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37화 (537/853)

제 537장. 그만!

치열한 접전은 계속되었다.

7대 세가 연합군의 손실은 점점 더 커졌다. 패혈광술을 펼친 아홉 명의 혈시들은 그들이 양준 관저를 공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매번 끈질기게 공격했지만 아홉 명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혈시 아홉 명은 두 사람이 한 조로 묶어 한 가문 전체의 무인들을 상대했다. 영구는 홀로 남아 수시로 양준의 곁을 지키며 그에게 접근하려는 적들을 처리했다.

엽신유와 고양풍 일행의 안색이 변했다.

패혈광술로 무장한 혈시들이 버티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바로는 양씨 가문 혈시의 이 초식은 금기된 것으로, 반 시진밖에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 시진이 진작 지났음에도 혈시들은 여전히 기운이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 용맹하게 싸웠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양씨 가문이 8대 세가의 첫 자리를 차지하며 무너지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대형 세력 출신의 고수지만 7대 세가 연합군은 혈시들을 상대로 어찌하지 못했다.

양준도 전쟁터에서 수시로 상황을 살폈다.

혈시 아홉 명이 더없이 용맹하고 지마도 강하다고는 하나, 저택의 신유 경지 고수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이들이 줄어들면 전쟁의 판이 뒤바뀔 수도 있었다.

능태허와 몽무애가 나서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나선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전성에 절정 고수가 두 사람밖에 없는 건 아니었다.

양준도 두 사람이 지금 나서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위협적인 존재로 남는 것이 더 적합했다.

이번 전투는 최후의 결과가 어찌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이때, 새하얀 그림자가 옆쪽에서 번쩍했다. 양준은 익숙하고 친밀한 기운을 느끼고 얼른 뒤로 물러서며 그녀와 합류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소안이 이미 달려나와 있었다.

“추억몽은 괜찮아졌어. 지금 쉬는 중이야.”

소안이 가볍게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줄게.”

“좋아요!”

소안은 본래 이번 전투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인원이 너무 많고 기세가 높았다. 게다가 양준이 더는 계승 싸움이 아니라고 확실히 못을 박자, 그녀는 더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추억몽이 무사한 것을 보고 얼른 달려 나온 것이었다.

능소각의 4대 장로도 그녀와 함께 나왔다. 그들도 실력이 나쁘지 않아 전투에 투입된 뒤,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소안이 현급 중품의 거울 비보를 꺼냈다. 뼈를 찌르는 듯한 한기가 순식간에 퍼지더니 진원이 안으로 주입되면서 새하얀 산봉우리들이 거울에 어렴풋이 나타났다. 거울 속의 세상은 얼음에 뒤덮인, 한기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빛이 피어오르자 거대한 결계가 드리워졌고, 7대 세가의 열몇 명 되는 고수들이 결계에 갇혔다.

강참은 눈동자를 떨며 놀라서 소리쳤다.

“저 비보는!”

열 며칠 전에 강씨, 추씨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 네 명이 바로 이 비보에 갇혀 얼음 조각이 되었었다. 오늘 다시 이 광경을 보자 강참은 겁에 질렸다.

“저 비보는 무슨 특별한 효능이라도 있나요?”

엽신유가 다급히 물었다.

강참은 어두운 얼굴로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의 말을 들은 엽신유는 안색이 변했다. 옆에 있던 고양풍과 맹선의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강한 비보를 어떻게 막아 낸다는 말인가?

말하는 사이, 대지를 뒤덮고 있던 결계가 부서지며 안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예상한 대로 양준과 소안이었다.

결계에 갇힌 고수들은 모두 얼음 조각으로 변해 조용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갖가지 해괴망측한 자세를 취한 그들은 죽기보다 더 힘들 터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몇 분의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금방 열몇 명의 고수들을 처리한 소안은 또다시 거울에 진원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엽신유 일행은 겁에 질린 얼굴로 좀 전처럼 결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열 명이 넘게 갇히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엽신유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저런 비보는 많은 진원을 소모해서 연속으로 두 번 사용할 수 없을 텐데!”

물론 소안의 능력으로도 연속 두 번 사용하는 것은 무리였다. 만약 정말 그렇게 해서 진원을 소진한다면 적을 가두어 두어도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결계 안에서 적에게 사로잡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양준이 있었다. 두 사람은 음양합환공을 수련했다. 진원이 서로의 몸에서 끊임없이 순환했기에 소안은 이 정도의 소모를 감당할 수 있었다.

엽신유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현급 비보 하나로 양준과 소안은 대다수의 적들을 처리했다. 만약 소안이 이런 결계를 몇 번 더 친다면 그녀의 옆에는 몇 사람이 남아 있겠는가?

당황하는 동안, 결계가 두 번째로 부숴지며 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얼음 조각으로 변했다.

