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31화 (531/853)

제 531장. 제 뜻을 따라주셔야 해요

“내가 비록 모략에 능한 사람이지만 이런 불명예스러운 방법으로 막내와 싸우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겁니다! 계승 싸움에서 막내와 힘과 지혜를 겨루었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결국 난 졌고 아무런 미련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날 평가할 자격 따윈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한 번만 더 지껄인다면 일등 세력의 낭자 중 계승 싸움에서 죽은 첫 번째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습니다. 막내가 했던 일을 나라고 못할 것 같습니까? 난 그 애보다 훨씬 더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엽신유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곧 공포와 놀라움이 차올랐다. 그녀는 양소의 눈을 바라보고 정말로 겁에 질렸다. 양소는 결코 협박하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또 함부로 말해 그의 화를 돋우면 정말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엽신유는 바로 빌었다. 여인으로서 그녀는 이런 걸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양소는 콧방귀를 뀌더니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들이 제 관저에 와 있는 건 그저 제 이름을 빌리기 위함이겠지요. 제가 아니면 큰형님을 찾아갈 테고. 양씨 가문에서 허락한 일이니 저도 반항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저들을 이끌고 막내를 치러 갈 거란 생각은 버리세요. 이제부터 관저의 모든 대소사는 당신이 직접 처리하십시오.”

아직도 겁에 질려 있던 엽신유는 이 말을 듣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둘째 공자……!”

“이 관저는 이제부터 당신 겁니다. 7대 세가의 고수들도 전부 당신이 맡아서 지휘하십시오. 당신은 권력을 쫓는 여인이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뜻이 맞지 않았다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일도 없었겠지요. 지금이 당신이 나설 기회입니다.”

엽신유는 양소의 말에 담긴 조소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하죠?”

“설명이 왜 필요합니까? 제 이름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요! 낭자가 알아서 해명하세요.”

엽신유는 꽃처럼 활짝 웃으며 애교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공자께서 비록 싸움에서는 패했으나 마음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이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경지를 돌파하기 위해 폐관 수련에 들어가셨다고 말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양소는 냉소하며 말했다.

“그 정도 구실이면 제 체면을 살리는 데 충분하군요. 낭자에게 감사해야겠습니다.”

“같은 식구인데 감사라니요.”

엽신유는 양소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저는 그저 공자께서 훗날 가주가 되시는 날에 저희 엽씨 가문의 뒤를 봐주시길 바랄 뿐이에요.”

“우선 막내의 손에서 살아남고 보시죠.”

엽신유는 흠칫 놀랐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갑자기 두려움이 서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침착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밖에 모인 이들이면 양준도 어찌할 도리가 없겠죠?”

양소는 눈을 꼭 감은 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엽신유는 사뿐사뿐 물러났다. 방 밖으로 나간 그녀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깊은 밤, 둥근 달만 외로이 떠 있었다.

엽신유는 즐겁게 까르르 웃고 다시 고개를 돌려 양소의 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가소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양소가 이런 결정을 내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미 지휘권을 넘겨받았으니 그녀는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리라 결심했다.

엽신유는 흥분한 얼굴로 깔깔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7대 세가의 통솔자들이 편전에 모이게 되었다.

엽신유는 상석에 앉아 있었고, 아래쪽에 앉은 류경요, 강참, 고양풍, 추억몽, 곽성진, 맹선의가 복잡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엽신유는 불안한 표정 없이 덤덤한 얼굴로 자세를 뽐냈다. 그녀는 아래쪽을 훑어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맹 공자, 대공자께선 안 오셨어요?”

이름이 불린 맹선의는 온몸에 닭살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공자께선 새로운 경지에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아 폐관 수련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번 일은 제가 대공자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처리할 예정입니다.”

엽신유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입을 막고 깔깔 웃었다.

“아, 그러시군요. 둘째 공자께서도 마침 폐관 수련에 들어가신 터라 한동안 나오지 못합니다. 양씨 가문 사람들은 참 재미있네요. 형제가 함께 경지를 돌파하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표정이 변했다.

곽성진이 물었다.

“엽 낭자, 둘째 공자가 자리를 비웠으면 누가 7대 세가 연합군의 지휘권을 잡는 겁니까? 설마 낭자는 아니겠죠?”

“네, 맞습니다.”

엽신유는 애교 섞인 말투로 대답하며 요염하게 자세를 바꾸었다.

“바로 접니다. 둘째 공자께서 폐관에서 나오시기 전까지는 제가 대소사를 돌보기로 했어요. 여기 모인 분 모두 제 뜻을 따라주셔야 해요.”

이에 다른 여섯 명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설마 제 능력을 의심이라도 하시는 건가요?”

