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9장. 3전 3패
지금 이 순간 자그마한 전성에 신유 경지 이상, 절정 고수가 열한 명이나 모이게 되었다. 상황은 쌍방의 예상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도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전투태세를 다 갖췄는데 물러서는 쪽이 나약하고 비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능태허가 몰래 양준에게 전음으로 조심하라고 전했다.
양준은 잠자코 있다가 관저의 무인들이 전투에 말려들지 않게 한쪽으로 피신시켰다. 동시에 엽신유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잠깐 사이에 장내는 구분이 확연해졌다.
하늘에서는 열한 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양준 관저의 무인들과 7대 세가의 연합군들이 백 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긴장한 나머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정말 붙어 보겠다는 것입니까?”
몽무애는 맞은편 여덟 명의 눈에서 싸우려는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한번 붙어 봅시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전에 양준에게 호감을 보이던 이로 이런 갈등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대로 안 되는 세상사라 그 역시 어쩔 수 없었다. 태상장로는 8대 세가의 이익에 따라야 하므로 아무리 양준을 좋게 본다고 해도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어떻게 싸울 겁니까? 단체전, 개인전 아니면 파상 공격? 원하는 방식이 있다면 우리 셋이 따르도록 하지요.”
몽무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는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여덟 명 중 몇몇은 저도 모르게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불쾌해했다. 자신들을 너무나 무시하는 몽무애의 말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
“자신감이 대단하십니다.”
그들은 모두 신유 경지 이상으로 신분과 지위가 있기에 평소에 남들과 겨루지 않았고, 그들과 겨룰 자격이 있는 자도 없었다. 오늘 전투는 피하기 어려운 듯하나, 만약 다 같이 달려들어 쪽수로 밀어붙인다면 나중에 소문이 밖으로 퍼졌을 때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단체전을 할 수 없으니, 개인전 아니면 파상 공격밖에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개인전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파상 공격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덟 명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몽무애의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양립정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우렁차게 말했다.
“능 장문인, 그대는 우리 양씨 가문과 인연이 깊구려. 양응봉, 양준 부자가 귀 문파 출신이지 않습니까. 그간 보살펴 줘서 고마웠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능 장문인과 실력을 한번 겨루고 싶습니다만.”
능태허가 빙그레 웃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나 또한 신유 경지를 돌파한 이후로 같은 경지의 인물과 싸워 본 적이 없으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구려. 손속에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곧이어 능태허와 양립정은 밤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이윽고 몇천 장 높이의 고공에서 강한 힘의 파동이 전해졌다. 심지어 폭죽처럼 팡팡 터지는 빛도 볼 수 있었다. 신유 경지 이상의 두 고수가 맞붙어 겨루는 모습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양 장로는 역시 성격이 급하군. 그럼 우리도 시작해 봅시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쓴웃음을 짓더니 형형한 눈빛으로 몽무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하는 한편, 신형이 번쩍하더니 푸른빛을 휘감고서 밤하늘로 사라졌다.
몽무애도 곧바로 따라갔다.
“마두야! 넌 나랑 한번 붙어 보자!”
또 누군가 앞으로 나서더니 지마를 가리키며 외쳤다.
지마가 낄낄 웃었다.
“능 장문인과 몽 씨가 이미 결투하러 올라갔으니, 나까지 자리를 비우면 주인을 지켜 줄 사람이 없잖아.”
지마에게 결투를 신청한 태상장로가 화난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그게 무슨 뜻이냐! 설마 우리가 이 기회에 어린 후배에게 해코지라도 할 거란 것이냐?”
“그럴 생각 아니었나?”
지마가 상대를 흘겨보며 비꼬았다.
태상장로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놈이……!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그런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 검은 속내를 누가 알까!”
지마는 앞서 말한 문제를 걱정해 끝까지 남아 있을 것처럼 굴었다.
지마가 도전에 응하지 않자 태상장로는 얼굴이 시퍼레졌다. 나머지 몇 명도 마찬가지로 얼굴빛이 흐려져 지마를 노려보았고, 진원이 꿈틀거렸다.
“그래, 좋다. 네놈들이 공정하게 승부를 볼 거라고 믿어 주지. 설마하니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인에게 해코지할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야.”
지마는 그들의 신분과 지위로 보아 그런 짓까지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경계심을 늦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정말 도전에 응하지 않으면 갈등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마는 어쩔 수 없이 맞서서 싸우기로 했다.
“주인, 방심하지 말고 조심하시게.”
지마는 양준에게 나지막하게 당부하고는 핏빛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올라와.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방금 전 지마에게 도전했던 태상장로가 급히 따라 올라갔다.
신유 경지 이상 여섯 명이 몇천 장 높이의 공중에서 접전을 벌였다. 모든 이가 목을 쑥 빼들고 뚫어지게 올려다보았다. 모두 실력이 낮은 편이 아니고, 시력도 일반인보다 좋은 편이지만 볼 수 있는 것은 별반 없었다.
