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40화 (540/853)

제 540장. 춘풍세우

7대 세가 연합군의 신유 경지 무인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하늘의 전투를 지켜봤다. 아직 싸움에 나서지 않은 신유 경지 이상 두 명도 마찬가지로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곽 장로, 몽 씨의 실력은 어땠는가?”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방금 전의 싸움을 시종일관 지켜보았다 하나, 그래도 직접 겪은 사람이 더 잘 알 듯했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가늘게 한숨을 내쉬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네.”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등골이 서늘해져 경악에 찬 눈빛으로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를 바라보았다.

“내가 졌다고 저 자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닐세.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신유 경지 이상을 그처럼 오랫동안 연구하고 무도와 천도에 나름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지만, 저런 사람은 난생처음 봤다니까. 혼자서 능히 우리 여덟을 이길 수 있는 자네.”

“그 정도라니?”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얼굴빛이 급변했다.

몽무애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곽씨 가문 태상장로의 평가는 너무나 높았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이라 절대 거짓일 리가 없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해 왔기에 서로의 성격을 꿰고 있었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부풀려서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저 마두의 실력도 다를 바 없다네……. 몽 씨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마찬가지로 우리가 상대할 만한 자가 아닐세.”

지마가 좀 전에 이긴 상대가 천천히 눈을 뜨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 생각에는 저들이 우리와 같은 경지가 아닌 것 같네…….”

“그게 무슨 뜻인가? 같은 경지가 아니라니?”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미간을 잔뜩 구기고서 몰래 자신과 몽무애를 비교해 보았다. 그는 어쩐지 몽무애가 구름 위에 서서 자신을 굽어보는 것만 같았고, 평생 수련해도 몽무애의 실력에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둘에 비하면 능태허가 그나마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일세. 그의 경지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사용하는 초식에서 몽 씨의 모습이 보이는구려. 아마 다년간 능소각에서 서로 무도를 연구하면서 몽무애에게서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은 것 같군. 두 번 정도 싸우면 기력이 다할 걸세.”

“두 번을 이긴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완패한다는 말이잖는가?”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상대는 세 명, 그들은 여덟 명. 설령 능태허가 두 번만 나선다고 해도, 몽무애와 지마의 실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모두 이길 수 있었다. 한 판이라도 이겼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욕심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가소로운 일이었다.

다섯 명은 모두 사색이 되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껏 그들은 봉신전에서 자리를 지키며 8대 세가의 태상장로로서, 신유 경지 이상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대상이었다. 때문에 세상에 자신들보다 실력이 나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늘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완패네. 그동안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였군…….”

양립정은 깊은 눈빛을 하고서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그 말은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았다.

“엽 장로. 몽 씨와 싸우든, 마두와 싸우든 부디 조심하시게! 몽무애는 그나마 손속에 여지를 두어 괜찮은데, 마두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네.”

지마에게 부상을 입은 태상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류 장로도 마찬가지일세. 그자가 사용하는 마기에 절대 당하면 안 되네……! 마기를 몰아내는 게 보통일이 아니군.”

말하는 사이, 그는 다시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얼른 운기 조식했다. 아직 채 회복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의 귀띔에 엽씨, 류씨 두 가문의 태상장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양준을 슬쩍 보았다.

그 순간, 양준은 하늘에서의 접전에 흠뻑 빠져, 그 가운데서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별안간 양준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에 그는 서둘러 경계했다. 옅은 한기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양준은 다시 미간을 찌푸리고 8대 세가 태상장로들 쪽을 바라보다가, 마침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와 눈이 마주쳤다.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무표정하게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공자님……! 무슨 일이세요?”

당우선이 양준의 얼굴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얼른 나지막하게 물었다.

“아니야. 내가 착각했나 봐.”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네.”

양준에게 별문제가 없는 것을 보고, 당우선은 더 캐묻지 않았다.

양준은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를 담담한 눈빛으로 힐끔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몸에서 별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방금 전의 위화감은 확실했다. 야수가 본능이 있듯이 무인도 본능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무인의 본능은 야수의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했다.

방금 전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분명 그를 공격하려 했거나 아니면 이미 그에게 무슨 수를 썼기 때문에 위화감이 들었을 것이다.

‘설마 정말로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나를 공략하겠다는 건가?’

양준은 음침한 얼굴빛을 하고서 냉소했다.

