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47화 (547/853)

제 547장. 곧 사람들이 올 거예요

그들은 양준이 이렇게 쉽게 나올 줄 몰랐다. 원래는 돌려 달라고 요구해서 안 되면 그냥 빼앗을 생각이었다. 중도 8대 세가가 아무리 강해도 바다 건너 세력인 그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빼앗은 다음, 그들의 본거지로 돌아가면 8대 세가가 뭘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양준 관저 내 고수들의 기운을 감지한 그들은 원래의 계획을 포기했다. 정말 싸우게 되면 반드시 이길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수라검과 천예혈해당만 보일 뿐, 태일인을 포함한 다른 보물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정말 양준의 심기를 건드려서 서로 피 터지게 싸워 봤자 누구에게도 좋을 것이 없었다.

“알겠네. 우선 저들과 상의를 좀 해 봐야겠군.”

세상 물정에 훤한 이원순은 얼른 양준의 말에 수긍했다. 양준은 미소로 기다릴 수 있음을 알렸다.

이원순 일행은 곧바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의논했다.

*양준은 곧 시선을 벽락에게 옮기며 물었다.

“벽 낭자,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

벽락은 추억몽을 잡고 이 말 저 말 늘어놓으면서 놓아주려 하지 않고 있었다. 추억몽은 난감해서 몇 번이고 손을 빼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양준이 벽락에게 말을 묻자, 그녀는 크게 기뻐했다.

벽락은 흠칫 놀라더니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아, 깜박할 뻔했네. 대인께서 전해 달라는 말씀이 있어서요.”

“그게 뭔데요?”

“어서 이곳을 떠나세요. 곧 성지의 사람들이 올 거예요.”

“뭐라고요? 어디로 온다고요?”

양준은 얼굴빛이 급변했다.

“여기요.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으로 8대 세가의 세력이 분산된 틈을 타서 먼저 전성을 휩쓸고 중도로 향할 거라고 합니다. 사주께서 여섯 명의 대인들을 거느리고 이미 출발했어요. 전성의 사람들로는 막지 못할 겁니다. 어서 떠나세요.”

벽락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도착하죠?”

양준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동시에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 밤이요.”

벽락은 말하는 한편,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런 중요한 일을 왜 이제 알려주는 겁니까?!”

양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다음, 벽락의 말려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서는 그녀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 자신이 묻지 않았다면 벽락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준은 화가 치밀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사실 벽락이 선경라의 명을 받고 자신에게 몰래 찾아와 소식을 전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었다. 선경라에 대한 그녀의 감정으로 보아서는 아마 자신이 빨리 죽기를 바랄 테니까. 양준은 벽락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추억몽도 깜짝 놀라 한참 넋이 나가 있다가 물었다.

“지금 사주가 6대 사왕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거예요?”

“예. 성지에 있는 여러 고수와 함께요.”

벽락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간도 크군. 우리 8대 세가를 얕보는 겁니까?”

추억몽이 차갑게 말했다.

“설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기를 목표로 삼았다는 건 이미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는 거예요. 당신들은 못 막을걸요.”

벽락이 비웃음이 담긴 눈빛으로 추억몽을 바라보았다.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는 몇 명이죠?”

추억몽은 그녀와 언쟁을 하지 않고 서둘러 유용한 정보를 알아보았다.

“열이 넘어요. 우리 대인 쪽만 대인 혼자이고, 다른 사왕의 휘하에는 최소 두 명씩 있어요.”

“선경라도 신유 경지 이상에 올랐어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당시 헤어질 때, 선경라는 신유 경지 정상이었다. 그런데 겨우 1년 정도 못 본 사이 신유 경지 이상이 되었다니, 놀랄 만한 수련 속도였다.

창운사지의 6대 사왕은 예로부터 모두 신유 경지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사람마다 실력이 뛰어나고 수단도 엄청났다. 그렇기 때문에 1년 전에 8대 세가를 필두로 해서 창운사지를 포위 공격했을 때에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겨우 열몇 명으로는 어림도 없죠. 전성에는 신유 경지 이상이 일곱 분이나 계신다고요.”

추억몽은 코웃음을 쳤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 역시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벽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염한 얼굴에는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상관없어요. 8대 세가의 신유 경지 이상들이 모두 덤벼들어도 사주 한 명의 상대가 못 되니까요. 이번 사주는 남달라요. 대인께서는 세상에 그분의 적수가 될 이는 없다고 했어요. 사주는 단 일격에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를 이길 수 있고, 고작 몇 번의 공격으로 죽일 수도 있다고요.”

그 말을 듣고, 추억몽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게다가 사주는 뇌정수왕, 패천역왕, 음영귀왕, 섬전영왕, 절멸독왕에 요미여왕까지 여섯 사왕을 거느리고 있어요. 그중에 우리 대인께서 가장 경지가 낮은 편이라고요.”

벽락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현 상황을 일깨워주었다.

“양준, 어떡하지?”

추억몽이 다급해하며 물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그녀는 순간 심란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혹여 양준이 자리에 없었으면, 그녀는 정신을 다잡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에 의지할 사람이 있자, 그녀는 스스로의 판단 능력을 잃고 말았다.

