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69화 (568/853)

제 569장. 부모한테 물어보는 건 어떤가?

한순간에 초범 경지 고수 네 명이 죽었다. 이는 중도 8대 세가에 있어서 실력적인 손실일 뿐만 아니라 사기가 꺾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8대 세가의 가주들을 당황하게 한 것은 양준의 생각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유 경지 이상이 열입곱 명일세.”

맹서평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양준 곁에 서 있는 고수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빛을 잃었다.

혈시 열세 명, 거기에 지마, 능태허, 이원순, 여사까지 더하면 신유 경지 이상이 무려 열입곱 명이나 되었다. 이 숫자에 8대 세가는 낯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들의 가문은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그 정도의 절정 고수가 네다섯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양준 관저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저들의 실력이 어떻게 이처럼 빨리 향상되었을까?’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영구는 날 따라오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움직여!”

양준은 지시를 내린 뒤, 영구와 함께 혼란스럽고 피비린내로 가득 찬 싸움터를 누볐다. 나머지 초범 경지 열여섯 명은 아무 말도 없이 창운사지 쪽으로 달려갔다. 8대 세가의 무인들은 잠깐 놀라서 머뭇거리다가 곧이어 양준 관저의 고수들과 협력하여 창운사지를 포위 공격했다.

“모두 물러서라고 해라!”

양백이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더니 5대 사왕에게 조용히 명했다.

5대 사왕은 8대 세가의 가주들처럼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양준 관저 무인들의 수와 그 경지를 확인하고서 그들은 일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그동안 줄곧 8대 세가와 대치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양준 관저라는 커다란 변수가 나타나는 바람에 지금의 대치 상태도 조만간 끝날 것 같았다. 양준 관저가 선택하는 쪽이 이기고, 반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패배할 터였다.

5대 사왕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양준이 창운사지뿐만 아니라 중도 쪽 사람들에게도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양쪽 다 체면을 봐주지 않고 자신을 건드리는 자는 모두 죽였다.

양백이 명령하자, 5대 사왕은 감히 지체하지 못했다. 곧이어 신호인 듯한 무거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창운사지의 무인들은 싸우면서 조금씩 물러가더니 점차 종적을 감추었다.

양준 관저의 무인들과 8대 세가의 사람들은 한참 동안 추격하다가 너무 깊게는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양준이 이곳에 도착한 지 겨우 반 시진 만에 전투가 끝났다. 창운사지와 8대 세가는 모두 사상자가 막대했다. 오히려 나중에 참여한 양준 관저의 무인들은 아무 손실도 없었고, 기껏해야 조금 상처 입었을 뿐이었다.

양준은 싸움터를 몇 바퀴 돌며 죽은 신유 경지 고수들의 신식을 모조리 흡수한 다음에야 영구와 함께 관저에 돌아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폐관 수련에 들어갔고, 8대 세가와는 인사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다.

*이처럼 오만방자하고 8대 세가를 무시하는 양준의 모습에 모든 이들은 가슴이 답답했다.

“양 가주, 저 녀석 너무 버릇없는 거 아닌가?”

싸움을 마치고 나서, 강예가 분노에 찬 얼굴로 양응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는 그럴 자격이 있네.”

양응호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어쨌든 양씨 가문 사람이 아닌가. 가주의 권한으로 억누를 수는 없겠는가?”

“웃기는 소리! 저 녀석이 가문의 도움 같은 걸 필요로 할 것 같은가?”

양응호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에휴, 우리가 잘못한 것 같네. 애당초 녀석의 비밀을 캐내려고 핍박하는 것이 아니었네. 만약…….”

맹서평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엽광인이 냉랭하게 말하며 맹서평을 힐끗 보았다.

“우리가 만약 양준의 지지를 얻게 된다면 보름이 안 되어 창운사지를 몰아낼 수 있단 말일세. 반대로 만약 창운사지에서 양준의 지지를 얻으면, 그럼 중도는…….”

‘끝장이란 말이네!’

“하지만 방금 전에 그 녀석이 향씨, 남씨 가문의 가주 그리고 황씨 가문과 광명부의 장로를 죽였네.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고묵이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닐세. 그들은 우리 8대 세가의 모집령을 받고 중도로 지원하러 온 것인데, 일처리를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우리 8대 세가에 대한 인상만 안 좋아질 걸세.”

상황이 매우 골치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자, 사람들은 모두 침묵에 빠졌다.

원래대로라면 양준이 그 네 사람을 죽였기에 8대 세가는 어떻게든 행동을 취해야 했다. 설령 보여주기식으로라도 다른 세력들에게 해명을 해야 하는 게 맞지만, 지금 양준과 척을 지면 그 결과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양준에 대해 잘 아는가? 어찌 저 정도까지 할 수 있지?”

곽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의 말에 일곱 명은 일제히 양응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양응호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잘 알지 못하네. 내가 알기로는 성격이 드세고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성격일세.”

“녀석의 부모한테 물어보는 건 어떤가? 우리보다는 잘 알 거 아닌가.”

강예가 제안했다.