조금도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다.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가 정말 그에게 수를 썼다 해도 그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정상이었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눈을 감았다. 강한 신식으로 자신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았으나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곧이어 신식이 식해에 스며들었다. 그의 신혼 영체는 드넓은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식해는 고요했다. 바닷물에서는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즐겁게 노닐고, 하늘에서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물고기와 새들은 모두 그의 기억과 경험을 담고 있었다. 식해의 한가운데에는 오색의 섬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섬 위쪽에는 단검 한 자루와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동글납작한 물체가 떠 있었다.

오색 섬은 온신련이 변한 것이고, 단검은 신혼 비보이며, 동글납작한 물건은 검은 책 일곱 번째 장에서 얻은 보물이었다.

양준은 아직까지 그 물건의 쓰임새를 알 수 없었다. 검은 책에서 얻고 나서부터 그 물건은 양준의 식해에 자리를 잡고서 실력에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에게 어떤 나쁜 점도 없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식해 안의 경치는 마치 선경처럼 아름다웠다.

‘이상한 점은 없는데 괜한 걱정을 한 건가?’

양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지마는 이런 상황을 걱정해서 일부러 사전에 분명하게 말했었다. 상대방도 지마, 능태허, 몽무애가 없는 틈을 타서 그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모두 8대 세가의 조상뻘로 말에 무게감이 있었다.

양준은 싱긋 웃고서 자신의 식해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우뚝 멈췄다. 그의 눈동자에 한기가 스며들며 자신의 식해를 싸늘하게 지켜보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는 허허 웃었다.

“재미있군. 내 식해에서 비가 내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식해 안의 모든 것은 수련자의 감정 기복에 따라, 즐거울 때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햇빛이 눈부시고, 우울할 때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었다.

방금 전, 그는 자신의 감정 기복 때문에 보슬비가 내린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쩐지 미심쩍어서 스스로 통제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보슬비는 그와 전혀 연관이 없었다. 그와 연관이 없으므로 이는 남이 한 짓이 틀림없었다.

“당장 나와!”

양준의 고함소리와 함께 고요하던 식해에 몇십 장 높이의 파도가 솟구치더니 물줄기가 바다를 뚫고 나온 교룡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끊임없이 내리던 보슬비는 순간 멈칫하더니, 신식의 지속적인 충격에 곧 멈췄다.

실체 같기도 하고 그림자 같기도 한 형상이 양준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나 진중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일 줄 알고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씩이나 돼서 하신 말씀을 헌신짝처럼 저버리시는 겁니까?”

양준이 냉소하며 비꼬았다.

맞은편 형상은 바로 엽씨 가문 태상장로의 신혼 영체였다.

오늘 밤, 그는 양준 관저의 나타난 뒤부터 줄곧 양준과 양준 관저의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이에 양준은 자신이 왜 그에게 밉보였는지 의아했다. 그러다가 문득 엽신유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양준이 자신의 수단을 이렇게 빨리 간파할 줄을 몰랐는지 무척이나 놀란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단하구나! 신유 경지 2단계에 불과하면서 내 신혼기를 간파하다니. 내 춘풍세우(春風細雨)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거늘.”

춘풍세우는 기척 없이 잠입하는 신혼기로 엽씨 가문 태상장로의 필살기였다.

신유 경지 이상의 실력으로 양준에게 이 초식을 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초식은 양준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간파당했다. 이에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양준은 콧방귀를 뀌고는 차갑게 상대를 쏘아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식해는 어떻게 수련한 것이냐? 너 정도의 경지로는 분명 이렇게 순수하고 방대한 양의 신식을 갖고 있을 리가 만무하거늘. 나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신유 경지 정상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구나.”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겨우 그걸 물어보겠다고 제 식해에 몰래 들어온 겁니까?”

양준은 비웃음이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다가, 상대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이번에 나선 일로 체면이 크게 구겨졌으니, 저를 건드려서 어느 정도 만회하려는 겁니까?”

상대는 양준의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난 그저 네 경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싫으면 나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으마. 허나 내가 이곳에 들어온 진짜 이유는 네 비밀을 알고 싶어서다.”

“비밀이요? 다른 이들의 경지를 빠르게 끌어올린 비결 말입니까?”

양준은 잠깐 어리둥절해하다가 씩 웃었다.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다. 양씨 가문에서 우리를 방관하고 있는 이유를 아느냐? 네가 7대 세가를 홀로 상대하지 못해 중도로 돌아가 가문의 보호를 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양씨 가문에서 손을 뻗기 전에 미리 방법을 알아내고자 한다. 설령 양씨 가문보다 먼저 네 비결을 얻지 못하더라도, 양씨 가문과 함께 이 연극에 한바탕 어울려 주면 떡고물이라도 챙길 수 있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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