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65화 (564/853)

제 565장. 중도로 갈 생각이야

“추 낭자, 지금 질투하는 거야?”

선경라가 음흉한 표정을 하고서 방그레 웃으며 추억몽을 바라보았다.

추억몽은 말없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계속 여기 있으면 진짜 잡아먹는다?”

선경라가 또다시 양준을 바라보았다.

“됐어.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양준은 금세 그녀가 왜 이러는지 알아차렸다. 선경라의 독과부 체질의 비밀에 대해서는 두 사람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씨앗이 선경라에게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큰 모양이었다.

“난 이만 폐관 수련하러 간다.”

양준은 말하는 동시에 자리를 뜨려 했다.

“이제 나온 거 아니었어?”

추억몽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양준이 구실을 대서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또 깨달은 게 좀 있어서.”

양준은 아무렇게나 한마디 둘러대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

*방으로 돌아온 양준은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그는 신식으로 식해에 들어가 신혼 영체로 변한 뒤, 한곳에 뭉쳐 있는 신식을 바라보았다. 뭉쳐 있는 신식 덩어리들은 지난번 흡수했던 엽씨 가문 태상장로의 순수한 신식과는 달리, 육칠십 명의 고수들이 한평생 살아온 기억과 생각이 담겨 있어 매우 잡다했다. 만약 그대로 흡수한다면 자신의 기억과 생각들도 영향을 받아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양준은 고개를 들어 꼭 감겨 있는 금인독안을 바라보다가 신식을 침투시켰다. 지난번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금인독안이 금빛을 발산하기만 하면 잡다한 기운을 깨끗이 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금인독안을 움직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양준의 신식이 점차 금인독안과 연결되었다. 은연중에 그는 마치 대문을 열어젖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대문 안에는 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똑바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꼭 감겨 있던 금인독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 곧이어 금인독안에서 금빛을 뿜어 내더니 한곳에 모인 잡다한 신식 덩어리를 공격했다.

치지직-

신식 덩어리에서 검은 기운들이 넘쳐 나와 꿈틀거렸지만 내리쬐는 금빛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검은 기운은 죽은 고수들의 생각과 기억들로 금빛에 의해 모조리 깨끗하게 제거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인독안은 금빛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천천히 감겼다.

잡다하던 기운은 모두 사라지고, 양준의 식해 안에는 순수한 신식만이 남았다.

양준은 기분이 좋은 나머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드디어 검은 책 일곱 번째 책장에서 얻은 금인독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다만, 봉신전의 장로들이 죽을 당시, 금인독안과 연결 고리를 형성하지 못해 그들의 신식을 흡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만약 그것까지 흡수했다면 더욱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양준은 순수한 신식 앞에 다가가 기쁜 마음으로 흡수했다. 얼마 안 되어 순수한 신식은 모두 양준의 강한 저력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그의 경지가 다시 한번 다져졌다. 금방 신유 경지 5단계에 오를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양준은 이번 성과가 살짝 불만족스러웠다. 이처럼 방대한 양의 순수한 신식을 흡수했으니 적어도 경지가 한 단계 정도는 오를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흡수한 신식은 모두 신유 경지 고수들의 것으로, 엽씨 가문 태상장로의 신식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양이 많은 것에 비해 질적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양준은 어렴풋이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는 신유 경지에 대한 인지의 한계였다. 다행히 그는 애당초 엽씨 가문 태상장로의 신식을 흡수하면서 그의 무도, 천도에 대한 깨달음도 같이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경지를 돌파하는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기본 토대가 흔들렸을 것이다.

양준은 천천히 두 눈을 뜨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그의 마음속에서 욕심이 일었다.

*반나절이 지나 양준은 폐관 수련을 끝내고 관저 밖으로 나갔다.

관저 밖에는 여씨 가문 사람들이 아직 떠나지 않고 여사의 지휘 하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장로님, 계속 이렇게 기다려야 합니까?”

여씨 가문의 정예 중 신유 경지 8단계인 여목(呂牧)이 물었다.

“그러하네. 기다리시게.”

여사가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여목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여씨 가문의 장로이지만 태상장로인 여사와 비교하면 항렬이나 지위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때문에 여사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음에도 감히 토를 달지 못하고 공순하게 물었다.

“그 두 가문의 무인들이 전멸한 것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지, 우리 여씨 가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겨우 이걸로 8대 세가에서 우리를 의심하겠습니까?”

