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48화 (548/853)

제 548장.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양준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이원순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양준이 자신들을 공짜 호위로 쓰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웃는 얼굴로 승낙했다.

그들은 8대 세가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창운사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들의 본거지가 바다 건너에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전성에서 천 리 정도 떨어진 곳.

먼지바람이 자욱한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자와 괴상한 모양새의 요수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선두에 선 것은 거대한 크기의 요수였다. 요수의 등에는 한 남자가 조용히 서서 전성 쪽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평범한 외모에 청색 옷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자는 아무리 훑어봐도 남다른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냉담한 표정을 한 채 눈이 번뜩 빛나는 모습은 위압감이 있었다.

그는 바로 창운사지 사주 양백(陽柏)이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사주가 흉악한 얼굴을 한, 귀신처럼 생기고 신통력을 가진 인물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양백은 겉보기에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으며 심지어 극히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실력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 양백이 단숨에 창운사지를 제압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이십여 년 전, 양백은 능소각 장문인 능태허의 제자로 있었다. 그러나 아량이 부족한 탓에 이름 모를 사공을 익히다가 주화입마에 빠졌고 양응봉, 능태허와 크게 싸우게 되었다. 그 싸움으로 양응봉은 중상을 입어 십몇 년간 고질병을 앓았고, 능태허는 실의에 빠져 문파의 일에 무념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능태허는 직접 양백을 능소각으로 잡아들인 다음, 무공을 폐하고 곤룡골에 가뒀다.

그러나 뜻밖에도 양백은 곤룡골에서 기연을 만나 뛰어난 실력을 얻게 되었다. 곤룡골에서 빠져나오던 날, 그는 능소각 전체와 싸워 장로 한 명을 죽이고 능태허에게 중상을 입힌 뒤 달아나 버렸다.

곧이어 그는 창운사지에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 그는 창운사지의 주인이 되었다.

양백의 뒤로는 여섯 명이 바짝 따르고 있었다. 여섯 명은 경외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힐끔거렸다. 그들은 창운사지 6대 사왕으로 남자 다섯 명에, 여자 한 명이었다.

여섯 명 모두 개성이 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사나운 요수를 타고, 누군가는 온몸이 녹색 독 안개에 휩싸이고, 누군가는 음산하고 사악한 기운을 휘감고, 누군가는 야수처럼 우람한 몸집을 가지고 있고, 또 누군가는 온몸이 번개에 감싸여 보일 듯 말 듯했다.

비교적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유일한 여인 요미여왕 선경라였다. 그러나 선경라 역시 인간 세상에는 없는 요염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든 그녀와 눈을 마주치게 되면 순식간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심지어 다른 사왕 다섯 명도 선경라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르고 나서 선경라의 유혹술은 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다섯 사왕이 무공이나 실력 면에서 그녀보다 강했지만, 그들도 방심하면 유혹술에 빠질 수 있었다.

여섯 명은 요수를 타거나 기운을 이용해 양백을 따라갔다. 여섯 명의 뒤로는 창운사지의 수많은 고수들이 따랐다. 신유 경지 이상, 신유 경지 정상의 무인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괴상하게 생긴 요수들도 많이 있었다. 요수들은 모두 적어도 5급이었으며, 6급 요수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7급 요수도 한 마리 있었다.

7급 요수는 바로 양준이 만났던, 신식으로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여왕 거미였다. 7급 요수는 경지가 인간의 신유 경지 이상과 같았다. 지금 여왕 거미는 뇌정수왕의 휘하에 있었다. 수왕은 여왕 거미를 제압하지 못했지만 서로 간에 합의를 보아 이번에 여왕 거미도 따라오게 되었다.

당시 양준과 선경라가 거미집에서 만행을 저질렀기에 여왕 거미는 선경라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사주의 실력이 두려워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했다. 만약 이곳에 사주 양백이 없었다면 여왕 거미는 반드시 선경라를 공격했을 것이다.

“주인님, 전성까지 800리가 채 남지 않았습니다. 소인이 먼저 가서 앞쪽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음명귀왕이 입을 열었다.

양백은 표정 변화 없이 여유 있게 앞으로 나아가며 대답하지 않았다.

“귀왕, 이제 반나절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 또 손이 근질근질한 거야?”

절멸독왕이 음산하게 웃고는 음명귀왕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음명귀왕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독왕이 나를 아는군. 듣기로는 지금 전성에 고수가 많다 하지 않았는가. 지난번에 그들이 우리 성지에 와서 소란을 피웠으니,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이에 절멸독왕이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건 내가 더 낫지. 주인님! 제가 한 발 앞서겠습니다.”

음명귀왕도 지지 않으려 했다.

“자네 독이 대단하긴 하지만, 내 신혼 영체들도 만만치 않네. 전력으로 싸우면 자네 못지않거든.”

