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68화 (567/853)

제 568장. 죽여

8대 세가 쪽에서 초범 경지 고수 두 명이 시뻘게진 눈동자에 경계심을 가득 담고서 양준 관저의 사람들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바로, 황효와 강철이었다.

열흘 전, 두 사람은 허둥지둥 중도로 도망쳐 와 자신들이 겪은 일을 8대 세가에 보고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8대 세가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양준 관저에 고수가 몇 명 있고, 각각 어떤 수준인지 8대 세가는 모두 꿰고 있었다. 그 정보가 반년 전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황효나 강철이 말한 것처럼 겨우 반년 만에 혈시 아홉 명이 초범 경지가 될 수는 없었다.

황효와 강철이 한마디 거짓말도 보태지 않았다고 하늘에 대고 맹세했지만 8대 세가에서는 끝까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구실을 만들어 가문의 정예들을 중도에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황효와 강철은 의심만 받게 되었고, 8대 세가에서 그들을 중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도로 지원하러 온 다른 일등 세력도 둘을 배척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이 억울함을 모두 양준의 탓으로 돌렸다. 만약 양준이 잔인하게 명을 내려 두 세력의 정예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찌 오늘 같은 처지가 되었겠는가? 둘은 분노했지만 그래도 명석한 편이었다. 두 사람의 실력으로 결코 양준 관저를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은 음산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몰래 아래쪽에 있던 두 명의 초범 경지 고수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황효와 강철과 마찬가지로 그 두 명도 미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살기등등해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양준과 철천지원수인 듯했다.

“향 가주! 남 가주! 양준은 두 가문의 후계자를 죽인 놈이요. 저놈이 이곳에 다시 나타났으니 생각해 둔 계획이라도 있소?”

황효가 요상하게 말했다.

향녕(向寧)은 황효가 일부러 부추기려는 것을 알아차리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향씨, 남씨 가문은 양준과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소. 기회만 주어진다면, 양준의 목숨을 취할 것이니 황 장로가 신경 쓸 것 없소.”

향씨, 남씨 가문은 일등 세가로 8대 세가의 모집령을 받고 중도로 지원을 오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중도에 도착한 몇 안 되는 큰 세력 중의 하나였다.

며칠 간의 전투를 거쳐 두 가문은 손실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향씨 가문의 가주 향녕과 남씨 가문의 가주 남희루(南希樓)는 기분이 엉망이었다. 중도에서 물러가고 싶지만, 그럴 배짱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향초와 남생을 죽인 원수를 보게 되자 두 사람은 금세 분노가 치밀었다.

남희루는 고개를 돌려 8대 세가 쪽을 바라보더니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쪽에서는 양준에 대해 무슨 태도인지 알 수 없군.”

황효가 냉소를 지었다.

“양준은 지금 양씨 가문과 등을 진 상황이오!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두 분은 무엇을 걱정하는 것이오?”

강철도 냉소하며 한마디 했다.

“원수가 바로 코앞에 있거늘, 두 분은 계속 참기만 할 것이오?”

향녕과 남희루는 동시에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도 직접 양준을 죽여 죽은 아들들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 역시 양준 관저를 감싼 결계가 대단한 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결계와 같은 빛의 장막을 꿰뚫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결계를 깨뜨리지 못하면, 당연히 양준에게 복수할 수 없었다.

그들이 주저하고 있을 때, 양준 쪽에서 움직였다.

양준은 거리낌 없이 결계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는 혈시 열세 명, 지마, 이원순, 여사가 바싹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신유 경지의 무인들도 모두 걸음을 내디뎠다.

이 같은 움직임에 모든 사람들이 경악에 빠졌다. 모두 양준이 감히 혼란한 싸움터에 발을 내디딜 정도로 대담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양준은 주위를 살펴보고 지시했다.

“창운사지 놈들은 모조리 죽여!”

명이 떨어지자, 신유 경지 고수들이 일제히 제자리에서 넋을 놓고 있는 창운사지 무인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대치 상황이 끝나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양준 관저에는 4~500명의 신유 경지 고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파죽지세로 몰아붙였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창운사지의 무인들은 막아 낼 힘이 없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여기저기 비명이 울려 퍼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양준의 식해 속 금인독안에 다시금 알 수 없는 흡입력이 생겨나 신유 경지 고수들이 죽은 다음 흩어진 신식을 흡수했다. 양준은 기쁜 얼굴로 조용히 제자리에 서서 신식을 흡수하는 과정을 즐겼다.

혈시들은 움직이지 않고 창운사지의 초범 경지 고수들이 양준을 기습할 것을 경계하면서 그의 곁을 지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8대 세가의 가주들은 모두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들은 양준이 먼저 창운사지를 공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양준 대열의 뒤를 따르라!”

양응호는 사기가 크게 진작되어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의 명령에 8대 세가의 신유 경지 고수와 지원하러 온 각 세력들이 너도나도 움직였다. 양준 관저의 무인들이 막무가내로 몰아붙이고 있을 때, 그들 역시 기세 좋게 앞으로 달려들었다.

