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7장. 복수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남북이 서로 보이지 않는 천하제일 성. 이 말은 원래 규모가 거대한 중도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창운사지의 침략으로 이는 현실이 되었다. 현재 남북은 정말로 서로 보이지 않았다.
중도의 북쪽은 이미 창운사지가 다 차지해 버렸다. 그리고 중도의 남쪽은 양씨 가문을 중심으로 8대 세가가 모여서 방어하는 한편, 때때로 반격하며 양백과 5대 사왕을 몰아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전투는 반년 넘게 지속되면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경지로 볼 때 창운사지 쪽은 초범 경지 3단계인 양백이 있기에 절대적인 우세였다. 그러나 고수의 숫자로 보면 8대 세가가 월등하게 앞섰다. 반년 동안 초범 경지 고수가 적지 않게 죽었지만 이러한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쌍방 모두 뾰족한 수가 없어 서로 대치하면서 누구도 중도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사흘에 한 번씩 소규모로, 닷새에 한 번씩 대규모로 전투를 치렀다. 이는 8대 세가나 창운사지의 무인들에게 있어서 일상사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중도의 남북 경계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한편, 또 새로운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싸움터로 몰려들었다. 전투는 갈수록 더 치열해졌다. 나서서 싸우는 이들은 신유 경지 고수들로 초범 경지 고수들은 모두 후방에서 자리를 지키며 지휘하고 있었다.
창운사지 쪽, 5대 사왕은 냉담한 표정으로 참혹한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음명귀왕과 절멸독왕은 피비린내 나는 눈앞의 광경이 아주 마음에 드는지 음산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고는 휘하 사람들의 생사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끊임없이 전장에 내몰았다.
8대 세가 쪽, 엽광인, 강예, 고묵, 맹서평은 눈에 핏발이 가득 서서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가문의 정예들을 모두 전장에 투입시켜 창운사지의 무인들과 싸우게 했다. 이 넷은 8대 세가 중 엽씨, 강씨 고씨, 맹씨 가문의 현임 가주들이었다.
반년 전, 창운사지가 가장 먼저 침입한 것은 전성이었다.
고씨 가문의 고양풍은 두 사왕의 손에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또한 엽씨 가문의 엽신유와 강씨 가문의 강참은 그들에게 사로잡혀 아직까지 창운사지 쪽에 있었는데 죽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었다. 그 당시 오직 맹선의만 빠르게 사태파악을 하여 일반 제자로 분장해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독 안개와 귀기에 영향을 받아 거의 폐인이 다 된 상태였다. 맹씨 가문의 고수가 그를 중도로 데려온 다음, 맹씨 가문에서는 줄곧 천재지보로 그를 치료하고 있지만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4대 세가의 후계자들은 죽거나 폐인이 되거나 아니면 사로잡혔다. 그들의 아버지로서 4대 세가의 가주들은 특히 분노를 금치 못했다. 반년 동안 전투에서 이 4대 세가는 다른 가문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오늘의 전투도 이 4대 세가를 주력으로 해서 다른 가문들이 협력해 창운사지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싸우고 있던 쌍방은 상공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이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이내 적과의 거리를 벌린 다음, 고개를 들고 멀리 바라보았다.
곧이어 자그마한 검은 점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거리가 너무 멀어 한동안 사람들은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서서히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당황해서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것은 관저였다. 하늘에 뜬 채,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관저는 마치 움직이는 요새처럼 기세가 대단했다.
관저 밖은 궁전 모양의 결계가 감싸고 있었다. 결계에는 아름다운 빛이 반짝이고 현묘한 무늬가 흐르고 있었다. 강한 원기 파동은 바로 관저에서 전해진 것이었다.
“저게 뭐지?”
음명귀왕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중얼거렸다.
무인들은 진원 경지에 이르면 어공비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관저도 날아다닐 수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귀왕, 저 결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절멸독왕의 초록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생각되는 바가 있는 듯했다.
그의 말을 듣고 음명귀왕은 잠깐 생각하다가 놀라며 말했다.
“그럼 설마…….”
“맞는 것 같군. 오고 있는 방향도 그쪽이야.”
“관저 자체가 통으로 날아다닌다고?”
“평범하지 않은 비보의 힘이 분명하네. 우리가 모르는 것도 당연해.”
섬전영왕이 끼어들며 한마디 했다.
“요미여왕은 어디 있지? 저들의 움직임을 모를 리도 없을 테고, 여태 보고하지 않았다니 이해할 수 없군.”
패천역왕이 떠들어 댔다. 천둥 같은 목소리가 중도에 울려 퍼졌다.
“요미여왕이 딴마음을 품고 있는 건 진작에 알았어.”
절멸독왕이 음침하게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어. 언젠가는 그 계집도 내 아래로 복종시키고 말겠어.”
