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50화 (550/853)

제 550장. 창운사지의 기습

양준 관저 앞은 태상장로들의 호통소리로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엽신유가 싸늘하게 냉소하며 말했다.

“양준, 얌전히 항복하세요. 계승 싸움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면서 이렇게 반항하면 당신한테도, 당신 사람들한테도 좋을 거 하나 없어요. 양심이 있다면 저들을 끌어들이지 말고 이곳에서 떠나보내세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에요.”

양준은 평온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지만 누구라도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런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에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도움이 필요한가?”

이원순이 양준에게 다가와 나지막하게 물었다.

사실 그는 얼른 양준에게서 자신들의 보물을 돌려받고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양준은 사면초가인 상황에 빠졌다. 때문에 그는 이런 제안으로 양준에게 점수를 따 곤경에서 벗어난 뒤, 다시 얘기를 잘해 볼 생각이었다.

신유 경지 이상이 일곱 명이나 있으니 이원순도 그들과 맞서 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양준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쯤은 할 수 있었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

이원순의 마음을 양준이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만약 정말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거라면 그는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의 실력으로 양염지익을 펼쳐 도망친다면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들도 그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양준은 혼자서 도망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봉신전의 태상장로들을 속이지 못했다. 그들은 이곳에 올 때부터 이원순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다. 같은 신유 경지 이상으로서 이원순의 존재는 너무나 눈에 띄었다.

오늘 바다 건너에 있는 세력에서 한꺼번에 신유 경지의 고수가 오십 명이나 왔다. 그중 한 명은 무려 신유 경지 이상이었다. 태상장로들은 양준이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대단한 조력자들을 찾아왔는지 궁금했다. 게다가 그들은 몽무애와 지마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말로는 강한 척했지만 사실 이 때문에 쉽게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순간 교착 상태가 되었다.

이때, 금우응의 맑은 울음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크게 놀란 듯, 울음소리에는 초조함과 경고의 뜻이 다분했다.

이 소리를 들은 양준은 낯빛이 변했다.

봉신전의 태상장로들도 무거운 얼굴로 금우응이 날아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늦었습니다! 그들이 도착했습니다.”

양준의 얼굴에 무기력감과 분노가 피어올랐다.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양준이 한 말이 허풍도 아니고 수작부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창운사지 사람들이 정말로 쳐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당황한 사람들은 멍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벽락!”

양준은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는 벽락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오늘밤에야 도착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원래는 그랬죠.”

벽락도 어리둥절했다.

“그들의 행군 속도를 생각하면 오늘밤에 도착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왜 벌써 백 리 밖에 있는 겁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벽락도 화가 났다.

백 리 거리는 너무나도 짧았다. 게다가 금우응이 날아와서 소식을 전하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지금 도망쳐도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엽신유는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연기도 그럴싸하네. 지금이 어느 땐데 아직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양준의 노기등등한 눈과 마주치고는 나머지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계속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로 왔구나!”

양립정은 표정이 변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른 여섯 명의 안색도 어둡기 그지없었다. 지금에서야 그들은 양준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본 사람들은 표정이 굳고 말았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먹구름 사이로 사람의 모습도 언뜻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번개가 번쩍이자 하늘이 더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짙은 멸망의 기운이 먹구름과 함께 전성을 뒤덮고 있었다.

먹구름은 전성을 몽땅 무너뜨릴 기세였다. 순간 사람들의 눈에 두려움의 기색이 어렸다.

“섬전영왕!”

벽락이 비명을 질렀다.

“그자만이 이런 속도를 낼 수 있어요. 분명 그자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걸 거예요. 전 이만 가볼게요. 제가 여기 있는 걸 저들이 알면 대인께서 난처해지실 거예요.”

벽락이 다급히 한마디 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저 자를 잡아!”

엽신유가 소리쳤다. 아직까지도 그녀는 양준의 기세를 무너뜨릴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벽락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감추었다.

큰일이 닥치게 되었는데 누가 이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있겠는가? 벽락도 결국 선경라의 시녀일 뿐인데 그녀를 사로잡아 봤자 무슨 쓸데가 있겠는가? 5대 사왕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 멸망의 기운만으로도 전성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이걸 보고도 못 믿지는 않겠죠?”

양준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엽신유와 봉신전의 태상장로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날카로운 냉소와 함께 한껏 비꼬았다.

태상장로들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만약 양준이 추억몽과 곽성진을 시켜 그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준비했었더라면 지금처럼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양준이 떠나는 것을 막으러 왔을 때, 그의 말을 믿었더라면 적어도 대비할 시간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쳐들어온 지금, 모든 것이 늦어 버렸다.

