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4장. 몽무애의 수단
그녀는 이번에 꼼짝없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양준이 고수들을 데리고 나타날 줄이야, 그리고 그는 손쉽게 양위와 양소를 구해 냈다.
음명귀왕과 절멸독왕은 능태허, 이원순과 싸우느라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당연히 이 기회에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독왕이 그녀에게 무슨 수를 썼는지 그녀의 진원은 모이지 않았고 손발도 무기력했다. 그냥 제자리에 선 채,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소리를 들은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냉혹하고 매정한 기운만 서려 있었다.
엽신유는 흠칫 놀랐다. 그제야 문득 자신과 양준과의 은원 관계가 너무 깊다는 것을 떠올렸다. 불과 방금 전까지 자신은 양준을 비꼬며 비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처절하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다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었다.
절멸독왕이 손을 흔들자, 짙은 독 안개가 번개와 같은 속도로 엽신유와 강참을 감싸 외부와의 연계를 끊어 버렸다.
“양 공자, 어서 가야 하네.”
이원순이 다급히 외쳤다. 두 사왕과 싸우는 도중, 그는 커다란 압박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진원이 짙을 뿐만 아니라 경지가 높고 수련한 공법도 기괴하고 잔혹해 막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싸우다가는 얼마 안 되어 자신과 능태허도 질 수 있었다.
“돌아갑시다.”
양준은 다급히 물러갔다. 혈시들도 양위와 양소의 혈시들을 부축하며 뒤를 바짝 쫓았다. 능태허와 이원순은 그들이 멀리 도망친 다음에야, 허초(虛招)를 날리고 그곳을 벗어났다.
접전을 치른 양준 일행은 전혀 다치지 않고 여섯 명을 구출했다.
절멸독왕과 음명귀왕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음명귀왕은 묵묵히 양준 일행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냉소하였다.
“도망쳐 봤자 어딜 가겠나? 주인이 곧 올 텐데 말이야.”
절멸독왕은 손을 휘저어 엽신유와 강참을 감싼 독 안개를 걷어내고 그들을 보면서 낄낄 웃었다.
“아가씨는 인기가 별로 없나 봐. 아까 내가 막지 않았다면 그 젊은이가 널 구할 줄 알았나?”
엽신유는 멍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원수는 반드시 갚는 잔혹하고 이기적인 양준의 성격상, 그녀는 양준이 자신을 구해 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마음속으로 더없는 분노와 증오가 치밀었다.
음명귀왕과 절멸독왕은 동시에 음산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런 광경과 표정을 보는 게 매우 즐거운 듯했다.
*전성 안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양준 일행이 돌아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전성에는 계승 싸움이 시작된 뒤로 몇만 명이 모여 있었다. 지금 창운사지의 5대 사왕이 합공을 펼치자 그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전성을 벗어나기도 전에 수많은 요수들이 성벽을 무너뜨리고 죽음의 기운을 지닌 채, 성곽에 들어섰다. 그것들은 뇌정수왕이 부리는 요수들로 창운사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등급 높은 요수들이었다.
땅에서 뛰는 놈이고, 하늘에서 나는 놈이고 모두 흉측한 외모에 무시무시한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전성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실력이 뛰어난 고수는 극히 드물었다. 이런 기괴한 요수들이 쳐들어오자 사람들은 아연실색하여 서둘러 도망쳤다.
전성 전체가 짙은 피비린내 속에서 초토화되었다. 하늘에서는 새들이 놀라서 퍼덕이고, 대지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양준의 관저는 무사했다. 요수들도 이곳의 사람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아는 듯, 일부러 양준 관저를 피해 갔다.
“저들의 상처를 치료해 줘!”
양준은 양위와 양소, 그리고 네 명의 혈시들을 관저 안으로 들여보내며 추억몽에게 지시했다.
추억몽은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움직였다.
양위와 양소는 다치지 않고 독 안개와 귀기의 영향을 받은 것뿐이었다. 스스로 가부좌를 틀고 며칠 동안 운기 조식하면 괜찮아질 터였다. 혈시 네 명은 절멸독왕의 초식에 맞아 꽤 타격이 심한 편이었다. 반드시 만약영유를 사용해야만 몸속의 독기를 내보낼 수 있었다.
관저를 떠나 양위와 양소를 구해 오기까지 겨우 십여 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신식을 펼쳐 전성 밖을 살피던 양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성 밖의 전쟁은 이미 끝나 있었다. 봉신전 태상장로들과 세 명의 사왕들의 전쟁은 결과가 나왔다. 사악한 기운 세 갈래는 여전히 존재하나 봉신전 태상장로들의 기운은 흔적조차 없었다. 오직 미약한 기운 한 갈래만 양준의 관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하늘에서 추락하며 마침 양준 관저 앞에 털썩, 떨어졌다.
