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4장.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떤 품급입니까?”
그는 아직까지 만약영액, 영유, 영고의 품급을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것들에게 품급을 정해 준 이가 없었는데 오늘 몽무애가 이처럼 말하자 자연스럽게 신경이 쓰였다.
몽무애는 대답하지 않고 잠깐 생각하더니 되물었다.
“8대 세가에서 노리는 것이 아마도 이것이겠지?”
“아마도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의아해했다. 몽무애는 이런 품급이 높은 물건에 관해서는 늘 화제를 돌리며 더 깊게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양준은 몽무애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몽무애가 더 말하려 하지 않자, 양준도 끝까지 캐묻기가 무엇했다.
“이것은 내가 쓸 것이 아니니, 잘 보관해 두거라.”
몽무애는 말하는 한편, 만약영고를 양준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생각에 잠긴 듯한 눈빛으로 지마를 흘끔 보더니 허허 웃었다.
“마두 네놈은 운이 좋구만. 그게 있으면 너도 지금 몸으로 단번에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를 수 있겠어.”
“이게 정말로 신유 경지 이상을 돌파할 수 있는 효능이 있단 말입니까?”
그 말에 양준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지난번 능태허가 만약영고의 약효에 힘입어 신유 경지 이상에 올랐을 때만 해도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몽무애가 이렇게 말하자, 만약영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이 안에는 천도의 법칙이 담겨 있으니, 경지의 장벽을 부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두는 내공이 있으니 그것의 도움을 받아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 거야. 혹시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그때는 그냥 나가 죽어야지.”
지마는 허허 웃으며 보물이라도 얻은 듯이 얼른 자그마한 만약영고를 갈무리했다.
“매우 오래된 것이겠지?”
몽무애가 양준에게 물었다.
“5, 6천 년은 됐을 겁니다.”
양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말이 되는구나. 몇천 년의 세월이 담겨 있으니……. 대단한 물건이구나. 그러나 내 봉인을 완전히 해제하기에는 부족하다.”
몽무애가 탄식했다.
“그럼 이걸 드시지요.”
양준은 만약영액을 꺼냈다.
몽무애는 받아서 자세히 살펴보더니 놀라서 한마디 했다.
“이것도 제법이구나. 저 물건만큼 순수하지는 않지만, 상처를 회복하는 데에는 아주 탁월하지. 으음… 이건 복용한 자에게 벌모세수를 해주는 효능도 있구나.”
“역시 대단한 안목이십니다.”
양준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몽무애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이 정도 안목도 없을까 봐? 이런 건 다 어디서 구한 것이냐? 얼마나 남았고?”
양준은 코를 훌쩍이며 아무렇지 않게 그 양을 대략 말해 주었다.
세 사람은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다. 모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내 제자에게도 좀 주거라. 내게는 소용없으나 응상이에게는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몽무애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
“진작 줬습니다.”
몽무애는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응상이가 최근 실력이 빠르게 향상되는 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네 친구들에게 준 현단에도 이것이 들어갔겠지?”
“네.”
능태허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양씨 가문이 제 발로 복을 걷어찼구나.”
만약 그들이 양준에게 이렇게 많은 만약영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양준이 7대 세가의 공격을 받을 때 방관하고, 그를 우회적으로 핍박한 것을 후회할지 안 할지 매우 궁금했다. 처음부터 그들이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양준은 양씨 가문에게 만약영액을 나누어 주는 것을 개의치 않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씨 가문의 여러 행태는 결국 이렇게 강한 조력자를 억지로 밀어내 적으로 만들었고, 양준이 전력으로 반항하게 만들었다.
*몽무애의 방에서 나온 양준은 먼저 추억몽을 찾아가 보았다. 추억몽은 스스로 찌른 것이라 상처가 깊지 않아 소안의 보살핌으로 거의 나은 상태였다.
양준이 이곳을 떠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자, 추억몽은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 반대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양준은 떠나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할 말이 있어. 모두 모이라 해.”
양준이 담담하게 지시했다.
추억몽은 순간 당황하다가 곧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에 나가 사람들을 불렀다.
그녀는 어제 아침에 양준 관저를 떠났다가 밤에 다시 사람을 거느리고 공격하러 왔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모든 이가 그녀의 난처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곽성진까지도. 이제 모두들 더는 두 사람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오히려 동정했다. 강요에 못 이겨 서로 대립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들 마음속의 고통을 누가 알겠는가?
추억몽은 여전히 양준 관저의 이인자였다. 이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였다.