이곳에는 8대 세가 출신의 신유 경지 이상 고수 일곱 명, 신유 경지 무인 이백 명이 있었다. 이들이 전성에서 죽는다면 중도 전체에도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저들이 오게 놔둬선 안 되네! 맞서 싸웁시다.”

양립정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신법을 펼쳐 그쪽으로 날아갔다.

다른 여섯 명도 다급히 뒤따랐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떠나기 전에 안타깝고도 후회되는 표정으로 양준을 힐끗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옅은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엽신유에게 당부했다.

“엽신유, 여긴 네게 맡기마. 어떻게든 사람들을 모두 안전하게 중도로 데리고 가거라!”

“네.”

엽신유는 다급히 대답했다.

먹구름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전성에서 이십 리 떨어진 곳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양립정이 맞서 싸우러 갔을 때에는 전성과 십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하늘을 뒤흔드는 전쟁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은 몸에 번개가 번쩍거렸고, 다른 한 사람은 몸집이 거대한 것이 힘이 매우 세 보였으며 또 한 사람은 요수의 등에 타고 있었다.

섬전영왕, 패천역왕, 뇌정수왕이었다.

삼 대 칠, 수적으로 보면 절대적인 수세에 처했지만 오히려 8대 세가의 태상장로들은 표정이 어둡고 창운사지의 세 명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세 사람 뒤에 거대한 거미가 뒤따르고 있었다. 거미는 사람 얼굴에 거미의 몸을 하고 있었는데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스무 살 남짓해 보이는 얼굴은 찰랑이는 머릿결까지 더해져 아름다움이 더욱 두드러졌지만, 거대한 거미의 몸과 합쳐지자 기괴망측했다.

“거미 여왕?”

양준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는 단번에 거미 요수를 알아보았다. 당시 그와 선경라가 마주쳤던 거미였다.

‘저게 어떻게 여기에?’

“저런 요수가 있다니! 처음 봐. 아쉽게도 화생지(化生池)가 없어 영원히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할 순 없나 보네.”

수령도 놀라서 소리쳤다.

“몽 주인, 어떻게 합니까?”

양준은 시선을 몽무애에게 돌리며 물었다.

“상황이 좋진 않군.”

몽무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실력을 회복할 수는 없어도 안목은 있었다.

“저들에 비하면 너희 8대 세가 일곱 장로의 실력은 약한 편이다. 수적으로는 우세를 차지하더라도 어쩌면… 모두 죽을 것이다!”

그 말에 양준은 표정이 급변했다.

일곱 명과 겨루어 본 적이 있는 몽무애는 그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일곱 장로가 나서면 전성은 당분간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는데 지금 보니 그저 시간을 잠깐 끌 수 있을 뿐이었다.

“몽 주인,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양준은 무력감이 가득한 얼굴로 몽무애를 바라보았다.

몽무애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넌 내게 방법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구나.”

“아끼는 제자가 이곳에 있는데 정말 방법이 없다면 이렇게 여유롭지 않으시겠죠.”

양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절대적인 실력 차이는 약간의 술수로 채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몽무애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몽무애는 고개를 돌리고 한 번 둘러본 뒤,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떠난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일 할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능 형이 보호할 테니 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널 데리고 떠나도록 하지.”

“저는 모두가 안전하게 떠나길 바랍니다.”

몽무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리 얘기할 줄 알았다.”

양준 관저의 사람들은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바다 건너에서 온 사람들도 놀란 듯했다.

야방과 화단혼은 조용히 이원순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대협, 저희는 이제 어떡하죠?”

이원순은 양준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또 몽무애를 바라본 다음 입을 열었다.

“우선 저들과 함께 움직이는 게 좋겠군. 상황이 정말 안 좋아지면 내가 양 공자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날 테니, 그대들은 알아서 살길을 도모하시게!”

양준의 생사는 바다 건너 각 문파가 몇백 년 전에 잃어버린 비보와 연관되어 있었다. 이원순은 양준을 무사하게 보호해야만 했다.

“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원순의 제안에 동의를 표했다.

몽무애가 또 입을 열었다.

“저 세 사람은 창운사지의 선봉대다. 잠시 후엔 본대가 따라오겠지. 그리고 저쪽을 보거라……. 뇌정수왕이 요수들을 가득 데리고 오는구나.”

몽무애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더니 몇십 리 밖에서 먼지바람이 일고 있었다. 땅에서 뛰는 놈, 하늘에서 나는 놈, 요수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양준은 살짝 감지해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장 등급이 낮은 요수가 5급이었고, 6급 요수도 매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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