말하는 동안,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음명귀왕의 몸속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험상궂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얼굴들은 모두 고통스러워 발악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람의 신혼 영체가 음명귀왕의 몸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가고 싶으면 가거라.”

양백은 그들을 막지 않고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고맙습니다.”

음명귀왕과 절멸독왕은 그 말을 듣고 기쁜 나머지, 서둘러 신법을 펼쳐 앞쪽으로 질주했다.

“나도 갈 거야.”

섬전영왕도 몸의 번개가 번쩍거리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뭐야! 다 갔어?! 다 먼저 가면 내가 도착할 땐 남은 게 없을 거라고!”

우렁찬 고함소리가 전해지더니 우람한 몸집의 남자가 눈을 부릅떴다.

패천역왕은 말하면서 땅을 밟더니 급히 뒤쫓아 갔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대지가 흔들렸다.

“흐흐… 그러면 우리도 가서 즐겨보자고.”

뇌정수왕이 요수를 몰아 대열에서 빠져나갔다. 각양각색의 요수들이 그 뒤를 따랐다.

눈 깜짝할 사이, 5대 사왕이 모두 출동하고 선경라만 남아 양백의 뒤를 따랐다.

“경라, 넌 안 가는 거냐?”

양백이 선경라를 뒤돌아보았다.

“저는 됐습니다. 저들로 충분할 테니까요.”

선경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좋지. 저들은 살기가 지나쳐서 높은 경지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선경라는 의아한 눈빛으로 양백을 바라보았다. 양백이 다섯 사왕을 이처럼 평가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네 시녀인 벽락이 요 며칠 모습이 보이지를 않는구나.”

양백은 무심코 한마디 내뱉었다.

선경라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서둘러 호흡을 가다듬고서야 침착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제가 시킨 일이 좀 있어서요. 금방 돌아올 겁니다.”

“그렇구나.”

양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경라는 그가 계속해 추궁할까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양백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무심코 한마디 물은 듯했다.

그제야 선경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미여왕은 멀리 전성 쪽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양준이 어서 떠나기를 빌었다. 창운사지의 이번 공격은 자그마한 전성이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선경라는 심지어 중도도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백의 실력은 너무나 빨리 향상했다. 그가 창운사지에 와서 6대 사왕을 제압할 때만 해도 선경라는 그의 경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른 지금, 그녀는 양백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양백의 실력은 너무 엄청나서 중도에는 막을 사람이 없었다.

선경라는 자세히 감지하고 나서 양준이 아직 전성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조바심을 냈다.

사실 800여 리나 떨어져 있으면 신유 경지 이상이라도 상대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양준의 몸속에는 선경라가 심어 놓은 추혼인이 있었다. 추혼인이 있는 한, 양준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는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있었다.

선경라의 마음속에는 양준이 심어 놓은 사랑의 씨앗이 있었다. 당시 그에게 추혼인을 심을 때는 그냥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이런 용도로 쓰일 줄 어찌 알았으랴.

‘양준은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왜 아직도 움직이지 않았지? 벽락이 이미 그쪽에 가서 소식을 전했을 텐데.’

*전성, 양준 관저.

모든 이들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다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기에 양준이 서둘러 이곳을 떠나는 데에 아무 이의도 없었다.

그들이 막 떠나려는데 추억몽과 곽성진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조금 전 양준의 지시대로 봉신전 태상장로들에게 창운사지에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하러 갔었다.

“어떻게 됐어?”

양준이 물었다.

추억몽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 말을 안 믿어.”

양준은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죽음이 코앞에 닥쳐왔는데도 모르다니, 멍청한 늙은이들! 됐어. 그냥 내버려 둬.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으니까. 너희는 어쩔 거야? 중도로 돌아갈 거야 아니면…….”

“너랑 같이 갈래.”

추억몽이 얼른 대답했다.

“그럼 가자.”

양준은 더 길게 말하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실랑이질할 겨를이 없었다. 사실 양준은 추억몽과 곽성진이 중도에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둘 다 명문 세가의 공자, 낭자로 자신과 함께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양준의 뒤를 따라 기세등등하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관저 밖,

누군가 고함을 지르며 양준 관저의 세력들에게 어서 이곳을 떠나라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순간까지도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양준 관저의 수많은 무인들이 모두 나선 것을 보고, 고함을 지르던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는 양준이 공격하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서둘러 경고음을 냈다.

곧이어 수많은 고수들이 달려 나와 양준 일행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지난밤의 전투로 7대 세가 연합군은 손실이 적지 않았지만 바탕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다 모이자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장관을 이루었다.

“양준 공자,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강참이 인파를 헤집고 앞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양준은 그를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리더니 잠깐 주저하다가 말했다.

“미리 말씀드립니다. 창운사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전성을 떠나 중도로 돌아가세요.”

강참은 그의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뒤에야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양준 공자,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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