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0장. 세상이 변하겠군
한 달 동안 창운사지는 몇십 명의 사상자를 냈다.
양준 관저와 창운사지가 싸우는 한 달간, 8대 세가도 잠깐이나마 숨 쉴 틈을 가지게 되었다. 가끔 양준과 협력해 창운사지의 사람들을 기습했으나 대규모의 인원을 투입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양준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현재 중도는 양준 관저, 8대 세가, 창운사지 세 세력이 대립하는 형세가 되었다. 서로 간의 관계도 복잡하게 엮여 내막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8대 세가와 창운사지는 물론 물과 불의 관계로 서로 대립각을 세웠다.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양준 관저는 수시로 창운사지를 공격했다. 그렇지만 양준 관저의 사람들은 8대 세가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다. 심지어 8대 세가에서 그들을 건드리면 마찬가지로 혼쭐을 내주었다.
다행히 8대 세가의 가주들은 각 가문의 정예들에게 절대 양준 관저를 건드리지 말라고 명해 둔 상태였다. 설령 싸움터에서 이익 다툼이 있더라도 반드시 양보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지금과 같은 중요한 상황에 8대 세가는 양준 관저와 갈등을 빚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창운사지 무인들이 가지고 있던 단약, 비보 등은 모두 양준 관저의 무인들이 싹쓸이했고, 8대 세가에서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양준 관저의 명성은 점점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 달 뒤, 수많은 무인들이 양준 관저 밖에 집결해 있었다. 어찌나 북적이는지 추억몽이 알아채고 밖으로 나와 한참 살펴보고는 곧 양준을 찾아갔다.
“무슨 일이야?”
“밖에 사람이 잔뜩 왔어.”
“뭐 하는 사람들이야?”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소란을 피우러 온 줄 알았던 것이다.
“다 너한테 의탁하러 온 거래.”
“나한테? 계승 싸움도 끝났는데 왜 온 거지?”
양준은 어이가 없어 실소하고 말았다.
추억몽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모두 8대 세가의 모집령을 보고 중도로 지원하러 온 일등 세력의 고수들이야.”
“8대 세가에서 모집한 거면 8대 세가로 가야지, 왜 나한테 온 건데?”
양준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른 척하지 마!”
추억몽이 콧방귀를 뀌었다.
“여기가 가장 안전해서 그렇잖아! 우리가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일부 일등 세력들이 중도에 지원하러 왔어. 다만 그 세력들은 지금 태반이 죽어 나갔지. 그러니 지금 지원하러 온 세력들이 8대 세가의 비호를 바라겠어?”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
이내 양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래. 그리고 실제로 그러기도 했잖아.”
추억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씨 가문을 말하는 거야?”
양준은 금세 알아차렸다.
“여씨 가문도 원래는 중도를 지원하러 온 것이었어. 그런데 지금 네 휘하에 들어오게 되었잖아. 그동안 여씨 가문에서 한 명도 안 죽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창운사지의 놈들을 적지 않게 죽이기까지 했지. 네가 만든 선례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해.”
추억몽은 고소해하며 웃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 당시 여씨 가문을 남긴 것은 전에 여사와 일정한 교분이 있었고, 여씨 가문 정예들의 실력도 괜찮은 편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지금 중도에 지원하러 온 세력들을 모두 받아들이려면 우선 그럴 만한 공간이 있는지도 문제였고, 설령 다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갈등이 생기는 것도 문제였다.
양준은 잠깐 망설이다가 씩 웃었다.
“온 사람들은 모두 받아들여.”
추억몽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양준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찾아온 이들을 모두 쫓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이런 결정을 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추억몽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욕심도 커라.”
“이건 기회야. 8대 세가도 이제 물갈이할 때가 됐지.”
양준이 냉소하며 말했다.
추억몽의 눈동자가 반짝 빛나며 은은히 기대감을 비쳤다. 그녀는 서둘러 관저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8대 세가 쪽에서는 멀리 인파로 붐비는 양준 관저를 바라보며 모두 얼굴빛이 흐려져 있었다. 그 세력들은 모두 8대 세가의 모집령을 받고 중도로 지원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누구도 8대 세가와 함께하려 하지 않고, 도리어 양준 쪽으로 몰려갔다.
8대 세가의 가주들은 저도 모르게 괜히 남 좋은 일을 했다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이 바뀌겠군.”
강예가 앞날을 예감한 듯 나지막하게 탄식했다.
천하의 세력들이 8대 세가를 배척하고 신임하지 않는 반면, 양준 관저로 몰려드는 광경은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8대 세가의 권위는 모두 사라질 것이고 새로 일어선 양준 관저가 그 위치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번 고비를 넘기면 누가 중도를 지배할까?
“양씨 가문에… 대단한 인물이 났소이다.”
몇몇 가주는 모두 부러운 시선으로 양응호를 바라보았다.
양응호는 입가를 실룩거리며 탄식했다.
“그저 혈육의 정을 염두에 두기를 바랄 뿐일세.”