“좋은 생각이군! 녀석이 아무리 잔인하고, 8대 세가에게 원한이 있다 해도 자신의 부모는 신경 쓸 거 아닌가?”

양응호가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러오긴 하겠지만, 절대로 그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네.”

“당연한 말씀을!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일곱 명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누가 감히 양준에게 밉보이려 하겠는가?

양응봉 부부는 양응호가 특별히 배치해 줄곧 양씨 관저에 머무르면서 창운사지와의 싸움에 나가지 않았다. 양응봉이 싸움에 나가겠다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양응호는 허락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양응호는 양준에 대한 미안함을 이로써 조금이라도 보상하려는 것이었다.

양응호는 사람을 보내 양응봉 부부를 불러왔다.

양응봉이 공수하며 물었다.

“가주님, 저와 안사람을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와 동소죽은 양준이 오늘 중도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방금 전에 쌍방이 접전을 치렀다는 것도 알 리가 없었다.

“별일 아니다. 여기 계신 가주님들이 준이의 성격에 대해서 좀 알고 싶다는구나.”

양응호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준이의 성격 말입니까?”

양응봉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의아해했다.

“준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동소죽이 다급하게 물었다.

양응호는 고개를 저었다.

“준이는 무사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그러면 왜 준이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거죠?”

동소죽은 경계심이 어린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나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가주들이 그들 부부를 대하는 태도가 조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몇 명은 그녀에게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이는 평소에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동소죽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양응호는 하는 수 없이 방금 전에 일어난 일들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나쁜 녀석… 어찌하여 중도에 왔는데 가문에 돌아오지 않는 거지? 설마 8대 세가에 대한 원망 때문에 그러는 건가?”

양응봉이 노하여 양준을 꾸지람했다. 이에 가주들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양응봉은 겉으로는 양준의 행동을 꾸짖는 듯했지만, 사실은 아들을 대신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었다. 만약 이전에 8대 세가에서 양준을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양씨 가문 일원으로서 그가 왜 독립해서 스스로 힘을 키우겠는가?

“죄송합니다, 가주님들. 애가 아직 어려서 많이 부족합니다. 나중에 제가 반드시 버릇을 고쳐 놓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강예가 서둘러 말했다. 만에 하나 양응봉의 꾸지람에 양준이 화가 나서 8대 세가와 완전히 반목하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우리는 그저 양준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네. 자네들이 양준을 낳아 길렀으니 누구보다 잘 알지 않겠나?”

“그게… 민망하게도 저는 아들과의 교류가 적어서 사실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양응봉이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제가 잘 압니다.”

동소죽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모든 이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모두 기대하는 눈치였다.

동소죽은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만 모두 양준의 어린 시절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었다. 8대 세가의 가주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얼굴빛이 괴상해졌다.

장장 한 시진이나 들었지만, 그들은 유용한 정보를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대신 양준의 어릴 적 일들을 모두 알게 되었다.

“그만하게……. 이제는 우리도 알 것 같군.”

동소죽이 이야기를 계속하려 하자, 양응호가 얼른 그녀의 말을 잘라 버렸다.

동소죽이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 아들은 결코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제가 녀석이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말이 있었습니다. 받은 것의 2배만큼 베풀고, 당한 것의 10배를 돌려줘라.”

그녀의 말을 듣고, 가주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모두 천진난만해 보이는 동소죽을 바라보았다. 동소죽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양응봉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알겠네.”

강예가 정중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께서 아셨다니, 그럼 우리 부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양응봉이 작별 인사를 건네고 동소죽과 함께 차분하게 떠나갔다.

양응봉 부부가 떠나간 다음에야, 가주들은 서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겉으로는 소녀 감성을 지닌 동소죽이 사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준의 지금과 같은 일처리 방식은 그녀의 어릴 적 가르침에서 비롯된 듯했다.

“받은 것의 2배만큼 베풀고, 당한 것의 10배를 돌려준다?”

가주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양준 관저.

양준은 이틀 동안 폐관 수련을 하며, 이번에 흡수한 신유 경지 고수들의 신식을 금인독안으로 정화했다. 그리고 드디어 신유 경지 5단계가 되어 소안과 같은 경지가 되었다.

양준은 신유 경지 5단계에 이르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안을 만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녀의 실력이 자신을 앞서고 있었다. 양준은 그녀의 남자로서 당연히 그녀를 넘어서고 싶었다. 이는 경쟁 심리나 남성 우월주의 때문이 아니었다. 소안의 잠재력이 대단하기에 만약 자신이 제자리에 머문다면 소안과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질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폐관 수련을 마치고 양준은 또다시 관저의 고수들을 거느리고 창운사지를 공격했다.

그러나 지난번에 기습을 당한 뒤, 창운사지는 진작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양준 관저의 공격은 큰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신유 경지 몇 명과 요수들을 조금 죽였을 뿐이었다. 얻은 것이 너무 적었다.

하지만 양준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금인독안을 수련의 도움 정도로 생각했다. 더 강해지려면 오직 꾸준한 수련만이 답이었다. 창운사지를 빈번하게 공격하는 것은 신유 경지 고수들이 죽은 다음 신식을 얻고, 동시에 자신을 갈고닦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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