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2장. 황금빛 눈동자
양준의 식해 안.
양준과 태상장로의 신혼 영체는 오색 섬을 빙빙 돌면서 싸웠다.
태상장로는 뜻밖의 변고를 피하기 위해 정면으로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젊고 혈기 왕성한 양준은 죽음 같은 것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끈질기게 끝까지 달려들었다. 기세에서만 보면 태상장로는 이미 한 수 밀린 상황이었다.
사실상 양준도 상대를 어찌할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곳이 자신의 식해고, 그가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신식의 수련과 사용 면에서 상대는 양준보다 백 년을 앞서 있었다. 상대는 오랜 경험과 저력으로 양준에게 쫓기면서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오색 섬을 살펴보는 여유까지 있었다.
태상장로는 살펴볼수록 마음속 욕심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오색 섬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신혼 영체가 섬에 가까워지자 신식의 힘이 강해지고 소모된 힘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 순간, 태상장로는 신비한 오색 섬이 신식을 키우는 비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준이 신유 경지 2단계이면서도 이렇게 강한 신식을 가지고 있는 원인이기도 했다. 모든 근원은 오색 섬에 있었다.
섬은 지마의 신통력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태상장로는 숨이 가빠졌다. 원래는 신식을 양준의 식해에 몰래 잠입시켜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조종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뜻밖에 둘도 없는 보물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도박이 통했군! 영체가 상처를 입어도 애송이를 잡아야지. 이놈이 감춰 둔 비밀과 재물은 모든 이가 부러워할 정도란 말이야.’
양준은 태상장로의 생각이 변한 것을 알아챘는지 얼굴빛이 흐려졌다. 그에게는 자신의 신임을 얻지 못한 이에게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비밀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검은 책에 관한 것으로, 이는 아직까지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두 번째는 오색 온신련으로 지마만 알고 있었다. 세 번째는 만약영액이었다.
지금 상대는 두 번째 비밀을 훤히 다 알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탐하고 있었다. 이에 양준은 살의가 솟아올랐다. 상대방이 자신의 식해를 안전하게 벗어나 비밀을 누설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양준이 이런 생각을 가지자, 식해 전체가 뒤흔들렸다. 수많은 공격이 사방팔방에서 사납게 태상장로를 덮쳤다.
태상장로는 우뚝 멈춰 서더니 뒤돌아서 양준을 조용히 지켜보며 냉소했다.
“애송아, 아직 무르구나!”
양준은 가슴이 철렁하며 불안감을 느꼈다.
태상장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네 공격으로부터 도망 다니는 줄 알았느냐?! 내 함정에 네놈이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혈기에 취해 오판했구나!”
말하는 사이, 허공에 초록색 광선이 떠오르더니 커다란 장막으로 엮여 오색 섬을 뒤덮었다.
다음 순간, 양준은 자신의 식해와 단절되었다.
그의 얼굴빛이 급변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들고 초록색 장막을 깨뜨리려 했다.
“네놈은 이제 끝이다.”
태상장로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가 갖은 애를 다 써 가며 방대한 신식의 힘을 소모하면서 이러한 수단을 펼쳤는데 양준이 쉽게 해제할 수 있겠는가? 양준이 정말 장막을 깨뜨린다면, 그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태상장로는 손을 쫙 펼쳐 신혼사선들을 뿜어 양준을 감싸려 했다.
양준은 뒤돌아서 단검으로 신혼사선들을 내리쳤다. 그는 신혼사선을 적지 않게 베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한 불안감이 들이닥치자, 식해가 긴장감과 압박감의 영향을 받아 마구 뒤흔들리며 불안정해졌다.
태상장로는 냉소를 흘리며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신혼사선들이 양준을 감싸려는 순간, 끔찍한 압박감이 덮쳐 왔다. 태상장로와 양준은 둘 다 행동을 멈췄다. 그 압박감에 신혼 영체가 가루가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태상장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깜짝 놀랐다. 신유 경지 이상이지만 여태껏 이런 무시무시한 위압감은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뿜어낸 신혼사선은 마치 뙤약볕 아래 봄눈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양준도 압박감을 느꼈지만 태상장로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압박감은 태상장로를 겨냥한 것으로 양준은 살짝 영향만 받았을 뿐이었다.
파직파직-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식해 속, 두 사람은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고 동시에 놀라고 말았다.
오색 섬 위에 떠 있던 동글납작한 물체가 한가운데로부터 미묘한 틈이 갈라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허공을 찢은 것처럼 틈은 점점 더 커졌고, 그에 따라 위압감도 점점 강해졌다.