“기회가 왔소. 향 가주, 남 가주.”

황효가 웃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향녕과 남희루는 서로 마주 보았다. 눈동자에는 경계심과 걱정이 서려 있었지만, 아들을 잃은 분노가 활활 타올라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곧이어 두 사람의 표정이 단호해짐과 동시에 신형이 움찔하며 둘 다 모습을 감추었다. 남씨, 향씨 가문의 정예들은 가주의 뒤를 쫓아 앞으로 달려갔다.

황효와 강철은 제자리에 조용히 서서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는 의기양양함과 고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향녕과 남희루는 결국 그들의 말에 솔깃하여 이제 곧 양준 관저의 강한 힘을 맛보게 될 것이다.

지난 열며칠 동안, 향녕과 남희루는 여러모로 그들을 배척했다. 두 사람은 이제야 그동안 쌓였던 울분과 원망을 쏟아 낼 수 있게 되었다.

황효와 강철은 온몸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양준, 죽어라!”

순간 웬 고함소리가 양준의 귀에 들려왔다. 한창 죽은 고수들의 신식을 흡수하고 있던 양준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쪽에서 초범 경지 고수 두 명이 살기등등해서 그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언제 어디에서 그들과 척을 졌는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심지어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차갑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비웃음을 알아챈 향녕과 남희루는 마지막 이성의 끈도 던져 버렸다. 머리에는 오직 양준을 죽여 아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혈시들은 양준에게 달려드는 향녕과 남희루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일정한 거리까지 다가오자 진원을 세차게 폭발시켰다.

앞쪽에서 밀려오는 진원에 내재된 거대한 살상력에 향녕과 남희루는 하마터면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것은 그들의 힘에 못지않은, 심지어는 그들보다 더 강한 힘이었다.

곧이어 눈앞이 아찔하더니, 두 사람은 미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허공에서 열몇 바퀴를 돌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다음 도봉과 영구에게 짓눌려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모두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8대 세가의 가주들은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혈시들이 움직이지 않았을 때 그들은 열세 명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강한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가주들은 놀랍게도 그들이 신유 경지가 아니라 정말 신유 경지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혈시당의 당주 풍승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확인하니 놀라운 마음과 함께 형제자매들이 자신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간 것이 더없이 기뻤다. 또한 기쁜 동시에 은근히 그들이 부러웠다.

“향 가주, 남 가주, 어찌 된 일인가?”

여사가 대경실색해서 물었다.

“향 가주, 남 가주?”

양준은 여사의 말을 듣고, 곧 그들이 왜 자신에게 이처럼 적대감을 드러냈는지 알 수 있었다.

향녕과 남희루는 사색이 되었다. 땅에 짓눌려 있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두려움과 분노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공자님, 이 두 사람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도봉이 물었다.

“죽여!”

양준의 눈동자에는 차가운 빛이 서려 있었다. 두 사람의 신분을 몰랐을 때는 죽일 마음이 없었으나 신분을 안 이상, 그들을 살려 두고 싶지 않았다.

향녕과 남희루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양준이 그들의 신분과 지위를 알면서도 이런 명을 내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향녕이 소리를 질렀다.

“양준, 무슨 일이든 여지를 두어야 하거늘. 앞으로 만날 일이 없겠는가?”

양준이 비릿하게 웃었다.

“여지를 두지 않을 겁니다. 오늘부로 향씨, 남씨 가문은 세상에서 없어질 테니까요.”

향녕과 남희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봉과 영구는 더는 주저하지 않았다. 거센 진원이 폭발하자, 초범 경지의 일등 세가 가주 두 사람은 순식간에 숨을 거두었다.

방금 전까지 흡수하던 것들과는 다른 두 갈래의 신식이 금인독안의 흡입력에 의해 양준의 식해에 흡수되었다. 양준은 두 신식의 강함을 느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백 장 밖에 서서 고소해하는 황효와 강철을 냉랭하게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저 둘도 치워 버려!”

지난번에는 양준이 금인독안의 비밀을 알아보는 사이에 두 사람이 도망쳐 손쓸 틈이 없었지만, 다시 마주친 이상 더는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혈시 다섯 명이 양준의 명에 따라 움직였다. 황효와 강철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혈시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싸웠지만 얼마 안 되어 둘 다 죽고 말았다.

혈시들은 초범 경지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몽무애에게서 가르침을 받다 보니, 실제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은 일반 초범 경지보다 훨씬 더 강했다. 거기에 더해 5대 2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황효와 강철이 어찌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이 죽자, 양준은 미간을 찡그리고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십 장이 채 안 되는 곳에 이르러서야 강한 신식 두 갈래가 자신의 식해에 흡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략 이십 장 정도 거리인가?’

이는 금인독안이 효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였다. 양준은 무심코 이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망할 놈!”

엽광인이 노하여 소리쳤다. 다른 8대 세가의 가주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은 양준이 창운사지를 먼저 공격하자, 8대 세가와 손잡고 창운사지를 몰아내기 위해 중도에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양준은 8대 세가를 지원하러 온 고수들까지도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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