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6장. 류경요와 다시 싸우다
‘그래, 몽무애라는 고수는?’
싸움이 시작되고 나서 지금까지 그는 나선 적이 없었다. 시답지 않아서 나서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없는 것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변수가 많아지는 법이지.”
강참은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지난번에 양준이 그를 찌른 것에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인지, 양준 얘기가 나올 때마다 움찔거렸다.
고양풍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계승 싸움에 참여한 몇 달 동안 그도 양소를 따라 양준과 여러 번 겨루어 봤었다. 그때마다 양준 관저의 사람들은 예상을 뛰어넘으며 상상할 수도 없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번에도 7대 세가의 전력으로 볼 때 양준 관저를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 또 무슨 변수가 생길지 어떻게 아는가?
양준 관저에서는 이미 기적이 여러 번 나타났었다.
“저도 도우러 가겠습니다!”
곽성진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렇게 말하고 엽신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뛰쳐나갔다.
엽신유는 눈을 반짝이더니 코웃음을 치고는 막지 않았다.
“나도 이만 양준 공자를 만나 보러 가보겠습니다.”
류경요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러자 엽신유는 침착함을 버리고 다급히 말했다.
“류 공자, 안 됩니다. 당신은 그자의…….”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그녀는 류경요의 차가운 시선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7대 세가 연합군의 책임자로, 양소의 명의를 내세워 독단 행동을 하며 강참이나 고양풍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류경요를 대할 때만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이는 오랫동안 중도에서 살면서 제일 공자라는 인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혔기 때문일 것이다.
엽신유는 류경요가 양준의 상대가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그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게 뻔했다.
“파경호 비보 쟁탈전에서 양준 공자가 신유 경지에 올랐을 때 다시 제대로 싸워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날 막는 자는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류경요는 덤덤하게 말했다.
엽신유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당부했다.
“그럼 조심하시고 꼭 이기세요. 양준의 콧대를 제대로 눌러 놔요.”
곽성진은 이미 양준 관저의 밖에 도착해서 웃는 얼굴로 젊은 통솔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은 화난 눈빛으로 곽성진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오늘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곽성진의 곽씨 가문도 오늘밤 양준 관저의 공격에 참여했으니 미움을 받는 것도 당연했다.
곽성진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동경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뚱땡이, 너 나와. 처음부터 네가 맘에 안 들었어. 살은 뒤룩뒤룩 쪄 가지고 꾸민다고 열심히 꾸민 꼬라지가 겨우 그거냐?”
“뭐라고?”
동경한은 차가운 얼굴로 곽성진을 노려보았다.
“다 들었으면서 못 들은 척하지 마.”
곽성진은 고개를 까닥거리며 건방진 자세로 말했다.
동경한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의 살찐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곧이어 그는 주먹을 꺾으며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래, 그렇지.”
곽성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일등 세가의 공자가 양준 같은 놈과 한통속이라니. 내가 오늘 본때를 보여 주겠다!”
말을 마친 그는 또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비꼬았다.
“이 멍청이들아, 요절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양준을 떠나란 말이야! 최대한 멀리!”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싫어? 싫으면 덤벼! 다 받아줄 테니까!”
곽성진은 냉소하였다.
한소칠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저 버릇없는 공자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우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해주자.”
곧 열몇 명이 뛰쳐나와 곽성진에게 달려들더니 그를 흠씬 두들겨 팼다.
잠시 뒤, 곽성진은 죽은 돼지처럼 동경한의 손에 들린 채, 양준 관저에 던져졌다. 동경한은 부하에게 소리쳤다.
“지하실에 처박아 두어라. 감히 날 뚱땡이라고 놀려?”
이 장면을 본 고양풍과 강참의 표정이 구겨졌다. 왠지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곽 공자가 사로잡혔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맹선의가 웃으며 물었다.
“연기가 엉망이네요.”
엽신유는 코웃음을 치며 신경 쓰지 않았다. 곽씨 가문의 고수가 남아 있는 이상, 곽성진은 없어도 되었다.
곽성진이 사로잡힐 때쯤, 류경요가 양준을 찾아갔다.
“지난번 파경호에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니 오늘 다시 양준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
류경요는 덤덤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제가 시간이 없으니 빨리 끝내죠.”
류경요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온몸의 기운이 폭발하며 진원이 세차게 솟구쳤다.
그는 가볍게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곧이어 쿵, 하는 소리가 천지간에 울렸다.
류씨 가문의 구곡보였다.
지난번 파경호에서 류경요는 이 초식으로 양준과 접전을 벌였다. 이는 류씨 가문의 비전 공법으로 현급 중품 공법이었다. 또 류경요의 필살기이기도 했다.