식해 안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렁이면서 전례 없는 난폭함으로 휩싸였다.
태상장로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짙은 불안감에 휩싸인 그는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양준은 넋이 나간 채로 공중에 떠 있는 동글납작한 미지의 물체를 바라보았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검은 책 일곱 번째 장에서 이 물건을 얻고 난 뒤, 지금까지 양준은 몇 번이고 그것의 비밀을 알아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런데 오늘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 드디어 미지의 물체가 반응을 보였다.
‘도대체 무슨 물건일까?’
양준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물체 사이의 틈은 점점 더 커졌고, 강한 압박감에 태상장로가 힘들게 만들어 낸 결계가 산산조각 났다.
잠시 뒤, 틈이 최대 한도로 커진 다음 그 사이의 물체를 확인한 두 사람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태상장로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눈?”
바로 눈이었다. 커다란 눈이었다.
애당초 양준은 이 물건을 얻었을 때부터 열매 같기도 하고, 눈 같기도 하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꼭 감은 눈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 외눈이 번쩍 뜨였다. 일반인의 것과는 다르게 이것은 황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위엄 있으면서도 두려움이 생겨 우러러보아야 할 것만 같은 황금빛이었다.
외눈이지만 그것은 섬 위쪽에 조용히 우뚝 솟아서 멸시하는 눈빛으로 태상장로를 굽어보고 있었다. 외눈에게는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른 태상장로가 개미처럼 보잘것없는 것 같았다.
“애송아! 대체 저게 뭐냐?”
태상장로가 비명을 지르며 물었다. 양준에게서 답을 얻으려는 모양이었다. 외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신혼 영체가 거대한 압박감에 바야흐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양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이 물건이 도대체 무엇인지 몰랐다.
태상장로가 한창 발버둥 치며 반항하고 있을 때, 외눈에서 금색 빛줄기가 튀어나오더니 바로 그의 신혼 영체를 맞혔다.
아무 기척도, 아무 반응도 없이 신유 경지 이상 태상장로의 신혼 영체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순수한 신식만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양준은 경악에 빠졌다.
모든 일을 끝내자, 무슨 연유로 떴는지 알 수 없는 외눈은 천천히 다시 감겼다. 이전처럼 신비하고 괴이쩍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양준은 은연중에 외눈이 감기기 전에 자신을 힐끗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짝 실망한 듯하면서도 대견스러워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식해 안은 다시 잠잠해졌다.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새들이 날아다니고 바다에서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양준은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눈의 비밀을 파헤칠 겨를 없이 서둘러 식해에서 빠져나왔다. 곧이어 귓가에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시선을 고정해 보니 8대 세가의 태상장로들이었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의 몸을 부축하고서 걱정스럽게 부르고 있었다.
“엽 장로, 엽 장로,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가?”
양립정도 곁에서 자세히 살펴보다가 한참 뒤에야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죽었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양준 관저의 무인이고, 7대 세가 연합군의 고수들이고 모두 양립정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신유 경지 이상의 무인이… 죽었다고?’
“겉으로는 아무런 상처가 없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구먼.”
양립정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얼굴에는 놀라움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그와 실력이 비슷했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어떤 상처도 없이 죽었다. 수명이 다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암수에 당한 것인가?
수명이 다할 가능성은 아주 적었다. 양립정은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와 오랫동안 같이 했다. 만약 수명이 다했다면 신유 경지 이상의 실력으로 그 자신도 감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이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수명이 다해서 죽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암수에 당했단 말이 아닌가? 양립정은 이 경우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누가 감히 신유 경지 이상의 무인을 기습해서 죽일 수 있을까? 세상에는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설령 창운사지의 사주라 해도 그 정도 실력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야?”
양준은 일부러 옆에 있는 혈시들에게 물었다.
도봉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면서 대답했다.
“글쎄요. 저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엽 장로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더니 저리 죽었습니다.”
양준은 냉담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황금빛 눈동자의 외눈이 보여 준 살상력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가벼운 한 수에 신유 경지 이상의 신혼 영체가 파괴되었다. 엽씨 가문 태상장로의 신혼 영체에는 그의 모든 생각이 담겨 있는데 그렇게 파괴되었으니 육체가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황금빛 눈동자는 도대체 정체가 뭐지?’
장내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8대 세가의 태상장로들이든, 몽무애든, 능태허든 모두 영문을 알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지마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암수를 썼다는 오해는 하지 마. 우리 셋은 저 위에서 너희를 상대하느라 그런 짓 할 틈도 없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