양준은 어둠 속에서 현묘함과 신비함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뿐이었다. 그것들은 하늘에 있는 여섯 명의 각자 무도, 천도(天道)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었다. 만약 이것들을 받아들여 본인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무인에게 있어서나 모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양준은 뚫어지게 지켜보면서 묵묵히 그 신기함과 현묘함을 뇌리에 새겼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들을 온전히 통찰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렸다.
전투가 치열해짐에 따라 하늘은 대낮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빛이 반짝이는 하늘에서 사람들은 그림자가 날아다니는 것만 볼 수 있을 뿐, 어떻게 출수하는지, 어떤 초식을 펼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영리한 이들은 몰래 8대 세가의 남아 있는 고수들의 얼굴빛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이 살짝 긴장하고 무기력한 것을 보고 금세 하늘 위 전투에서 8대 세가가 열세에 처했음을 눈치챘다.
이에 적지 않은 이들이 깜짝 놀랐다.
봉신전의 여덟 명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양준 관저의 세 명과 비했을 때, 수준 차이가 많이 났다.
신유 경지 이상은 비밀의 경지로 본인이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한 이상, 누구도 그 비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도봉과 같은 혈시들도 신유 경지 이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8대 세가의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들이 열세에 처한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양준 관저의 세 명이 보여 준 실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몽무애와 지마는 분명 방금 전에 서로 다른 방법으로 신유 경지 이상에 올랐다. 그리고 능태허도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른 지 일 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세 사람이 8대 세가의 절정 고수들보다 더 강했다.
8대 세가 절정 고수들은 적어도 50년 전에 신유 경지 이상에 올랐다. 50년간 수련한 이들이 한순간에 경지를 돌파한 이들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신유 경지 이상은 도대체 어떤 경지일까?
사람들이 놀라움과 의문에 싸여 있는 가운데, 한 곳에서 이미 승부가 갈렸다.
잠시 뒤, 두 그림자가 내려왔다. 몽무애와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였다.
몽무애는 여유 있는 표정인 반면,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안색이 창백했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내키지 않았지만 몽무애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한 수 배웠습니다.”
“별말씀을.”
몽무애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둘 다 겉보기에는 상처를 입거나 싸운 흔적이 없었다. 이는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잠시 뒤, 능태허와 양립정이 내려왔다. 둘 다 숨을 헐떡이며 서로 마주 보았다.
“대단한 실력 잘 봤습니다. 내가 졌구려!”
양립정은 한마디 하고 나서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몽무애도, 능태허도 모두 이겼다. 8대 세가의 태상장로들이 양준 관저의 두 사람보다 실력이 못했다. 하지만 아직 한 곳의 전투가 남아 있었다.
다들 고개를 들어 보려는데 공중에서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깊은 구덩이가 파였다. 한참 동안 먼지바람이 일었고, 먼지가 가라앉은 다음 그곳을 바라본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지마에게 도전했던 태상장로가 사색이 다 되어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발밑에는 떨어지면서 생겨난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고, 상처를 입었는지 입가에는 피가 흘렀다.
지마가 십몇 장 높이의 공중에 서서 자신의 적수를 내려다보며 잔인하게 웃었다.
“미안하네. 내가 힘 조절을 잘 못해서 말이야. 능 장문인이나 몽 씨처럼 손속에 자비를 두지 못했군.”
태상장로는 지마를 힐끗 올려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대열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 조식했다. 잠시 뒤, 그는 입을 벌려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기운을 토해 냈다. 그 기운은 사악하고 괴이쩍었는데, 지마가 그의 몸속에 주입한 것으로 보였다.
3전 3패였다.
장내는 소란스러워졌고, 모든 이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8대 세가 출신의 신유 경지 이상 고수들이 이처럼 보잘것없단 말인가? 그들은 이 세상에서 무도의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네놈들 표정을 보니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모양이네. 더 덤벼 봐! 다 쓰러질 때까지 상대해 주지!”
지마가 음산하게 웃었다.
겉으로는 지마가 도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8대 세가의 절정 고수들이 나선 이상, 끝을 봐야 했다. 세 명이 졌다고는 하나, 아직 다섯 명이 남아 있었다.
지마의 말이 끝나자 세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능태허는 탄식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몽무애와 마주 보고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신유 경지 이상 고수들 사이의 접전이 다시 벌어졌다. 지금에 이르러 7대 세가 연합군의 고수들은 가슴을 졸이며, 마음속으로 이번 세 명은 방금 전처럼 모두 패하지 않기를 빌었다. 지금까지 봉신전의 여덟 명은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대상으로, 만약 그들이 완패한다면 8대 세가의 명성은 크게 무너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