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73화 (572/853)

제 573장. 한 명 더 있어요

“양씨 가문은요? 누가 가주인가요?”

다른 7대 세가 가주들의 말을 들은 양준이 양응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양응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너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다른 일곱 명도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부득이하게 가주 자리를 이처럼 빨리 후대에게 물려준 것은 모두 양준과 동맹을 맺기 위해서였다. 만약 양준이 양씨 가문의 가주 자리에 오르지 않는다면, 서로 간의 동맹 관계가 견고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양씨 가문의 가주 자리에 오르지 않을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계승 싸움이 시작될 때 제가 백부님께 얘기드리지 않았습니까.”

“진심이냐?”

양응호는 의아해했다. 양준은 확실히 그에게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것은 문파의 이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이지, 결코 가주 자리를 넘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는 양준이 그냥 해본 말이라고 생각했다. 양준이 정말로 양씨 가문의 가주가 되기 싫어할 줄을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진지하게 말하는 겁니다. 가주의 자리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기만 한데 저는 그런 일을 절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양준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네가 지금 장악하고 있는 힘이 양씨 가문보다 더 강하지 않느냐. 지금 네 위치는 가주가 아니지만 가주보다 위란 말이다.”

“이번 고비를 벗어나면 모였던 사람들은 다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가주는 평생 지켜야 할 자리죠. 제가 어찌 양씨 가문의 굴레에 갇혀 있겠습니까?”

양준은 잠깐 생각하고 난 뒤 직접 추천했다.

“큰형님이나 둘째 형님이 가주가 되어도 됩니다. 특히 둘째 형님은 아주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양소는 정말 기뻐할 것이다. 물론 그럴 능력도 있지. 하지만 그건 네가 없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네 기세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지. 양씨 가문에 네가 있는 이상, 다른 사람은 가주가 될 수 없다. 양소는… 너와 같은 세대인 게 안타까울 뿐이구나.”

양응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역시 자신의 아들이 안타까웠다. 양준이 너무 뛰어나지 않았다면, 양소는 양위보다 훨씬 더 좋은 가주 후계자였다. 양위는 성격이 과묵하고 수련에만 빠져 있어 가주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먼저 거절하지 말고 잘 생각해 보거라. 저번에 내가 한 말은 기억하고 있느냐?”

양응호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무슨 말씀을요?”

“양씨 가문의 가주가 되면, 가주만의 이득이 있다고 했던 말.”

그 말을 듣고 나머지 일곱 명은 모두 양응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도 어렴풋이 뭔가를 알고 있는지 모두 부러운 표정이었다.

양준은 꼼꼼히 되새겨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양응호는 그때 확실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양씨 가문의 가주들이 왜 모두 신유 경지 이상인지 아느냐? 그건 양씨 가문의 가주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대우가 있어 그런 것이다. 네가 가주 자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단다.”

양응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양준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다른 일곱 명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들은 양씨 가문의 비밀에 대해 들은 바가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무엇인지 모르는 듯했다.

“백부님, 지금 이익으로 저를 유혹하시는 겁니까?”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양응호는 부인하지 않았다. 양준은 절대로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 다시 말해서 이익을 따지고 이익이 없으면 절대 나서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 그런 양준이라면 양씨 가문의 비밀에 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과연 양준은 흥미가 동했다.

양응호는 빙그레 웃으며 입 모양으로 말해 주었다. 이에 양준은 살짝 놀라더니 저도 모르게 기쁜 표정을 지었다.

7대 세가의 가주들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양준과 양응호 사이에 소리 없는 교류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시종일관 둘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백부님, 그 비밀에 관심이 가지만, 가주가 될 생각은 정말 없습니다.”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양씨 가문의 앞날은 너한테 맡기마. 중도의 8대 세가는 여러 대에 걸쳐 노력했지만 오늘의 수준밖에 발전하지 못했다. 창운사지에서 기습하자, 8대 세가가 연합해도 막아 내지 못하고 중도의 절반이 함락되었지. 이건 우리 8대 세가의 치욕이다. 하지만 넌 다르다. 양씨 가문에 돌아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8대 세가 중 어느 가문보다도 더 강해졌어. 지금은 너의 관저야말로 명실상부한 패자란 말이다. 넌 어느 누구보다도 양씨 가문의 가주 자리에 앉을 만해.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저들이 무얼 믿고 가주 자리를 아직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느냐? 저들이 믿는 건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바로 양준 너란다.”