촤락-

빛이 다시 한번 피어오르며 미처 피하지 못한 7대 세가의 고수들은 세 번째로 거울의 결계에 갇히고 말았다.

엽신유는 당황해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무기력한 기분을 느꼈다. 문득 양소가 그리웠다. 그의 지혜와 수단으로 이 초식을 막을 방법을 생각해 냈을 수도 있을 테니까.

이 초식은 단조로웠지만 효과가 매우 강했다. 적어도 7대 세가 연합군에게는 그러했다.

“그만!”

호통소리가 공중에서 울려 퍼졌다. 큰 위엄을 담은 목소리에 사람들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사람들 위에 드리웠다. 압박감의 근원으로 시선을 돌리니 허공에 진짜인 듯, 가짜 같은 커다란 수인(手印)이 나타나 있었다.

수인은 소안이 비보로 만든 결계를 향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쩡-

수인이 결계에 닿자, 땅이 뒤흔들고 모든 이들이 휘청거렸다.

촤르륵-

견고하던 결계가 깨진 거울처럼 산산조각 나며 안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양준과 소안은 동시에 신음을 흘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울 비보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었다. 양준이 흡수하고 소안이 사용했다. 비보의 결계가 억지로 파훼되자 두 사람 모두 타격을 입었다.

방금 전까지 결계에 갇혔던 고수들은 이 광경에 다시 살아난 것처럼 기쁜 얼굴로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그들은 얼음 조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엽신유의 얼굴에는 기쁜 표정이 드리웠다. 고양풍과 강참 일행도 입을 떡 벌린 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덟 명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났다. 봉신전의 태상장로들이었다. 그들은 소안과 양준을 바라보며 각각 다른 표정을 지었다. 놀라는 이도, 감탄하는 이도, 두려워하는 이도 있었다.

양준은 고개를 들고 싸늘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태상장로들이 나타난 것은 예상했던 일이지만, 놀라운 일이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이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방금 전의 거대한 수인은 그의 것이었다.

양준은 일부러 그를 눈여겨보았다. 전에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태상장로였다.

“할아버님!”

엽신유는 기쁜 얼굴로 그를 불렀다.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풍, 강참과 맹선의도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열 며칠 만에 태상장로들이 왜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몇 사람은 뭔가 짐작되는 게 있는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만약 7대 세가 연합군이 양준 관저를 무너뜨렸다면 이들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지금 7대 세가 연합군의 실력으로 양준 관저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는 엽신유가 지휘를 잘못한 탓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네 이놈!”

각진 얼굴의 엽씨 가문 태상장로가 엄숙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널 그 자리에서 폐인으로 만들지 않은 것은 네가 중도의 자제라는 것을 유념해서였다. 너한테 반성할 기회를 주었는데 반성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는구나. 부하들이 우리 7대 세가의 고수들을 죽이게 내버려 두다니. 반역이라도 꾀하는 것이냐?”

양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가슴속의 기혈을 가라앉힌 다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목에 칼을 들이미는데 얌전히 목을 내어주는 게 옳습니까? 맞서 싸우는 게 옳지 않습니까? 어르신께서는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네가 잘못한 게 없는데 7대 세가가 왜 널 이리 대하겠느냐? 너희 양씨 가문에서는 왜 널 모르는 척하겠느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말장난이나 하다니!”

“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양준은 싸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제가 나중에 사주 같은 사람이 될까 두려우셨다면 제가 계승 싸움을 포기하고 양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경쟁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어르신들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지요.”

“7대 세가는 너 같은 암적인 존재를 가만두지 않는다. 네 존재는 8대 세가의 오점이야.”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결국은 저에게 항복하라는 것이네요.”

양준은 냉소하였다.

“죄송하지만 제가 좀 모나서 무력이 통하지 않습니다. 만약 대화로 풀어 갔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걸 들어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리 나오시니 저도 끝까지 싸울 겁니다.”

“무엄하다!”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넌 그럴 자격이 없다. 오늘은 그 누구도 널 보호해 주지 않을 테니까!”

“이보시오, 나이가 몇인데 까마득한 어린 후배에게 그리 힘을 쓰는 것입니까?”

갑자기 어디선가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양준 관저에서 그림자 두 개가 날아왔다. 몽무애와 능태허였다.

몽무애는 덤덤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어린 아이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어떨지요?”

“몽무애!”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몽무애를 노려보았다. 표정 변화가 없는 걸 보니 그와 능태허가 나타날 것을 예상한 듯했다.

“당신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 정도로는 우리 7대 세가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 양준이 신유 경지에 오를 때도 태상장로들이 나타났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은 양준을 건드리지 않았다. 일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도 아니었고, 양준도 아직 그들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때문에 굳이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양준의 옆에 몽무애와 능태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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