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6장. 떠올라라
“능 형……!”
몽무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능태허의 말에서 그의 의중을 깨닫게 되었다.
능태허는 양백을 찾아가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범 경지 2단계 실력으로 양백과 맞선다면 결과는 뻔했다. 양백을 양성했다는 사실은 능태허 마음속의 가시가 되었다. 그는 비록 결말이 죽음뿐이더라도 자신이 나서서 양백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능태허의 생각을 알게 된 몽무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랜 세월 동안 몽무애는 사실 친구가 몇 없었다. 약왕곡 운은봉의 소부생이 그중 한 명이고, 그리고 능태허뿐이었다. 양준과도 사이가 좋으나 어디까지나 그는 후배였다. 지금 오랜 친구가 불구덩이로 뛰어들겠다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자네가 그리 한다면 나도 중도로 가 봐야겠군.”
몽무애가 말했다.
“몽 씨……!”
능태허가 감격한 듯 몽무애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야 모두가 안전할 테니까. 언제 출발할 것이냐?”
몽무애가 빙그레 웃더니 양준에게 물었다.
“며칠 더 있다가 출발할 예정입니다. 큰형님과 둘째 형님이 데리고 온 혈시도 경지를 돌파하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수련을 마치는 대로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양준이 대답했다.
그때가 되면 초범 경지 열세 명, 그리고 몽무애, 능태허, 지마, 이원순까지 더하면 이쪽 실력은 전례 없이 강했다. 게다가 오늘 또 한 명의 초범 경지 고수 여사까지 끌어들였다. 이만한 힘으로 중도의 난을 평정하는 것까지는 무리지만,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있었다.
논의를 끝낸 다음, 양준은 여사에게 중도에 갈 것임을 말해 주었다. 여사는 그 말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내내 양준이 대의를 중시한다느니, 형세를 읽을 줄 안다느니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여씨 가문은 양준을 따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며칠간 양준 관저는 조용했다. 양위와 양소가 데려온 혈시 네 명은 폐관 수련을 하며 초범 경지를 돌파하고 있었다. 그들이 양준 관저로 온 지도 어언 반년이 지났다. 앞선 석 달 동안 그들은 만약영액으로 벌모세수하고 체질을 개선해 신유 경지 9단계에 올랐다. 그 이후 석 달 동안은 다시 만약영고를 복용하고 초범 경지 돌파를 위해 수련에 임했고, 이제 그 고지를 앞두고 있었다.
며칠간 여씨 가문 사람들은 양준 관저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들은 양준 관저의 모든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가는 무인들을 보면 8할은 신유 경지였고, 나머지 2할은 적어도 진원 경지 8단계였다. 이 가운데 많은 이들은 젊은 세대 제자였다.
스무 살도 채 안 된 젊은이들이 이런 경지에 이르렀다니! 여사는 놀라우면서도 부러웠다. 여씨 가문은 어떤가? 스무 살에 진원 경지에 오르면 인재로 여겨 힘써 양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양준 관저에서 진원 경지는 설 자리조차 없었다. 초범 경지의 혈시 아홉 명, 그 외 초범 경지 고수 네 명. 이 정도면 이미 중도 8대 세가를 훨씬 뛰어넘는 실력이었다.
여사와 여씨 가문 사람들은 며칠간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양준 관저 무인들의 강한 실력을 확인하고 나서 그들은 여씨 가문 같은 자그마한 일등 세가는 너무나 초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도 모르게 기가 한풀 꺾이는데 어찌 감히 방자할 수가 있겠는가?
*일주일 뒤, 하늘까지 치솟을 듯한 원기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규모의 천지조화가 다시 나타났다. 여사는 자신의 방에서 뛰쳐나와 하늘에서 모이는 방대한 기운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입술이 떨렸다.
‘누군가 신유 경지 이상을 돌파했군! 게다가 한 명이 아니야… 두 명이 동시에 돌파했구나!’
처음 뿜어져 나온 원기 파동이 아직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두 줄기의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여사는 그만 얼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태일문의 이원순이 어느 샌가 여사의 곁에 다가와서 그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탄식하며 말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네. 아홉 명이 연달아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르는 장면을 보셨어야 하는데 말일세.”
감개무량한 말투였다. 여사는 그 말에 이원순을 흘끔 보고는 공수하며 인사를 건넸다.
“귀하께서는?”
“태일문의 이원순이라고 하네.”
“태일문? 바다 건너 초대형 세력이라는 그 태일문 말인가?”
여사가 놀라서 재확인했다.
이원순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여기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허명에 불과하네. 우리 태일문은 양 공자의 세력에 비하면… 아니, 비할 수조차 없다네.”
여사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일문만 비할 수 없을까? 8대 세가조차 양준의 세력에 비할 수 없을 터.’
이곳이야말로 천하제일 세력이었다. 이미 역사상 모든 문파가 가지고 있던 저력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혹 그 댁에 손녀딸이 있으신가?”
이원순이 갑자기 생뚱맞게 물었다.
“한평생 무예만 익히며 살아온지라 후계는 두지 않았네.”
여사는 이원순이 왜 이런 것을 묻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여씨 가문 같은 일등 세가에 젊고 예쁜 규수 하나쯤은 있지 않나?”
“그렇기는 하오만.”