엽신유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더니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그게 아닙니다.”

강참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큰일을 둘째 공자께서 나서지 않고 엽 낭자에게 말만 전해 달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는 모두 가문의 명령에 따라 둘째 공자를 돕기 위해 온 것이니까요.”

“제가 거짓을 말씀드린다고 생각하시나요?”

엽신유는 가볍게 웃었다.

“전 그럴 용기가 없어요. 믿지 못하겠으면 둘째 공자께 여쭤 보세요. 아직 저택에 계실 테니까요.”

강참은 미간을 찌푸렸다.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더는 뭐라고 말하기 난처했다. 엽신유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양소의 허락을 받은 게 분명했다.

곽성진이 말했다.

“둘째 공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무방하나, 엽 낭자가 모두를 이끌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호오? 그러면 곽 공자께서는 누가 이끌면 사람들이 수긍할 거 같나요?”

동시에 그녀는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추억몽을 바라보았다. 추억몽은 아무 표정 없이 덤덤한 얼굴이었다. 엽신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추억몽에게 몰렸다.

양소 관저를 통솔하는 데 엽신유보다 추억몽이 더 적합했다. 그녀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다. 다만 오늘 아침에 양준 관저를 떠난 추억몽이 지금 양소 관저를 맡는 것은 적합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7대 세가의 고수들 역시 그녀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추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엽신유는 시위하듯, 추억몽을 바라보았다.

엽신유가 콕 찍어 물어보자 추억몽도 침묵을 지킬 수 없어 덤덤하게 말했다.

“난 동생이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언니가 그리 말씀해 주시니 큰 힘이 되네요.”

엽신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곽성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추억몽이 전혀 반박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어도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엽신유의 모습을 보니 뜻을 이룬 소인배 같았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 여인이지만 곽성진은 엽신유에게 좋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도 ‘중도의 늑대’ 곽성진이 처음으로 싫어하는 미인일 것이다.

“그럼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죠.”

엽신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말 두어 마디로 양소 관저의 지휘권을 확고하게 거머쥔 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러분이 각자 가문의 명에 따라 여기에 모인 이유는 오만불손한 양준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실패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다들 잘 알고 계시겠죠. 지금 우리의 실력은 양준 관저보다 강합니다. 조건도 충분히 갖추었고요. 어떻게 해야 최소한의 손실로 양준 관저의 방어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각자 갖고 계신 생각을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직 어려서 여기 계신 분들의 고견이 필요하답니다.”

엽신유는 아름다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기다렸다.

류경요는 줄곧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강참과 고양풍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얼굴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의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곽성진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추억몽은 서글픈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맹선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고 있었다.

여섯 명은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달랐지만 누구도 입을 떼고 말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엽신유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다들 별다른 계략이 없으신 것 같네요. 그렇다면 제 의견을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사람들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관저에 7대 세가의 고수들이 모여 있고 절정 고수들도 많아 압도적인 우세와 실력을 갖추었지만 양준 관저의 세력은 여전히 무시 못 할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쪽에는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도 있지요. 사파의 장문인 능태허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계승 싸움인지라 능태허가 나설 리는 없을 겁니다. 혈시들도 양씨 가문의 규칙 때문에 계승 싸움에서는 두 명밖에 나설 수 없을 테고요. 하지만 양준에게는 사마 고수도 한 명 있는 데다가 다른 신유 경지 정상의 호위도 있는데… 이 몇몇이 가장 큰 골칫거리예요. 만약 정면으로 공격하면 불필요한 피해가 발생하겠지요. 양준 관저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면 안 돼요. 그들은 종종 우리가 놀랄 만한 행동을 했으니까요. 이 점은 곽 공자와 추 언니가 저희보다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해요.”

곽성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묻지 마세요.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전 양준 관저에 있을 때, 미인을 안는 것 말고 다른 걸 한 적이 없습니다. 그의 저택에는 미인이 참 많았지요…….”

엽신유는 생긋 웃더니 말했다.

“곽 공자, 겸손하시기는요. 다들 지금 곽 공자의 실력이 크게 오른 것을 알고 있어요. 심지어 고 공자도 상대가 되지 못하는걸요.”

이에 고양풍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속으로 엽신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날 양준이 야밤에 양항 관저를 공격할 때, 그는 곽성진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이는 그의 평생 수치로, 그동안 열심히 수련하며 체면을 되찾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엽신유가 이 얘기를 꺼내자 그는 화가 치밀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본론을 얘기해 주십시오.”

엽신유는 살짝 웃더니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고 공자, 신경 쓰지 마세요. 다른 뜻 없이 그냥 한 말이니 사과드릴게요.”

엽신유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저희는 양준의 허를 찌를 수 있는 복병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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