“사실 그 두 가문에 관한 건 핑계에 불과하네. 8대 세가의 사람들도 어리석지 않으니 우리가 이번 일의 경과를 자세히 설명하면 누가 우리를 의심하겠는가?”

여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찌하여…….”

여목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사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우리가 지금 중도로 가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여목은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창운사지와 싸우겠지요.”

“맞네. 바로 창운사지와 맞서게 되겠지. 그것도 전장의 선봉으로 말일세.”

여사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데려온 우리 가문의 정예들은 총 35명이네. 모두 신유 경지이기는 하나, 그런 전투를 거치면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여목은 말문이 막혔다. 35명 중에서 3~5명 정도만 살아남아도 행운이었다.

“그럼 우리가 양 공자와 함께 움직여 중도로 가면 어떨 것 같은가?”

여사가 다시 물었다.

여씨 가문 사람들은 눈이 번쩍 뜨였다. 방금 전에 보았던 혈시 아홉 명을 떠올리자 모두 놀라움과 함께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양준 공자는 소문처럼 사마와 결탁하지 않았네. 내가 알기로 계승 싸움에서 그의 동맹들은 모두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네. 우리 여씨 가문이 그에게 연줄이 닿는다면 이득을 얻을 수 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화살받이가 되지는 않을 걸세. 내가 바라는 것은 거기까지라네. 여씨 가문에서 자네들을 양성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렇군요! 역시 장로님이십니다.”

여목은 그제야 여사가 왜 줄곧 양준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만약 양준이 그들을 이끌고 중도에 간다면, 앞으로의 상황이 지금처럼 나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계승 싸움에서 양준이 몇 번이고 기적을 일으켰던 것에 대해 그들 역시 들은 바가 있었다.

“그렇지만 양 공자가… 중도로 가려고 하겠습니까?”

“그건… 장담할 수 없네.”

여사는 낙담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양준은 8대 세가의 불공평한 일처리에 실망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휘하에 이렇게 많은 고수들을 두고도 왜 아무 움직임도 없겠는가? 그리고 양준은 8대 세가와 중도의 존망은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아직 중도와 8대 세가에 미련이 남았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가만히 앉아 지켜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며칠 더 기다려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이대로 중도로 출발할 수밖에 없네.”

여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양준 관저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여사는 시선을 돌려 나온 이를 확인하고는 정신이 번쩍 들어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멀리서 공수 인사했다.

“양 공자!”

여씨 가문 사람들은 서둘러 예를 올리며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여사의 말을 듣고 이미 양준을 그들의 생명줄로 여기고 있었다. 당연히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그들을 힐끗 보고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여 장로님, 지난날의 정도 있고 어르신께서 여기 계시는 모습을 외면하자니 제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

“괘념치 말게.”

여사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사양 마시고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여사는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양준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여사는 관저 안에 들어가면 양준과 중도로 가는 일을 논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추억몽이 여씨 가문 사람들을 접대했고, 양준은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양준의 뜻을 알 수 없어 몇 번이고 추억몽에게 물었다. 그러나 추억몽도 아는 것이 없었다. 여사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불안했다.

*몽무애의 방에서 양준은 자신의 생각을 몽무애, 지마, 능태허에게 말해 주었다.

“주인, 중도로 가겠다는 것인가?”

지마는 양준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의아해했다. 지난 반년 동안, 관저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성과도 아주 좋았다. 그런데 만약 중도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었다.

“그래, 중도로 갈 생각이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금인독안의 사용 방법과 그것이 자신에게 가져다줄 이익을 알게 되었으니, 당연히 기회를 찾고 싶었다. 전성에 있으면 안전하지만 실력의 향상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러나 중도는 달랐다. 그곳에는 수많은 신유 경지 고수들이 있었고,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신유 경지 고수가 죽으면, 양준은 그들이 수련한 신식을 얻을 수 있었다.

“무슨 꿍꿍이지? 너는 아무런 대가 없이 움직일 놈이 아니지 않느냐.”

몽무애가 웃으며 물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양준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세 사람은 일제히 눈썹을 치켜세우며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사부님께서도 조만간 중도로 갈 예정 아니셨습니까?”

양준이 고개를 돌려 능태허를 바라보며 말했다.

능태허는 순간 당황하다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중도에는 내가 평생 동안 거둔 두 명의 제자가 있으니 반드시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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