양준은 다급히 뛰쳐나가 그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였다. 그의 몸 반쪽은 이미 잘려서 없어져 있었고, 오장육부도 전부 밖에 드러난 상태였다. 두 다리는 무릎 아래가 절단되어 피가 말라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이런 부상을 당하고 진작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경지가 대단해 마지막 순간까지 억지로 버티며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곽성진 같은 한량도 가문의 어르신이 이런 모양새가 되자, 순간 당황해 어찌할 줄 모른 채 제자리에 굳어 있었다.
“사왕의 위력이… 역시 명불허전이다.”
곽씨 가문의 태상장로는 핏기 없는 얼굴로 가볍게 기침하며 힘들게 말했다. 그는 손을 뻗어 양준을 꼭 잡았다. 그의 눈에는 마지막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양준, 여기서 도망친다면 멀리 도망쳐서 실력을 충분히 키운 다음 반드시 돌아와 우리의 복수를 해주려무나.”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 계승 싸움을 한 번 겪고 난 뒤로 8대 세가는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 말에 태상장로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는 어디에서 난 힘인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 정말 이렇게 매정하게 굴 것이냐?”
고함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건지 그는 다시 무기력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8대 세가가 너한테 잘못한 게 맞긴 하지……. 너… 도망가거라. 지금 도망친다면 아직…….”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마지막 말을 내뱉고 그의 눈동자가 생기를 잃었다. 커다랗게 뜬 눈동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르신!”
곽성진은 무릎을 꿇고 가슴이 찢어지게 울부짖었다.
양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손을 뻗어 태상장로의 두 눈을 감겨 주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봉신전의 태상장로들이 전멸되었다.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신유 경지 이상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니, 허탈함만 느껴질 뿐이었다.
봉신전 태상장로들의 실력은 신유 경지 이상의 수준에서 최하위인 게 분명했다. 양준은 그 경지에 오르지 않아 그중의 오묘함을 알지 못하기에 함부로 그들의 일생을 평가할 수 없었다.
양준이 일어서서 밖을 내다보니 관저 밖에는 이미 사람 세 명과 요수 하나가 와 있었다.
패천역왕, 섬전영왕, 뇌정수왕, 그리고 7급 요수인 여왕 거미였다. 또 두 사람이 날아와 다른 방향에 우뚝 섰다. 뒤쫓아온 절멸독왕과 음명귀왕이었다.
5대 사왕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양준 관저를 바라보았다. 홀가분한 그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이 관저의 사람들이 왜 아직까지 도망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전성 전체가 도망치고 있는데 그들만 산처럼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패천역왕은 씨익 웃으며 양준과 눈을 마주쳤다. 꽤 재미있다는 눈빛이었다. 양준이 자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침착하고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섯 사왕과 마주한 사람들은 모두 거대한 압박감을 느꼈다. 관저의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이원순은 상황이 나빠지면 가장 먼저 양준을 데리고 도망치리라 마음먹었다.
“몽 주인, 나서실 때가 왔습니다. 더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준은 하늘에 있는 다섯 사왕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몽무애가 무슨 수로 관저의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건지 알지 못했다. 이제는 그 수단을 보여 줄 때가 된 것이다.
몽무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지체하지 않고 손을 받쳐 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 작은 궁전 모양의 비보가 나타났다. 자그마한 궁전 모양의 비보는 색채가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작은 궁전이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양준도 안색이 변했다. 궁전 비보는 일반적인 비보와 전혀 달랐다. 그가 얻은 현급 비보도 이 앞에서는 무색할 정도였다. 궁전 비보의 등급은 알 수 없었지만 등급이 아주 높은 비보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다섯 사왕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몽무애는 태연한 얼굴로 비보에 미친 듯이 진원을 주입했다. 진원이 흘러 들어가자 작은 궁전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궁전은 커다랗게 변하더니 실체가 없는 것처럼 사람들의 몸과 건축물을 관통하여 전체 관저를 전부 뒤덮었다. 겉으로 보면 지금의 양준 관저는 궁전에 뒤덮인 것 같았다. 궁전은 투명하여 양준 관저 안의 모든 움직임을 낱낱이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속에는 신비한 기운이 있어 사왕들이 신식으로 탐지할 수가 없었다.
사왕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겨우 결계 하나로 날 막겠다니 우습군.’
패천역왕이 소리를 지르더니 거대한 몸집을 재빠르게 움직여 양준 관저의 앞으로 뛰어내려가 주먹을 휘둘렀다.
쿵-
굉음이 전해지며 전성 전체가 흔들렸다.
패천역왕은 세상에서 힘이 가장 센 자였다. 그가 전력을 펼치면 세상을 뒤흔들 정도였다. 힘으로만 비교했을 때 사주인 양백도 그의 상대가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