뇌정수왕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5대 사왕이 움직이는 관저를 가리키며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있을 때, 8대 세가 쪽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그들은 모두 전성 쪽의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양준 관저가 이처럼 갑자기 나타나자 창운사지의 지원 세력인 줄 알고 가슴을 졸였다. 오직 양응호만이 움직이는 요새를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진작 양응봉에게서 양준 관저가 무사하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양준이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자신의 관저를 보호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왠지 양준이면 그럴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보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이윽고 양준 관저가 중도성에 이르렀다. 관저 앞에 서 있는 모습들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8대 세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양준이다. 양씨 가문의 막내 공자 양준!”
“여태 살아 있었다고? 전성은 전멸했다고 하지 않았어?”
“관저를 통으로 하늘에 띄운 거야?”
양준이 선두에 선 채 관저의 가장자리에서 중도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의 뒤로 초범 경지에 이른 양씨 가문의 혈시들이 일렬로 서 있었고, 그 뒤로는 지마, 능태허, 여사, 이원순 초범 경지 4명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수많은 신유 경지 고수들이 늘어서 있었다.
양응호의 곁에 서 있던 혈시당 당주 풍승은 계승 싸움에 참여했던 혈시 열세 명을 지켜보고 있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부당주 주봉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도봉과 우선이의 기운이 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군.”
“신유 경지 9단계에 올랐다는 소문이 있던데…….”
주봉이 미심쩍어하며 말했다.
“아니다. 직접 보니 그보다 더 강한 것 같아. 굉장한 압박감이다.”
풍승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혈시당 당주로서 진작 신유 경지 정상 고수였다. 그들이 만약 신유 경지 9단계라면 그에게 이런 압박감을 줄 수가 없었다.
양준 관저는 천행궁의 결계에 감싸여 있어 누구도 신식으로 탐지할 수 없었다. 풍승은 그들이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유 경지 이상을 돌파한 건 아니겠지?’
언제나 침착했던 풍승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곧이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양 가주, 이게 무슨 뜻인가?”
8대 세가의 가주들이 고개를 돌려 양응호를 바라보며 그에게서 답을 구했다.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게.”
양응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역시 양준이 왜 갑자기 중도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복수하러 온 건 아니겠지?”
엽광인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의 말에 8대 세가 가주들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었다. 반년 전, 8대 세가가 여러 가지 수단으로 양준을 몰아세우던 상황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양준은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이였다. 어린 나이에 혈기가 왕성해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 할 수도 있었다. 만약 양준이 8대 세가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창운사지와 손을 잡는다면…….
“복수를 하러 온 거라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고묵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강예도 덧붙여 한마디 했다.
“같은 양씨 가문 사람인데 복수라니! 이건 양 가주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네.”
“내가 어찌 해결한단 말인가? 7대 세가들이 준이를 공격할 때, 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네. 정말 복수하러 온 거라면 우리 양씨 가문은 할 말이 없네.”
“너무 걱정이 많은 것 아닌가? 그 아이의 능력으로 무얼 할 수 있겠나? 정말 8대 세가에 보복을 할 생각이라면 그건 죽음을 자초하는 것일세. 그리고 양준의 부모도 양씨 가문에 있지 않는가?”
맹서평이 냉소했다.
양응호는 고개를 돌려 맹서평을 힐끗 보았다. 그러고는 확실하게 경고했다.
“가족은 건드리지 마시게. 그 아이를 화나게 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맹서평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양응호가 너무 과하게 걱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녀석에게 뭘 저리 쩔쩔매는지,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군.’
그들이 말하는 사이, 양준 관저는 중도 한가운데에 멈췄다가 곧이어 천천히 땅 위로 내려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과 함께 백 리 밖 전성에 있던 양준 관저가 다시 중도에 자리 잡게 되었다.
몽무애는 숨을 헐떡였고 머리도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거의 탈진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신유 경지 정상의 실력으로 천행궁 같은 비보를 작동하는 것은 몽무애에게 있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백 리 정도만 날았으니 망정이지, 조금 더 멀었으면 그조차도 견뎌 내지 못했을 것이다.
“몽 주인, 고맙습니다.”
양준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몽무애는 대답하고 나서 곧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관저는 잘 벼린 칼처럼 당당하게 한가운데 자리 잡으며 양쪽 세력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앞쪽은 8대 세가이고, 뒤쪽은 창운사지였다. 이 같은 모습은 양준이 전투 중인 쌍방을 안중에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어느 쪽과도 타협하거나 손잡지 않을 것임을 말해 주었다.
“재미있군!”
사왕들은 웃으며 흥미진진하게 가장 앞쪽에 선 양준을 훑어보았다.
“버릇없이!”
8대 세가의 몇몇 가주들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