양준은 음산한 표정으로 벽락을 바라보았다.

벽락이 찾아온 것으로 보아, 소식은 사실일 것이다. 선경라가 6대 사왕 중 한 명이라고는 하나 가까이서 지내본 결과, 그녀는 심성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므로 특별히 벽락을 보내 자신을 놀릴 이유가 없었다.

“곽성진이랑 같이 봉신전에 가서 태상장로들한테 얘기 좀 전해줘.”

양준이 결단력 있게 추억몽에게 지시했다.

“알겠어.”

추억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근데… 소식은 어디서 들었다고 하지?”

“사실대로 얘기해.”

추억몽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다녀올게.”

태상장로들은 분명 소식의 출처를 물을 것이다. 만약 사실대로 대답하면 그들이 이 소식을 믿든, 안 믿든 양준이 사마와 결탁했다는 죄명은 성립되는 것이었다. 요미여왕과 연락까지 하는데, 이를 뭐라 변명하겠는가?

그러나 재난이 코앞에 닥쳐온 지금, 양준은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양준이 일 처리를 하고 있을 때, 벽락은 한쪽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저지하지도 않고, 의견을 내놓지도 않았다. 마치 이 모든 것이 그녀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추억몽이 떠난 뒤, 양준이 급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양 공자……!”

이원순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양준을 불렀다. 그들은 만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까지 각 문파의 보물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거의 양준과 합의를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조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이번 싸움에서 양준이 죽기라도 하면 보물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양준은 그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어 한마디 하고는 곧 자취를 감추었다.

이원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와 함께 온 이들도 일제히 벽락을 노려보았다.

‘이 계집애가 그런 소식을 가져오지 않았으면 양준과 이야기가 잘 되었을 텐데!’

벽락은 사람들의 서슬 퍼런 눈초리에 겁이 덜컥 나 급히 도망쳐 버렸다.

*뜰에 들어서자마자 양준은 휘파람을 불었다. 곧이어 수많은 그림자들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공자?”

도봉이 물었다.

“모두 따라와.”

양준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급히 몽무애의 방으로 걸어가는 한편,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방에 이르자, 양준은 발로 문을 차서 열고는 몽무애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이와 필을 꺼내 서신을 적었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허둥대는 것이야?”

몽무애가 답답해서 물었다. 능태허도 기척을 듣고 찾아와 의아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창운사지의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양준이 자신이 알고 있는 소식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다들 얼굴빛이 급변하며 믿을 만한 소식인지 물었다.

“거의 확실합니다.”

양준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서신을 영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버지께 전해줘.”

“네.”

영구는 서신을 받아 쥐고는 번개같이 사라졌다. 혈시 가운데서 영구의 속도가 가장 빠르기에 서신을 전하는 일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

몽무애가 물었다.

“어서 여기를 떠나야죠!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양준은 깊게 심호흡을 하였다. 관저에 고수가 많다지만 실력이 낮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양준의 친구들은 창운사지와의 싸움에 말려든다면 모두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이번에 창운사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이 진행되면서 8대 세가의 전투력은 중도와 전성 양쪽에 나뉘게 되었다. 또한 전성의 방어가 중도처럼 빈틈없는 것이 아니기에 곧바로 전멸될 수도 있었다. 계속 남아 있는 것은 현명하지 못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추억몽과 곽성진을 봉신전에 보내 태상장로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부모님께 서신을 보내 양씨 가문에서 사태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양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셈이었다.

양준의 말을 듣고, 몽무애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결정이야.”

“도봉, 모두에게 즉시 떠날 준비를 하라고 전해!”

“예.”

도봉은 대답하는 동시에 움직였다.

곧 관저 안의 모든 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지만, 도봉의 안색을 보고 심각한 문제임을 알아차렸다.

젊은 세대 통솔자들이 하나같이 달려와 양준에게 원인을 물었고, 사실을 알게 되자 모두 아연실색했다.

“설마? 창운사지에서 이렇게 크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아무 소식도 없을 수 있어?”

좌방이 중얼거렸다.

동경한이 어두운 낯빛으로 대꾸했다.

“아마 그들이 휩쓸고 간 곳에는 산 사람이 없을걸.”

모든 이의 머릿속에는 사주와 휘하 6대 사왕, 그리고 수많은 고수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풀 한 포기도 없이 초토화되고 대지가 신음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다들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이때, 독수리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준이 자신의 금우응을 풀어준 것이었다. 이 금우응은 줄곧 양준 관저에 있었으며, 지금은 6급 요수로 진화한 상태였다. 다만 계승 싸움이 진행되면서 금우응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어 평소에는 여자들의 애완용이었으나, 이제 금우응이 나가서 정보를 수집할 때가 되었다.

반 시진이 지나자, 모든 이들이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이원순 일행은 양준 관저의 움직임을 보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이원순을 선두로 해서 급히 양준을 찾았다. 이원순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양준이 그의 말문을 막았다.

“대협, 보물에 관한 것은 이후에 다시 얘기합시다. 보물은 반드시 돌려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 먼저 함께 떠나는 건 어떻습니까? 가면서 다시 이야기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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