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3장. 진작 떠났어야 했다
지마의 말은 어쩐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느낌을 주었지만 누구나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금 전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가 땅에 쓰러졌을 때, 몽무애, 능태허, 지마는 하늘에서 싸우던 중이었다. 그들은 아래쪽에서 소란이 일어나서야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를 죽일 시간도, 기회도 없었다. 더욱이 그럴 만한 수단도 없었다.
신유 경지 이상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세상이 들썩일 만한 사건이었다. 8대 세가 출신 고수들은 양준을 괴롭힐 마음이 없어졌다. 엽씨 가문 태상장로의 수수께끼 같은 죽음의 비밀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 모든 이가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정체 모를 누군가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무 기척도 없이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를 죽였다. 그렇다는 건 그가 마음만 먹으면 다른 이들도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겠는가?
“오늘 밤은 실례가 많았습니다.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다음에 다시 가르침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양립정은 몽무애 일행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그러고는 엽씨 가문의 태상장로의 시체를 안고 다른 여섯 명과 함께 급히 봉신전 쪽으로 날아갔다.
몽무애 일행도 그들을 잡지 않았다. 이번에 그들이 나선 것도 양준을 도와주려는 것뿐이었다.
“시체를 수습해서 저희도 갑시다.”
엽신유는 얼이 나간 채로 후퇴 명령을 내렸다.
오늘 밤 공격으로 7대 세가 모두 손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엽씨 가문의 손실이 가장 컸다. 신유 경지 이상의 태상장로가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 이는 엽씨 가문에 있어서는 큰 타격이었다.
얼마 안 되어 연극도 막을 내리고, 공격하러 왔던 적들은 모두 철수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몽무애는 그 태상장로가 어떻게 죽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말하는 한편 무심코 양준을 힐끗 보았다.
“왜 저를 그렇게 보십니까? 제가 한 거 아닙니다.”
양준이 큰 소리로 한마디 했다.
이 말에 적지 않은 이들이 웃고 싶었으나 웃을 수가 없었다.
‘그래, 막내 공자가 아무리 수단이 뛰어나고 자질이 높아 매번 기적을 이룬다지만 신유 경지 이상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몽무애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동시에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만약 양준이 변명하지 않았다면, 몽무애는 이 일을 양준과 연관 짓지 않았을 것이다. 방금 전에 양준을 힐끔 본 것도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지금 양준이 이렇게 변명하고 나서자 오히려 신경이 쓰였다.
‘정말… 이놈과 연관이 있는 건가?’
몽무애는 얼떨떨했다.
“우리도 현장을 수습하죠.”
양준은 숙연한 표정으로 난장판이 된 전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각 세력은 재빨리 무인들의 시체를 거두었다.
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왔다. 하룻밤의 격전은 용두사미가 된 듯한 느낌이 있지만, 그렇게 큰일이 일어난 것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양준 관저의 사람들은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지금의 형세는 전에 양준이 그들에게 말한 것보다 더 안 좋았다. 그러니까 양준이 그들에게 미리 말해 준 것은 과장해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제 정말 중도 8대 세가와 척을 지게 되었다. 게다가 봉신전의 태상장로들도 이 일에 끼어들었다. 양준이 도대체 무슨 재주가 있어 중도의 대형 세력들이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양씨 가문은 왜 침묵하면서 양준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그들은 구체적인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하루의 휴식을 거쳤지만 많은 이들은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초췌해 보였다. 지난밤의 싸움을 거쳐 모든 세력에서 손실을 입었다. 신유 경지 고수의 죽음은 이런 세력들에게는 커다란 손실이었다.
각 세력마다 모두 슬픔에 빠져 있었다.
*방 안,
양준, 몽무애, 능태허, 지마 네 명이 모여 앉아 의논하고 있었다.
“양준, 이제 어떡할 것이냐?”
다시 신유 경지 정상의 수준으로 돌아온 몽무애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난밤의 싸움으로 그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오히려 지마가 무기력한 느낌을 주었다.
“여기서 떠나야지요. 더 이상 남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양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몽무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작 떠났어야 한다. 양씨 가문의 가주가 될 생각이 없으면 이 흙탕물에 발을 담그지 말았어야지.”
양준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승 싸움에 참여한 이유는 그저 문파의 이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보니, 제 명성으로는 안 될 것 같네요.”
능태허가 그를 위로했다.
“그리 자책하지 말 거라. 문파의 이름을 바로 세우든, 말든 능소각은 능소각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마가 웃으며 말했다.
“떠나는 것도 좋지. 나는 찬성이네, 주인!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게 양씨 가문의 가주가 되는 것보다 백 배는 낫다네! 나중에 실력을 갖추면 8대 세가니 뭐니 하는 놈들도 와서 주인의 발가락을 핥으려 들 것이야.”
“발가락은 왜 핥아!?”
양준이 질색하며 지마를 노려보았다.
