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1장. 심심상인
소안의 방 안은 한기가 가득하고 흰 안개가 자욱했다.
이곳은 특별히 소안을 위해 만든 지하실이었다. 소안은 수련하는 데 얼음 침대가 필요했고, 얼음 침대가 발산하는 냉기는 많은 이들이 견디기 어려워했다. 때문에 능소각 식구들이 이곳에 온 다음, 양준은 소안만의 특별한 방을 만들어 주었다.
지금 양준과 소안은 얼음 침대 위에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순수한 진원이 하나로 어우러져 끊임없이 흘렀다. 두 사람의 몸에서는 아름다운 빛이 아스라하게 피어올랐다.
두 사람의 몸에서 발산된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면서 단출하고 차가운 방이 다채로워졌다. 빛이 쏟아지자 두 사람의 진원은 서로 어우러졌고, 마음도, 신식도 떼려야 뗄 수 없이 하나로 이어졌다.
별안간 용이 우렁차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다음 순간 양준의 위에 험상궂고 위엄 있는 거대한 용의 머리가 떠올랐다. 용머리가 일렁이며 양준의 몸에서 벗어나더니 황금빛 몸뚱이를 꿈틀거리며 위쪽으로 솟구쳐 올랐다. 이와 동시에 봉황의 맑은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안의 위에는 맑고 하얀 봉황이 나타났다. 고상하고 우아한 봉황은 금빛 용을 뒤쫓았고, 용과 봉황은 서로 엉기며 하늘로 올라갔다.
용의 울부짖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천지를 뒤흔들었다. 강한 파동이 전해지고 속성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원기가 어우러졌다. 이는 조화로우면서도 서로 돋보이게 하는 미묘한 느낌을 주었다.
관저 전체가 들썩였다. 많은 이들이 뛰쳐나와 하늘에 나타난 황금빛 용과 흰 봉황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이런 천지조화가 갑자기 나타났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저거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누군가 중얼거렸다. 사실 풍우루, 혈전방, 능소각 세 문파의 제자들은 이 광경이 낯설지 않았다.
5, 6년 전, 혈전방의 광구에서 용과 봉황이 갑자기 솟아오르며 전승동천이 열렸었다. 그때 세 문파는 협의하에 각각의 정예들을 전승동천에 들여보냈었다. 전승동천에 들어갔던 세 문파의 제자들은 모두 적지 않은 이득을 얻었지만, 끝내 누가 마지막 전승을 얻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이리 낯익은 광경을 보자, 그들은 몇 년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당시 마지막 전승을 얻은 사람이 지금 수련에 성공했기에 이 같은천지조화가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세 문파의 제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양준을 떠올렸다. 그리고 양준이 마지막 전승을 얻은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용과 봉황이 나온 곳을 다시 확인한 그들은 이내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그들이 짐작한 대로 마지막 전승을 얻은 이는 양준이었다.
한순간 그들은 사기가 진작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전승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조화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양준의 실력이 또다시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은 곧 양준 관저에 살길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용과 봉황이 하늘을 노닐다니, 길조로군.”
몽무애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하늘에서 노니는 용과 봉황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능태허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쁘고 대견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관저 밖, 선경라와 벽락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선경라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벽락, 저 조화는 양준이 만들어 낸 게 분명해. 믿겨지니?”
벽락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선경라를 흘끔 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마음이 끌리시면 지금이라도 성지에서 나오세요! 저 안에 들어가면 사주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거예요.”
선경라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지 않을 거야. 사주가 무서워서 이러는 게 아니야. 난 양준이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양준이 다친다고요?”
벽락은 의아했다. 그녀는 선경라의 독과부 체질의 폐단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선경라가 왜 몇 달간 계속 관저 밖에 머물면서 안에 들어가 양준과 함께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경라는 분명 양준을 좋아했다. 벽락은 슬픔에 잠겨 있는 그녀의 모습을 수없이 봤었다.
“나와 가까워질수록 더 빨리 죽게 될 거야.”
선경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설령 관저 밖에 있어도 사랑의 씨앗은 엄청난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선경라는 수시로 마음속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양준 관저에 쳐들어가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매번 그녀는 모질게 충동을 억눌렀다.
“전 잘 모르겠어요.”
벽락이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대인이 지금처럼 슬픔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게 당연해. 이건 우리 요미여왕 일족의 숙명이니까.”