이번은 저번과 달랐다. 지난번에는 경지의 절대적인 차이 때문에 류경요는 여지를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전력을 다했다. 그의 기세는 파경호에서보다 훨씬 강했다.
쿠웅-
또 한 걸음 내딛자 북소리가 쿵쿵 울리는 듯했다. 사람들은 귀청이 먹먹하고 온몸이 떨렸다.
쿵쿵쿵-
류경요의 모습은 점점 더 커지고 웅장해졌다.
아홉 번째 걸음을 내디뎠을 때, 류경요는 이미 커다란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의 머리는 하늘에 닿았고, 마치 하늘을 짊어진 거인처럼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이것이 바로 아홉 걸음에 천지가 멸한다는 류씨 가문의 구곡보였다.
류경요의 기세는 이미 최정상에 올랐다. 신유 경지 정상의 무인과 비해도 크게 손색이 없었다.
커다란 발은 단호하게 양준의 머리를 내리누르려고 했다.
모든 이들은 커다란 발이 자신을 밟으면 가루가 될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무인들은 저도 모르게 창백한 얼굴로 몸을 덜덜 떨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공격을 양준은 맨주먹으로 부수었다. 평범하게 쭉 뻗은 주먹에는 크나큰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주먹이 큰 발을 찌르는 순간, 수많은 주먹의 그림자가 반짝거리는 듯했다.
이내 류경요의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거인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뒤로 벌렁 넘어졌다.
쿠웅-
거인이 뒤로 넘어져 빛으로 흩어졌다. 공중에 떠 있던 류경요는 신음을 흘리며 피를 왈칵 토했다. 그는 가슴을 움켜쥔 채로 뒤로 물러나서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서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류경요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제가 졌습니다. 손속에 자비를 둬 감사합니다!”
지난번 파경호에서 류경요가 이 초식을 사용할 때, 양준은 같은 현급 무공인 성흔으로 대적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그저 가볍게 맨주먹으로 류씨 가문의 비전 공법을 파훼했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별말씀을요.”
양준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졌으나 이번 일은 제 의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전 그냥 이번 싸움에 제가 끼어들지 않겠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이만 자리를 뜨겠습니다.”
류경요는 곧 번개처럼 밤하늘에서 사라졌다.
“공자, 공자!”
류씨 가문의 고수들은 류경요가 이렇게 가버린 것을 보고 크게 당황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엽신유는 안색이 시퍼래졌다.
짧은 한 시진 만에 세 명이나 대열에서 물러났던 것이다.
추억몽이 물러난 것은 그녀가 자초한 일이었다. 그녀가 꾸민 일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곽성진이 물러날 때, 그녀는 말리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곽성진은 몸만 이곳에 있었지, 마음은 양준 관저에 가 있어서 남겨 두어도 쓸데가 없었다. 그럴 바에는 거슬리지 않게 떠나는 게 나았다.
하지만 류경요마저 이렇게 가버리자, 엽신유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류경요는 중도 제일 공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존재는 많은 것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예하면 여론 같은 것이었다.
류경요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위망이 높은 편이었다. 엽신유가 어찌 화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그녀의 옆에는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남아 있는 강참, 고양풍, 맹선의가 자신과 같은 마음인지 그녀도 판단할 수 없었다. 강참과 고양풍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맹선의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여러분은 자리를 지켜주실 거죠?”
엽신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7대 세가에서 분부한 일인데 저희가 어찌 함부로 자리를 뜨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너무 무책임한 것입니다.”
고양풍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들도 양준의 현재 처지를 동정했으나 양준과 친하지 않아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가문의 뜻에 따르면 그만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자, 엽신유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안심이네요. 이런 큰일은 저 혼자 감당하기 힘드네요. 여기 계신 공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양소 관저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자세를 낮추었다.
추억몽, 곽성진, 류경요가 연이어 떠나자 세 가문 고수들의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문의 공자와 낭자가 없는데 남을 위해 헛고생을 하는 느낌이 들어 싸울 때에 저도 모르게 힘을 빼게 되었다. 최대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다. 다른 것은 나중에 다시 생각하면 되었다.
특히 추씨 가문의 고수들은 맨 처음에 앞장섰다가 손실이 가장 막대한데 지금 누가 전력으로 덤비겠는가? 지원군이 온 다음부터 그들은 옆에서 거들기나 할 뿐, 적과 정면으로 싸우지 않았다.
7대 세가의 연합군은 겉보기엔 한데 뭉친 것 같으나 사실 곳곳에 허점이 가득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