몽무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표현이 좀 그렇다만, 네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일 수도 있어. 게다가 우리 셋은 네 자질과 저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너는 문파와 가문의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혼자 이리저리 부딪히며 성장하는 게 더 어울린다.”
양준은 놀란 표정으로 눈앞의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셋 다 자신을 굳게 믿는 눈빛임을 확인하고서 마음이 따뜻해져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 노력해서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능소각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내가 멀쩡히 살아 있으니, 이제 능소각을 함부로 건드리는 이는 없을 것이다. 네 부모님의 안위도 걱정할 것 없다. 양씨 가문이 아무리 횡포하고 너에 대해서도 불공평하게 대했지만, 그렇다고 네 부모님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양준이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주인, 언제 출발할 예정인가?”
지마가 물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양준은 조금 낙담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노력해 쌓아 온 것을 하루아침에 포기하려고 하니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난 며칠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겠다. 마두도 마찬가지고. 그동안 네 친구들에게 잘 설명하거라. 다들 너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하지 않았더냐.”
몽무애가 가볍게 기침하며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몽 주인, 어제 어떻게 경지를 신유 경지 이상으로 끌어올린 겁니까? 지마도 그렇고.”
어제 두 사람이 시전한 놀라운 수단에 모든 이가 호기심을 가졌다. 이는 양준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에 몽무애와 지마는 서로 마주 보고서 동시에 허허 웃었다.
“나도 궁금하네만.”
능태허도 흥미가 동하는 표정이었다.
몽무애는 잠깐 망설이다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저었다. 무형의 힘이 방 안을 감싸면서 외부에서 탐지하는 것을 차단했다.
“우리가 가진 비밀을 많은 이가 노리고 있다는 걸 안다. 허나 그것을 얻는다고 우리의 실력까지 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그저 우스울 따름이지.”
몽무애는 말하면서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양준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 비밀을 손에 넣어도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겁니까?”
지마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네. 아마 그들도 알아차렸을 거야. 몽 씨 실력을 가질 수 없다고. 내 것도 마찬가지네. 그들이 아무리 익혀도 신유 경지 이상에는 오를 수 없지.”
“그건 왜지?”
“신유 경지 이상부터는 아예 다른 경지나 다름없다네. 이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그 바탕이 없는 자는 알 수 없지.”
지마는 몇 마디 하고 나서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난처해하며 말했다.
“몽 씨가 설명하는 게 낫겠군.”
몽무애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간단히 말하면 지마는 원래 신유 경지 이상이었는데 다른 이의 몸을 빌린 뒤로는 신유 경지 정상밖에 안 됐었지. 그러나 그는 신유 경지 이상의 경험과 비밀을 알고 있으니, 마영성법을 시전해서 신유 경지 이상에 이른 것이야.”
양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8대 세가의 신유 경지 정상 무인들은 평생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련했지만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신유 경지 이상의 비밀을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설령 마영성법을 익힌다 해도 여전히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경지를 봉인당했던 것뿐이다. 어젯밤에는 어쩔 수 없이 봉인 하나를 풀었지.”
몽무애가 쓴웃음을 지었다.
양준은 얼굴빛이 바뀌었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몽무애가 그의 짐작이 사실임을 말해 주니 어안이 벙벙했다. 직접 들었음에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몽무애의 실력이 봉인되었다니? 스스로 봉인한 건가? 아니면 남에게 봉인당한 것인가? 만약 스스로 봉인했다면, 그 이유는? 남에게 봉인당했다면, 도대체 누가 이처럼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단 말인가?
몽무애가 줄곧 신비한 느낌을 주고, 계승 싸움에도 나서려 하지 않은 것이 다 이 때문인 듯했다. 신유 경지 이상의 절정 고수들은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계승 싸움에 나설 수 있겠는가?
“나나 마두가 사용한 방법은 다르지만, 억지로 경지를 끌어올린 대가로 둘 다 어느 정도 내상을 입은 상태다. 마두의 상태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잖느냐. 그러니 이곳을 떠나려면 우리가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8대 세가가 양준이 전성을 떠나게 내버려 둘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몽무애와 지마는 반드시 완벽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며칠이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아마 요 며칠 8대 세가는 엽씨 가문 태상장로의 죽음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대신 나중에 신유 경지 이상의 비밀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양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내가 주인 곁에 있으니 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것이네.”
지마가 대답했다.
양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만약영고를 꺼내 몽무애와 지마에게 건넸다.
“이게 있으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능태허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혹시 그것이냐?”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데 그리 놀라는 건가?”
몽무애가 궁금해서 능태허를 힐끔 보았다.
“나도 그것을 통해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를 수 있었네.”
능태허가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몽무애는 저도 모르게 얼굴빛이 변하더니 서둘러 신식을 펼쳐 만약영고를 살펴보았다. 한참이나 지나서 그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품급의 물건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