선경라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백 리 밖, 중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용과 봉황이 나타난 천지의 조화는 이곳에서도 훤히 볼 수 있었다.
5대 사왕은 이런 조화에 놀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로지 사주 양백만이 전성 쪽을 주시하며 짙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8대 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전성 쪽에 왜 저런 광경이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어 웅성거렸다.
창운사지에서 대거 쳐들어오면서부터 중도와 전성은 사실상 연락이 끊겼다. 양준 관저가 무사하다는 것을 아는 이는 양응봉 부부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전성이 함락되어 산 사람은 하나도 없는 줄 알고 있었다.
천지조화를 보고서 양응호는 문득 무엇인가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돌려 양응봉을 바라보며 물었다.
“넷째야, 준이 쪽은 괜찮다고 하든?”
그 말을 들은 동소죽은 대답하지 말라고 얼른 양응봉을 살짝 꼬집었다.
그동안 양씨 가문은 양준을 불공평하게 대했다. 그리고 7대 세가 연합군이 양준을 공격할 때 양씨 가문은 손 놓고 가만히 있으면서 저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동소죽은 양씨 가문에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고지식한 양응봉은 잠깐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소, 양위도 준이랑 같이 잘 있다고 합니다.”
양응호는 저도 모르게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곧 표정을 가다듬고서 담담하게 말했다.
“나중에 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다오.”
양응호는 당연히 아들인 양소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창운사지가 침입한 뒤부터 그는 양씨 가문의 가주로서 전반적인 배치를 책임지다 보니 자신의 집안일은 처리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는 양소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양응봉의 말을 듣고, 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감사는 됐습니다. 제 아들 핍박이나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동소죽이 입을 삐죽거렸다.
양응호는 미안함이 서린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
*소안의 방 안,
양준과 소안은 동시에 눈을 뜨고 마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음양합환공이 드디어 3단계인 심심상인(心心相印)에 접어들었다. 합환공이 3단계에 이르면 그와 소안은 일심동체가 되어 더 이상 서로 간의 난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서로가 원하면 상대방의 모든 생각을 꿰뚫어 볼 수도 있었다. 이는 상대방의 식해에 들어가 비밀을 탐지하는 것과 같았다.
음양합환공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수련하다 보니, 두 사람의 경지가 각각 한 단계씩 오르게 되었다. 양준은 신유 경지 4단계, 소안은 신유 경지 5단계가 되어, 둘은 작은 경지 하나 차이로 좁혀졌다. 폐관 수련 석 달 만에 경지 하나를 돌파하는 것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다. 그들은 음양합환공 수련의 도움으로 이처럼 빠르게 경지를 올릴 수 있었다.
“아, 깜빡할 뻔했네요.”
양준이 문득 무엇인가 떠올리며 흥분해서 말했다.
“뭔데 그래?”
“이거요.”
양준이 손을 뒤집자 음양요삼이 나타났다.
음양요삼은 전승동천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었다. 그때 지마는 심심상인을 익혀야 이 천지 영물이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음양요삼이 힘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기억난다.”
소안은 음양요삼을 알아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천지의 영물로서 스스로 생겨난 기이한 보물이었다. 한쪽은 불처럼 새빨갛고, 다른 한쪽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또한 자의식이 있어 스스로 행복을 좇고 화를 피할 줄도 알았다. 하늘 아래 이 같은 천지 영물은 적지 않았다. 다만 일반인, 나아가 무인 중의 고수라도 그것들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천지 영물은 보기 드문 보물이었다.
“근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양준이 난처해하며 말했다. 지마는 심심상인까지 수련해야 음양요삼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만 말해 준 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절반씩 나눠 먹으면 되려나?’
그러나 양준은 왠지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약초가 아니라 어느 정도 자아가 있는 놈인데 먹을 수 있으려나?’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음양요삼이 반응을 보였다. 검은 책 공간에만 있다가 이제야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자 놈의 흐릿한 오관이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양준과 소안을 보고 음양요삼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음양요삼은 빛이 되어 두 사람을 끊임없이 빙빙 돌았다.
빠르게 회전하는 한편, 기쁨에 찬 옹알이와 같은 소리를 내었다. 음양요삼에서 실 같은 신비한 기운이 발산되더니 두 사람을 겹겹이 감쌌다. 음양요삼의 회전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며, 신비한 기운도 점점 더 넓게 발산되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음양요삼은 영롱한 빛 덩이로 폭발하며 두 사람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