“그럼 어서 양준에게 시집보내시구려. 이럴 때 관계를 맺어야지.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는가? 내륙의 문파와 세가들이 부럽군. 만약 우리 태일문이 내륙에 있었다면, 손녀는 무슨… 내 딸아이라도 양 공자에게 시집보냈을 건데.”
그 말을 듣고 여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 나이에 딸이 있으면 마흔은 넘었을 텐데, 무슨! 양준이 좋아할까?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야!’
여씨 가문에 젊고 예쁜 아가씨들은 많았다. 만약 그중 한 명이라도 양준의 호감을 얻는다면 여씨 가문은 8대 세가보다 수천 배는 더 강한 세력에 연줄을 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양준은 어디까지나 아직 젊은이였다. 어린 나이에 누군들 풍류를 즐기지 않겠는가!
‘남자라면 결국 미인의 유혹을 이겨 내기 어렵지!’
여사 역시 그런 시기를 겪어 온 사람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의 낯빛도 애매해졌다. 이원순의 말에 마음이 동한 것이었다.
*혈시 네 명의 경지 돌파는 나흘 동안 지속되었다.
나흘 뒤에야 모든 것이 다시 평온해졌다. 혈시 네 명은 이미 초범 경지에 이르렀다.
양준은 그들에게 사흘을 더 주고 경지를 다지게 했다. 다른 혈시들은 자신이 그동안 수련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몽무애에게서 얻은 경험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네 사람은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초범 경지의 비밀과 구체적인 경지 구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드디어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양준은 원래 혈시 열세 명, 지마, 이원순 그리고 여씨 가문 사람들을 데리고 중도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몽무애의 한마디에 당황하여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난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다.”
“어떻게 말입니까?”
양준이 놀라서 물었다.
몽무애는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손을 흔들어 현광(玄光)을 뿜어냈다. 현광들은 허공을 파고들며 사라졌다. 이윽고 천행궁이 다시 나타나더니 투명한 궁전 결계가 관저 전체를 겹겹이 감쌌다. 결계에서 반짝이는 진법 무늬는 복잡하고 현묘했다.
“떠올라라.”
몽무애가 나지막하게 외쳤다.
이내 주변이 세차게 흔들리더니 양준 관저 전체가 땅 위로 솟아올랐다. 천행궁의 보호를 받아 양준 관저는 어떤 손실도 없이 마치 움직이는 섬처럼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이건……!”
모든 이가 깜짝 놀랐다.
자신들이 천천히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관저의 무인들은 너도나도 관저의 가장자리로 달려가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아우성을 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초범 경지 고수들도 몽무애가 펼쳐 보이는 수단에 전율을 느꼈다.
“내가 언제 천행궁을 옮길 수 없다고 말한 적 있느냐?”
몽무애가 득의양양해서 양준을 힐끔 보았다. 그는 양준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운 듯했다.
“제가 당했네요.”
양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방법이 있었기에 그날 양준이 중도로 가겠다고 했을 때, 몽무애는 반대하지 않고 전적으로 지지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이 가야만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장담했었다.
원래 양준은 몽무애가 왜 하응상을 내버려 두고 자신과 함께 중도로 가겠다고 하는지 의아해했었다. 몽무애는 모든 일에서 하응상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다. 그러므로 중도로 가는 일에 그렇게 열정적인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보니 그는 제자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진작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천행궁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깨뜨릴 수 없는 방어 결계를 지닌 것과 마찬가지였다. 양준은 이제 더는 안전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더 좋죠. 몽 주인, 고맙습니다.”
양준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싱긋 웃으며 몽무애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실없는 소리 작작하거라.”
몽무애는 힘겨운 표정으로 끊임없이 손을 흔들어 주위의 결계에 현광을 뿜었다. 천행궁을 움직이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었다.
“하하하!”
양준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땅 위에서는 선경라와 벽락이 넋이 나간 채로 하늘로 솟아올라 천천히 중도 쪽으로 움직이는 양준 관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벽락이 중얼거렸다.
지난번 그녀가 초범 경지 고수에게 부상을 입었을 때, 며칠 만에 완치되어 선경라와 함께 양준 관저를 떠났었다.
“나도 몰라.”
눈앞의 광경은 이미 선경라의 견식과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대인, 이제 우린 어떡하죠?”
벽락이 물었다.
“우리도 중도로 가자.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졌구나.”
선경라와 벽락이 이곳에 남아 있은 것은 양백이 그녀에게 양준 관저의 움직임을 감시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양준 관저가 중도로 움직였으니 그녀 역시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빛으로 변해 번개같이 양준 관저를 쫓아가며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난 이 사실을 사주한테 알리러 중도로 갈 거야!”
그녀가 외치자,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지시했다.
“지마, 쫓아가!”
지마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물었다.
“다른 이를 보내면 안 되겠나?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양준과 선경라 사이는 무척이나 미묘했다. 요미여왕이 양준에게 적의가 아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그녀에 대한 양준의 태도 또한 애매했다. 그녀가 일부러 외친 것은 양준에게 사람을 보내 막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를 저지하면서 부상을 입혀서도 안 되었다. 지마는 이렇게 힘만 들고 자칫하면 욕먹을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양준이 노려보자 지마는 얼른 대답했다.
“지금 가겠네!”
말하는 한편, 지마는 울상을 하고서 관저에서 뛰쳐나와 선경라와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