찾아온 세력들을 모두 받아들인 양준 관저는 시끌벅적했다. 결계 안에 들어오는 순간, 마치 더는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든든한 느낌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 들어온 이들은 모두 고분고분 추억몽의 지휘와 배치에 따랐으며 아무도 이의를 가지지 않았다.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자, 그리 넓지 않았던 양준 관저는 점점 더 붐비었다. 새로 온 세력은 거의 다 가문이나 문파를 단위로 해서 건물에 배치했다. 건물 내에서 모두들 각자 자리를 찾아 가부좌를 틀고 좌선했다. 개인 방이나 침대, 침구조차 없었다. 그러나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양준 관저에 의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만족스러워했다.
갈수록 더 많은 세력들이 양준 관저에 찾아왔고, 양준은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였다. 이 세력들은 모두 창운사지와 싸우러 온 것이었다. 8대 세가는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을 저지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준 관저도 점차 평온해졌다. 양준 관저는 2천여 명의 고수들이 모여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초범 경지의 고수는 원래 있던 열입곱 명을 제외하고, 나중에 또 열 명이 증가되었다.
*양준 관저의 실력이 무서울 정도로 향상되자, 8대 세가와 창운사지 양쪽 모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저녁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가운데, 두 무리의 사람들이 앞뒤로 양준 관저에 도착했다.
그리고 양쪽은 마침 관저 밖에서 마주쳤다.
왼쪽에서 온 이들은 두 여인으로, 한 명은 세상에 둘도 없이 요염하고, 다른 한 명은 귀여웠다. 요미여왕 선경라와 시녀 벽락이었다. 오른쪽에서 나타난 이들은 8대 세가의 가주들이었다.
뜻하지 않게 마주치자 엽광인이 대뜸 노하여 고함을 질렀다.
“요미여왕!”
그가 말하는 순간, 진원이 꿈틀거렸다. 이곳에서 싸우려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일곱 명도 악의에 찬 표정으로 선경라를 바라보았다.
선경라는 얼른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몰래 힘을 모으는 한편 조바심을 냈다. 그녀는 가주들이 그녀와 마찬가지로 기운을 감추고서 이곳에 올 줄 미처 몰랐기에 이처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 것이었다.
“요미여왕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이지?”
강예가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선경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주들을 경계 어린 눈초리로 훑어보았다.
“말 섞을 필요 없네! 죽여 달라고 왔으니 죽이면 그만이지.”
고묵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다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공격을 하려던 순간, 양준 관저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러분, 어서 들어오십시오. 양준이 찾아온 이는 모두 손님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대문 앞에서 소란 피우지 마십시오.”
그 목소리에 8대 세가의 가주들은 얼굴빛이 이상해졌다. 추수성은 양준 관저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애처롭게 불렀다.
“몽아!”
“아버지!”
추억몽은 의연한 표정으로 추수성에게 예를 올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양준과 논의를 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거지요?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그녀는 말하는 한편, 몸을 반쯤 비켜섰다.
“흥!”
엽광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선경라를 힐끗 보았다.
“이번에는 살려주지만 내 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
그러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천행궁에 틈이 생기자 가주들이 먼저 들어갔다. 가주들이 모두 들어간 다음에야 추억몽은 선경라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니도 들어오세요.”
“내가 왜 왔는지 양준도 알고 있니?”
선경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바깥에 손님이 와 있으니까, 모시고 들어오라고만 했어요. 어차피 물어봐도 대답 안 해줄 거예요!”
추억몽은 속으로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8대 세가의 가주들이 찾아온 것을 알았다면 그녀는 결코 마중하러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중에는 그녀의 아버지도 있었다.
“녀석, 뭐가 그리 숨기는 게 많아?”
선경라가 피식 웃었다.
추억몽의 표정이 순간 무엇에 빠져든 듯 넋을 잃고 선경라를 바라보았다.
이에 선경라는 얼굴빛이 달라지더니 얼른 자신의 요염함을 거두었다.
추억몽은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렸다. 마음속에서도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그녀는 요미여왕의 요염함은 여인도 막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전,
8대 세가의 가주들은 각각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선경라도 침착하게 다른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 모인 가주들이 모두 그녀를 싫어하지만 양준이 있는 한, 그녀는 아무 위험도 없었다.
가주들도 이 순간 선경라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저 높이 상석에 앉아 있는 양준을 바라보며 기분이 복잡하고 미묘했다.
그들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들보다 한 항렬이 낮은 양씨 가문의 직계 자제가 어느새 이처럼 그들과 나란히 앉아 동등하게 대화할 정도로 컸단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되는 데는 겨우 일 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을 뿐이었다. 양준의 동년배들은 그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그저 뒷모습만 지켜봐야 했고, 아마 평생 그의 높이에는 이르지도 못할 듯했다. 중도의 일인자로 불렸던 류경요도 양준의 앞에서는 보잘것없었다. 8대 세가의 가주들은 충격과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관저의 하녀가 차를 내오자, 가주들은 긴장된 마음에 얼른 차를 마셨다. 그러나 전혀 맛을 음미할 수 없었고 씁쓸함만이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