”

추억몽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축하해. 네가 계속 바라던 거 아니야?”

곽성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

추억몽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망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너는?”

“안 오면 곽씨 가문에서 추방시키겠대. 앞으로 가문에 발도 들이지 말래……. 늙은이가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난 어쩔 수 없거든.”

곽성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둘 다 타협했네.”

“그러게.”

둘은 서로 마주 보더니 하찮다는 표정으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넌 참 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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