양응호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일곱 명도 정색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예전의 얕보던 눈빛이 아닌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8대 세가와 적대 관계였을 때는 그들의 생사나 앞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화해하려고 하고 있는 만큼, 양준도 그들을 적대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웃는 낯에 침을 뱉지 못한다고, 8대 세가는 창운사지를 막아 내기 위해 무척이나 애쓰고 있는 셈이었다.

양준이 진지하게 말했다.

“전 아무래도 백부님의 기대를 저버릴 것 같습니다. 일단 당분간은 양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맡겠습니다만, 이번 일이 끝나면 큰형님이나 둘째 형님에게 가주 자리를 잇게 하세요. 저의 미래는 양씨 가문도, 중도도 아닙니다. 이곳은 제 인생의 과정일 뿐이지 결코 종착역이 아닙니다.”

그는 동경과 기대가 담긴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믿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 어딘가에 더 강한 무인, 더 강한 문파 그리고 더 강한 가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8대 세가는 그들과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릅니다.”

양준은 지금 적어도 수신전이라는 곳이 있으며 수령과 같은 고수를 키워 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주들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양준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이 세상에 8대 세가보다 더 강한 세력이 있단 말인가? 창운사지가 대단하다 한들, 그곳 역시 6개 영역이 모여서 그만한 규모를 이룬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다. 네가 더 큰 포부를 지니고 있다니 나도 막지 않으마. 그렇지만 당분간은 네가 양씨 가문의 가주를 맡아줘야겠구나.”

양응호는 잠깐 망설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대리는 할 수 있으나 취임식은 필요 없습니다.”

양응호는 탄식하고서 더는 강요하지 않고 승낙했다.

중도의 8대 세가에서 동시에 가주가 바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이 뒤흔들렸다. 특히 중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소식에 깜짝 놀랐다.

7대 세가는 취임식을 거행하고 정식으로 가주 자리를 물려주기로 했다. 양씨 가문은 대외적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이른 지금, 양준이 잠시 가주 직을 대리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큰일은 모든 가문에서 축제를 벌일 만했다. 그러나 창운사지의 많은 고수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7대 세가는 취임식을 한자리에 모여서 거행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창운사지 쪽의 움직임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요즘 들어 창운사지 무인들은 조용한 편이었다. 각 가문에서는 급하게 취임식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보냈다.

그동안 방어 임무는 양준 관저의 고수들이 맡게 되었다. 양준 관저의 고수들이 방어하고 있기에 취임식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사흘 뒤, 양응봉 부부가 양준 관저에 행차했다.

소식을 접한 양준은 얼른 나와 부모님을 맞이했다.

소안은 쭈뼛쭈뼛하며 양준을 따라 나와 상기된 얼굴로 양준의 부모님께 인사를 올렸다. 양응봉과 동소죽은 수줍어하는 소안의 모습을 보고, 곧 그녀와 양준의 사이를 눈치챘다.

동소죽은 소안의 손을 잡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절색의 얼음 인형 같은 며느릿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양응봉도 부러운 표정으로 조용히 양준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머니, 사실 한 명 더 있어요.”

소안이 나지막하게 동소죽에게 말했다.

“한 명 더 있다고?”

동소죽은 마음속으로 기뻐했으나 겉으로는 굳은 표정으로 소안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저 녀석을 혼내 줄 테니까. 나쁜 놈, 이제 다 컸다고 한 번에 둘씩이나, 이게 말이 돼.”

그녀는 소안이 질투해서 일러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에요.”

소안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사매가 부끄럼을 타 나오지 못해서 그러는 거예요. 게다가 사제가 아직 사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거든요. 지금처럼 어영부영 사매의 일생을 그르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러니…….”

동소죽은 의아한 눈빛으로 소안을 바라보았다.

“지금 네 뜻은…….”

“사매도 나와서 아버님, 어머님을 만났으면 싶어서요.”

소안이 정색하고 말했다.

동소죽은 소안의 넓은 아량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한참 뒤에야 말했다.

“네가 괜찮다면 나야 만나면 좋지. 그 애한테 말도 해 주고.”

“그럼 제가 가서 데려올게요.”

소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신형이 움찔하더니 종적을 감추었다.

“어머니, 소안은 뭐 하러 갔습니까?”

양준은 한창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안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자 대뜸 물었다.

“흥!”

동소죽이 의미심장하게 코웃음을 치자, 양준은 어리둥절해 머리를 긁적거렸다.

얼마 안 지나, 소안이 하응상을 데리고 왔다. 하응상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양응봉 부부에게 예를 올리고는 얌전하게 한쪽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동소죽이 말을 물을 때만 겨우 두어 마디 대답할 뿐이었다.

0