편전에는 모든 세력의 통솔자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들 슬픈 표정이었다. 심지어 늘 진지한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곽성진마저 지금은 정색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 뒤에 양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계승 싸움이 시작된 지 벌써 열 달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지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가 한때는 승리에 가까웠지만 여러 원인으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이 싸움은 더 이상 계승 싸움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아서 더 경쟁할 생각이 없고요. 며칠 뒤에 저는 이곳을 떠날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려서 죄송합니다.”
모든 이가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다들 양준이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과 결정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개인적으로 제 곁에 계속 남아 있으면 가문과 문파의 안위에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전에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지난밤의 일을 통해 우려가 사실이 되었습니다. 지금 상황은 여러분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문파와 가족을 위해 잘 고민해 보시고 떠나고자 하는 분은 편히 가십시오. 막지 않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지금까지 제게 도움을 주신 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배상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단방과 연기실에 여분이 남아 있어 충분합니다.”
양준은 말을 마치고 제자리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모두들 그를 바라보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아무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양준이 미소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저도 여기를 떠날 건데, 다들 왜 남겠다는 겁니까? 앞으로 계속 친구 사이로 남을 거고, 다시는 못 볼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러다가 얼굴빛이 차가워지더니 말을 이었다.
“듣기 싫겠지만 사실 여기에 계속 남아 있으면 가문과 문파에 해를 끼칠 뿐입니다. 솔직히 저랑 선을 확실히 그어 놓는 게 여러분한테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여기에 있는 많은 이들이 제 은혜를 입었다 하지만, 그 빚은 열 달간 생사를 같이하면서 이미 다 갚았습니다. 이제 우리 서로 빚진 거 없으니까 부담감을 가질 필요 없단 말입니다.”
이때, 동경한이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정 없게 얘기해? 선택권은 우리한테 있다며? 가고 싶으면 우리가 알아서 갈 거야. 네가 말하는 빚에 관해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린 서로 빚진 거 없어. 여러 세력들이 이곳에 와서 모두 적잖은 손실을 입은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다들 그만큼 큰 이득을 얻었어.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만약 현단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겠어? 아마 몇 년을 더 수련해야 지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 거야.거기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최소한 비보 세 개는 챙겼는데, 일등 세가에서도 받지 못하는 대우를 여기서 받은 거라고.”
“우리는 친척이니까, 형은 발언권 없어.”
양준이 그를 흘겨보았다.
동경한은 눈을 희번덕이며 구시렁거렸다.
“내가 뭐 네 편을 든 것도 아닌데.”
“나도 동 공자와 동감이야. 나는 발언권 있지?”
한소칠이 가볍게 웃으며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양준이 탄식하며 말했다.
“너희들을 내쫓으려는 게 아니야. 다만 지금 상황이…….”
“우리도 알아.”
한소칠이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양준의 난감함을 알고서 다시 몇 마디 하려는데, 관저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양준 일당은 들어라! 너희들은 악인을 비호하고 양준의 앞잡이가 되었으니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 경험이 짧은 것을 감안하여 엽 소저께서 너희에게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겠다고 하셨다. 양준을 벗어나 엽 소저의 그늘에 들어오는 이에게는 과거의 잘못을 묻지 않겠다. 계속 양준을 두둔하는 이에게 더 이상의 자비는 없을 것이다.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우렁찬 소리는 거의 전성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였고, 관저 내 모든 이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한 번, 두 번, 끊이지 않고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양준은 음산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냉소했다.
“엽신유, 역시 재미있어. 이런 수를 쓰다니.”
이미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떠나기 전에 이런 좋은 연극을 보게 될 줄이야.
“이거 지금 협박하는 거잖아!”
곽성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외치면 누군가는 정말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결과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어떤 결과? 양준도 말했다시피 그것은 그들의 가문과 문파에 연관되는 결과였다.
이때, 인파 속에서 누군가 망설이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죽음을 맹세하고 끝까지 양준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시기에 설령 그들이 떠난다고 해도, 양준은 그들을 질책할 수 없었다.
“양준 공자!”
누군가 양준을 불렀다.
양준이 소리를 따라가 바라보니 천원성의 류비생이었다. 양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하세요, 류 공자.”
“천원성은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류비생은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어렵사리 말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롱이나 야유 없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그동안 류 공자와 천원성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물건 가져와 봐.”
능소각의 제자 몇 명이 대답과 함께 옆쪽에서 걸어 나왔다. 저마다 쟁반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류비생 앞으로 다가갔다.
“그 안에는 현단 열 병과 비보 다섯 개가 들어 있습니다. 저의 작은 성의이니 부디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류비생은 저도 모르게 망설였다. 그는 양준의 성격으로 이런 물건을 선물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양준이 자신을 한바탕 빈정거리다가 쫓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